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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설가의 영화>: 영화와 꿈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소설가의 영화>: 영화와 꿈
  • 지승학(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7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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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는 꺼림직하다. 생경한 표현일 것이다. 다만 그 느낌을 꿈과 연결시킨다면 납득할만한 이유가 될 수는 있다.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는 꿈과 기억의 관계에 천착한다. 이를테면 우리가 새처럼 하늘을 나는 꿈을 꾸는 이유는 유아기 시절 흔히 겪을 수밖에 없는 허공의 체험, 예컨대 부모의 손에 의해 이동된 경험이 원천이 된 이른바 ‘꿈 자극’이 왜곡된 탓이다. 이런 식으로 꿈 자극은 압축되고 왜곡되어 즉물적으로 나타나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든다. 이 낯섦이 강렬하면 꺼림칙해진다. 꺼림칙함은 때에 따라 공포스러움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그러면 홍상수 영화는 공포스럽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주축이 된 고전심리학의 방식에 따라 꿈은 인간을 이해하는 프레임으로 가공되었고 그런 인간을 영화가 세세하게 담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꿈과 유사한 구조를 갖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꿈과 영화는 현실을 이야기하기 위해 자주 협업하기 시작했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이런 협업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만 보더라도 꿈과 영화가 같다는 말과 현실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말은 꺼림칙하다는 말과 공포스럽다는 말로 바뀔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그는 기억과 반복, 차이와 유사를 사이에 두고, 거기서 조롱과 비아냥을 창조해낸다. 꺼림칙함, 공포, 조롱과 비아냥은 서로 어울릴 수 없어 보이지만 홍상수에 의해 네 개의 열쇠말은 그 자체로 결합되고 동일화되어 그의 영화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실제로 <소설가의 영화>는 이러한 네 개의 열쇠말이 종합된 영화라고 할만하다. 영화 초반 준희가 후배의 책방에 등장할 때 동시에 귀를 때리듯 갑자기 들리는 격앙된 목소리는 늘 꾸는 꿈일지라도 그 시작을 알 수 없어 불현듯 진행된 것 같은 경험을 유사하게 표현한다. 갑자기 등장하는 어린 소녀의 모습도 이를 답습한다. 결정적으로 여배우로 등장하는 길수(김민희)가 술에 취해 잠든 장면은 그 관계가 어떠하든 꿈과의 연계성을 무시할 수 없게 한다. 문제는 준희가 길수에게 영화를 같이 찍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에서 절정에 이르게 되는데, 영화가 완성된 이후 사라지는 준희는 그녀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을 넘어 공포스러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한편 조롱과 비아냥은 영화감독 효진(권해효)과 길수와의 대화에서 주로 발견된다. 효진이 한탄하듯 내뱉는 ‘아깝다’는 말은 과연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길수이면서 김민희이기도 한 그 캐릭터는 분명 ‘아깝다’는 말을 현실과 영화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도구로 보이게 한다. 비아냥과 조롱은 그 말을 듣고 있는 길수를 통해 자본에 잠식된 영화예술의 타락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소설가의 영화>는 그런 식으로 문자에서 벗어나 영상으로 넘어가고 싶어 하는 소설가 준희로 인해 꿈과 현실, 문자와 영상,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넘나든다. 그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디선가 미로를 헤매듯 관객들은 헤매게 되는데, 그것은 꿈이 기억을 혼합하고 왜곡하는 구조에 빠져든 것과 같은 경험을 준다. 홍상수가 건재하다는 것은 이 방식을 자유자재로 발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은 그가 자기 영화의 변론으로 삼을 만한 중요한 문장이 되기도 한다. 그의 영화가 꿈과 유사한 방식을 추구하는 한, 우리는 해몽이 앞설 수밖에 없는 그의 의도에 늘 휘말리고 말기 때문이다. 홍상수 영화는 꿈을 말할 때 현실을 보여주고, 현실을 말할 때 꿈을 보여준다. 이런 식으로 <소설가의 영화>는 현실을 꿈 자극으로 삼아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의식적 강박들을 영화적으로 능숙하게 재현한다. 과연 그는 꿈을 현실로 만드는 장인이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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