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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후 남은 회화작품은 어디로 갈까?
전시 후 남은 회화작품은 어디로 갈까?
  • 바람저널리스트(이주현)
  • 승인 2022.07.10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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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학 건물 뒤편에 가면 버려진 미술 자재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건물 안팎으로 붓과 팔레트를 비롯해 수많은 캔버스와 나무 틀이 늘어서 있다. 미대 특성 상 수업이나 과제의 일환으로 작품을 창작해내야 하기 때문에 온 건물이 작품과 재료들로 가득 차게 된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뒤편에 있는 버려지거나 보관되고 있는 미술 자재들이다.

 

미대생이라고 하면 밤 늦게까지 학교 작업실에서 실습과제를 하는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대학생활 내내 야작으로 고통받는 미대생들에게 골칫거리는 또 있다. 수많은 작업물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작업 과정에 생긴 잔여물들을 처리하는 일이다. 회화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만들어지는 쓰레기는 물감 튜브, 유화 클리너, 물티슈, 바닥에 까는 신문지, 니트릴 장갑, 폐기름 등의 각종 액체류, 액체가 들어있던 유리병과 플라스틱 병, 종이 팔레트, 자투리 천 등이 있다.

 

이렇게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많은 쓰레기들이 나오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처리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바로 완성된 작품이다. 미대생들은 수업, 과제 혹은 전시회를 위해 일회성으로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고 그 이후 작품을 처리하는데 큰 곤욕을 치른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강주원 학생(서양화과, 19학번)은 완성된 작품을 처리하는 과정에 대해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 판매를 하고 그림이 마음에 들 경우 집에 가져가 보관해요.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천을 뜯어 캔버스 나무 틀만 재활용하거나 교내 작품 보관실에 놔둬요. 서양화과의 경우 조예대 건물 6층과 3층에서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데 말이 보관실이지 사실 거의 폐기작품을 두는 곳에 가까워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수업에서 요구하는 작품의 크기가 점점 커져서 작품을 옮기려면 용달차를 불러야 하는데 그렇게까지 해서 보관할 만한 가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그냥 교내에 보관해요.”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조형예술대 김나현 학생(도자기학과, 21학번)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스케일이 큰 작업을 하는데 100호짜리 그림을 그리게 되면 제 키보다 커서 집에 가져가도 둘 데가 없고 오히려 보관하기 열악해요. 서양화는 학교에 작품 보관실이 있긴 한데 원하는 사람은 무조건으로 거기에 둘 수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세라믹은 학교엔 둘 곳이 없어서 크지 않으면 집으로 가져가거나 사물함에 재주껏 두거나, 아님 근처 풀숲에 버립니다. 너무 크면 그냥 학교 흡연구역 근처에 가져다 둬요…전시회가 끝나면 작품은 학교에 보관했다가 대부분 집으로 가져가는 것 같아요.”라고 답했다. 또한 작업할 때 만들어지는 쓰레기에 대해 도자기의 경우 물레를 찰 때나 청소할 때 필요한 물의 양이 많기 때문에 세면대에 기름이나 세척액을 그냥 흘려보내면서 얼마나 환경에 나쁠까 하는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조형예대 건물 안에 작품들과 자재들이 빼곡히 보관되고 있다.

 

 

즉 완성된 작품은 개인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힘들어 교내에 방치된 채 보관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많다. 학과에서 지정해준 장소에 작품을 두고 폐기라고 적어 놓으면 학교 측에서 폐기를 해주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교내에서 처분하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따라, 2021년에만 미술ㆍ조형 계열 학과 학생 수가 16,726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양의 회화작품과 관련 자재들이 버려진다고 추측할 수 있다.

 

<버려지는 작품을 재활용하다>

 

이렇게 버려지는 회화작품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성동(한양대 의류학과) 디자이너는 순수미술을 전공하는 친구의 졸업전시회에 갔다가 상당수의 예술 작품들이 전시가 끝나면 버려진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작품이 버려진다는 사실이 안타까웠고 버리는 대신 새로운 제품으로 탄생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안해냈다. 미대생들이나 작가들의 버려지는 회화작품을 수거해 소비가 가능한 의류제품을 만드는 브랜드 ‘얼킨(ULKIN)’을 탄생시킨 것이다.

캔버스 원단을 재단한 후 봉제 작업을 거쳐 가방을 만드는 과정이다. (출처: 얼킨)

 

얼킨의 가방제품의 경우 버려지는 회화작품에서 캔버스 천을 수거하여 원단으로 사용한다. 수거 받는 작품을 제한하지는 않지만 수거된 모든 작품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내부에서 선별 과정을 거쳐 사용될 캔버스가 추려진다. 그 이후 원단을 재단하고 코팅 작업과 봉제 작업을 한 후 가방을 완성한다.

 

사업 초반에 얼킨은 직접 대학교를 돌아다니며 작품들을 수거했으나 지금은 미대생들끼리 건너건너 얼킨을 알고 수시로 그림을 보낸다고 한다. 보통 100호(162 ×130cm)크기의 그림 하나로 가방 2개에서 4개까지 만들 수 있다. 이화여대 조형예대 한 학년 정원이 113명인점을 고려하면 한 사람당 한 장씩만 그림을 보내도 최대 452개의 가방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얼킨이 경희대학교 미술대학과 협업하여 진행한 캔버스 순환 프로젝트 홍보물과 해당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작품 수거함 사진이다. (출처: 얼킨 공식 페이스북)

 

실제로 얼킨은 2019년에 경희대학교 미술대학과 협업하여 버리는 작품을 수거 받고 해당 작품 크기만큼 다시 그릴 수 있도록 새 캔버스 천으로 교환해주는 ‘캔버스 순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학생들은 버리는 캔버스를 틀에서 분리하고 양도확인서와 함께 작품 수거함 박스에 넣어 놓으면 얼킨에서 수거해 가서 의류제품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문제점은?>

 

결국 얼킨은 버려지는 회화작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하여 지속가능한 패션산업을 고민하고 있는 브랜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얼킨의 노력만으로 미대생들의 버려지는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얼킨이 버려지는 캔버스 천을 업사이클링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코팅, 재봉 등의 자원이 추가로 사용되며 만들어진 제품의 판매가 보장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또 다른 쓰레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얼킨 가방의 경우 캔버스 천을 선별하는 과정부터 봉제까지 수작업으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가격이 비싸다는 점도 그 우려를 가중시킨다.

 

또한 캔버스 외에도 버려지는 다른 미술 재료을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실정이다. 회화작품을 완성할 때 버려지는 쓰레기를 일반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로 구분한다면 캔버스 천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어 소각 처리된다. 반면 유화 클리너 병, 폐기름 병과 같은 유리와 플라스틱 병은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되어 재활용 선별시설로 이동한다. 하지만 미술재료의 경우 물감을 비롯한 이물질을 깨끗하게 씻겨 내기 힘들기 때문에 재활용품인 척하는 쓰레기에 불과할 수 있다. 또한 유화물감, 유화클리너 등 많은 미술재료들에 들어있는 화학성분이 하수구로 배출되는 점도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미술작품의 창작을 위해서는 예술작품의 가치뿐만 아니라 환경적인 가치도 함께 고민해야 하는 때이다. 이는 학생 차원에서의 노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브랜드 얼킨에서의 시도와 같이 업사이클링을 통한 재활용 혹은 유해성분을 대체할 수 있는 친환경 제품으로 전환하는 등 미술을 창작하는 학생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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