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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지도자의 비정상성
정치 지도자의 비정상성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08.31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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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늘 추악하다. 정당치 못한 전쟁은 더더욱 더럽고 구린내가 난다. 소수의 권력자들이 거의 충동적으로 결정한 전쟁에서 수많은 국민들, 특히 청년들은 총알받이와 대포받이로 스산하게 쓰러진다. 농가와 주택, 들녘과 산하에는 팔다리가 부러지고 머리가 으깨진 시체들이 즐비하며 검푸른 피가 낭자하다. 그럼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6개월, 두 나라의 권력자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국가수호’라는 명분을 내세워 무고한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몬다.

하지만 전쟁극의 커튼 뒤에선 권력자들의 눈먼 탐욕이 절정을 이룬다. 러시아의 푸틴은 권력 강화를 위해 반대파를 숙청하고, 그의 측근들은 부를 쌓느라고 정신이 없으며,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는 전쟁을 마무리하기보다는, 평화와 정의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막가파식 고집불통’(오해하지 마시라. 필자는 결코 반(反)우크라이나가 아니다)이 돼가는 양상이다. 과연 이 두 지도자의 눈에는 자국민이건 타국민이건 가족을 잃은 무고한 이들의 피눈물이 보이는 걸까? 국제사회에선 역시 장기화되는 전쟁의 후유증을 유가, 천연가스 및 곡물가의 인상, 불황 등 경제적인 관점에서 계산할 뿐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는 5명의 필자가 발발 6개월을 맞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비정상성을 낱낱이 보여준다.

9월호에서 들춰내는 국제사회의 비정상성은 전쟁만이 아니다. 부패와 독재로 점철된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21년 권좌를 누리며 3240명을 살해하고 10억 달러를 해외로 빼돌리는 부정축재를 벌이다가 피플파워로 쫓겨났으나, 그의 아들이 다시 권좌에 올랐다. 마르코스 가문의 귀환이라 할 만하다. 

권력과 자본의 야합과 부패는 전 지구적인 현상이다. 루마니아의 산림 숲속에서도, 세르비아의 리튬 생산지에서도, 캘리포니아의 원전에서도, 권력의 비정상성은 멈추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경제학자 프레데리크 로르동은 권력과 자본에 대해 “뭐든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돼지”라고 질타한다. 비뚤어진 권력의 굴절을 바로잡으려면 먼저 국민들이 각성해야 하지만, 권력은 늘 공교육을 붕괴시키고자 골몰하고, 교육을 담당하는 교강사들마저 위태로운 계약직으로 내몬다.

정치 지도자는 권력과 자본의 대표자가 아니고, 모든 국민의 대표인 만큼 청렴과 능력, 통찰력, 균형감각을 갖춰야 한다. 8월 30일로, 취임 110일을 맞은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미덕을 갖추고 있는 걸까?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검찰과 경찰, 법원의 고위직에 자신과 관련이 깊은 특정 대학과 특정 지역, 특정 직군의 사람들로 가득 채운 그는 20%~30%대의 낮은 지지율 속에서도 오로지 국민의 안위만을 생각하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며, 미소를 잃지 않는다. 과연 그를 믿어야 할까?

권력과 자본의 비정상성이 지구적으로 만연한 가운데, 그나마 신선함을 느끼는 것은 중남미에 부는 탈자본적 중도좌파 바람이다. 부패와 독재로 얼룩진 칠레와 브라질에 거의 죽기 일보 직전이었던 민주주의의 싹이 다시 트기 시작하고 있다. 무더위가 밀려가고, 제법 선선한 처서를 지나 성가시게 피를 갈구한 모기가 들어가고 귀뚜라미의 노래가 들려온다. 독서하기에 좋은 계절이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가 독자 여러분의 깊고 푸른 밤과 함께하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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