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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발행인 자리도 넘겨야 하나?
이제 발행인 자리도 넘겨야 하나?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3.02.28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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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를 사용해 본 경험들이 SNS와 기사에 넘쳐난다.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듯한 보수매체의 한 기자는 챗 GPT에게 대통령이 누구냐고 물어본 뒤 문재인이라는 대답을 받고 너무 화가 나서 “이 바보야, 윤석열이야”라고 정정해줬다느니, 또 민주당 지지자인 한 페친은 누가 대통령이 당선됐냐고 물어보니 이재명이라는 답에 수정해줄까 하다가, 속으로 기분 좋아서 “너 똑똑하구나”라며 그냥 뒀다는 등 챗 GPT 사용담을 늘어놓았다. 

혹시라도 윤석열 대통령 체제가 해를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정권과 지루한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챗 GPT가 정권교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챗 GPT를 만든 기업이 아무리 외국계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존재 사실을 알고도 부정할 리는 없을 텐데, 뭐가 문제일까? 대통령의 면모를 디지털세계에 남기지 않은 탓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지난 9개월 동안, 윤 대통령은 국제사회에 굵직한 인상을 남기지 않았던가. 

몇 가지 예를 들면, 미국에서 조 바이든을 만나고 나와서 한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고 ‘OOO’ 쪽팔려서 어떡하나”라는 말, 아랍에미리트(UAE)에서 파병 군인들을 만나 “UAE의 적은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라는 말로 국제뉴스 톱을 장식하지 않았던가. 이런 그를 대통령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챗 GPT는 불경죄를 저지른 게 틀림없다. 고발과 고소가 주업인 대통령실과 기소와 수사를 특기로 삼는 검찰과 경찰은 챗 GPT 제작업체를 유언비어 날조 혐의로 압수수색해야 할 법하다.    

사용자들이 챗 GPT에 대해 입을 모으는 흥미로운 점이 또 있다. 챗 GPT는 더러 신뢰할 수 없지만, 잘못을 따지고 들면 바로 사과하고 수정하는 솔직함과 겸손함을 갖췄다는 것이다. 검경이 법원의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에 들어가면, 챗 GPT는 바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할지도 모른다. 

챗 GPT의 글쓰기는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와 정보를 교묘하게 짜깁기하는 복사수준이지만, 능청스럽게 거짓을 말해 자칫 속아 넘어가기 쉽다. <뉴욕타임스>의 최근 1면 기사에서는 기자가 챗 GPT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한 사용자는 “당신을 사랑해요. 결혼했나요?”라는 감미로운 메시지에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또 미국의 몇몇 대학에서는 챗 GPT가 쓴 에세이가 A+학점을 받기도 해, 앞으로 어떻게 채점해야 할지 몰라 교수들이 전전긍긍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럼에도 챗 GPT는 국내의 눈치 빠른 이들에게 미지의 희망을 던진다. 얼마 전, 한 출판사는 재빠르게 챗 GPT 가이드북을 내놓아 독자끌기에 나섰고, 서울의 한 사이버대학교에서 챗 GPT 사용을 의무화해 과제를 제출할 때 챗 GPT가 작성한 내용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했다. 이 대학의 주임교수는 강의계획서에 “인공지능 챗봇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인간의 시간을 상당히 절약해주고 있다”며 “유용한 툴을 활용해 본인의 사고 한계를 넘는 것도 수업의 일부라고 생각해 챗 GPT 사용을 승인한다”라고 공지했다. 챗 GPT가 쓴 에세이를 가려내기 어려워하는 미국 대학교수와는 다른 면모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인 안철수는 “챗 GPT 기술을 대국민 소통서비스에 도입하겠다”라며, 이번에도 ‘철수극’을 벌이지 않을 각오를 다진다. 

“챗 GPT는 아직 초보단계이지만, 정보를 찾아주는 검색엔진 수준을 확실히 뛰어넘었다. 찾은 정보로 최적의 결과물을 가공해 보여주고, 시와 소설을 창작하며 작곡, 다지인, 코딩까지 하는 능력을 갖췄다. 인류가 기다리던 인공지능 비서가 드디어 첫 모습을 드러낸 듯하다.”  

이렇게 챗 GPT의 능력에 기대를 거는 안 의원은, 과연 챗 GPT에 국민의힘의 차기 당대표와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냐고 물어봤을까?     

바야흐로, 챗 GPT의 시대다. 이제 발행인 칼럼도 챗 GPT에 맡겨야 하나?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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