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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암 말기 팔순 노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눈 밑 지방제거 수술을 받은 이유
대장암 말기 팔순 노모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눈 밑 지방제거 수술을 받은 이유
  • 강영경/자유기고가
  • 승인 2023.04.07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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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에 담은 소녀의 마음

어머니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에 태어나 23세에 나를 낳았고 80세 생일이 3일 지난 후 돌아가셨다. 나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는 평생을 문학소녀의 감성으로 낭만을 추구하며 살아 온 아름다운 여인으로 남아 있다. 평소에 문학작품 읽는 것을 좋아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실감 나게 들려주었다. 1961년에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형사>의 주제가인 시노메 모로(Sinno me moro, 죽도록 사랑해서)’1960년대 유행한 미워도 다시 한번’, 1990년대의 몇 미터 앞에 두고를 애창하고, 자연 속에서 낭만을 추구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늦은 가을날, 어머니는 낙엽을 주어와 나에게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낙엽을 주워서 책갈피에 꽂는 것은 소녀나 하는 일인 줄 알았다. 어머니가 낙엽을 주었을 때 어머니에게도 소녀의 감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속으로 놀랐다. 어려서부터 엄한 어머니에게 매를 맞고 자랐고, 하라는 대로 따라야 했기에 어머니가 언제나 무서웠는데, 그날 처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대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에게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어머니의 머리모양, 옷 모양, 액세서리의 선택에 내 의견을 표현하며 가까이 다가갔다.

같이 시장에 가면 아줌마들이 어머니를 보고 나를 번갈아 보면서, “어머니를 닮았으면 예뻤을 텐데⸳⸳⸳하는 말을 자주 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걱정이 되어서 마음에 상처를 받으면 어쩌나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오히려 즐거웠다. 어머니의 예쁜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우정은 나무에 물을 주는 것처럼 소중하게 가꾸어야 자라나는 것이라며, 내 친구에게 관심을 두었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1224일인데 어머니는 양력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들을 불러 생일상을 차려 주었다. 방에서 키우는 고무나무 위에 하얀 솜으로 흰 눈을 만들고 촛불을 켜서 크리스마스이브 분위기를 연출했다. 식사 후에는 직접 가야금을 연주해 주었다. 이후에 우리는 당대 최고 인기가수인 펄 시스터즈와 김추자의 음악을 틀어놓고 신나게 고고춤을 추었다. 크리스마스의 생일파티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이어졌다. 어느 때는 아버지가 퇴근해 왔는데 춤판이 끝나지 않아 건넌방에서 옷도 못 벗고 기다렸다. 어머니의 배려였다. 나는 친구들과 재미있게 노는 것에만 신경 쓰느라 어머니가 왜 이런 시간을 만들어 주고 배려해 주었는지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나는 한 번도 내 자식들 친구를 불러서 음식을 만들어 먹이고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신나게 놀도록 해주지 못했다.

가족과 노래방에 가면 끝날 무렵에 어머니가 항상 마이크를 잡고 마무리 말씀을 하였다. 문어체 단어를 신중하게 뜸 들여가며 고르면서, 즐거움과 고마움을 담아 모두를 축복해 주는 말이었다. 그럴 때마다 우리 형제들은 또 그러신다!’는 의미로 눈을 서로 맞추며 웃었다.

우리로부터 해방된 후, 어머니는 동네 분들과 자연사랑회를 만들어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였다. 모임을 가진 후에는 회원들과 늘 식사하고 헤어졌다. 회원끼리의 친목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즐겁게 지내는 데 많은 신경을 썼다. 단오와 추석과 연말 즈음에는 야유회나 모임이 있었는데 작은 것이라도 일상생활에서 유용한 선물을 일일이 정성껏 포장해서 나누었다.

20096월에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수술하면 6개월이고 그냥 두면 3개월 남았다고 했다. 어머니는 후자를 선택했다. 불교를 믿었고 수술 과정과 항암치료 후에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운명을 순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정하였다. 판정을 받고 한 달이 지난 그해 7월에 지인들과 예정한 일본 여행에 나도 동행했다. 나는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하고 안타까워 내내 마음이 아팠지만 어머니는 흔연하고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어울렸다. 어느 저녁 시간에 둘이서 숙소 근처 라면집에 가서 호기심으로 일본라면을 맛보았다. 둘이서 공감했던 그 작은 가게의 오붓한 분위기와 진한 라면 맛이 생생하다.

8월에는 환경부에서 주최하는 샛강 살리기전국모임이 12일로 인천에서 열렸다. 어머니는 평소처럼 그 행사에 참석하였고 나와 친구들은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모였다. 어머니는 기운은 없었지만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한 후 어머니는 회원 방에 가야 한다고 일어났다. 회원들과 레크리에이션 할 준비를 해 왔고, 회원들이 즐거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아픈 중에도 군 복무 중인 막내 손자가 휴가 나와서 외식할 때 동석하였다. 당신은 먹지 못하지만 가족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면서 맛있게 먹으라고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마지막 모습을 늙고 병든 환자의 모습으로 남기고 싶지 않다고 눈 밑 지방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미 병이 깊어 가벼운 마취라도 심장에 무리가 가서 힘이 들 텐데, 강행하였다. 수술한 눈이 어느 정도 가라앉자 본격적인 이별 준비를 하였다. 하얀 이부자리와 잠옷과 가운, 향수와 모자도 맘에 드는 것으로 고르고, 방 안을 단출하게 정리하였다. 말기에 고통스러울까 봐 많이 걱정했는데 집으로 호스피스 간호사가 와서 안심시켜 주고, 약 복용을 지도해 준 덕분에 수술하지 않고 6개월을 곱고 편안하게 지냈다.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 기억이 있다. 말랐지만 주름 하나 없이 곱고 편안한 모습이었다. 고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이 오롯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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