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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현기증>을 생각하다(2)
[김경욱의 시네마 크리티크] <헤어질 결심>을 보면서 <현기증>을 생각하다(2)
  • 김경욱(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03 0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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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죽음과 타나토스

<현기증>에는 세 번의 죽음이 있다. 첫 번째 죽음은 영화 도입부에서 발생한다. 스카티가 범인을 쫓다 발을 헛디뎌 건물에 매달리게 되자 동료 형사가 도우려고 하다 추락사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스카티는 자신의 고소공포증을 발견하게 되고 형사 일을 그만둔다.

두 번째는 스카티의 대학 동창 앨스터의 아내 매들린의 죽음이다. 이전의 글에서 스카티가 앨스터의 부탁으로 매들린을 미행하다 그녀의 환상적인 미모에 매혹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스카티의 고소공포증으로 인한 죽음 충동이 매들린에게 투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매들린으로 변신한 쥬디는 유령처럼 보인다
매들린으로 변신한 쥬디는 유령처럼 등장한다

 

스카티가 추적하기 시작한 날부터 매들린은 ‘유령’ 같은 존재로 다가온다. 매들린이 맥키트릭 호텔((McKittrick은 Mcguffin(맥거핀)과 Trick(속임수)의 합성어인 것 같다)에 들어가자 스카티는 지배인에게 그녀의 신상을 물어본다. 지배인은 그녀 이름이 카를로타 발데스라고 대답하면서 오늘은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매들린이 2층 호텔 방 창문으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스카티 뿐만 아니라 관객 역시 지배인의 말을 믿기 어렵다. 그러나 지배인의 안내에 따라 스카티가 그 방에 들어갔을 때, 매들린은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유령’처럼 사라지고 없다. 스카티가 물에 빠진 매들린을 구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 장면에서는 스카티가 앨스터와 통화하는 잠깐 사이 매들린은 소리 없이 떠나버린다. 세콰이어 숲 장면에서, 매들린은 카를로타와 동일시하면서 자신의 죽음을 읊조린 다음 숲속으로 걸어간다. 스카티는 매들린이 걸어간 방향을 쳐다보는데, 그녀의 모습은 유령처럼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스카티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커다란 나무에 허깨비처럼 기대어 있다. 그러므로 매들린의 아름다움이 스카티에게 에로스/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킨다면, 죽음에 대한 매들린의 강박증은 스카티에게 타나토스/죽음 충동에 빠져들게 한다. 동료 형사의 죽음에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죄책감을 느끼던 스카티는 그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앨스터는 “카를로타에게 빙의된 매들린이 26살에 죽은 카를로타처럼 26살이 된 자신도 죽어야 한다고 믿는 것 같다”고 말한다. 매들린은 교회(산 후앙 바우티스타) 종탑에서 두 번째 투신자살을 감행하고, 스카티는 고소공포증 때문에 그녀의 죽음을 막지 못한다.

 

세 번째 죽음의 문제

스카티의 동료 형사와 매들린의 죽음에 이어 매들린 행세를 했던 쥬디에게 죽음이 다가온다. 이 영화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이 세 번째 죽음이다. 먼저 그 과정을 살펴보자.

스카티는 쥬디가 아니라 매들린에 대한 집착으로 쥬디와 계속 데이트 한다. 스카티에게 발견되었을 때, 쥬디는 떠나려고 했지만 그에 대한 미련으로 단념한다. 아마도 쥬디는 언젠가 스카티가 매들린이 아닌 쥬디 자신을 사랑하게 될 날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스카티는 쥬디에게서 매들린 같은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찾아내려고 하다가 결국 그녀를 매들린처럼 만들기로 한다. 쥬디를 설득해 매들린의 금발 머리와 화장을 하게 하고 회색 투피스를 입힌다. 마침내 스카티 앞에 매들린으로 완벽하게 변신한 쥬디가 유령처럼 나타난다. 비로소 스카티는 감격하며 쥬디/매들린을 안고 키스를 한다. 스카티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미친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매들린이 무덤에서 살아 돌아온 것 같은 상황에 일말의 의구심이 스친다.

 

카를로타 발데스의 목걸이(위)와 똑 같은 쥬디의 목걸이(아래)
카를로타 발데스의 목걸이(위)와 똑 같은 쥬디의 목걸이(아래)

쥬디는 매들린의 모습으로 염원하던 스카티의 사랑을 얻게 되자, 자신이 진짜 매들린에 다름없다고 동일시하게 된다. 쥬디는 매들린처럼 검은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입고 카를로타의 초상화에서 카를로타가 하고 있었던 목걸이를 목에 건다. 쥬디가 자신을 매들린으로 믿게 되자 경계가 사라지고 긴장의 끈이 풀어지면서 허점이 생긴 것이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 역시 해준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가 형사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범행의 실마리를 제공하게 된다. 그 목걸이를 본 순간, 스카티는 진실을 눈치채게 된다. 그는 한밤중에 매들린이 죽은 교회로 쥬디를 데리고 가서 다그친 끝에 자백을 받아낸다.

격분한 스카티는 쥬디를 교회의 종탑으로 끌고 올라간다. 스카티는 쥬디에게 비난을 퍼붓고, 쥬디는 스카티에게 사랑을 호소한다. 이때 스카티는 “매들린, 당신을 너무 사랑했어”라고 하거나, “너무 늦었어, 다시는 매들린을 살릴 수 없어”라고 하면서, 혼란스러운 정신 상태를 드러낸다. 쥬디가 애원하자 스카티는 그녀에게 키스를 한다. 그가 쥬디를 받아들인 건지, 그녀를 매들린으로 착각한 건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느닷없이 어둠 속에서 수녀가 나타난다. 쥬디는 “안돼”라고 소리치며 종탑에서 추락한다. 쥬디는 수녀를 매들린의 유령으로 착각해 죄책감으로 뛰어내린 것일까? 아니면, 너무 놀라서 뒷걸음질 치다 실수로 떨어진 것일까? 또는 자신이 매들린이 아니라 쥬디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매들린이 두 번 죽을 수는 없으므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스카티는 매들린이 죽은 장소에 추락하는 악몽을 꾼다
스카티는 매들린이 죽은 장소에 추락하는 악몽을 꾼다

쥬디의 죽음뿐만 아니라 스카티가 고소공포증이 치료된 듯 쥬디가 추락한 바닥을 내려다보는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이상하다. 히치콕은 다음 장면(스카티가 미즈의 아파트에서 경찰이 매들린의 살해 혐의로 앨스터를 수사한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는다)을 찍었다고 하는데, 쓰지 않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죽음은 스카티에게 죄책감을 안겨주기는 했으나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그런데 쥬디의 죽음에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히치콕은 스카티가 두 팔을 벌리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모습으로 영화를 끝냄으로써, 그에게 쥬디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일까? 그렇다면 스카티는 다음 장면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영화의 원작인 《D'entre les morts(죽은자들 가운데서》(피에르 브왈로⸱토마 나르스작 지음)에서, 주인공은 전모를 알게 되었을 때 사랑의 혼란 속에서 미쳐버리고 만다. 그는 매들린의 부활을 확신하면서, 마르세유 여인(영화의 쥬디)을 목 졸라 죽인다.1) 매들린이 죽은 다음 꾸는 악몽에서, 스카티는 카를로타의 빈 무덤을 본 다음 매들린이 떨어진 곳으로 추락한다. 자신이 깊이 연루된 세 번째 죽음 앞에서 원작의 주인공처럼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면, 스카티는 이제 악몽을 현실에서 실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히치콕은 이 지점에서 영화를 끝낸 건 아닐까?

 

스카티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쥬디가 추락한 곳을 내려다본다
스카티는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쥬디가 추락한 곳을 내려다본다

이 질문은 <헤어질 결심>의 해준에게도 던질 수 있다. 매들린과 달리, 서래는 살인 충동에 사로잡힌 것 같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와 첫 번째(?) 남편 기도수를 살해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남편 임호신을 사철성의 손에 죽게 하려고 사철성의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는 너무 아파 죽기를 원했고 사철성의 어머니는 죽는 걸 고마워했다고 한다.

또 기도수는 자신을 너무 학대했기 때문에, 임호신은 해준을 협박하려고 했기 때문에,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완전범죄를 위해 기도수를 살해하는 과정을 보면, 서래는 치밀하고 냉철한 인간이다. 남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태연자약한 태도를 보일 수 있는 냉혹한 인간이다. 

매들린이 유령처럼 보인다면, 호미산 장면에서 헤드랜턴을 쓰고 어둠 속에 서 있는 서래는 소름 끼치는 살인자처럼 보인다. 서래가 길고양이에게 중국어로 한 말을 번역기로 통역하면, "그 친절한 형사의 ‘심장’을 가져다주세요"가 된다. 그러나 서래는 해준에게 ‘심장’(죽음)이 아니라 ‘마음’(사랑)이었다고 말한다. 만일 해준이 서래의 세 번째 남편이 되었다면, 결국 그녀는 그를 살해하게 되지 않았을까? 어떻게든 살인의 이유를 만들어내고 실행에 옮기는 살인 충동을 막기 위해, 그녀는 자신을 제거함으로써 해준을 보호하기로 한 건 아닐까? 아니면 사랑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다시는 헤어지지 않기 위해 바닷가에서 죽음을 선택한 건 아닐까? 해준은 서래가 사라진 바로 그 장소에서 서래의 폰을 통해 자신이 했던 말(“저 폰은 바다에 버려요, 깊은 데 빠트려서 아무도 못 찾게 해요”)을 듣는다. 이 말을 서래가 사랑으로 해석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때, 마침내 그는 두 번째로 붕괴하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는 어둠이 내려오고 밀물이 몰아치는 바닷가에서 해준이 미친듯이 서래의 이름을 부르며 찾아 헤매는 장면에서 끝난다. 그렇다면 다음 장면에서 그는 어떻게 될까? 해준이 서래를 찾을 때까지 그 바닷가에서 떠나지 못한다면, 서래는 결국 그의 마음과 심장 모두를 가져간 셈이다.

주1) 히치콕, 패트릭 맥길리언 지음, 그책, 2016, 836쪽.

 

 

글•김경욱
영화평론가. 세종대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면서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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