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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의 문화톡톡] 칭찬 받는 ‘똥덩어리’노동, 비난 받는 ‘알짜’ 노동
[한성안의 문화톡톡] 칭찬 받는 ‘똥덩어리’노동, 비난 받는 ‘알짜’ 노동
  • 한성안 | 경제학자
  • 승인 2023.01.16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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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 성서에 나오는 말이다. 종교적 신념을 떠나 모두가 수긍할 수 있을 법한 상식이요, 진리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 이 진리가 잘 통하지 않는 현실이 되었다. 기술이 발전하고 생산성이 향상된 결과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고 일할 사람도 더 많이 필요치 않게 되었기 뿐이다.

그럼에도 일 안 하면 여전히 먹지도 말라 하고, 노는 꼴은 차마 눈 뜨고 못 보겠다는 문화는 우리 사회에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시장은 일자리를 끝없이 제공해야 하고, 정부는 완전고용을 최우선과제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 와중에 괴상한 일자리들이 수없이 창출된다. 그 중엔 일이라고 하지만 알고 보면 참 희한한 일도 있다. 경제적으로 무익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무의미하며, 심지어 해악과 낭비를 초래하는 일 말이다!
 

불쉿노동이 증가한다

어떤 일들인가? 먼저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 조직의 내부를 살펴보자. 조직의 고위직과 관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작업과 보고서에 태클을 걸면서 생산적 과정에 제동을 건다. 그리고 그 대가로 고액의 보수를 챙긴다. 조직에서 관리자층은 실로 필요하다. 하지만 이들 대부분을 줄여도 생산적 활동은 잘 돌아간다. 어쩌면 더 원활하게 이뤄질 것이다.

조직의 위계질서 안에서만 그런 일자리가 존재하진 않는다. 그런 일자리만으로 구성된 직종도 있다. 금융업은 그런 일자리를 창출하는 대표적 업종이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금융업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금융업이 없으면 기업에 자금을 융통해주고 돈의 적절한 배분을 통해 경제를 원활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금융은 그걸로 만족하지 않는다. 증권업무를 통해 온 국민을 투전판으로 모은다. 주식시장은 국가가 공인한 ‘합법적 노름판’이다. 금융업 종사자들은 투전판과 도박자금을 제공하고 거액의 ‘개평’을 뜯어낸다. 개평만으로 부족했던지 ‘파생상품’이라는 기상천외한 방식을 동원해 스스로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그 폐해를 우리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에서 똑똑히 목격한 바가 있다.

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거덜 내는 부동산투기업종과 하룻밤 사이 수천 톤의 양주와 맥주를 쏟아 버리는 룸싸롱 등 유흥업소까지 거론할 정도로 이 지면이 넉넉하지 않은 게 유감스러울 뿐이다.

무익하고 무의미할 뿐 아니라 심지어 사회에 해악을 초래하면서, 정부의 완전고용정책의 목표 아래서 정당화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확장되고 있는 이런 노동을 런던정경대 데이비드 그레이버교수는 ‘불쉿’(Bullshit)노동이라고 불렀다. 불쉿은 일반적으로 ‘허튼소리’ 정도로 곱게 번역되지만 직역하면 ‘소똥’, 그러니까 ‘똥덩어리’다.
 

똥덩어리에 가려진 알짜노동

이런 똥덩어리 같은 노동이 얼마나 무의미하냐면, 그것을 직접 수행하는 사람들 스스로도 내심 자신의 직업을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것으로 느낄 지경이다. 가령 영국의 풀타임종사자 가운데 자신의 직업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50%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의미가 없다는 사람들은 무려 37%에 달한다. 네덜란드 조사에서는 스스로 똥덩어리로 여기는 이런 직종이 40%를 상회한다. 선진국 경제의 열 개 일자리 중 네 개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직종의 종사자들은 자신의 직업이 존재해야 할 충분한 이유를 스스로 입증해야 할 의무감을 가지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에 몰두하는 척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적어도 타인들 앞에서 가장 분주하다!

그러나 간호사, 운전기사, 의사, 과학자, 기술자, 기능공, 교통경찰관, 도로청소부, 설비수리공, 소방수, 배관공, 기자, 음악가, 무대장치 디자이너, 상점 점원, 레스토랑 직원, 교사,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그리고 특히 공장노동자와 건설현장의 ‘노가다’는 일의 유용성을 억지로 증명하거나 열심히 일하는 척할 필요가 없다. 이런 노동이 없으면 엉망이 된다는 것을 사회는 다 알기 때문이다. 나는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사회적으로 필수적이며, 문화적으로 의미 있으며, 도덕적으로 정의로운 이런 노동을 ‘알짜(배기)’ 노동으로 부르고 싶다. 똥덩어리노동에 가려져 있는 노동들이다.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는 똥덩어리노동

영국의 신경제재단(New Economic Foundation)은 2009년 다양한 직종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가치'를 계산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사회전체의 발전에 유익한 가치를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로 부르자. 이는 개인에게만 유익하고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칠 수도 있는 ‘사적 가치’(private value)와 구분된다. 3개 고소득직업(은행장, 광고회사사장, 세무사)과 3개 저소득직종(병원청소부, 재활용품처리 노동자, 유아원근무자)이 표본으로 선택되었다. 계산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은행장은 500만 파운드의 사적 가치를 연봉으로 수령했다. 하지만 그는 보수 1파운드당 7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었다. 연봉 50만 파운드의 사적 가치를 받고있는 광고회사 사장도 보수 1파운드당 11.5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었다.

은행장이 500만 파운드를 사적으로 챙기며 가정의 행복과 안락을 누린 결과, 사회전체는 3500만 파운드(500x7)의 손실을 입은 것이다. 광고회사 사장의 패악도 같은 방식으로 환산될 수 있는데, 50만 파운드로 가족이 여행 다니고, 자식은 고액 과외를 받는 동안, 사회는 575만 파운드(50만×11.5)의 손실을 입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이런 것들은 있어도 없어도 상관없는 직종과 직책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은 조직에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밑에서 다 마련해 놓은 계획서에 사인하고, 아랫사람 호령하고 필요 없는 회의로 가오(!)잡으며, 점심땐 권력자들과 골프 치고, 저녁엔 그들과 룸싸롱에서 술마시는 게 '일'이다. 사무실에서는 인터넷으로 서핑하면서 업무에 몰두하는 척하고 있을 것이다. 이토록 무의미한 ‘일’을 하면서 알짜노동이 산출한 사회적 가치에서 엄청난 보수를 뽑아간다. 무익함을 넘어 해롭다!
 

엄청난 사회적 가치를 창조하는 알짜노동

이제 저소득직종으로 가보자. 병원 청소부는 1만3천파운드의 연봉을 받는다. 계산 결과 그는 보수 1파운당 10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있었다. 유아원 근무자는 연봉 1만1500파운드를 받고, 보수 1파운드당 7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했다. 재활용품처리 노동자도 병원청소부와 엇비슷한 1만2500파운드의 연봉을 받았고, 그가 생산한 사회적 가치는 보수 1파운드당 12파운드였다.

각자가 생산한 '사회적 가치'를 계산해 보자. 병원 청소부, 유아원 근무자는 각각 연간 13만 파운드, 8만500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하고 재활용품처리노동자는 무려 15만파운드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했다. 은행장과 광고회사사장이 사회전체에 대해 각각 3천5백만파운드, 575만파운드의 손해를 입히고 있는데 말이다.

병원청소부가 하루라도 결근하면, 산더미처럼 쌓인 의료폐기물과 불결한 화장실 때문에 병원은 치료는 고사하고 오염원이 되고 말 것이다. 유아원교사가 휴가가면, 수백만의 부모들이 경제활동을 멈출 수밖에 없으니, 그들이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가 오죽하겠나!

재활용처리 노동자는 이중의 사회적 가치를 생산한다. 먼저 사회를 청결하고 쾌적하게 유지해 줌으로써 우리를 매우 즐겁게 한다. 이 위대한 업적을 잊지 말자! 또 낭비될 뻔했던 재료들을 되살려, 경제를 원활하게 해준다. 고작 은행장의 0.25%의 연봉만 받으면서 말이다. 이런 알짜배기들이 세상에 어딨나?

자본주의는 사회적으로 유용하고 필수적인 알짜노동을 저임금으로 조롱하는 반면, 불필요하다 못해 해로운 똥덩어리 직종과 직책에 고임금으로 칭찬하는 희한하고 기괴한 경제체제다.
 

대한민국 경제의 똥덩어리 노동

우리나라로 눈을 돌려보자. 2019년 공기업 36개사의 직원연봉은 평균 7천942만원으로 조사됐다. 같은 기간 대기업 직원연봉은 197만원 많은 평균 8천139만원으로 조사됐다.

공기업 중 직원 평균보수액이 가장 높은 기업은 한국중부발전으로 9천285만원으로 공시됐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9천159만원)와 인천국제공항공사(9천130만원)의 연봉도 꽤 높다. 나도 공공기관과 연구소에 근무해 본 적이 있지만 그런 곳에선 할 일이 그다지 많지 않다. 해야 할 일이란 발간되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폐기되는 문서작성과 연구보고서가 대부분이다. 관공서, 은행, 대학을 방문하면 창구직원을 감독하는 관리직이 그들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앉아있는 풍경을 접했을 것이다. 종일 컴퓨터를 쳐다보고 있다. 손놀림도 거의 없다. 그들이 과연 무얼 할까?

대한민국은 신고전학파경제학의 문화 아래 놓여있다. 이 경제학파가 주류이기 때문이다. 주류경제학은 ‘사회’나 ‘공공성’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이 주류경제학의 문화적 세례를 받은 대다수 국민은 보통 공기업의 똥덩어리노동에만 주목한다. 그러나 똥덩어리노동은 공공부문보다 민간부문에 훨씬 더 많다.

이제 민간부문을 들여다보자. CJ 이재현회장은 136억8천4백만원을 연봉으로 받는다.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 중 직원 평균급여가 가장 높은 기업은 ‘메리츠종금증권’이다. 이들의 연봉은 1억3천31만원으로 가장 높았다. 이어 NH투자증권이 1억2천300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증권시장은 국가가 공인한 '합법적 노름판'이다. 어떤 가치도 생산하지 않으면서, 단지 멍석 깔고 시중들어 주기만 하고 얻은 보상이다. '파괴'를 기획한 댓가다. 이들은 어떤 사회적 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기생적 존재다!
 

화물차기사의 사회적 가치

화물연대가 파업을 하자 윤석열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귀족노조의 파업이라고 조롱한다. 이 ‘귀족’의 소득을 알아보자. 화물차기사 김아무개씨의 월수입은 140만원이다. 매일 14~16시간이라는 장시간 '일'을 하고 받은 보상이다. 다른 기사들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다. 평균 3백정도 되는가 보다. 세상에 월 3백만원 짜리 귀족도 있는가?

이재현회장의 0.26%, 메리츠종금증권의 27%만 받는 화물차기사들이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는 얼마나 될까? 다행히 저쪽 사람들이 친절하게 계산해 놓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화물연대본부의 올해 두 차례 파업으로 우리나라 경제가 10조 4000억 원 상당의 직간접 손실을 입었단다. 그렇다. 그게 바로 화물차기사들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사회적 가치다. 폼만 재고 바쁜척하며 쏘다니기만하는 회장들, 노름판 벌여 개평 뜯어먹는 금융노동자의 가치와 비교해 보라. 이걸 보고서도 알짜노동이 아니라고 할 사람은 손 들어보라! 똥덩어리노동이 바로 귀족노동이다.
 

수정되어야 할 노동정책의 방향

이토록 쓸모없고 해로운 귀족과 귀족노동자들이 저토록 사회에 크나큰 이익을 낳는 소중한 필수인력을 되려 쓸모없고 해만 끼치는 귀족노조로 비난하고 있으니 기가 막힌다. 불필요하고 해로운 똥덩어리 노동이 높은 보수와 명예를 얻고, 필수적이며 유익한 알짜노동이 가난에 허덕이며 비난받는 이 세상을 바로 잡아야 한다. 동시에 노동정책의 방향도 수정되어야 한다. 똥동어리일은 다른 유의미한 활동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일’이 다가 아니다!
 


글 · 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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