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와해와 응결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와해와 응결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2.10.27 18: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창발 혹은 창궐 이후의 메이저 시네마

“한 번 소통에 끌려 들어가면 단순한 영혼의 낙원으로 결코 돌아올 수 없다”

- 니클라스 루만

 

코로나 사태는 산업을 포함해 거의 모든 생활 전반에 거시(Macroscopic)와 주류(Majority, 이하 ‘메이저’)를 귀환시켰다. 공평하게도 이들의 귀환이 영화만을 예외로 피해 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거시와 메이저의 귀환은 영화관을 비롯한 영화 전반을 시스템 안으로 편입시키는 방향으로 귀결됐다. 코로나 사태는 영화관을 융해(Melt)하고 있던 플랫폼 산업을 과열시켰다. 이는 영화관을 다른 장소와 구분 짓던 차폐(Shielding) 기능을 용융(Meltdown)에 이르렀다. 차폐 기능의 용융은 영화관이 지고 있던 건축적 고유성을 와해했고, 이제 영화관은 영화의 횃불을 든 체 어둠 속에서 고고하게 홀로 서 있는 유일한 성소 같은 낭만적 장소가 아니다. 차폐의 기능을 잃고 건축적 고유성을 상실한 영화관은 계산을 통해 장소를 점유해야 할 명분을 따지게 되는 장소가 되었으며, 나아가 영화관을 대체하고 있는 수많은 가상 장소(혹은 열린 장소)와 협력적 해결책을 도출해야 하는 협상의 장소가 되었다.

여전히 영화관의 차폐 기능과 건축적 고유성의 필요를 입증하는 영화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기는 하다. 가까이에는 드니 빌뢰브의 <듄>(2021)과 맷 리브스의 <더 배트맨>(2022)이 지닌 시각적 비전들이, 멀게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쿨의 <메모리아>(2021)가 지닌 음향적 비전들이 코로나 사태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모여야 할 이유와 차폐 기능을 수호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영화들이 영화관의 차폐 기능을 수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시대의 흐름은 영화관의 건축적 고유성만큼은 와해시킬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단순히 OTT를 비롯한 플랫폼들이 집이라는 일상의 장소에 가상적 영화관을 건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밝힌 바처럼 코로나 귀환시키는 것은 거시와 메이저다. 이전까지 영화 산업의 셈법이 “어떤 군중이 어떤 이유로 인해 어떤 영화를 선택할 것인가?”와 같이 미시적이고 환원주의적인 계산에 머물렀다면, 코로나 사태는 계량 자체를 변화시켰다.

여기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코로나 사태만이 영화관의 고유성을 와해시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관의 고유성은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이어져 왔던 매체 환경의 변화가 와해시키고 있었다. 이는 영화관의 고유성 와해와 별개로 영화관의 존재 자체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확신케 한다. 텔레비전도 영화관을 없애지 못했고, 각종 저장매체의 발달도 영화관을 소멸시키진 못했다.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가 공기처럼 횡횡하던 90년대와 00년대 속에서도 영화관은 생존했으며, 번영하기까지 했다. 따라서 영화관이 존속 여부, 나아가 영화관의 고유성이 와해하는 것을 우려하는 건 지나친 설레발이거나 핵심을 벗어난 논점이다. 핵심은 영화관이 차폐의 기능을 잃고 있다는 점이고, 이로 인해 계량 자체를 변화시켰다는 점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협상의 장, 다시 말해 소통에 끌려 들어온 영화관의 향후다.

 

〈더 배트맨〉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더 배트맨〉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거시의 귀환, 메이저의 부활

소통에 끌려 들어온 영화관의 향후를 논하기에 앞서 되짚어 봐야만 하는 요소가 있다. 영화관이 수행하던 차폐 기능과 귀환한 거시와 메이저의 관계다. 사라지고 있는 요소와 귀환한 요소의 관계를 되짚어 봐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모든 변화, 즉 영화 전반을 시스템 안으로 편입되고 소통에 끌려 들어온 모든 사태는 이 관계로부터 시추 된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차폐란 자기 완결성을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인 봉인의 다른 말이고, 거시는 한 번에 포착되지 않는 모든 속성과 다르지 않다.

거시는 한 번에 포착되지 않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종합적이고 복잡하다. 더불어 종합적이라는 특성은 필연적으로 상호 연결을 바탕으로 한 파악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이러한 거시의 독특한 조건들 때문에 거시를 직접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며, 이는 메이저라는 임의의 객체(Object)를 통해 소환하는 계기가 된다. 메이저는 거시를 파악하기 위해 소환된 임의의 객체다. 이는 거시는 직접적인 파악을 통해 분명하게 포착될 수 없다는 것을 함의한다. 다시 말해, 거시는 메이저라는 임의의 객체를 통해서만 간접적으로 포착될 수 있다. 거시와 메이저가 붙어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메이저를 조금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메이저란 예상 혹은 예측과 같이 아직 일어나거나 사건을 통해 정해지지 않았지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총계다. 즉 메이저는 본질상 우연과 우발을 사전에 제약하기 위해 정해진 규약과 같다. 일종의 법률과 같이 공표와 통보로서 상호성을 규제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더 분명하게는 상호작용을 선언적으로 구체화한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말은 제도다. 제도란 사회에 적용되는 게임의 법칙이며, 동시에 인간이 고안한 제약으로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한다. 메이저는 제도처럼 거시에 적용되는 게임의 임의적 법칙이며, 거시를 파악하려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제약하기 위해 고안한 구체적인 임의의 방안이다.

거시와 메이저의 속성을 풀어보았지만, 아직 풀리지 않은 매듭이 하나 남아있다. 메이저가 임의적인 객체라는 점이다. 객체란 의사나 행위가 미치는 대상을 일컫는 말로, 영향을 받는 대상을 지칭한다. 그렇다면 메이저는 영향 아래 놓인 임의의 방안이라는 말이 된다. 따라서 메이저는 어떤 특정한 계기에 따라 소환되는 방안과 다르지 않으며, 이는 거시를 파악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코로나가 어떻게 거시를 귀환시켰는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는 코로나가 마련한 계기가 무엇인지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렵게 이야기할 필요 없이 코로나가 마련한 계기란 재난이었으며, 우리가 지난 2년간 피부로 느꼈던 바와 같이 불확실성을 일상화한 것이었다. 이는 벌어질지 모르는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복잡한 방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분명한 거시적 상황이었고, 불확실성에 대응해야 한다는 견고한 명분을 제공해주었다. 따라서 코로나가 제공한 거시적 상황은 메이저를 설정하여 간접적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의 거시적 성격은 그동안 상식적으로 공유해오던 환원주의적 인과 파악을 전환해야 한다는 필요로 이어졌다. 가령 마스크를 하지 않는 것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좋은 조건을 스스로 제공하는 것이었고, 이는 나 이외의 불특정한 다수에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마스크는 ‘해야 하는 것’이었으며,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규제될 필요가 있었다. 실제로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서는 과태료라는 징벌이 내려졌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반발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마스크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제약하기 위해 고안한 구체적인 임의의 방안이었으며, 곧 메이저였다. 마스크는 바이러스로부터의 안전을 측정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며 불확실성을 제약할 수단이었다. 거시와 메이저가 귀환한 이유는 분명했다. 그것이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할 유일한 방안이었기 때문이다.

 

〈반도〉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반도〉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

차폐 용융, 혹은 시스템의 역습

그렇다면 거시와 메이저는 차폐는 어떻게 상호성을 형성했고, 차폐를 용융하는 결과를 낳았는가? 거시와 메이저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거시는 불확실한 데, 그것이 통제하는 메이저는 임의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메이저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한 거시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는 거시에 있어 일관성을 부여하는 일은, 그조차 임의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임의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유지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거시 파악에 일관성을 유지 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상호작용을 통제하고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데, 차폐의 경우에는 그 존재 자체가 차단이므로 상호작용의 통제에 힘쓸 필요가 없다. 영화관 또한 마찬가지였다. 영화관은 그 자체가 차폐를 담보하는 건축물이므로 억지로 통제에 힘쓸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모든 영화관에는 반드시 문이 있다. 차폐를 담보하는 건축물에 그것을 제어하는 요소가 있다면, 담보는 경우에 따라 와해될 수 있다.

애초에 영화관이란 차폐를 담보하고 있는 건축물이지, 중요한 것은 차폐가 용융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차폐를 제어하는 것 자체가 용해를 내재한 일이므로 차폐가 일시적으로 풀리는 일을 막을 수 없는 일이기는 하다. 다만 용융의 경우에는 용해와 다르다. 용해와 용융 모두 고체에서 액체로 변한다는 점에서 형태를 잃어버리는 일인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용해는 상온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용융은 상온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즉, 인위적인 요건을 가하지 않는 이상 용융은 일어나지 않는다. 따라서 영화관에 있어 차폐를 담보한다는 말은 용융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만약 영화관에 대하여 용융이 일어난다면, 이는 무언가 인위적인 요소가 개입된 것이다. 그리고 개입된 요소란 주지하다시피 메이저다.

메이저의 영화관 용융은 거시를 파악하려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이때 거시란 코로나로 인해 차폐가 기능 부전을 일으킨 상태를 말한다. 코로나는 모여있는 것 자체를 하나의 위험성으로 간주케 했다. 소통과 교류 자체가 하나의 위험이었다. 이는 차폐가 가지고 있던 봉인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IMF가 코로나로 인해 촉발된 경제위기를 “대봉쇄(The Great Lockdown)”라고 명명한 것처럼 봉인은 무언가를 구별할 수 있는 특별한 상태가 아니었다. 당연히 영화관의 차폐 기능도 특별한 상태를 만들어주진 못했다. 이는 영화의 자기 완결성을 위협하는 영화의 존재적 위기였으며, 동시에 매체 전환과 같은 ‘상온 상태’에 대한 대응과는 차원이 다른 재난적 상황을 가져왔다. 더불어 2010년대부터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며 영화관의 용해를 주도하고 있던 플랫폼도 성장세를 꺾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 상황만 두고 봐도 영화관이 놓인 상황은 코로나가 제공한 거시적 상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영화관이 찾은 해답은 다른 메이저를 영화관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여기서 잠시 메이저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상호작용을 제약하기 위해 고안한 구체적인 임의의 방안이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측정과 측량을 위한 하나의 방식이었음을 상기하기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궁극적으로 확보해야 할 안정을 위해 마련된 계획적이고 정연한 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메이저는 안정을 벗어난 상황을 최적화시키기 위한 한 수단이다. 하지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임의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유지 시킬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는 안정을 위해 마련된 정연한 방법이 아니지만, 마스크가 그러했듯이 어쨌든 불완전한 안정을 제공할 수는 있다. 영화관이 수용한 메이저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본격적인 코로나 기간에 들어선 영화관 안에서는 메이저를 확보하지 못한 수많은 영화가 마치 긴급히 원자로에 투입된 냉각수처럼 증발했다. 이는 독립영화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2020년 최고 흥행작이었던 <남산의 부장들>은 500만이 못 되는 관객(약 475만 명)을 끌어모았고, 그 뒤를 이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반도>는 각각 약 435만 명, 380만 명을 모았다. 2021년에는 상황이 더 심각해졌다. 류승완 감독의 <모가디슈>는 고작 약 360만 명을 관객을 모았고, 김지훈 감독의 <싱크홀>은 약 220만 명을 모았다. 각각 2021년 박스오피스 2위와 6위를 기록한 영화들이었다. 이는 영화관의 차폐가 기능 부전을 넘어 용융하고 있었음을 수치였다. 영화관에 영화를 건다는 것은 더 이상 메이저를 확보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던 셈이다. 이들은 영화적 가치와 무관하게 혹은 충분한 영화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영화관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 증발한 영화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메이저를 확보한 영화는 무엇이었나. 가장 쉽게는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2021)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의 성과는 이미 충분히 알려졌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 않겠다) 황동혁 감독의 <오징어 게임> 영화로 보아야 하는지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종의 탄생에는 논란이 있었음을 밝히고 싶다. 이들은 플랫폼이라는 메이저를 장착하고 새롭게 나타날 메이저 시네마의 예고편이었다. 그 뒤로 연상호 감독의 <지옥>(2021), 그리고 이재규, 김남수 감독의 <지금 우리 학교는>(2022, 이하 <지우학>)이 <오징어 게임>의 성과를 이어갔다. 한쪽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K-콘텐츠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평단 또한 앞다투어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넷플릭스에서 성과를 거둘 있었던 요인들을 환원주의적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들이 넷플릭스에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환원주의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징어 게임> <지옥> 그리고 <지우학>이 거시적 상황들을 뚫고 새로운 성과를 창출할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메이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었다. 메이저란 거시를 측량할 수 있는 시스템과 같은 말이다. 체계는 말 그대로 부분이 합쳐진 것이다. 종합적이지 않고 복잡하지 않다면 그것은 메이저가 아니다. 메이저를 등에 업었다는 것은 앞에서 언급한 니클라스 루만의 말처럼 단순한 영혼의 낙원을 상실했다는 것과 같다. 더불어 자기 완결성을 지을 필요가 없어졌거나 봉인의 도움 없이도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 완결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의미였다. 체계가 이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전까지 영화관이 영화에 제공하던 차폐는 플랫폼이라는 매체 발달에 따라 융해하던 상황이었다. 코로나라는 거시적 상황은 문을 통해 유지하던 영화관의 차폐를 용융했다.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출처: 네이버 영화)
〈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출처: 네이버 영화)

메이저 시네마, 혹은 시스템으로의 응결

차폐라는 존재 가치를 잃은 영화관은 어떤 방식으로든 메이저를 영화관 안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이는 영화관 안에 객체를 마련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영화를 위해 차폐를 제공하는 데서 존재 가치를 발휘하는 특수한 건축적 공간이다. 차폐가 용융한 이후, 영화관이 존재 가치를 회복해야만 했다. 코로나 사태라는 거시적 상황 앞에서 영화관이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그것은 앞에서 밝혔던 바처럼 메이저를 수용하는 일이었다. 메이저를 수용한다는 것은 영화관이 독립적인 지위를 잃고 시스템 안으로 응결된다는 의미였다. 단순하고 단독적이었던 것은 이제 종합적이고 복잡해졌다. 영화관은 단독적 공간이 아닌 복합적 장소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측량과 측정의 수단으로 편입되며 도구의 하나로 전락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이 이전에는 아예 없었던 건 아니었다. 상탈 애커만은 일찍이 <노 홈 무비>(2015)를 통해 예견했듯이, 영화가 집을 상실하는 상황은 예정된 절차였다. 하지만 영화관이 도구의 하나로 전락하는 데는 앞에 길게 언급했든 코로나 사태라는 거시적 상황에 의한 차폐 용융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관의 유일한 공간적 가치를 회복시킨 것 역시 영화관을 융해시키고 있던 매체 발전의 요소들이었다. 플랫폼과 영화관의 상영 환경에 대한 논란을 폭발시킨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2018)부터가 그랬다. 알폰소 쿠아론은 <로마>에 대한 상영 환경을 “70mm 영사기와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에 맞춰줄 것을 간청했지만, 정작 <로마>는 넷플릭스 플랫폼으로 배포되는 콘텐츠 중 하나였다. 이 극단적인 두 환경의 충돌은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어째서 <로마>는 그토록 극단적인 영화관 환경을 요구했던 것인가.

일단 수평적인 비교를 위해 그토록 극단적으로 기술환경을 구축한 영화관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는데, 바로 IMAX 상영관이 그것이다. IMAX 상영관은 코로나 사태가 차폐라는 영화관의 존재 가치가 용융하는 상황에서도 100% 넘게 흥행 수익을 개선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극단적인 기술환경을 제공하는 차폐는 존재 가치의 위협으로 생존한 것이다. IMAX사 CEO인 리처드 갤포드(Richard Gelfond)와 ‘패스트컴퍼니’(Fast Company)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IMAX사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하 <노 웨이 홈>)으로만 83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두는 등 전 세계에서 6억 3800만 달러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2020년 대비 146% 가량 성과 개선을 보였다. 그는 성과 개선의 요인으로 ①독점화된 유통 창구를 통한 마케팅 효과 발생과 ②마케팅 효과에서 파생되는 “문화적 이벤트(Cultural Event)”라고 정리했다.

갤포드의 분석은 원리상 종합적이고 복잡한 분석을 독점화된 유통 창구를 통해 임시적으로 마련한 것과 다르지 않다. 정리하자면 시스템을 통해 확보한 독점화된 유통 창구라는 베타성이 차폐를 유의미한 것으로 유지 시켰다는 것이다. 여기서 베타성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코로나 사태가 한참인 2020년에 <귀멸의 칼날 : 무한열차 편>이 유의미한 성과를 냈던 방식과 같다. 플랫폼이라는 창구를 통해 확보된 관객이 차폐로 구현된 유의미한 베타성을 형성할 수 있을 때, 영화관은 존재 가치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닥터 스트레인지2 : 대혼돈의 멀티버스>(이하 <스트레인지2>)에서 구현됐던 전략과도 같다. <스트레인지2>를 ‘남들처럼’ 관람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디즈니의 OTT 플랫폼 ‘디즈니+’에서 공개된 <완다비전>을 먼저 관람해야 한다. ‘완다 막시모프’(엘리자베스 올슨, 이하 ‘완다’)가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완다가 <완다비전>에서 겪은 변화를 아는 관객과 모르는 관객의 <스트레인지2> 관람은 피부에 닿을만한 주요한 차이를 형성한다. 이는 창구를 통해 형성된 베타성이다.

이러한 방식은 영화관과 그곳을 점유한 영화가 제도적 혹은 전략적 방식을 통해 생존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메이저를 장착한다는 것은 이처럼 시스템을 등에 업고 영화관을 하나의 거점으로 여기게 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이 모든 과정에서 제도 혹은 전략이란 제약을 실천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나아가 제약이란 협력의 관계를 권력으로 명시하는 행위와 다를 바 없기도 하다. 단절과 구분은 새로운 명령이었고, 코로나라는 변수를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식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는 영화 산업의 독과점 철폐를 위해 내려진 파라마운트 판결이 광고와 배급 등 무형 통제를 통한 견고한 배급시스템 구축하고 ‘규모의 경제’를 설계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던 것처럼, 코로나가 작동시킨 불확실성에 대한 대응은 와해하고 있던 영화를 시스템 안으로 응결시켰다. 이를 일찍이 실천했던 마블의 <노 웨이 홈>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10억 달러 흥행을 기록한 유일한 영화가 되었고, 플랫폼과 극장을 결합한 <스트레인지2>는 7억 20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는 중이다. 이는 메이저 시네마라는 종의 탄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시스템 안으로 응결하는 중이다.

다만 이 모든 과정을 다양성을 저해하고 우연과 우발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계기로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생태계에서 인위적으로 안정을 확보하려 했던 시도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엎어졌었는지 생각해본다면, 이것이 다양성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지는 단언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물리학에 새로운 희망을 찾을 것이다.

 

“거시적 특성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계로부터 창발한다(Emerge)는 것입니다”

- 스티븐 사이먼, 『고체 물리학 기초』 서문 중에서

 

 

 

글·이현재
평론가.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2021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 평론 신인상.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이현재의 시네마크리티크」에서 글을 쓰고, STRABASE에서 일하며,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에서 활동하고 있다.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이현재(영화평론가)
이현재(영화평론가) blueparanchung@gmail.com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