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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안의 문화톡톡] "인생이 좆같아요!"
[한성안의 문화톡톡] "인생이 좆같아요!"
  • 한성안 | 경제학자
  • 승인 2023.02.20 11: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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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버나움의 자인, 대한민국의 '자인들'

‘가버나움’은 대다수에게 낯설지만 기독교인들에게 익숙한 지명이다. 이스라엘의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작은 성읍으로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그곳에서 예수는 중풍병자를 치유하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주며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와 같은 기적과 설교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회개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는 이 땅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6세기에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변했다.

 

고달픈 가버나움

 

영화 <가버나움>은 2천년이 지난 오늘의 가버나움을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다. 현재는 레바논 지역이다. 서남 아시아지역은 전쟁과 분규의 도가니다. 시리아, 이라크, 에티오피아 등에서 몰려온 전쟁난민들로 들끓는다. 레바논 역시 내전으로 민중들의 삶이 망가진 상태다. 오늘의 가버나움은 전쟁과 빈곤,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진 자들의 땅이다.

 

자인
자인 / 출처=영화 <가버나움>

열두어 살쯤(!) 되는 ‘자인’ 역시 이 땅에 유배된 아이들 가운데 하나다. 부모와 살지만 부모도 그도 자인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며, 생일도 모른다. 영화의 대사를 인용하면, “케쳡도 만든 날짜와 유통기한이 있는데” 자인은 그런 게 없는 아이다. 자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는 그곳 아이들을 대표할 뿐이다.

가버나움의 삶은 고달프다. 십 대 초반 자인의 삶은 더 고달프다. 자기보다 어린 여동생이 빈곤 때문에 강제로 시집(!)간 후 임신 후 하혈로 죽는다. 그것도 병원 문 앞에서 죽었다. 그녀 역시 ‘제조날짜’가 확인되지 않는 유령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출생이 신고되지 않아 살아도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죽으나 사나 차이가 없다.

강자들의 삶은 선이 굵고 전형적이어서 스토리로 풀어내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밑바닥 인생들의 삶은 하찮고 별난 일로 이리저리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 하찮은 사건들은 그들의 삶을 짓누른다. 강자들이라면 전화 한 통과 봉투 한 개로 간단히 처리되었을 것들이었다. 기꺼이 스포일러의 악역을 짊어질 수도 있겠지만, 자인의 그 고단하고 절망적인 삶을 내가 여기에 요약할 수 없다. 그냥 직접 보시는 게 낫다는 말이다.

 

법정 앞에선 자인
법정 앞에선 자인 자인 / 출처=영화 <가버나움>

 

차라리 이 꼬마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던진 말들로 줄거리를 대신하는 게 나을는지 모르겠다.

 

“나도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원하지 않아요. 우리를 짓밟을 뿐이죠.”

 

“뱃속의 아이도 나처럼 될 겁니다. 부모님이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못하게 해 주세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부모님을 고소하고 싶어요."

 

“인생이 좆같아요!”

 

이 땅의 '자인'들도 고달프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비정규직이 38.4%에 이른다. 전체 임금노동자 2099만2천명이니 무려 806만6천명이 비정규직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비정규직은 임금만 낮지 않다. 불완전한 고용조건으로 번민의 밤을 지새워야 한다. 사람 취급 안 해 주니, 그 쪽팔림을 필설로 다하랴. 좆같은 인생이다.

이들 대부분의 경제적 삶은 녹록지 않다. OECD(경제개발협력기구)에 따르면 2018, 2019년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6.7%였다. 상대적 빈곤은 ‘중위소득의 절반 수준도 벌지 못해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누리는 일정 수준의 생활조차 영위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우리나라 국민이 6명 중 1명이 이런 상태에서 빠져 있다는 말이다.

소득만 불평등하지 않다. 자산 역시 불평등하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20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자산 상위 10% 계층에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부(富)의 66%가 쏠려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위 50%가 가진 것은 전체 자산의 2%에 불과했다.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고 있다. 돈이 돈을 벌고 부동산이 황금알을 낳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한국의 '자인들'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은 2017년 발표한 '소득계층 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고찰' 보고서에서 2007∼2015년 소득계층별 가구의 계층 이동률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30% 정도만 소득계층이 상승했다. 나머지 70% 가운데 40.4%는 제자리걸음이고, 29.5%는 오히려 더 빈곤한 계층으로 추락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계층이동확률
2007~2015 소득계층별 가구의 계층이동률 / 출처='소득계층 이동 및 빈곤에 대한 동태적 고찰' 보고서 (윤성주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가난뱅이(!)의 상태는 더 절망적이다. 전체 가구를 최하위 1분위에서 최상위 10분위로 구분하고, 소득 하위 1∼3분위를 '빈곤'으로 정의했을 때 2007∼2015년 1년 뒤 평균 빈곤진입률은 7.1%, 빈곤유지율은 86.1%, 빈곤탈출률은 6.8%였다. 하위 30%에 해당하는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가난뱅이들이 빈곤을 면할 확률은 고작 6.8%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것도 가난을 겨우 면할 확률이니 개천에 용이 나는 확률은 거의 제로일 것이다!

 

빈곤은 사람을 위험으로 몬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발생현황 통계에 따르면 2010~2018년 매년 평균 1,90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2018년에만 무려 2,142명의 ‘김용균’들이 출근한 후 영원히 귀가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공장 안에서만 죽지 않는다. 2020년 총 13,19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하루 평균 36.1명이 소리 없이 사라진다. 전쟁도 참혹한 전쟁인 셈이다. 이것도 세계 1위다.

 

산재통계
2010~ 2017 산업재해 발생현황 / 출처=고용노동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불행한 한국의 '자인들'

 

이러니 삶이 과연 행복할까?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나라경제 5월호’에 따르면 2018∼2020년 평균 한국의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이었다. 이는 전체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에 해당하는 점수다. OECD 37개국 가운데서는 35위다.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OECD 국가는 그리스(5.72점)와 터키(4.95점)뿐이었다.

애들은 더하다.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팀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 우리나라 청소년(초등학교 4학년에서 고등학교 3학년)의 주관적 행복지수 표준점수는 88.51점으로 OECD 22개국 가운데 20위를 기록했다. 역시 거의 꼴찌 수준이다.

 

가버나움 한국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태어나 이리저리 채이고 밟히며 좆같은 인생을 사는 민초들이 이처럼 이 땅에도 수없이 많다. 그들에게 이 땅은 또 다른 가버나움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실화지만 다큐멘터리영화와 영 거리가 멀다. 스토리, 연기, 주제, 영상 모든 게 훌륭하게 처리된 최고급 예술영화다. 영화가 끝났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은 곧바로 일어나 나가버리지 않았다. 엔딩 음악이 종료될까지 모두 앉아 있는 영화는 거의 처음이다. 좋은 영화가 주는 깊은 감동과 여운 때문인 건 틀림없지만 좋은 관객들이 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저주받은 땅, 가버나움에도 구원의 손길은 뻗쳤다. 자인과 아이들은 좋은 곳으로 간다. 그렇잖아도 짓눌려 있는 우리 마음을 더 답답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지레 부담 갖거나 손사래 칠 필요는 없다. 실제 얘기도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 땅의 가버나움 민초들도 ‘좆같은 삶’에서 벗어날 희망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이 영화를 볼 필요가 있겠다.

 

 


글 · 한성안

문화평론가. 경제학자. 영산대학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좋은경제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집필, 기고, 강연 중이다. 페이스북과 블로그를 통해 진보적 경제학을 주제로 시민들과 활발히 소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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