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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찬실이는 복도 많지> ― 현실/환상과 영화/일의 함수관계와 자기반영성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찬실이는 복도 많지> ― 현실/환상과 영화/일의 함수관계와 자기반영성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2.09.0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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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화와 삶에 대한 성찰

김초희 감독의 <찬살이는 복도 많지>(2019)는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모든 것을 상실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평생 영화를 사랑하고 영화 일만 해온 찬실(강말금)은 존경하는 감독의 죽음으로 집도 없고 남자도 없고 일도 없는 상황에 처해지는 등 일복과 무관한 사람이 된다. 결국 친한 배우 소피(윤승아)의 가사도우미로 취직을 해서 겨우 생계비를 마련한다. 한편, 찬실은 인간관계에서는 소피 불어선생님 김영(배유람)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게 되고, 장국영(김영민)이라고 우기는 비밀스러운 남자가 등장하고, 새로 이사 간 집주인 할머니(윤여정)와 정을 쌓게 되는 등 인복이 넘친다.

 

2. 영화에 대한 절망과 사랑에 대한 기대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여주인공 찬실은 영화에 대해 절망하고 사랑에 대해 기대하게 된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은 감독의 죽음으로 산동네 집으로 이사하고, 일복의 하락과 인복의 상승을 느끼게 된다. 찬실은 과거에는 영화 프로듀서 일, 살고 있는 보금자리, 존경하는 감독님이 있었으나, 현재는 평생 함께 일하고 싶었던 예술영화 감독의 죽음, 영화 프로듀서 직업 해고, 산동네 집으로의 이사 등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이런 찬실의 앞에 연하의 남성 영화감독 김영과 정체불명의 귀신 배우 장국영이 나타나면서 로맨스에 대해 기대의 긴장을 느끼게 만든다.

 

찬실의 추락을 그려내는 데 편집의 묘미가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찬실이 소피 집에 놀러가서 생계가 어렵다는 넋두리를 하는 장면을 보자. “먹고 살아야 되는데 아무도 안 찾는데. 당장에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한 푼도 없다.” “내가 빌려줄까?” “아니. 일 해서 벌어야 한다.” 이러한 소피와 찬실의 대화의 다음 장면에서 바로 찬실이 소피의 방을 닦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말하기보다는 보여주기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면서 경쾌한 속도감을 선사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일과 사랑의 대비를 보여준다. 즉, 일에 대한 절망과 사랑에 대한 기대를 대비시키고, 실직과 죽음을 통해 인생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제작사 대표는 과거 찬실에게 ‘한국영화의 보배’라고 극찬하지만, 현재 ‘찬실이가 없어도 만들어질 수 있는 영화’였다며 멸시한다. 과거 예쁜 마음씨의 찬실과 바람둥이 감독이 서로 협력하여 예술영화를 만들었지만, 현재 대부분의 인물들이 감독의 예술성은 인정하지만 찬실의 기여는 인정하지 않는다. 찬실은 소피의 불어 과외 선생인 영화감독 김영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로맨스를 갈망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장면의 반복으로 비극적 정서를 강조한다. 과거 ‘우리 중에서 가장 @@한 사람이 마시기’ 게임을 하다가 감독이 쓰러지는 장면이 반복된다. ‘우리 중에서 제일 마음씨가 예쁠 것 같은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모두 이찬실을 지목하고, ‘우리 중에서 제일 바람을 많이 피웠을 것 같은 사람은?’이라는 질문에 모두 감독님을 지목한다. 제일 마음씨가 예쁠 것 같은 사람인 찬실은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일에 대한 절망으로 고통 받고, 제일 바람을 많이 피웠을 것 같은 사람인 감독은 생애를 마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의 하락 곡선으로 인생의 비극적 정서를 강조한다.

 

3. 영화에 대한 회의와 사랑의 갈등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서 찬실은 일과 사랑에서 갈등을 한다. 두 명의 남성이 나타나서 로맨스에 기대하게 만들지만 예술영화와 상업영화 사이에서 견해의 차이를 보이면서 로맨스의 실패를 암시한다.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이라고 우기는 귀신은 찬실이게만 보인다는 점에서 판타지와 로맨스의 결합을 보여준다. 연하의 프랑스 유학파 영화감독 김영과 홍콩 영화배우 귀신 장국영이라는 두 명의 남성은 색다른 조합으로 기대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장국영 귀신은 흰색 속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국영과 찬실의 특별한 관계를 암시한다. 한편, 찬실은 자신의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주인집 할머니의 말에 절망하지만, 주인집 할머니에게 글을 가르쳐 주면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찬실은 김영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동경 이야기>로 인해 논쟁을 하게 되면서 예술영화/상업영화의 간극을 느끼게 된다.

 

편집은 급격한 반전을 강조한다. 찬실은 소피의 스탭들이 방문할 때 가사도우미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방에 숨지만, 갑자기 들이닥친 스탭들에게 일하는 모습을 들켜 버린다. 스탭들이 “밥 하나 봐.”라며 경악하자, 찬실은 “밥 먹었어요?”라고 묻는다. 이러한 급격한 분위기의 전환을 연결하는 편집으로 멸시의 시선(스탭들)과 초탈의 의지(찬실)를 대비시킨다. 그리고 김영의 나이를 묻는 장면에서 자신보다 연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찬실은 ‘우주에 비하면 인간의 나이 차이 같은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말로 자신을 위로한다. 하지만 걸어가는 찬실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카메라는 롱숏에서 익스트림롱숏으로 점점 멀어지면서 로맨스의 실패를 암시한다.

 

장국영은 판타지영화, 로맨스영화, 코미디영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장국영은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귀신이고 찬실이에게만 보인다는 점에서 판타지영화와 로맨스영화의 결합을 보여준다. 또한, 장국영은 귀신이라서 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면서 속옷 차림으로 다니지만 매번 추위에 벌벌 떤다는 점에서 코믹한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 영화를 포기하려는 찬실은 ‘영화를 안 해도 살 수 있는지?’라고 묻는 장국영으로 인해 갈등을 느낀다. 이때 주인집 할머니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인생철학으로 찬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준다. “나는 오늘 하고 싶은 일만 해. 대신 애써서 해.” “오늘 하고 싶은 건 콩나물 다듬는 거?” “알면 됐어.”

 

편집은 코믹한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찬실이 영화 프로듀서 일에 대해서 고민하자, 소피는 배우 일에 대해서 고민한다. “나 배우 그만 둘까?” “누가 너 보고 발 연기라 그러더나?” “어떻게 알았어?” “누가?” “내가 얼마나 열심히 일을 했는데.” “어느 감독 새끼?” “네티즌.” 찬실이 어이없어 하면서 “이번 참에 깊이 생각 좀 해라.”고 충고한다. 그러자 바로 다음 장면에서 소피가 김영에게 불어를 배우면서 “저는 불어를 잘 못합니다. 저는 머리가 나쁩니다.”라는 불어 문장을 말하는 모습이 이어지면서 편집으로 웃음을 창출한다.

 

4. 사랑의 실패와 영화에 대한 애정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사랑의 실패와 영화에 대한 애정을 보여준다. 찬실은 사랑의 실패로 좌절하면서 영화를 포기하려고 하지만 주인집 할머니와의 관계로 희망을 얻게 된다. 찬실은 장국영이 던진 질문에 대해 고민한다. ‘영화를 안 하고 살 수 있는지?’ 이에 대해 김영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우정을 나누는 것,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 등 영화보다 중요한 것이 많으므로 영화를 안 하고 살 수 있다.’라고 답변한다. 찬실은 김영에 대한 사랑으로 포옹하지만, 김영은 ‘좋은 누나’라며 거절한다. 장국영은 좌절하는 찬실을 위로한다. “왜 다 가지려고 해요? 외로운 건 그냥 외로운 거예요. 사랑이 아니에요. 찬실씨가 정말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당신은 멋있는 사람이예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힘을 내봐요.” 찬실은 장국영 덕분에 영화를 포기하지 않게 된다. 그리고 찬실은 시를 쓰는 데 애를 먹는 주인집 할머니에게 ‘아무 거나 써보지만 아무렇게나 쓰지는 말라’는 충고를 하면서 자신도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찬실이 영에게 고백하지만 거절당하는 장면은 카메라 숏 크기로 웃음을 창출한다. 찬실이가 고백하는 장면은 바스트숏과 미디엄숏으로 로맨스영화적 특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찬실이가 거절당하는 장면은 “제가 잠시 미쳤었나 봐요.”라며 급하게 뛰어가다가 떨어뜨린 도시락을 줍느라 허둥지둥하는 찬실의 모습을 롱숏으로 잡아내면서 웃음을 자아낸다. 급격한 숏 크기의 변화는 로맨스영화에서 코미디영화로의 전환을 보여준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뒷부분은 수미상관식 구성을 보여준다. 영화의 처음에 스탭들이 찬실이의 산동네 이사를 도와주기 위해 올라가는 장면과 마지막에 찬실이가 산동네 집에 놀러온 스탭들과 내려가는 장면은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을 준다. 사람과 장소는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올라가는 모습(낮)과 내려가는 모습(밤)의 대비, 찬실이 앞장서는 모습과 찬실이 뒤따라가는 모습의 대비. 과거 찬실이 절망하여 주위를 보지 않고 눈을 내리깔며 짐을 들고 가며 과거에 절망하는 모습과 현재 찬실이 달을 바라보며 ‘믿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보고 싶은 거’를 읊조리며 미래를 기대하는 모습의 대비.

 

실연당한 찬실에게 장국영은 찬실이 영화를 하게 만든 <집시의 시간>의 아코디언을 선물해 준다. “지금보다 훨씬 젊었을 때 전 항상 목말랐던 것 같아요. 사랑은 몰라서 못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로 채워질 거라고. 채워도 채워도 가셔지지 않아요. 목이 말라서 꾸는 꿈은 꿈이 아니에요. 전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어요. 그 안에 영화도 있어요.” 찬실은 그 아코디언을 켜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주변 사람들로 인해서 용기를 얻게 된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시가 찬실의 마음을 대변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숏 크기와 조명으로 유사성과 차이를 강조한다. 처음 장면에서 찬실이 앞장서서 산동네를 올라가는 모습(익스트림롱숏)과 마지막 장면에서 찬실이 뒤따르며 산동네를 내려가는 모습(익스트림롱숏)은 유사성과 차이로 찬실의 처지,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자신이 앞장서지 않고 뒤에서 전구를 비춰주는 찬실의 얼굴에 달빛이 쏟아지는 장면은 조명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고 다른 이를 배려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모습을 표현한다.

 

5. 현실/환상, 사랑/죽음의 대비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서 영화의 자기반영성을 보여준다. 영화 프로듀서 찬실이 평생 함께 일하던 예술영화 감독이 죽고 나서 모든 것을 상실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찬실은 일에서 잘리면서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지만. 사랑의 설렘과 인간관계의 유대감으로 일복이 아니라 인복을 느끼게 된다. 이성적인 호감을 느끼는 김영, 신비스러운 존재 장국영, 공생 관계의 주인집 할머니, 든든한 조력자 소피 등 따뜻한 인간관계로 영화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죽음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독특하다. 보통 영화에서 희극은 결혼으로 끝나고, 비극은 죽음으로 끝난다. 가장 슬프고 고통스러운 사건이 죽음이다. 그리고 영화의 내러티브 곡선은 반비례로 나아가면서 드라마틱한 곡선을 그린다. 희극은 불행에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나는 반면, 비극은 행복에서 시작해서 불행으로 끝난다. 이 영화는 가장 고통스러운 불행인 죽음에서 시작한다는 점에서 행복으로 나아가는 상승 곡선이 될 거라는 기대감을 준다. 이 영화는 로맨스영화, 판타지영화, 코미디영화라는 세 가지 장르를 적절하게 조합하여 현실/환상, 사랑/죽음 등 대비되는 요소들의 결합을 통해 현실을 색다르게 보는 시선과 낙관적 세계관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영상진흥위원회 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총무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편집위원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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