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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다수가 바라던 세계의 밖 - 영화 <복지식당>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다수가 바라던 세계의 밖 - 영화 <복지식당>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2.05.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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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혹은 안일한 희망으로 쌓은 안정과 평화는 무엇을 낳았을까? 불안한 것들을 마음대로 봉합하는 사이 그곳에선 현실과는 다른 왜곡이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그저 그랬으면 좋겠다는 희망은 늘 현실과 먼 이상향을 가리키기는 방식으로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선의에 의한 것일지라도 왜곡된 시선을 재생하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혐의를 벗기 힘들다. 그럼에도 한국 영화에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수가 바로 이러한 경로 위에 있었다. 비장애인들이 바라는 무엇, 그러니까 선하고 약한 장애인과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면이 선한 비장애인들의 노력과 도움은 두 집단의 화해를 만들어냈다. 비장애인의 눈물겨운 노력과 어느 순간의 깨달음으로 장애인에 대한 이후의 보호까지도 보증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는 결말은 너무도 감동적으로 이 사회의 바람을 녹여냈다. 장애의 문제는 그와 가까이 지내고 있는 누군가의 몫이며 그 몫은 몇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자면 여기에는 장애인의 삶, 즉 그들이 실제로 짊어지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려낼 여지가 없다. 이 서사에서 장애인의 역할은 비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데에 가장 강력한 갈등을 던지며, 비장애인과 가까워지는 것으로 소명을 다한다. 장애인을 그리는 많은 영화들에서 구체적으로 그들의 장애가 어떤 것인지, 그 판정은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로 인해 어떤 제약과 혜택을 받고 있는지 그러니까 만약 비장애인이 없다면 그가 스스로 살아가야 하는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분히 비장애인들의 안정을 향하고 있는 이러한 설정과 서사들은 실제로 장애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궁금해하지 않은 탓이 클 것이다. 그 결과 비장애인의 범주에서 이해할 수 있는 장애의 정도, 쉽게 말해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어떤 식으로든 소통이 가능한 정도의 장애가 제시되었고 무엇보다 악한 장애인은 결코 등장할 수 없었다.

 

영화 <복지식당>을 보고 당황하거나 불편한 것은 이 작품이 여태까지 가려왔던, 그러나 너무도 당연한 현실을 펼쳐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을 알았을 때에 맞닥뜨릴 당혹감을 최대한 밀어냈던 많은 영화에서 결코 볼 수 없던 장면들은 <복지식당> 속 인물들의 삶이며 현재였다. <복지식당>은 그저 우리가 바라며 그리던 장애인 서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차분히 짚어 내며 질문을 던진다. 재기는 사고로 중증 장애인이 되었고 그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이혼한 후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누나뿐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물려주신 작은 건물이 있긴 하지만 가파른 계단 탓에 재기는 그곳에 살 수도 유지할 수도 없어 남매는 점점 궁핍해진다. 재기는 장애인 복지 정책을 이용하여 취업을 하려 하지만 자신의 신체 능력과 맞지 않는 장애등급을 받으면서 현실은 점점 어두워진다.

재기가 이러한 상황 속에 던져질 수밖에 없는 이유로 영화가 가장 먼저 짚어낸 것은 역설적이게도 재기의 노력이었다. 재기는 장애 판정을 위한 신체능력 측정에서 간호사가 움직여보라는 대로 최대한 일어서려 하고 팔을 들려 하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 보이도록 ‘노력’한다. 이 움직임은 비장애인만큼 움직일 수 있다는 것, 훈련한다면 적어도 비슷하게나마 그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증명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그 능력치에 다가갈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함에도 다리를 펴보았던 것, 팔을 들어보았던 노력들은 그를 5급의 경증 장애인으로 분류하게 했다. 이는 사실상 그가 대부분의 복지 혜택에서 배제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터였다. 장애인콜택시를 부르는 것도, 보행을 위한 지팡이를 지급받는 것도, 그가 가장 필요한 일자리를 얻는 것도 모두 중증 장애인인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기에 재기는 이와 관련한 어떤 것도 얻지 못한다. 이러한 재기의 현실은 장애인이 자신의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최대한의 능력을 끌어올려 무엇인가를 이뤄내는, 장애인에게 바라던 서사가 얼마나 비장애인의 시선 속에 놓여 있는 것이었는지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노력하여 극복해야 한다는 응원이 재기에게 오히려 장애로 작용했다는 점은 장애의 등급에 문제가 있으며, 함부로 노력하는 것은 장애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한 ‘정보’였다는 점을 역설한다. 재기는 중증 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장애인을 위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다는 점을 최대한 어필해야 한다는 ‘정보’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중증 장애인이라는 등급이 낙인이라 생각했던 인식과는 다르게 모든 혜택은 중증 장애인을 향해 있는 현실을 비장애인들은 결코 알 수 없다. 그래서 바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자, 즉 다른 장애인들에게 이 정보를 줄 수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어떤 미래를 그릴 수 있을지를 알려주는 이는 절대자가 될 수 있다. 병호는 바로 그렇게 등장한다. 재기가 미처 알지 못했던 혜택들을 하나 하나 읊어주면서, 그리고 네가 받을 수 없는 혜택을 나의 등급으로 함께 누릴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면서 조금씩 접근해 오는 것이다.

<복지식당>의 병호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이이다. 병호는 오랫동안 비장애인이 장애인과의 화합에 집중하는 동안, 실제로 상당수의 후천적 장애인이 겪을 수 있는 현실은 그들끼리의 커뮤니티에 있다는 사실이 환기시킨다. 병호는 선천적 장애인으로 오랫동안 정보를 쌓아왔다. 어디에서 어떤 혜택을 얻을 수 있는지, 혹시라도 등급을 바꾸고 싶다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했을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그는 훤히 꿰고 있으며, 이를 활용하여 여러 단체에 연결시키는 탓에 단체들 역시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오랫동안 얻어온 이 정보들을 통해 병호가 알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갑작스런 장애 판정을 받은 이들은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을 만큼 절박하며 이를 이용한다면 그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병호는 이를 철저하게 이용하여 서열을 만들고 권력을 쥔다. 마치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장애인이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쥔 것이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을 활용하는 것이다.

 

재기를 이용하는 병호의 행동은 분노보다 당혹스러움을 불러온다. 이는 전에 본 적 없는 그리고 생각해 본 적 없는, 아니 생각하고 싶지 않은 현실에 직면했을 때의 당황이다. 게다가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이 당혹스러움은 더욱 강해진다. 이는 어찌 생각하면 너무도 당연한,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누군가를 속이거나 이용하는 이들이 있다는 진리를 우리가 그저 순수하거나 순수해야 한다고 믿었던 그곳에서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이 불편함의 정체, <복지식당>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비장애인들이 만들어놓은 가상의 세계는 말 그대로 가상일 뿐,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삶에는 신체적인 문제를 넘어 그들 사이의 권력과 그로 인한 생존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라는 공간이 재기에겐 고립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의 앞에 놓인 것은 누가 보아도 중증 장애인인 자신을 어설픈 절차로 증명해주지 않는 현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의심스러우면서도 돈을 내어 주고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희망 고문이다. 장애인 감독과 비장애인 감독이 함께 포착한 현실은 이렇게 스크린에 담겼다. 장애 정도에 따라 급을 나누었던 것이 문제가 된다면, 아무런 준비 없이 등급을 단순화 시키는 것으로 개편하여 또 다른 복지 사각지대를 낳는 비장애인들의 정책처럼 그들이 바라본 세상에는 장애인이 설 자리가 없었다. 실상이 어떠한지를 보기보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과 그것의 실천, 자신들만을 위한 희망을 계속 쌓아간다면 이후 더 많은 재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복지식당>(2022.4.14. 개봉)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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