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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오분순삭 하이킥>보다 재미있을 수 있을까 – 시트콤의 현주소
[구선경의 문화톡톡] <오분순삭 하이킥>보다 재미있을 수 있을까 – 시트콤의 현주소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3.02.20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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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덕분에 생각지 못한 일들이 생겼다. 이제 무도도 끝났구나, 토요일 저녁마다 저녁밥 먹고 앉아 느긋하게 낄낄대며 함께 했던 <무한도전>의 종영을, 마치 나의 한 시절이 가는 것처럼 꽤 아쉬워하며 보냈는데 몇 년 후 아무렇지 않게 유튜브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재밌는 장면만 쏙쏙 뽑아 편집한 편집본으로, 때로는 내가 원하는 인물 위주로 묶어서, 에피소드별로 모아서, 골라볼 수 있기까지 하다. 무도는 그나마 종영 날짜가 5년 안쪽이라 멀지 않은 추억이지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건 <하이킥> 시리즈, 그리고 <순풍산부인과>의 귀환이었다. 당돌하게도 연기 잘하던 미달이에 앳된 송혜교와 김소연, 젊은 박영규와 박미선까지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게다가 20여 년이 훌쩍 넘은 그 시절 시트콤을 지금의 10대, 20대가 키득거리며 보고 있는 걸 보면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거침없이 하이킥] 포스터
<거침없이 하이킥> 포스터
[순풍산부인과]
<순풍산부인과>

한때 이렇게 시트콤 전성시대가 있었다. SBS에는 <오박사네 사람들> <LA아리랑> 등이 있었고 MBC에는 <남자 셋 여자 셋> <세친구> <논스톱> 시리즈 등 청춘물이 강세였다. <논스톱> 시리즈는 훗날 송승헌, 조인성 등의 스타를 배출해내는 등용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조금 뒤늦게 시트콤에 뛰어들었던 KBS는 결혼하지 않은 30대 여성(그때는 이 정도 나이가 ‘올드미스’였고, 그런 용어가 가능했던 때다)들을 주인공으로 한 <올드미스 다이어리>가 대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초기의 시트콤은 통상적으로 야외 촬영 없이, 혹은 한정된 야외만을 활용하고 주로 세트에서 녹화가 이루어지는 방식이어서 제작비 측면에서 드라마와 큰 차이가 있었다. 시간도 30분 내외로 짧게 편성되므로 매일 방송하기에 용이했다. 그 때문에 20~30%의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던 전성기에는 방송국 입장에서는 가성비가 좋았을, 꽤 효자 노릇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러다 2010년대로 들어서면서 점차 시트콤의 하락세가 시작되었다. 하이킥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은 평균 10% 내외의 시청률로 전작에 비해 인기가 많이 떨어졌고 이는 KBS'일말의 순정' '닥치고 패밀리' SBS '도롱뇽도사와 그림자 조작단' 등도 마찬가지였다. 어느새 편성표에서 시트콤이 사라진 이후 간간이 부활의 조짐이 있긴 했다. <초인가족> <보그맘> 같은 작품들이 기획되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고 그나마 <청담동 살아요> <으라차차 와이키키> 정도가 나름대로 마니아층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방송 3사 모두 시트콤이 없어졌고 별다른 편성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 지금, 그렇다면 다시 시트콤이 돌아올 수 있을까?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면 ‘돌아올 수 있을까’가 아니라 ‘돌아올 필요가 있나?’부터 따져봐야 할 것이다.

시트콤에서 첫 번째 기대하는 바는 코미디다. 시트콤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츄에이션 코미디(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같은 설정과 등장인물을 가지고 매회 다른 이야기를 풀어가는 드라마 형식을 시츄에이션물이라고 하는데 시트콤은 여기서 특히 코미디가 강조된 극이다. 휴먼드라마에서 감동을 기대하고 미스터리물에서 스릴과 서스펜스를 기대하듯 시트콤에서는 코미디, 웃음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 웃음을 줄 수 있는 코미디 콘텐츠가 지금 유튜브에 무궁무진하다.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콘텐츠는 물론, 지상파에서 한계에 부딪혀 사라진 개그맨들이 유튜브에서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는 중이다. <강유미의 좋아서 하는 채널>, 김대희의 <꼰대희>등 개인이 운용하는 채널, 다수가 모여 콩트식의 콘텐츠를 선보이는 <숏박스>, <피식대학> 등 일일이 다 손으로 꼽기 어렵다. 특히 <피식대학> 같은 경우 반응이 좋았던 코너의 인물과 세계관을 계속 넓히고 연결해 그들만의 유니버스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연속적인 스토리가 이어지고 캐릭터 플레이로 재미를 준다는 점은 시트콤의 그것과 일치한다. 시트콤의 재미를 담당하는 콘텐츠가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강유미 좋아서 하는 채널] 캡처
'강유미 좋아서 하는 채널' 캡처
[피식대학] 캡처
'피식대학' 캡처

'돌아올 수 있을까’라고 던졌던 질문에 일단 부정적인 답변을 얻은 셈인데 여기서 잠깐, 돌아온다는 건 어디로 돌아온다는 말일까? 그것도 체크해야 하지 않을까.

지상파로 돌아오는 건 일단 쉽지 않아 보인다. 위에서 언급했듯 코미디가 유튜브로 간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지상파에서는 연령 제한도 지켜야 하고 방송 심의도 준수해야 하고 브랜드 노출도 안 되며 정치색도 조심해야 한다. 예전 시트콤 편집본이 인기를 끈다고 그때처럼 만들 수도 없다. 그때와는 웃음 코드가 달라졌다. 과거 웃음을 유발했던 요소들이 이제는 젠더 감수성이 부족하다고 느끼게 하거나 폭력에 대한 관대함, 약자에 대한 혐오 등으로 비칠 수 있어 종종 불편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과거와는 웃음의 문법이 달라져야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으니 당연한 일이고, 언제나 그렇듯 어려운 가운데 새로운 재미를 찾게 될 것이며, 그걸 찾는 게 창작자의 책무다. 다만 아직은 대안을 찾은 것이 확인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OTT에서는 어땠을까. 2021년에, 넷플릭스에서 국내 제작진이 만든 시트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를 공개했다. 간만의 시트콤이고,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데다 제작진이 모두 과거의 레전드라 할만한 작품 출신들이라 기대를 모았다. 뚜껑을 열어본 결과는 그 기대에는 못 미치는 듯하다.

<내일 지구가...>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누구를 타겟으로 한 걸까 하는 점이다. 다양한 국적의 학생들이 모인 기숙사라는 배경은 충분히 흥미로웠지만 거기 모인 학생들은 한국에 너무 익숙하고 천연스러워서 이들이 굳이 외국인이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일반 캠퍼스물로 보기에는 이들이 현재 한국의 20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처음부터 그런 기획 의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시트콤이란 캐릭터 플레이인데 인물이 매력적이지 않으니 다음 회차를 계속 보게 할 동력이 약했다. 아마도 국내 시청자와 해외 시청자를 모두 아우르려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나온 게 아닐까 싶다. OTT에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작품들 대부분 시즌2가 논의되는 추세인 데 비해 아직 <내일 지구가...>의 이후 시즌 이야기는 들리지 않고 있다.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공식 포스터
<내일 지구가 망해버렸으면 좋겠어> 공식 포스터

시트콤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재밌게 봤던 다른 콘텐츠들이 떠오른다. 소박하게 시작해서 칸의 레드카펫까지 밟았던 웹드라마 <좋좋소>는 블랙코미디적 요소가 강했는데 그렇다면 시트콤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까? 티빙 오리지널로 런칭했던 <내과 박원장>은 또 어떨까. 웹드라마와 시트콤이 어떻게 다른지, 달라야 하는지 얼핏 고민이 생긴다. (초기에는 웹에서만 볼 수 있는, 상대적으로 짧은 분량에 저예산의 드라마를 웹드라마라고 칭했었지만, 지금은 공중파에서 방영하지 않는 OTT 드라마들을 웹드라마라고 말하기도 한다. 웹드라마라는 용어가 맥락에 따라 다르게 쓰이고 있는 셈이다)  또 방송사에서는 상시적이지는 않지만, 종종 숏폼드라마를 공모하곤 한다. 웹드라마와 같이 짧고 재밌는 포맷의 드라마도 개발하겠다는 의지이다. 명칭은 숏폼드라마일때도 있고 예능드라마라고 명명된 적도 있다. 얼핏 웹드라마와도 유사하고 시트콤과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쯤 되면 처음 던진 질문이 의미 있는 질문이었나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생긴다. 시트콤의 다양한 장점들이 이미 여기저기 콘텐츠에 녹아든 게 아닐까. 각각의 콘텐츠가 그 장점들을 골라서 취하고 있는 게 아닐지. 짧은 분량의 부담 없음, 적은 제작비의 경제성은 웹드에서 취했고, 캐릭터 플레이의 재미는 드라마에서 담당하고 있고, 코미디의 즐거움은 유튜브 콘텐츠에서 충족시켜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역으로 지금 당장 시트콤의 아쉬움을 말하는 이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영화와 드라마의 경계가 없어진 지 오래고, 드라마의 회차와 분량도 자유자재로 운용되는 게 요즘의 현상이다. 장르의 이름이 중요하지 않고 콘텐츠의 매력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고 감히 말해본다. 시트콤 역시도 그러한 변형과 응용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으로도 발전할 수 있고 다시 본래로도 돌아갈 수 있는.

 

 

 

글 · 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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