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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고용’ 사회에서 ‘완전향유’ 사회로
‘완전고용’ 사회에서 ‘완전향유’ 사회로
  • 김종철
  • 승인 2011.12.12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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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한마디로 시대착오적 프로젝트다. 이 협정은 양국 사이에 무역과 투자에 관련된 온갖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제거하면, 한-미 두 나라의 경제가 동반성장을 통해 새로이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가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증명될 수 없는 엉터리 가정이다. 오히려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이 겪어온 상황을 보면, 이 협정은 국민 대다수의 희생을 강요하며 극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강력한 신(新) 수탈 메커니즘이라는 게 명백하다. 예를 들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된 이후 17년이 지난 멕시코는 지독한 양극화 사회로 전락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을 위시한 기층민의 자립·자족적 삶의 기초는 괴멸되고 말았다.

FTA, 기층민의 자립·자족적 삶 궤멸

이런 선례가 있음에도, 또 다수 국민의 치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 기득권 세력이 FTA를 한사코 밀어붙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현재 기득권층이 겨냥하는 것은 국민경제 전체의 건강성이 아니라 자신의 특권적 이익의 계속적 유지·확대임이 분명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명백한 ‘사익’을 끊임없이 ‘국익’으로 포장한다. ‘국익’을 위해 헌법적 가치를 폄하하고, 관세주권과 식량주권, 사법주권을 방기하며, 국가의 필수 공공재들을 팔아넘기겠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국익이라는 관점으로는 FTA의 실체가 정당하게 드러날 수 없다. 국가 간 조약이라는 형식에도 불구하고, 원리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이 협정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이익은 어디까지나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 그리고 그들에게 충성하는 정치가·관료·어용언론·어용학자에게 국한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FTA라는 틀을 통해 기득권층의 특권적 이익을 연장·확대하려는 기도가 현실적으로 성공할 확률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기득권층 특권적 이익도 보장 못해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 상황이 극심한 침체 상태로 빠져드는 것은 무역의 부진이나 해외 투자가 저조한 데 근본 원인이 있지 않다. 현재의 불황 혹은 침체는 지난 30년 이상 1%의 이익을 위해 99%를 희생시키는 정책노선을 일관되게 밀어붙여온 반사회적·비윤리적·반민중적 통치의 당연한 귀결이다. 그동안 과학기술에 힘입어 산업생산력은 엄청나게 증가해온 반면, 대량실업·빈곤·양극화를 강제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은 극심한 ‘구매력 결핍’이라는 현상을 낳았다. 그 필연적 결과가 생산 과잉에 의한 심각한 불황이다. 이것은 기초적인 사실이다. 따라서 침체된 경제를 살리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게 경제민주화이며, 이를 통한 좀더 공정하고 인간적인 사회의 실현이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은 이런 시대적 과제를 외면한 채 실체 경제에서의 실패를 전대미문의 대규모 금융투기와 금융조작을 통한 거품경제 확대로 극복하려고 했으나, 2008년 월스트리트 금융 파산 사태로 그것도 벽에 부닥치고 말았다.  FTA는 글로벌 자본이 어떻게든 불공정한 사회구조를 그대로 온존시키면서 이 위기 상황을 탈출해보려는 마지막 시도의 하나인지 모른다.

<고귀하거나, 비싸거나>, 2011-이강혁

‘자원-에너지-환경’의 복합 위기 탓

그러나 그 시도는 일시적 성공은 거둘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십중팔구 실패할 게 분명하다. 왜냐하면 세계는 지금 ‘자원-에너지-환경’ 위기라는 복합적 위기 상황, 그중에서도 특히 ‘원유 공급 감퇴’라는 불가역적 사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2010년 10월에 내놓은 보고서에 의하면, 피크오일(Peak Oil·원유 생산 정점)은 이미 2006년에 지나갔다. 피크오일이 지나갔다는 것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산업국가들의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온 결정적 요인이 곧 소멸된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의 산업경제는 값싼 석유의 풍부한 공급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석유는 에너지원일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산업 제품의 원료다. 자동차·선박·항공기·텔레비전·반도체·가전제품·의약품·플라스틱·화학섬유, 그리고 현대식 농축산과 수산업도 석유 없이는 성립이 불가능하다. 수출만이 살길이라면서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생존 기반인 농업을 내팽개치고 ‘공산품 수출-농산물 수입’이라는 패턴을 고수하면서 한국 경제가 ‘성장’을 계속해온 것은 무엇보다 값싼 석유를 공급받을 수 있는 상황이 지속돼왔기 때문이다.

석유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을 대체할 만한 게 없다는 사실에 있다. 따라서 값싼 석유 시대의 종식은 값싼 석유에 의존해온 지금까지의 산업경제, 나아가서 산업사회 전체의 구조와 존재 방식을 근원적으로 흔들어놓을 것임이 분명하다. 피크오일이 지나간 게 사실이라면 그 영향은 조만간 가시적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예를 들어 지금 세계 전체 무역화물의 90%를 감당하는 선박운송이 석유 가격 상승으로 대폭 축소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가령 원유 1배럴이 200달러가 되면, 동아시아와 미국 사이의 원거리 교역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이때 미국과의 FTA를 통해 좀더 많은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수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고용’에서 ‘일’로 고정관념 바꿔야

값싼 석유 시대의 종식으로 인한 산업사회의 근원적 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때 삶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할지를 상상하고,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새로운 삶에 대한 전망을 가로막는 상투적인 욕망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미련을 버려야 할 고정관념은 ‘완전고용’과 ‘복지국가’다. 우리는 완전고용과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이제 실현 불가능한 주제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본적으로 완전고용이나 복지국가는 경제성장을 전제로 한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계속적 경제성장이 결코 허용될 수 없는 ‘탈석유시대’라는 새로운 상황에서 그 개념이 더 이상 유효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고용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앞으로 고용이 급격히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인간이 ‘일’ 혹은 ‘일자리’ 없이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지금 필요한 것은 종래의 고용 개념에서 탈각해 인간에게 ‘일’이란 과연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물어보는 작업이다. 그동안 우리는 고용이라면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가 제공하는 대규모 산업고용을 중심으로 사고해왔다. 그러나 자원과 에너지의 낭비를 구조적으로 강제하는 체제는 당면한 환경 위기를 고려하면 명백히 지속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것은 석유 문제 때문에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시스템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축소되는 고용 기회를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라는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결국 관건은 고용 개념을 종래의 대규모 산업 시스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자원과 에너지, 석유 낭비 없이는 존속할 수 없는 산업 시스템을 과감히 그만두고, 자연에너지에 의존하는 소규모 지역 중심의 순환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게 시급하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어가는 농사와 농민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다. 농사는 단순한 산업의 일부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중심 순환경제의 근본 토대다. 우리는 경제성장이라는 허망한 목표를 버리고 농사를 삶의 중심에 놓을 때, 고용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농사가 활력을 띠고 농민공동체가 되살아난다면, 자연에너지 중심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온갖 창조적인 시도와 실험이 가능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도 화석연료나 핵에너지에 의한 대규모 발전 시스템이 아니라 마을과 지역 중심의 다양한 소규모 발전 시설을 통해 생산될 수 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전력을 생산·통제하는 주체가 됨으로써 전력 소비를 줄이고, 절약을 미덕으로 삼는 소박한 생활방식을 원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자유인으로 살지 않는 한, 검소한 삶이 갖는 위엄과 품위를 깨닫지 못한다. 또한 이런 식으로 자립적 전력 생산 구조를 확립하는 것이 핵발전소를 폐기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지역 중심 순환경제로 전환하려면

지역 중심의 순환경제 체제가 영속성을 가진 풍부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은, 가령 현재 독일에서 재생 가능 에너지 분야의 고용인구가 화력·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인구의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지역 중심의 순환경제 체제에서 요구되는 ‘일’은 개인이 저마다 지닌 타고난 소질을 발휘하게 하는 창조적 일, 다시 말해 근본적으로 유희적·예술적 노동이기 쉽다. 그런 의미에서 거대 산업 시스템 시대가 ‘완전고용’(Full Employment) 사회를 목표로 했다면, 소규모 지역 중심의 순환경제 시대는 ‘완전향유’(Full Enjoyment) 사회를 목표로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사회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다.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나는 가장 효과적인 방도가 ‘기본소득제도’ 도입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이란 개인의 소득수준이나 취업 의사를 묻지 않고 일률적으로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최소한의 생존·생활에 필요한 현금급여를 시행하는 항구적인 제도다. 이것은 국가기관에 의한 복지서비스와는 달리,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교환을 장려·보장함으로써 민주적 시장을 강화하고 내수경제를 활성화함으로써 영구 지속이 가능한 안정된 경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다. 기본소득제는 단순한 생활지원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반드시 불황과 전쟁을 일으키며 종국에는 자연환경을 완전히 망가뜨릴 게 분명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제를 위한 재원은 간단한 방법으로 마련될 수 있다. 현재의 금융통화제도를 개혁해 지금 은행업자들이 부당하게 독점하는 통화발행권을 국가 혹은 공공기관이 되찾음으로써 이자 없는 공익성 화폐를 발행해 기본소득 재원으로 사용하면 된다. 이것은 전혀 낯선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미 성공적 사례가 있는 방법이다. 문제는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통화발행권을 민간업자들의 손에서 어떻게 회수해 공공사업으로 만들 것인지다. 요컨대, 은행의 공공화가 관건이다.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문제, 진정으로 민주적 정부를 어떻게 세울 것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 김종철 
전 영남대 교수. 저서로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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