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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사코>, 다름과 닮음의 불협화음 혹은 이중주②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아사코>, 다름과 닮음의 불협화음 혹은 이중주②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2.06.0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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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아사코>(2019)에서 바쿠와 료헤이의 관계는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료헤이와 아사코의 집 앞을 흘러가는 ‘더럽지만 아름다운 강물’이 그러한 것처럼, 바쿠와 료헤이는 ‘다르지만 같은’ 혹은 ‘같으면서 다른’ 모순적인 인물이다. 바쿠는 거칠고 야성적이고 제멋대로이며, 료헤이는 부드럽고 친절하고 이성적이다. 바쿠는 아사코를 떠났다가 돌아오고, 료헤이는 떠났다가 돌아온 아사코를 마지못해 받아들인다. 바쿠와 료헤이는 아사코를 중간에 두고 대립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아사코가 바쿠와 료헤이 사이를 오가면서 방황한다. 그렇다고 삼각관계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시간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쿠와 료헤이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선 두 사람은 똑같은 외모를 지녔다. 배우 히가시데 마사히로가 1인 2역을 한다. 또 바쿠는 원료(보리)이고, 료헤이는 그 원료로 술을 빚는다. 바쿠는 원시 자연, 료헤이는 문명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바쿠와 료헤이는 적대적이거나 모순적인 관계가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의 선으로 연결되는 사이이다. 차이가 없으면서 있고, 차이가 있으면서 없는 그 관계는 절묘하고 아득하다.

▲쌍둥이 혹은 형제 신화=바쿠와 료헤이는 인류 역사의 변화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곡식(바쿠)이 술(료헤이)로 바뀌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보리와 술은 형태와 성질만 다를 뿐, 그 본질은 다르지 않다. 바쿠와 료헤이는 인간이 지닌 두 가지 성격을 보여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부분 바쿠의 면모와 료헤이의 면모를 함께 가지고 있다. 개인에 따라서 혹은 상황에 따라서 한 가지 면모가 두드러지게 나타날 뿐이다. 그렇다면 <아사코>에서 바쿠와 료헤이가 다른 인물로 설정된 것은 자연스럽다. 그들은 쌍둥이 혹은 형제 신화의 주인공이 현대적으로 변용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신화에서 쌍둥이와 형제는 갈등과 대립의 주체이다. 외모와 욕망에서 차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아사코>에서는 아사코가 욕망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같은 외모, 같은 욕망을 지닌 바쿠와 료헤이가 대립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그런데 <아사코>는 료헤이가 바쿠의 체취가 남아 있는 아사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러한 결말은 원시 문명과 현대 사회의 관계로 확장된다.

쌍둥이 혹은 형제는 분리되기 이전의 세계, 즉 카오스와 관련이 있다. 세계는 태초에 카오스의 상태였다. 카오스는 분리가 이루어지기 이전의 세계이다. 하늘과 땅,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이 분리되지 않은 채 뒤엉켜 있는 상태이다. 혼돈의 세계는 분리의 과정을 거치면서 하늘과 땅,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의 차이가 발생한다. 중국신화에서 거인 반고가 하늘과 땅을 분리한 이후에 비로소 세계에 질서가 생기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바쿠가 CF에서 전해준 실제 경험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여행에서 오로라를 본 순간을 ‘하늘이 바다 같았다’라고 말한다. 바쿠의 내면은 하늘과 바다가 분리되지 않은 원시의 상태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아사코도 바쿠와 유사하다. 아사코는 바쿠와 재회한 후 료헤이와 지낸 시간을 ‘꿈꾸는 것 같았다’라고 표현한다. 아사코에게 ‘바쿠-료헤이-바쿠’로 이어진 관계는 ‘현실-꿈-현실’의 구조이다. 현실과 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는 혼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료헤이는 엄연히 현실이자 미래이다. 그리고 아사코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돈의 상태에서 겨우 헤어나온다. 료헤이가 아사코를 믿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창조신화에서는 카오스의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건곤일척의 전투가 벌어지고는 한다. 수메르신화에서 마르두크와 ‘혼돈의 여신’ 티아마트의 전투 장면은 무시무시하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한 마르두크는 티아마트의 육체로 하늘과 땅, 별과 달, 구름, 강 등을 만들면서 세계를 창조한다. 모든 것이 뒤엉켜 있는 혼돈이 끝나고 나서 세계에 비로소 평화와 질서가 생겨난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 원시신화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구분이 없다. 인간이 염소의 마을에 들어가 그들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다. 또 인간은 곰의 털가죽 옷을 입고 곰은 인간의 옷을 입은 채 서로 반갑게 악수한다. 그런데 고대신화에서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생겨난다. 스핑크스처럼 인간과 동물의 육체가 혼재되어있는 존재는 처벌을 받고 죽음을 맞이한다. 즉 인간과 동물이 공존하거나 둘의 차이가 없는 상태는 악으로 규정된다. 쌍둥이 혹은 형제 신화도 같은 맥락이다. 쌍둥이와 형제는 차이가 거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갈등과 대립이 발생한다. 카인과 아벨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형제 신화는 인류 문명 발달 과정에서 이전 시대를 부정하는 경향이 있다.

<아사코>는 이 갈등과 대립을 순리에 맞게 풀어낸다. 바쿠는 아사코를 선선히 보내주고, 아사코는 바쿠를 떠나 료헤이에게 돌아가고, 료헤이는 아사코를 받아들인다. 이는 시간의 자연스러운 흐름, 문명 발달의 바람직한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의 남자주인공도 아사코를 징검다리로 삼아서 바쿠에서 료헤이로 이동한다. 아사코는 바쿠의 시간을 몸에 지닌 채 료헤이의 영토로 들어선다. 물론 <아사코>가 바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바쿠는 결말에 이르러 스크린 너머로 사라지지만, 그의 존재는 아사코를 통해 이어진다. 료헤이가 아사코와 함께 살아가기로 한 결정은 결국 바쿠를 내치지 않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사코>는 자연과 문명, 선과 악의 이분법을 뛰어넘는다. 료헤이와 아사코가 살아갈 집 앞의 샛강은 ‘더럽지만 아름다운’ 자연이다. 이 샛강은 아사코와 료헤이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깨끗했는데 지금은 홍수로 인해 더러워졌다. 그렇다면 그 강물은 언젠가 다시 깨끗해질 것이다. 더러움과 깨끗함이 반복되고 공존하는 그 강물처럼, 료헤이와 아사코의 삶도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바쿠와 료헤이는 쌍둥이 혹은 형제 신화의 주인공을 닮았지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관계가 아니다. 그리고 아사코는 바쿠와 료헤이를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러한 점에서 <아사코>는 동양의 자연관, 세계관이 배어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공존과 상생=<아사코>에서는 같은 혹은 유사한 사건이 자주 반복된다. 고쇼 시게오의 사진전이 대표적이다. 그의 사진전은 아사코가 바쿠와 처음 만나고, 료헤이와 친해지는 중요한 계기이다. 사진전이 인물과 인물을 이어주면서 서사의 매듭 역할을 한다. 영화의 첫 장면이 두 지역을 이어주는 다리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전시된 사진들도 주목을 모은다. 사진전 주제는 ‘self and others’이다. 고쇼 시게오의 사진에서는 갓 태어난 어린아이만 혼자 등장할 뿐이며, 다른 사진에서는 인물들이 대부분 짝을 이루고 있다. 아사코가 유심히 들여다본 사진 속의 인물도 쌍둥이 혹은 자매로 추정된다. 그런데 바쿠는 그 사진을 휙 지나쳐 간다. 반면 료헤이는 전시장에 입장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아사코를 도와주고, 지진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낯선 사람에게 손수건을 건네준다. 타인에 대한 바쿠와 료헤이의 행동은 천양지차이다. 그러고 보니 <아사코>에서는 쿠시하시와 마야, 오카자키와 마루요도 짝을 이루어 등장한다. 토호쿠의 바닷가 마을은 생활 공동체이다. <아사코>에서 짝이 없는 주요 인물은 바쿠뿐이다. 따라서 고쇼 시게오의 사진들은 곧 <아사코>의 주제로 연결된다. 료헤이가 ‘self’의 세계를 벗어나 ‘others’의 세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한 행위는 상징적이다.

<아사코>는 대립적인 요소들이 서사의 뼈대를 이룬다. 바쿠와 료헤이의 관계 이외에 사각형 창문의 이쪽과 저쪽으로 분리되는 인물들, 현실과 연극, 과거와 현재 등이다. 그런데 영화의 결말에서는 갈등하고 대립하던 요소들이 사라진다. 처음 만난 날부터 연기 문제로 격렬하게 다투었던 쿠시하시와 마야가 부부가 된 것이 그러하다. 특히 료헤이가 문 앞에 서 있는 아사코에게 고양이 진탄을 건네주면서 가버리라고 말하면서도 현관문을 잠그지 않는 행위는, 영화 <아사코>가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과 닮았다. 아사코가 료헤이의 말투와 행동만 보고 돌아섰다면, 료헤이의 속마음을 알아채지 못했다면,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사코>는 자연과 문명, 더러움과 깨끗함,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 나와 타인 같은 이항 대립적인 요소들을 흐르는 강물처럼 풀어내고 감싸주는 매력적인 영화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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