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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인>, 감정이입과 거리두기 경계의 칼날 위에서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거인>, 감정이입과 거리두기 경계의 칼날 위에서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06.0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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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감독은 <얼어붙은 땅>(2010)으로 전주국제영화제 한국단편경쟁부문 대상을 수상했고 국내 최연소로 제63회 칸영화제 시네파운데이션 부문에 진출했다.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장편 데뷔작 <거인>(2014)은 내공 있는 연출로 신인답지 않은 연륜을 느끼게 하는 작품으로 영평상 신인평론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거인>의 인물들은 선과 악이 혼합되어 있거나 선과 악의 순환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영재(최우식 분)는 이삭의 집(모범생, 여우새끼, 뒤에서 더 무서운 사람), 학교(걸어 다니는 동대문, 쓰레기), 성당(미래의 신학생·신부), 아버지 집(자해로 협박하는 놈, 아버지를 한심한 새끼라고 부르는 아들) 등 공간, 대상에 따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인물들의 관계에 있어서도 가해자, 피해자가 계속해서 뒤바뀌며 순환한다. 처음에 영재가 한 도둑질로 범태(신재하 분)가 누명을 써서 쫓겨나게 되지만, 이후에 범태가 영재의 도둑질을 목격하고는 협박을 하게 되고, 결국 영재는 차량 절도를 시도하는 범태를 경찰에 신고한다. 이렇듯 인물의 본성보다는 환경에 따라 인물이 얼마나 나약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절망을 먹고 거인처럼 자란” 영재를 둘러싼 각각의 공간은 믿음, 우정, 사랑이 아닌 환멸, 배척, 배신이 자리 잡고 있다.

 

원장아버지(강신철 분), 친아버지(김수현 분) 등 기성세대가 말할 때는 프레임 밖의 보이지 않는 화자로 위치시킴으로써 영재의 거리감과 거부감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범태가 인사도 하지 않고 새벽에 떠난 것을 알고는 분노해서 반찬 그릇을 내던지며 하는 원장아버지의 환멸의 말, 동생 민재(장유상 분)를 이삭의 집에 보내려고 끊임없이 영재에게 진척거리는 친아버지의 무책임한 말, 밀양 야곱의 집으로 쫓겨나는 영재에게 하는 신부의 가식적인 말 등은 화면 밖에서 들려오는 반면, 대신에 그런 말들을 듣는 영재의 고통스러운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화면 가득히 보여준다.

 

또한 중요한 순간에 인물의 뒷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인물의 앞으로의 행위, 느끼는 감정 등에 대해서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생각하게 만든다. 이삭의 집에서 쫓겨나 살 곳이 없게 되어 성당의 헌금을 훔치기로 작정한 범태의 뒷모습, 해변가에서 즐거운 또래 학생들을 보고는 씁쓸해하는 영재·민재의 뒷모습, 자해 소동으로 궁지에 몰려 어디에도 갈 곳 없어 거리를 배회하는 영재의 뒷모습 등 뒤돌아 서 있는 인물의 뒷모습은 뒤에서 지켜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깊이 있는 여백과 여운을 느끼게 만든다.

 

대부분 카메라가 고정되어 있어서 가끔씩 카메라가 이동할 때 인물의 감정적 동요를 강하게 느낄 수 있게 만든다. 그리고 감독은 주로 롱숏을 통해 상황을 제시하고 미디엄숏을 통해 인물들의 갈등을 보여주고 클로즈업을 통해 인물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특이한 점은 카메라가 인물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45도 사선으로 혹은 90도 옆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밀양 야곱의 집으로 떠나기 전 동생을 만나고서 심란한 영재가 눈물을 글썽일 때 카메라는 정면으로 다가가지 않고 오히려 옆으로 물러나서 가만히 지켜본다. 많은 장면들이 영재의 시점숏으로 그려져 인물에게 동일시와 공감을 하게 만드는 한편, 정작 감정적으로 고조되는 장면에서는 오히려 인물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고 사선이나 측면에서 클로즈업을 해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심리적인 균형을 유지시킨다.

 

<거인>의 관객평 중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감정이입과 거리두기를 통해 인물의 욕망과 현실의 경계를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외면하고 싶은 세상에 대해서 억지로 고개를 돌려 뚫어지게 지켜보고 생각하게 만듦으로써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김태용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까 한다. 거인으로서의 첫 걸음을 뗀 김태용 감독이 앞으로 어떤 행보를 걸을지 기대해 본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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