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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영화 <탑건:매버릭> ‘다시’ 읽기, 매버릭의 다섯 가지 얼굴
[김민정의 문화톡톡] 영화 <탑건:매버릭> ‘다시’ 읽기, 매버릭의 다섯 가지 얼굴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2.08.08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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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건:매버릭] 공식포스터
영화 [탑건:매버릭] 공식포스터

‘매버릭의 귀환’이라고 불리는 영화 <탑건:매버릭>은 전작을 뛰어넘는 속편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천만 관객을 향해 전속력으로 비행 중이다. 영화의 성공 요인에 대해 주요 미디어와 언론은 입을 모아 ‘전작에 친숙한 관객들에게는 추억을 소환하는 한편 CG 중심의 스펙터클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에게는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탑건:매버릭>이 추억을 소환하고,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는 영화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성공이 왜 ‘2022년’이어야 했는가에 대한 설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2022년 ‘지금 여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영화 <탑건: 매버릭>의 진짜 매력은 무엇일까.

 

‘탑건’ 매버릭: ‘과거완료’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영화 <탑건:매버릭>에서 제일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매버릭’이다. 한때는 천재적인 조종술을 자랑하는 최고의 탑건이었으나 현재는 전투기 테스트 파일럿으로 사는 매버릭은 무인기의 등장으로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당당하다. “Not today.”

노장은 죽지 않는다. 영화 <탑건:매버릭>에서 발견되는 전작 <탑건>에 관한 오마주는 ‘영원한 청춘’ 매버릭의 상징성을 뒷받침해준다. 수시로 흘러나오는 <탑건> OST부터 매버릭이 이륙하는 전투기 옆에서 바이크를 모는 장면, 그리고 젊은 탑건들이 비치 발리볼을 하는 장면까지 36년 전 그때 그 시절의 향수를 일깨울 수 있는 요소들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다. 특히 영화 오프닝에 나오는 탑건스쿨에 관한 설명은 영화 <탑건:매버릭>이 어디에서 출발하였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탑건:매버릭>에게 <탑건>은 시작점일 뿐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탑건: 매버릭>은 <탑건>에서 출발하였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다시 말해, <탑건:매버릭>에는 ‘라떼’가 없다. ‘나때는~’으로 시작하는 그때 그 시절 회상이나 자랑이 없다. 젊은 탑건을 압도하는 매버릭의 존재감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서 비롯된다. 젊은 탑건들이 그를 인정하고 그가 다시금 전투 조종사로 현장에 투입된 것은 현재의 그가 탁월한 조종술을 가졌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나 연장자 우대는 일절 없다.

<탑건:매버릭>의 성공은 단순히 한때 흥행했던 영화의 주인공이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혹은 과거 회상을 통해 그때 그 시절에 향수를 가진 중장년층을 매혹했기 때문이 아니다. <탑건:매버릭>의 시간적 배경은 어제가 아닌 오늘이다. 그리고 그 오늘의 끝엔 우리가 살아갈 내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놓여 있다.

 

‘싱글’ 매버릭: ‘부계 혈통’에서 ‘비혈연 유사 가족’으로

<탑건>과 <탑건:매버릭>은 비슷한 듯 다르다. <탑건:매버릭>은 전작과 유사하게 아버지와 아들로 이어지는 부계 중심의 계승 구도를 보여준다. 매버릭 아버지와 매버릭, 구즈와 아들 루스터는 2대에 걸쳐 조종사가 되고 이러한 가족사는 영화 안에서 중요한 전사(前史)로 등장한다. 특히 <탑건:매버릭>에서 매버릭이 젊은 조종사들의 임무 성공과 무사 귀환을 염두에 두고 교육한다는 점, 두 명이 탑승할 수 있는 전투기에 구즈의 아들인 루스터를 태우고 출동한다는 점, 그리고 두 사람의 협력을 통해 임무를 완수하였다는 점에서 부계 중심의 계승 의지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정확히는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아버지 친구와 친구 아들이다. 다시 말해, ‘아들’ 매버릭과 루스터를 교육하고 훈련한 것은 아버지가 아닌 죽은 아버지의 친구다. 전작에서 매버릭에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교관도 아버지와 함께 전투기를 몰았던 ‘바이퍼’다. 남성 중심으로 세대 계승이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혈연 중심에서는 벗어나 있는 것이다. 주인공 매버릭과 관련된 또 하나의 주요 서사인 페니와의 로맨스를 고려했을 때도 영화 <탑건:매버릭> 속 계승의 중심축은 부계 혈통에서 비혈연 유사 가족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 중 매버릭은 이혼하고 혼자 딸을 키우는 페니와 연인이 되는데, 이때 매버릭과 페니 그리고 페니의 딸은 삶의 희로애락을 공유하는 유사 가족의 형태를 보여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루스터 또한 매버릭의 “유일한 가족”으로 비혈연 유사 가족의 테두리 안에 머문다. 사적 연관성이 전혀 없는 페니의 딸과 구즈의 아들은 ‘싱글’ 매버릭을 중심으로 비혈연 공동체를 형성함으로써 ‘정상가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의미해진 2022년 ‘지금 여기’ 우리에게 지속가능한 미래사회의 오늘을 보여준다.

 

‘사피엔스’ 매버릭: ‘로맨스’에서 ‘인류애’로

비혈연 유사 가족을 하나의 운명 공동체로 결속시키는 힘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공유한 삶의 역사다. 영화 <탑건: 매버릭>은 매버릭을 중심으로 비혈연 유사 가족의 세계관 확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매버릭에 얽힌 그들만의 이야기가 있다. 구즈와 매버릭의 전사(前史)가 없었다면 매버릭과 루스터는 서로의 목숨을 구하는 협업을 통해 임무를 완수할 수 없었다. 페니의 딸 역시 엄마 페니와 매버릭의 지난 연애담을 알고 있기에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할 수 있었다.

매버릭과 페니 또한 옛 연인 사이로 서로 잘 알고 있었기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는다. 이혼으로 닫혔던 페니의 마음은 매버릭의 진심 어린 구애로 다시 열리고, 해고당한 매버릭은 페니의 조언으로 조종사로 복귀할 계기를 맞이한다. 바에서 처음 만나 공유할 이야기가 없었던 영화 <탑건>의 찰리가 하룻밤 섹스 상대로 대상화되어 ‘매버릭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극 중 등장인물의 주요 관계를 지탱하는 힘, 나아가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고 공동체를 유지하는 힘은 바로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매버릭과 다른 조종사들의 전우애는 물론이고 매버릭과 페니의 로맨스까지 넓은 의미의 인류애로 해석된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상에서 강력한 생존력을 갖게 된 배경, 즉 수만 수억 명의 사람들이 대규모의 협력을 토대로 운명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는 원동력을 “공통의 신화”를 믿는 행위라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영화 <탑건:매버릭>이 다음 세대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공통의 신화는 무엇일까. ‘인간’ 매버릭의 이야기는 비대면·비접촉이 일상이 되어버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위기에 직면한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것이 2022년 무인기의 등장으로 해고당할 위기에 놓인 ‘매버릭의 귀환’이 우리에게 전하는 진짜 메시지다.

 

‘시시포스’ 매버릭: ‘개인’에서 ‘전체’로

탑건 시리즈는 ‘천재적인 조종사’ 매버릭을 내세운 일종의 영웅담이다. 그리고 이 영웅신화의 중심 사건은 전투다. 싸워야 할 적이 존재하고 그 적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 냉전 시대인 1986년에 개봉한 전작에서는 가상의 적국을 내세웠음에도 그 나라가 소련이라는 걸 추측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탑건:매버릭>에서는 그러한 단서들이 철저히 가려져 있다. 특정 나라를 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대신 영화는 가상의 적을 새로이 등장시킨다. 바로 인간을 위협하는 첨단 과학기술이다.

탑건 시리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이목을 끄는 단어가 있다. 바로 ‘본능’이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인공지능과 비교해 인간의 약점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인간 고유의 특성. 하지만 ‘본능’은 <탑건>에서 <탑건:매버릭>으로 옮겨오면서 해석이 달라진다. 전작에서 본능은 동료 구즈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위험하고 어리석은 인간 기질이지만 후속작에서는 구즈의 아들 루스터가 매버릭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안위를 포기하는 숭고한 인류애의 표현이다.

본능에 따른 직관적인 조종술을 선보이는 매버릭에 대한 평가도 달라진다. 전작에서 매버릭은 규정을 지키지 않는 위태로운 비행을 즐기는 덜 성숙한 ‘청춘’이지만 후속작에서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류의 무게를 짊어진 ‘시시포스’(Sisyphus)의 모습이다.

영화 <탑건:매버릭>의 첫 장면을 떠올려보면 보편적 인류를 대표하는 인간 원형으로서 매버릭의 모습이 또렷해진다. 신형 전투기 개발 프로그램이 중단될 위기에 처하자 매버릭은 아직 성능이 검증되지 않은 전투기를 몰고 목표 속도인 마하10을 돌파하는 초음속 비행에 도전한다. 하지만 목표 지점에 도달한 뒤에도 가속을 감행한다.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강렬한 의지는 설정값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기계와 대조되면서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부각한다.

매버릭이 구형 F-14 전투기를 탈취해 ‘친구 아들’ 루스터를 데리고 적국에서 빠져나오면서 첨단 5세대 전투기를 상대로 맹활약을 펼친 것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매버릭의 천재적인 조종술은 기계의 한계를 극복하는 인간, 즉 인간의 잠재력을 강조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전투기가 아닌 조종사, 기술이 아닌 인간임을 ‘신화적 영웅’ 매버릭은 확실히 증명해낸다. 그리하여 극 중 목숨을 건 매버릭의 모든 대범한 비행은 인류 전체를 위한 도전과 헌신, 그리고 희생으로 장엄한 감동을 자아낸다.

 

‘톰 크루즈’ 매버릭: ‘관념’에서 ‘행동’으로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구글은 알파고가 인간과 달리 지치지도 않고 겁먹지도 않는다며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인공지능의 강점은 역으로 인간의 약점이 된다. 최종 전적 4패 1승. 인간의 패배였다. 이 지점에서 영화 <탑건:매버릭>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적 탐구를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존재론적 실천으로 전환하는 과감한 행보를 선보인다.

극 중 아이스맨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일은 ‘천재적인 조종사’ 매버릭을 탑건스쿨에 재소환한 일이다. 전작에서 매버릭의 위험한 비행 태도를 문제 삼았던 아이스맨은 매버릭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매버릭이 해야 할 일이 있다고 독려한다. 극적인 그의 태도 변화는 후두암으로 목소리를 잃고 컴퓨터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병든 그의 모습과 대조를 이루며 강한 여운을 남긴다.

<탑건:매버릭>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영화 대부분이 임무 완수를 위한 교육과 훈련, 즉 모의비행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 그리고 모든 모의비행이 실패로 끝난다는 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가 아니다. 극 중 매버릭은 사고 트라우마로 비행을 계속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연이은 실패 가운데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는다.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그의 ‘행동’은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몸소 증명해낸다.

실천을 통한 존재 탐구는 영화 밖에서도 계속된다. <탑건:매버릭>은 배우들이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는 아날로그 촬영 방식을 고수하였다. 그 결과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흉내를 낼 수 없는 사실감을 구현해냈다는 극찬을 받으며 팬데믹 이후 장기 침체에 빠진 영화계에서 이례적으로 개봉 41일 만에 700만 명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이며 초대박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운 톰 크루즈의 주름진 얼굴을 보고 있으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는 경험까지가 영화란 장르를 구성한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영화란 무엇인가’는 곧 ‘영화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그렇다면 2022년 ‘지금 여기’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영화관에 가서 <탑건:매버릭>을 보자. 보았다면 한 번 더 보자. 제작자 톰 크루즈의 ‘열 번째’ 대한민국 방문은 행동이 중요하다는 걸 증명하는 또 하나의 모범 사례다. 미래는 우리의 ‘행동’에 따라 무한히 달라질 수 있다. Just do it! 우리는 누구나 가슴에 신화를 품고 있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언니가 있다는 건 좀 부러운 걸』,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당신의 삶은 어떤 드라마인가요』. 『한현민의 블랙 스웨그』, 『홍보용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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