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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아의 문화 톡톡] 가면 무도회와 ‘죽음의 무도’, 그리고 10·29 참사
[김시아의 문화 톡톡] 가면 무도회와 ‘죽음의 무도’, 그리고 10·29 참사
  • 김시아(문화평론가)
  • 승인 2022.11.07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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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 참사를 기억하라!

놀이 문화 할로윈

프랑스어로 ‘카르나발 carnaval’이라 불리는 사육제(謝肉祭)는 서양에서 이른 봄에 열리는 민중들의 축제이자 문화다. ‘고기를 금한다’는 뜻이 담겨있는 카니발은 기독교문화에서 참회의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에 열린다. 사람들이 가면을 쓰거나 분장하고 가장행렬을 하며 봄을 맞이하는 축제다. 종교의 의미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축제가 되었고 프랑스의 니스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카니발은 국제적으로도 유명하다.

가을에서 겨울 사이, 11월 1일은 카톨릭에서 정한 ‘모든 성인의 날’인데 바로 전날 10월 31일은 영미 문화권에서 할로윈(Hallowe’en) 축제를 벌인다. 종교적 의미는 퇴색되고 상업적 이벤트에 힘을 얻어 놀이 문화로 확장된 할로윈 축제는 원래 아일랜드에서 켈트족 성직자들이 악령을 쫓는 날에서 유래되었다. 아일랜드 사람들은 망자에게 음식을 대접하면 자신들에게 악한 장난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고 귀신 복장을 하고 집마다 문을 두드리며 음식을 달라는 재밌는 전통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어린이들에게 사탕과 초콜릿을 주는 가족과 마을의 공동체 놀이로 바뀐 지 오래되었다. ‘죽음’에 대한 희화와 놀이 문화가 확장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월트 디즈니가 1929년에 제작한 애니메이션 <실리 심포니 Silly Symphonie> 중 하나인 ‘해골춤(Skeleton Dance)’만 보더라도 ‘죽음의 무도’를 테마로 인간 해골 네 명이 무덤에서 나와 경쾌한 음악에 맞춰 묘지 주변에서 춤을 추는데 코믹한 유머가 강조되며 죽음을 희화화한다. ‘죽음의 무도’는 14세기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이 죽어 가서 ‘죽음과 함께 춤을 춘다’는 관용구와 더불어 생긴 회화와 예술 장르다. 대체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와 인간의 자조적인 유머가 담겨있다.

 

[이미지 출처] 18세기 '죽음의 무도' 유화 작품 디테일, wellcome images London/cc by 40.
[이미지 출처*] 18세기 '죽음의 무도' 유화 작품 디테일, wellcome images London/cc by 40.

프랑스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 (Camille Saint-Saëns, 1835-1921)는 시인 앙리 카잘리스(Henry Cazalis)의 ‘죽음의 무도’에 대하여 쓴 시 <평등, 형제애...Égalité, Fraternité...>에 영감을 받아 <죽음의 무도 Danse macabre>를 작곡하고 1875년 파리에서 초연을 하는데 무거운 제목과는 달리 음악적 리듬과 분위기가 밝고 경쾌하다. 이러한 예술과 음악 때문이었을까? 영국식 블랙유머의 영향이었을까?

1980년대 미국에서 할로윈은 ‘섬뜩한 장난’과 놀이 문화가 발전한 카니발 문화 행사로 확장되었다. ‘가면 무도회’나 퍼레이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시체나 귀신 분장 등 가면을 쓰고 기발한 코스튬을 입고 가장행렬을 한다. 카니발 축제와 마찬가지로 가면을 쓰고 분장을 하지만 할로윈은 망자들을 기억하는 동시에 공포와 두려움을 희화화는 놀이다. 미국에서 할로윈은 자본주의 문화 속에서 죽은 자를 기리는 엄숙함보다는 즐겁게 노는 축제로 변화되었고 이러한 문화는 전 세계로 급속도로 퍼져나갔으며 우리나라도 이태원을 중심으로 할로윈 축제가 시작된 지 스무 해가 넘어 규모가 커지며 매해 축제의 장이 되었다.

죽음을 기억하는 건 삶이 유한하기 때문이다. 할로인 축제를 다른 나라의 기이한 풍습이라고 배척하기보다 왜 그런 문화가 생겼는지 생각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세계 시민으로서 다문화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참사를 기억하라!

마약 단속에 눈이 어두워 이태원에 십만 명 운집을 예상했던 할로윈 행사에 윤석열 정부와 서울시는 국가와 시가 기본적으로 책임져야 할 안전 문제에 무신경했고 무책임했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출퇴근 문제로 서초·용산 경찰 인력은 윤석열 정부 집권 후 4개월 만에 5,000시간 초과 근무를 하며 이미 안전 시스템에 금이 가고 있었다. (<중앙일보> 9월 2일 ‘용산 대통령 이후….“살려달라” 경찰 5,000시간 초과 근무’ 기사 참조**)

그런데 참사를 책임져야 할 국가가 할로윈 축제에 참여한 개인의 탓으로 돌리고 희생자 중에서 희생양을 찾는 수사와 이태원에 간 사람들에게 책임을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의 몰지각은 일반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다. 희생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던 삶을 사랑했던 사람들이다. 할로윈 축제를 하는 토요일에 이태원에 갔을 뿐이다. 그런데 지하철역 출구에서 가까운 거리에서 압사를 당했다. K-문화를 자랑하고 이제 막강한 경제 강국이라고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말이 되는가?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을 더는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의 가장 기본 권리인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면 참사는 언제 어디서든 일어난다.

삶과 연결된 웃음과 유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아니라 관료적 형식과 죽음을 추앙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망각하면 죽음이 만연해진다. 계속되는 참사에도 무덤덤하고 삼풍백화점이 붕괴되어 502명이 희생된 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고층 아파트를 세우고 그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 성수대교, 삼풍백화점, 세월호. 수많은 참사를 겪고도 또 잊어버리는 나라. 비극과 참사를 지우고 애도 기간을 일주일이라고 선포하는 정부. 책임자가 책임을 져야지 애도 퍼포먼스를 한다고 해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10월 29일 이태원 윤석열 참사가 일어나 비통한 가운데 ‘진정한 애도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게 된다. 이번 일로 다시 한번 국가로부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 이미지 참고 사이트 (2022. 11. 5. 검색) <A Brief History of the ‘Danse Macabre’> :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danse-macabre-david-pumpkins-art-history

** 기사 참고 사이트 (2022.11. 5. 검색) <용산 대통령 이후…"살려달라" 경찰 5000시간 초과근무> :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98968#home

 

 

글. 김시아 KIM Sun nyeo
파리 3대학 문학박사. 연세대 매체와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 서울디지털대학교에서 그림책에 대해 가르치고 문학과 예술, 그림책 매체를 넘나들며 글을 쓴다. 『기계일까 동물일까』 『아델라이드』 『에밀리와 괴물이빨』 『세상에서 가장 귀한 화물』 『엄마』 『오늘은 수영장일까?』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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