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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불안의 심연, 흔들리는 현재를 전하는 얼굴 - <썬더버드>, <세이레>의 서현우
[송아름의 시네마크리티크] 불안의 심연, 흔들리는 현재를 전하는 얼굴 - <썬더버드>, <세이레>의 서현우
  • 송아름(영화평론가)
  • 승인 2023.01.16 1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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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당연한 일일 테지만 가끔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닐까 울컥대는 억울함을 잠재우기 쉽지 않다. 잠깐의 실수였던 것 같은데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그리 큰 뜻을 가지고 한 일도 아닌데 거대한 죄책감이 놓아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잠시나마 심호흡을 해본다. 곧 무너지겠지만, 그래서 다시 텅 빈 눈으로 주변을 살펴야 하겠지만, 내뱉는 호흡이 가져다주는 순간의 평화는 숨을 이어가게 한다. 이러한 불안과 안정의 교차는 누군가가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가게 만들 수 있는 들숨과 날숨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니까 편안하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불안 속에서만 살 수도 없는 우리의 삶은 어떤 얼굴로 표현될 수 있을까. 영화 <썬더버드>와 <세이레>의 태균과 우진은 누구도 원하지 않았을 삶 속에서 허우적댄다. 태균은 돈에게서, 그리고 우진은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 무엇도 그들을 놓아주지 않는다. 이 족쇄 속에서의 분투, 그곳에 서현우의 얼굴이 있다.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었던 서현우에게 이 두 작품은 그가 가진 가장 예민한 얼굴을 끌어내 준다. 가끔은 순둥한 모습으로, 꽤 자주 믿음직스러운 무게감으로, 어떤 때는 역사 속의 누군가로 등장했던 그는 바로 이 두 작품의 중심에 서서 핏발 선 눈초리로 불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돈과 죄책감. 가장 큰 고통을 주면서도 너무도 쉽게 접근해오는 이 두 항목은 인간성 한계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잔인하기까지 하다. 두 문제 앞에 섰을 때 내가 무엇까지 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언제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은 스스로 인간다움을 증명하는 실험대에 서는 일이다. 서현우가 <썬더버드>와 <세이레>에서 연기해야 할 인물들은 바로 이 실험대에 놓인 인물들이었다. 돈을 둘러싸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정선 카지노의 논리에 익숙해진 <썬더버드>의 태균과 오랫동안 사귀었던 이가 떠난 후 그 이유를 짐작하며 죄책감 속에서 죽은 이의 흔적을 쫓는 <세이레>의 우진은 모두 광기와 불안 속에서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이 두 영화에서 닮은 듯 다르게 움직이는 서현우의 얼굴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절박함이 펼쳐진다.

정선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태균은 이미 모든 것을 통달한 듯한 표정으로 택시를 몰고 있다. 그가 이곳에서 택시를 모는 것은 그가 빌려줬던 돈을 받기 위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지내는 곳은 도착해서 갈 곳이 카지노밖에 없는 황량한 공간이지만 그는 여기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살아갈 방향을 찾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을 살아내기 위해선 도저히 신뢰할 수도 없는 태민(이명로)의 말도 안되는 소리들을 믿는 것 밖에 방법이 없다. 자신이 돈을 숨겨 놓은 차만 찾는다면 형에게 빌린 돈을 모두 줄 수 있다는 태민의 말은 미덥지 않으면서도 태균이 붙잡을 수 있는 유일한 끈이다. 그리고 이런 태민과 함께하는 듯하면서도 철저하게 주변을 이용하는 미영(이설)은 태균이 이곳을 나가 이후를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라도 가지게 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바로 이 상황에서 태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돈이다. 이곳에서 벗어나려 해도 혹은 벗어나지 못해 끝까지 여기에서 살아간대도 그에게 필요한 것은 태민에게 빌려주었던 바로 그 돈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태균을 통해 서현우가 표현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돈을 향한 절박함이다. 돈을 찾기 위해 태균은 차를 찾아야 한다며 광기에 사로잡힌 태민도, 관조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미영도 당장은 감당해내야만 한다. 이때 서현우에게 주어진 것은 치받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지금을 지나도록 만드는 것, 인내라는 고상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더럽게 버티고 견뎌내는 모습이었다. 서현우는 핏발 선 눈으로 집요하게 두 사람을 쫓으면서도 민망하고 굴욕적인 순간들 앞에서 고개 숙이는 절박한 자의 모습을 끊임없이 담아냈다.

그들이 돈을 찾기 위해서는 차를 찾아야 하고, 이는 또다시 돈을 요구한다. 돈이 없으면 무엇도 해결하지 못하는 수렁에 빠진 이들은 태민처럼 미쳐 날뛰는 모습일 수도, 미영처럼 속을 알 수 없는 모습으로도 드러날 테지만, 아마도 가장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 수 있는 모습은 해결이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 하나로 당장 못 믿을 놈에게까지 매달리는 태균의 모습일 것이다. 갑작스레 어떤 공격을 당해도, 누군가한테 스스로가 쪼그라드는 말을 들어도 돈만 찾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감내할 수 있다는 태균의 태도는 서현우의 멍한 듯, 잠시 시간을 놓친 듯 한 템포 늦게 상황을 이해하는 표정 속에 세세하게 들어선다. <썬더버드>가 쉽게 광기나 객기로 마무리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 현실적인 태균의 모습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세대도 집단도 어울리지 않는 회식 자리에 섞인 태균의 얼굴은 어떤 식으로라도 살아가야 하는 많은 이들의 얼굴과 다르지 않다.

 

이 절박한 얼굴이 공포를 담았을 때에는 죄책감과 만날 수 있다. 지금을 지켜야 하지만 불쑥불쑥 올라오는 과거의 기억과 그것과의 대면. <세이레>의 우진은 그래서 태균의 연장선에 놓인다. 우진은 오랫동안 만났던 세영(류아벨)과 헤어진 후 해미(심은우)를 만나 아이까지 낳지만 그는 이 가정에 녹아들지 못하는 듯 불안해 보인다. 딴생각을 하는 듯 해미의 말을 자주 놓치고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도 보기 힘들다. 어느 날 갑작스레 날아온 세영의 부고 문자는 우진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조금씩 힌트를 주면서 우진의 불안을 전면에 세운다. 해미는 아이가 태어난 지 삼칠일이 지나지 않았으니 조심하라 했지만 우진은 세영의 장례식장에 다녀오고 그 후부터 우진은 극한의 예민함을 보이기 시작한다.

<세이레>는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장르적 특징을 보이지만, 그 중심에 놓이는 것은 관습적인 장면들이 아닌 우진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불안의 발현이다. 우진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세영과 헤어진 후 친구들도 몰랐을 만큼 갑작스레 결혼하고 아기까지 낳았지만 아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그리고 우진은 끊임없이 세영의 환영에 시달리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심연의 기억들이 아이, 즉 세영의 임산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현우가 이러한 우진을 설명하게 위해 자주 보여주는 것은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 불안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멍한 표정들이다. 게다가 죽은 세영의 쌍둥이 언니 예영(류아벨)을 만나며 혼란스러워지는 우진에게 이 정지된 시간은 더욱 길어지고, 이제 우진은 현실을 벗어나 있는 이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현실과 거리를 두는 듯한 얼굴로 우진을 만들어간 서현우는 그가 해미와도, 그리고 곧 아기가 태어날 처형 내외와도 섞이지 못한다는 것을 적절히 드러내면서 그 이유에 대한 궁금증으로 끊임없이 긴장을 쌓아간다.

 

<세이레>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약, 우진이 일 때문에 종종 들르면서 받아왔던 그 약들은 아기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기를 갖게 할 수도, 또 뗄 수도 있다는 그 약에 대한 우진의 관심은 아이를 위해 한약을 먹기까지 했던 세영이 어느 날 갑자기 유산을 하게 된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유산을 했다며 울고 있는 세영을 안으면서 내쉬는 우진의 안도섞인 한숨은 그가 아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원치 않았던 우진의 잔인함은 우는 이 앞에서 홀로 평온했던 서현우의 숨소리로 설명되면서 잔잔한 광기마저 띠고 있었다. 이후 세영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다른 이들은 유산이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아마도 우진은 그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았을 것이다. 일상의 공간을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결코 그곳에서 살지 않았던 우진은 서현우의 멈춘 듯하면서도 잔뜩 긴장한 얼굴로 죄책감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변화하겠지만 극한의 순간,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반응이 새겨질 것이다. 갑작스러운 외침이나 폭력으로 표현하는 분노나 떨리는 음성을 앞세운 불안은 그의 표현법과 거리가 멀다. 순진해 보이는 듯, 그럼에도 광기를 담고 있는 그의 얼굴은 그 자체로 많은 것을 말하고 있지만, 한계에 맞닥뜨렸을 때 갇힌 듯 표현해 내는 불안은 긴장으로 배어 나온 땀방울과 섞이며 흔들리는 현재 바로 그곳에 존재한다.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는 여러 배역에 너무도 들어맞아 그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어느 순간 그의 얼굴이 각인되는 장면에 멈춘다면 아마도 불안의 순간이지 않을까. 그 어떤 것도 도와줄 수 없는 곳에 갇힌 절망이 떠오른 바로 그 얼굴이 포착될 때 말이다.

 

사진출처: 네이버 영화

<썬더버드>(2022)
<세이레>(2022)

 

 

글·송아름
영화평론가, 영화사연구자. 한국 현대문학의 극을 전공하며, 연극·영화·TV드라마에 대한 논문과 관련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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