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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우리는 왜 지금 윤리를 이야기하는가 (上) - 영화 <증인>과 <나의 특별한 형제>를 중심으로
[김민정의 문화톡톡] 우리는 왜 지금 윤리를 이야기하는가 (上) - 영화 <증인>과 <나의 특별한 형제>를 중심으로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5.02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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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증인] 포스터
영화 [증인] 포스터

“아프리카 세렝게티는 얼마 남지 않은 야생동물들의 천국입니다. 이곳에서 초식동물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요.”

영화 <말아톤>은 다섯 살 지능의 20살 자폐 청년이 엄마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스스로 장애의 틀을 깨고 나오는 과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냄으로써 관객과 평단 둘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마라톤 완주 후 기자 앞에서 선 ‘초원’의 얼굴은 사진에 찍히듯 클로즈업되는데, 환한 그의 미소는 사람들 마음속에 깊은 여운을 남기며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사회적 편견에 고통받는 자폐아에서 독립과 자존을 찾아가는 한 인간으로의 성장담. 그렇게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그런데 삶은, 영화가 아니다. 마라톤 완주 후 그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이 질문은 영화의 실제 모델인 배형진 군에 대한 안부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초원’, 그러니까 영화에 등장하는 불특정 소수의 장애인을 향한 안부이기도 하다. 삶은 영화가 아니지만, 영화는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실재보다 더 진짜 같은 파상실재(hyper reality)를 통해 영화는 현실과의 경계를 지우며 한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화 질서를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로서 기능한다. 그렇다면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의 삶은 어떠한가. 영화 속에서 그들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는가. 이 글은 ‘초원’의 미래, 그러니까 또 다른 ‘초원’의 현재를 상상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윤리는 윤리적인가

 

<말아톤> <맨발의 기봉이> <허브> <형> <채비> <그것만이 내 세상> ……

2000년대 장애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한국 영화에서는 일정한 패턴이 발견된다. 만남과 이별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로맨스 장르처럼 ‘장애인 영화’는 자기만의 장르적 관습이 있고 그것에 따른 관객의 기대가 있다. 학술적으로 연구가 전문화되거나 산업적으로 장르적 팬덤이 구축된 것은 아니지만 관습적 상상력의 반복과 차이화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하나의 세부 장르로 규정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장애인 영화’에 대한 관객의 장르적 기대는 명확하다. 바로 감동이다. 장애인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비장애인은 자신의 편견을 반성한다. 그리고 결국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따뜻한 연대와 해피엔딩. 로맨스 영화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오해와 이해를 반복하다가 마지막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며 훈훈한 결말로 끝난다. 그 과정에서 메시지는 정해져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함께 살아야 한다.’

정해진 답이 있기에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what)이 아니라 ‘어떻게’(how)다. 장애인의 장애를 선천적으로 할 것인가 후천적으로 할 것인가. 지적장애로 할 것인가 사고에 의한 중도 실명으로 할 것인가. 장애인 옆에 있는 비장애인을 친형으로 할 것인가 의붓형으로 할 것인가. 그 형은 전과 10범 사기꾼으로 할 것인가 전직 동양 WBC 챔피언 백수로 할 것인가. ‘장애인 영화’의 차별점은 너무 원론적이어서 이제는 식상해진 주제를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로 변주할 것인가, 즉 창작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넓힐까 고민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러나 관객의 기대 혹은 예상과는 다르게, 영화 <증인>과 <나의 특별한 형제>는 그 ‘무엇’(what)에 대해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왜 같아야 하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왜 함께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은 소위 ‘장애인 영화’라고 불리는 일련의 영화들이 보여주는 관습적 상상력에 대한 이의제기라고 할 수 있다. 과연 그것은 바람직한가. 그 윤리는 정말 윤리적인가. 이런 의문은 ‘질문하는 형식’으로서의 예술에 가장 가까운 접근법이라는 점에서 매우 근본적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당연히 여겨왔던 윤리 자체에 대한 전복적인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성격을 가진다.

삶은 영화가 아니다. 엄밀히 말해, 영화 역시 삶은 아니다. 영화가 단순히 현실의 거울에 머물지 않고 허구적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자기만의 시각, 즉 사유와 성찰의 지점이 있어야 한다. 대중예술로서 영화의 사회적 영향력은 관객동원력과 같은 양적 영역과 더불어 새 의제를 설정하고 담론을 형성하여 새로운 문화 질서를 구축하는 질적 영역까지 포함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증인>과 <나의 특별한 형제>가 선보인 새로운 윤리의 좌표는 우리가 서 있는 ‘지금 여기’의 윤리를 점검하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하게 될 한국 사회의 변화를 미리 경험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지점에 놓여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왜 같아야 하는가

 

영화 <증인>은 대형 로펌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가 파트너 변호사로 승진할 기회가 걸린 사건의 변호사로 지목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는 살인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유일한 목격자인 자폐 소녀 ‘지우’(김향기 분)를 증인으로 세워야만 한다. 하지만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아이와는 인사조차 나눌 수 없는 상황. 그는 사건 당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계속 아이를 찾아간다.

극 초반까지 영화 <증인>은 기존 ‘장애인 영화’와 별반 다르지 않게 서사가 전개된다. 착한 장애인과 착하지 않은 비장애인, 그리고 그들의 목적 있는 만남.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무언가를 이용할 목적으로 접근하고 장애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서번트 증후군 피아노 천재 ‘진태’(박정민 분)는 전직 동양 WBC 챔피언이지만 지금은 백수인 의붓형의 캐나다 이민 자금을 위해 피아노 콩쿠르 참가를 독려받고, 영화 <형>의 중도 실명한 전직 국가대표 유도선수 ‘경우’(도경수 분)는 전과 10범의 사기꾼 형에게 속아 집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을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만남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다. ‘장애인 영화’는 우여곡절 끝에 서로의 진심을 확인하고 진한 우정을 나누는 행복한 결말을 향해 전진한다.

그런데, 영화 <증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과’로서의 연대가 아니다. 기존 ‘장애인 영화’가 두 사람의 감동적인 연대에 방점을 찍는다면, 영화 <증인>은 그 지점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는 데 중점을 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는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고 교감하는 다양한 방법론, 그것이 바로 영화 <증인>이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으로서의 메시지다. 영화는 그들의 소통이 얼마나 자주 어긋나고 미끄러지는지, 그들의 지속적인 교감 실패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것은 관계 맺기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공감의 윤리가 실패하는 지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발견해야 하는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 ‘무엇’은 무엇인가. 바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다’라는 사실이다.

기존 ‘장애인 영화’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장애인에 대한 일상적 차별이다.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여러 차례 반복되는데, 이때 관객은 엄청난 폭력 사건을 목격한 것처럼 죄의식에 휩싸인다. 장애인을 놀리거나 조롱하는 행위, 장애인을 때리거나 폭언을 하는 행위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지만, 그걸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방관자 위치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장애 에피소드의 초점화는 장애인의 타자성을 강조하여 비장애인과의 연대 형성에 필요한 정서적 개연성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그 연대는 겉보기에는 수평적인 관계로 보이지만 동정과 연민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관계의 수직성을 내포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라는 명제 아래 장애인의 타자성은 주체로 환원되어 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 <증인>에서 지우의 장애는 타자의 타자성으로 존중받는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서게 된 지우는 자폐아란 이유로 증언의 사실 여부를 의심받는다. “할아버지의 목을 조르며, 아줌마가 웃고 있었어요.”라고 증언했지만, 변호사 순호가 내민 그림 속 얼굴의 표정을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호는 기억력이 뛰어나고 청력이 민감한 자폐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해 가사도우미가 살인자임을 증명해낸다. 지우가 멀리 떨어진 사건 현장에서 있었던 모든 대사와 상황 들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재판에서 순호는 “일탈적이고 비정상적인 것이 꼭 열등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다 다르다.”라고 역설한다. 이 대사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다르지 않다’라고 강조했던 기존 ‘장애인 영화’의 메시지를 전복시키는 효과를 발휘하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사람이기에 모두 다 다르다’라는 새로운 윤리를 제시한다.

 

서로 다름에 대하여

 

‘사람은 다 다르다’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화 <증인>은 지우의 장애를 보편적 인간의 특성으로 전유한다. 재판이 끝나고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지우를 찾아와 겁박하는 가사도우미의 웃는 얼굴을 목격한 관객은 큰 혼란을 느끼게 된다. 그 얼굴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감정과 표정의 불일치는 우리가 이제까지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들을 의심하라고 촉구한다.

우리가 본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본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당혹감은 법정에서 감정이 지워진 얼굴만 보고 표정을 읽어내야 했던 지우가 느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제야 우리는 지우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태도가 된다. “선혜는 웃는 얼굴인데 나를 이용하고, 엄마는 화난 얼굴인데 나를 사랑합니다.” 이렇게 지우의 장애는 우리가 알고 있는 표정의 의미를 무효화시키며 우리의 신념과 가치에 균열을 일으킨다.

극 중 지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속 등장한다. 때문에 지우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인지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표정의 ‘없음’이 ‘있음’보다 더 많은 의미를 함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표정이 지워진 지우의 얼굴은 다양한 표정의 가면으로 자기 생각을 감추는 비장애인보다 자신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졌는지, 그러니까 자신이 누구인지 정직하게 드러낸다.

레스나스에 의하면 “그가 그인 것은 그의 성격이나 외모나 그의 심리상태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다름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 존재에는 어떠한 형식이나 맥락에도 구속되지 않는, 의미화에 선행되는 본질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지우의 표정 없는 얼굴은 자폐 소녀의 그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얼굴, 즉 인간의 원형적 얼굴이다.

영화 <증인>에서 지우의 장애는 지우의 삶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지우의 정체성을 증명해주는 존재론적 특성으로 그려진다. “자폐가 아니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순호의 말에 지우 엄마는 “그건 지우가 아니지요.”라고 단호하게 대답한다. 그것은 지우와 순호가 소통과 교감을 하는 친밀한 관계가 되었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재판이 다 끝나고 지우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은 순호가 집에 방문했을 때 지우가 친구들과 어울려 노느라 순호를 신경 쓰지 않자 지우 엄마는 곤란해한다. 하지만 순호는 “괜찮습니다. 저게 지우잖아요.”라고 말하며 지우가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지우의 장애는 순호와의 사적 관계 속에서 용해되지 않고 순호의 삶에 의해 완전히 포섭되지 않는다. 그렇게 자폐 소녀 지우는 절대적 타자로서 당당하게 주체의 자리에 앉아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 평화롭게 머문다.

 

 

 

글·김민정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한 사람이 한 권의 책'이라는 생각으로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분주히 오가며 나만의 장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에세이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2021), 드라마비평집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사용법>(2020) 드라마이론서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2018), 논픽션<한현민의 블랙스웨그>(2018), 소설집 <홍보용 소설> (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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