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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니얼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거울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화 <니얼굴>: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거울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7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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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혜에게 얼굴은 어떤 의미일까? 다운증후군 환자의 얼굴은 누구든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증후군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반 화가들이 그리는 얼굴에 비해 <니얼굴>에서 정은혜가 그려내는 얼굴이 더 가치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하지만 정은혜는 다운증후군 환자라는 것을 알려줄 뿐인 자기의 얼굴을 다른 얼굴처럼 보이길 원하기보다 다른 이의 얼굴이 아름답다고 전하길 원한다.

 

정은혜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의미와 매력은 바로 이 태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들은 이상향화 되어 있는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따라 하기 위해 그 규범에 맞게 얼굴을 성형하고는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던 것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주도적으로 발견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거다. 거의 자기희생이라고 해도 될 법한 태도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대신 발견해주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정은혜에게 만큼은 아름다운 얼굴이란 무엇인지를 진정으로 물어볼 수 있다. 그런데 마침 그 대답으로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준다. 그 그림은 얼굴이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그 그림을 받아 든 사람들의 태도다. 그들의 태도를 한마디도 표현하면 ‘저항불가’이다. 어떤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은 형태 때문에 실망감을 드러낼 수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왠지 자기와 닮지 않은 모습에 만족해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순간만큼 정은혜의 얼굴 그림에 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저항불가의 실체는 그녀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동정심 탓은 분명 아니다. 오히려 실상은 이래 보인다. 정은혜가 나도 경험한 적 없는 내 얼굴의 아름다움을 단도직입적으로 던져주었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정은혜가 얼굴을 그린 후 우리에게 전해줄 때는 다음과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그리게 된 것은 당신의 얼굴이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에요.”라고. 여기에서 진정 놀라운 것은 그 순간이 바로 저항 불가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게 된다. 저항불가의 실체는 바로 나도 몰랐던 내 얼굴의 아름다움이라고. 우리가 이내 당황하게 되는 이유는 누군가의 아름답다는 말에 기꺼이 응답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니얼굴>에서는 두 개의 얼굴이 있다. 정은혜의 얼굴과 정은혜가 그린 얼굴. 정은혜의 얼굴은 다운증후군 환자라는 기호이지만, 정은혜가 그린 얼굴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그녀의 작업이 가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얼굴의 아름다움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어서인지 모른다. 그래. 우리는 우리 얼굴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러다보니 다른 곳에서의 아름다움도 모르게 된 것이다. 누군가가 주입하는 규범 같은 아름다움에 중독된 시대에 정은혜의 등장과 그녀의 얼굴 작업은 우리가 여태 아름다움, 그것도 내 얼굴의 아름다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니 얼굴은 아름다워라는 말을 듣게 되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 아름다움에 대해 새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은혜의 그림은 깨달음이다. 나도 역시 아름답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 말이다. 그 일은 내 안에 자리잡고 있던 아름다움에 대한 생각을 채워 놓는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이를 건드려 주는 것이 정은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은혜의 그림 앞에서, 아니 그녀가 그려준 나의 얼굴 앞에서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할 수 있겠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우리가 정은혜의 그림을 거부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아름다움을 채울 수 있다. 정은혜에게 니얼굴은 이러저러해서 아름답다고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니얼굴은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직언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녀가 그린 니얼굴의 아름다운 힘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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