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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결혼 이야기>라 쓰고 ‘이혼 이야기’라 읽는다
[서성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결혼 이야기>라 쓰고 ‘이혼 이야기’라 읽는다
  • 서성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1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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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5월엔 부부의 날이 있다. 5월 가정의 달에 둘이 만나 하나가 된다는 의미로 21일을 부부의 날로 제정했다. 정말 둘이 만나 하나가 될 수 있는 건가. 부부에 관한 이야기를 아주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담은 영화가 한 편 있다. 바로 노아 바움백 감독의 2019년 작품 <결혼 이야기>이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휩쓸었던 2020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각본상을 다투었던 바로 그 영화다. 그해 <결혼 이야기>는 승률 좋은 이혼 전문변호사 역을 맡았던 노라 던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사랑과 결혼을 소재로 한 영화는 정말 많은데, 이 영화는 결혼생활을 어떤 시선으로 접근했는지 궁금하게 한다. 일단 멜로는 아니다. 오히려 더 현실적이다. 제목이 결혼 이야기긴 하지만, ‘이혼 이야기’라고 불러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랑하고, 결혼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수많은 멜로 영화들처럼 사랑이 아름답게 완성되면 좋은데, 영화는 사랑의 완성은 결혼이 아니라, 대개는 결혼부터 진짜 사랑, 진정한 현실이 시작된다는 장면들을 펼쳐낸다.

 

찰리(아담 드라이버)와 니콜(스칼렛 요한슨)은 부부인데, 둘 사이엔 아들이 하나 있다. 찰리는 뉴욕에서 연극연출가로 활동하고 있고, 니콜은 LA에서 나고 자라서, 그곳에서 영화배우로 이름도 알렸다. 하지만 니콜의 말대로 찰리를 처음 본 순간 2초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뉴욕에 와서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뉴욕에서 어느 정도 삶이 안정되고, 찰리는 연출자로 인정받기 시작했는데, 니콜에게 문제가 생긴다. 니콜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게 찰리에게 맞춰진 10년이었다. 단 2초 만에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결혼생활이라는 현실에 부딪쳐보니 결혼 전과 초기에 서로 약속했던 말과 다르다.

 

니콜이 자신의 모든 빛을 찰리가 다 가져간 것 같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있다. 결혼 전에 니콜은 LA에서 평생을 살아왔고, LA에서 영화배우로 활동했고, 그곳에서 가족과 이웃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남편을 따라 뉴욕으로 왔고, 찰리가 뉴욕에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많은 걸 감수했다.

사실 결혼 초에 찰리도 LA에서 살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약속은 찰리의 기억 속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고, 이후로도 니콜은 여러 번 LA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찰리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다. 때마침 니콜에게 LA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와 아들을 데리고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길고 힘든 이혼의 과정이 시작된다.

 

“나는 확신이 없는 사람인데, 이혼하겠다는 지금의 결정이 첫 번째 확신에 찬 결정이다. 나는 이 남자 없이 살아보겠다.”

 

결혼 생활은 두 개의 자아가 만나 함께 사는 거다. 너를 사랑하지만,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사랑해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다. 내가 있어야 비로소 너 또한 의미가 있는 거다. 이전 세대같이 더 이상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으로 결혼 관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는 힘들다.

 

니콜 입장에서 남편 찰리가 성공할수록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자꾸만 섭섭해지고, 남편이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작 찰리는 니콜이 그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잘 모른다. 자신의 커리어만을 위해 살았던 찰리는 그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본 적이 없다. 그리고 “당신도 여태 잘 살아왔던 거 아니야?”라고 니콜에게 묻는다.

영화에서 찰리, 아담 드라이버가 <Being alive>라는 노래를 부르는데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해주고,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사람이라는 가사가 어떤 의미인지 와 닿는 영화가 바로 노아 바움백 감독의 <결혼 이야기>이다. 감독이 각본을 썼는데, 이 영화처럼 배우와 결혼했고, 또 이혼한 경험이 있다.

 

이혼 전문변호사 역의 로라 던과 스칼렛 요한슨
이혼 전문변호사 역의 로라 던과 스칼렛 요한슨

영화를 촬영할 당시 스칼렛 요한슨도 이혼 소송 중이었고, 노아 바움백 감독도 자기 경험이 바탕이 됐을 거고. 시나리오를 쓸 때도 이혼 전문변호사들에게 이런 상황이면 실제로 어떻게 소송을 준비하겠느냐고 자문을 구했다고 하니 현실적인 결혼 이야기와 이혼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영화가 시작할 때 서로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혼의 달콤함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니라, 이혼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서로 좋았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한 건데, 사랑에 빠졌을 땐 상대의 장점은 물론이고, 단점마저도 좋아 보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다.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서로의 여러 장점을 발견하고 함께하기로 하는 거라면, 이별은 사랑할 땐 다 괜찮았고, 심지어 맞춰주고 싶었던 면까지 견딜 수 없는 단점으로 다가오고 그 단점을 참을 수 없을 때 내리는 결정이다.

 

결국 이혼하면서 결혼을 돌아보게 되는, 아이러니가 연출된다. 노아 바움백 감독은 이들의 이별을 통해, 아프고 날카로운 말들을 쏟아내게 하지만, 동시에 듣는 이들에게 저마다의 삶을 대입시키고 반추하게 만든다.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나를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나에게 가장 크고 깊은 상처를 낼 수 있다는 걸, 이들이 날선 언쟁이 보면서 느낀다. 찰리와 니콜의 언쟁 장면은 액션신 못지않은 격렬한 감정 대립을 보여준 장면인데, 부부싸움 하면 회자될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촬영도 이틀에 걸쳐서 했다고 하는데, 영화에는 9분 정도 나온다. 두 사람을 왜 캐스팅했는지, 2019년 당시만 해도 넷플릭스 영화가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 힘든 시기였는데도 왜 노미네이트되었는지 수긍하게 한다.

 

영화 제목이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니라 <결혼 이야기>일까? 결혼에는 수십 가지의 이유가 필요하지만, 이혼에는 참을 수 없는 한두 가지 이유만 있으면 된다. 결혼의 끝은 상대방의 배려와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할 때 오기 쉽다. 이혼도 결혼 과정의 일부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고 산다면 서로를 더 살피고 배려하게 될 거라는 느낌을 주는 영화이다.

 

 

글·서성희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대구경북영화영상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으로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 대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센터장으로 영화·영상 생태계를 살리는 일에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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