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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나무 생명력-상상력 그리고 눈앞의 풍경
[최양국의 문화톡톡] 나무 생명력-상상력 그리고 눈앞의 풍경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2.08.0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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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허파' 브라질 아마존 숲에서 지난해 1초당 나무 18그루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브라질 '마피비오마스 프로젝트'는 18일(현지시간) 공개한 연례 보고서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브라질에서 총 1만6,557㎢(1만3,789㏊)의 숲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2020년(1만3,789㏊)보다 20% 증가한 수치다. 특히 파괴된 산림의 60% 가량이 아마존에 집중돼 있었다.“

- 한국일보(2022.7.19) -

 

사라진 숲에도 비가 내린다. 나무의 욕망이 꿈틀거린다. 뿌리를 내리며 두 팔을 벌린다. 땅을 향한 생명력과 하늘을 좇는 상상력의 수직 게임. 나무의 생명력과 상상력이 어우러지며 둥근 원을 늘려가는 수평 게임. 수직과 수평이 교차하며 낮과 밤을 만난다. 되살아난 숲에는 비가 다시 내린다. 나무는 눈앞의 풍경을 보며 순환과 진화를 향한 그림을 그린다.

 

나무의 / 생명력은 / 나선형 / 순환이고

나무는 서 있음으로써 살아 있다. 나무는 그 생명력으로 인해 뿌리를 뻗으며 줄기를 늘려간다. 나무를 통해 생명력의 근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그림을 만난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년~1918년)의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1909년).

 

*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1909년), G.클림트, Google
* 《생명의 나무》(The tree of life, 1909년), G.클림트, Google

중앙에 위치한 나무의 줄기는 나선형이다. 뿌리와의 이어짐과 함께 더욱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생명이 나선형으로 순환한다. 동일한 순환의 형태이지만 나선형은 원과는 다르다. 원은 단순히 같은 크기의 반복적 순환을 나타내며 상호 떨어져 있는 단절형 순형이다. 나선형은 확대와 축소, 상승과 하강을 아우르며 상호 연결되어 있다. 내부와 외부를 향한 변화와 성장의 여백까지 포함된 순환이다. 순환을 향한 변화의 방향을 공유하는 연결형 순환이다. 나무 오른쪽 중간에는 검은 새가 포옹의 충만함으로 넘쳐나는 연인들을 향해 앉아 있다. 검은 새는 죽음을 나타낸다. 황금빛을 배경으로 한 생명의 나무에 죽음의 새가 한 알의 열매로 열려 있는 듯하다. 생명은 언제든 날아가거나 떨어져, 죽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리라. 살아 있음이 죽음으로 흘러가고, 흘러간 그 자리에는 새로운 것이 흘러와야 진정 살아 있다고 할 수 있다. 나무 고유의 꼴은 유지하되, 태어나고 죽는 것과 흐르고 변하는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순환이야말로 생명력의 본질이며 나선형 형태의 특성이다.

이는 미술 사조 중 현실을 우선시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예술 제작의 태도 또는 방법을 의미하는 사실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왜냐하면 그 시대 사람들의 실제 삶 중심으로 상상물이 아닌 시각적으로 보이는 현실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적 기능을 유지하여 나가는 힘인 생명력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경험하고 보이는 것의 시작과 끝이 이어져 있으며, 순환한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선 그 생태계 본래의 원형은 유지되어야 한다. 원형의 유지는 숲이 사라지지 않으며 그 안에 살고있는 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나무의 원형이 소유와 소비를 위한 욕망의 객체로서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같이 존재하지 않는 일방만을 위한 게임은, 죽음이 생명의 부분집합으로 이어져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이 동의어로써 순환이 단절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나무의 둥근 원을 넓혀가는 수평 게임은 이제 물리적 동심원을 떠나 화학적 나선형의 원을 그리며 하늘을 그린다. 사물놀이 상모 돌리기도 나선형으로 돌아가며 이어지고 멈추며 흘러간다.

 

나무의 / 상상력은 / 나선 궤적 / 늘리기니

 나무는 살아 있음으로써 넓어진다. 나무는 그 상상력으로 인해 하늘을 좇는 가지를 만들어 낸다. 나무 욕망 중 상상력의 근원을 보여주는 소통하는 나무를 만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의 단편 소설집 《나무》(2002년) 중 <가능성의 나무>는 나무를 통한 상상력을 들려준다.

 

* 《나무》(2002년), B.베르베르, Google
* 《나무》(2002년), B.베르베르, Google

“~(중략)~.나무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껍질에서 무수한 검은 점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개미 떼인가 했더니 그건 사람들이었다. 다시 더 다가가서 살펴보니, 아기들이 엉금엉금 기어 다니다가 몸을 일으켜 아이가 되고 어른이 되었다가 이내 노인으로 변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무리가 갈수록 불어나면서 거목의 껍질은 온통 까만 점으로 뒤덮였다.~(중략)~.그러다가 잎이 떨어지면 거기에 붙어 있던 사람들도 함께 떨어졌다. 꿈에서 본 그 나무가 오늘 아침 나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어쩌면 역사에는 순환이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떤 사건들은 예측이 가능할 수도 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생각하기만 한다면 말이다.~(후략)~.” 우리는 어떤 상황들의 논리적인 원인과 결과, 그리고 행태에 대한 과정을 연구함으로써 미래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험하지 않은 것이나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에 무의지적으로 종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세계를 넓히며 진화해 나갈 수 있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보는 힘을 갖기 위해서는, 자아를 위한 인상주의적 가치관 정립이 필요하다. 나무의 생명력이 사실주의적 측면의 접근이라면, 나무의 상상력은 인상주의적 접근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인상주의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거부하고 색채·색조·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어,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움직이는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한다. 또한 색채나 색조의 순간적 효과를 이용하여 주관적으로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그려 내고자 하는 점에서 상상력과 그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경험하고 보이는 것 너머의 시작과 끝을 잇고, 순환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의 상상력 자체만으로는 그 생태계 본래의 원형은 우선시 되지 않는다. 나무 생명력 원형 유지를 위한 숲이 사라질 수도 있으며, 그 안에 살고 있는 나무를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생명력과 상상력은 상호 절대적인 보완 관계에 있으므로, 생태계 측면에서 생명력이 없는 상상력은 그 존재 가치가 없다. 숲이 사라진다는 것은 상상력의 존재 근원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땅을 향한 생명력과 어우러지며 하늘을 좇는 상상력의 수직 게임을 하고 있는 나무, 푸른 빛 계단을 따라 화학적 나선형 원들의 궤적을 하나둘 그리며 하늘을 좇아 올라간다. 사물놀이와 오케스트라의 협연이 하이브리드형으로 돌아가며 이어지고 멈추며 흘러간다.

 

양치기 / 눈앞의 풍경 / 나무 욕망 / 기록이네

 나무의 욕망이 생명력과 상상력으로 어우러지며 수직과 수평의 게임을 하는 프랑스의 프로방스에서, 한 늙은 양치기를 만나서 그의 얘기를 듣는다.

 

* 《나무를 심은 사람》(1953년), J.지오노, Google
* 《나무를 심은 사람》(1953년), J.지오노, Google

“한 사람이 참으로 보기 드문 인격을 갖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여러 해 동안 그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가져야 한다. 그 사람의 행동이 온갖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있고, 그 행동을 이끌어 나가는 생각이 더없이 고결하며,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그런데도 이 세상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잊을 수 없는 한 인격을 만났다고 할 수 있다.”

- <나무를 심은 사람>(1953년), 장 지오노(Jean Giono) -

나무는 사실주의와 인상주의를 아우르는 타고난 화가다. 나무를 심은 사람을 그린다. 줄기~가지의 붓과 잎의 색으로 인간들의 마음에 삼원색을 칠한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무는 “등은 없고 가슴만 가졌나”보다. 인간과 자연 그 누구에게도 등을 돌릴 줄 모르고, 항상 넉넉히 안아주고 품어준다. 그러나 우리 눈앞의 풍경은?

“처음엔 나무들이/ 눈앞을 가로막아/ 숲을 볼 수 없었습니다./ 나중엔 모든 나무들이 뿌리째 뽑히는 바람에/ 더 이상 숲을 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콘크리트를 밟는 사람은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이곳에 풀이 자라나는 소리가/ 더 이상 들려오지 않는 것을.”

- <눈앞의 풍경>(1969년), 울리 하르트(Ulli Harth) -

 

 

·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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