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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감각하다
봄을 감각하다
  • 서호/한의사
  • 승인 2023.04.1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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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매력적인 냄새가 있다. 견공에 비할 수 없지만, 주변 사람들보다는 후각이 발달한 나는 봄을 냄새로도 좋아한다. 여유로운 휴일 공원을 산책할 때 온몸의 감각을 열고 봄 내음을 만끽한다. 가슴을 열고 숨을 잔뜩 들이켠다. , 좋다. 숨을 내쉴 때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어린다. 그 미소가 재미있어 다시 혼자 살짝 웃는다.

초봄은 아직 길목에 있는지라 공원의 풀과 나무에 봄이 제대로 채색되지 않았다. 소나무가 여전히 겨울과 같이 푸르고 활엽수는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이다. 지난가을과 겨울을 지나는 동안 떨어지지 않은 마른 잎새들이 여전히 매달려 있지만 무언가 겨울과 다르다. 그러고 보니 지난 겨울보다 새소리가 커졌다. 공원을 진입하면서부터 짹짹거리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린다. 공원으로 건너오는 다리 아래를 얕게 흐르는 성내천 옆 드러난 흙 위, 까만 옷에 흰색 무늬가 살짝 있는 새 십수 마리가 무리를 지어 있다. 몇몇은 총총거린다. 공원을 지나가는 내 걸음걸이와 닮았을까. 그들을 부르는 이름이 무엇일까. 조류를 설명해놓은 표지판을 찾아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가, 굳이 그러지 않아도 그들을 느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스스로 반박한다

 

기억 속 봄의 내음이 제각각 다르지만 모두 좋았다. 이제껏 계속 좋아한 그 내음, 에너지를 언어로 표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촘촘히 느껴본다. 그러고 보니 좋다는 말 말고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 단어를 떠올려본다. 시원하다. 상쾌하다. 기분이 좋아진다. 들이켜면 미소가 지어진다. 신선하고 살짝 달콤하다. 코로 들어오는 바람이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하다. 오후 3시의 햇살은 쌀쌀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따뜻하게 내리쬐며 봄이 온다고 말하는 듯하다. 상냥하다. 생동감이 있다. 유쾌함이 있고 발랄함도 있다.

동북아시아 철학의 한 축을 차지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 이론에서 봄은 오행 중 목에 속한다. 벼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고 밭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농경사회를 이룬 옛사람들은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살아내고 관찰하면서 자연의 변화를 오행의 부호로 표현했다. 오행을 구성하는 한자 (), (), (), (), ()의 원래의 뜻은 나무, , , , 물 이렇게 물질이지만 서양의 물, 불, 공기, 흙의 사원소설과는 의미에 차이가 있다. 사원소가 단지 만물의 기본구성물질을 의미한 것에 비해 오행은 만물을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을 뿐만 아니라 변화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상징이다.

호기심으로 옛사람의 마음이 되어 본다. 그들은 봄을 오행 중 발생(發生)의 에너지를 표현하는 목에 배속했다. 나무 목의 한자는 상형문자인데 나무목의 기원이 되는 현재의 나무목 이전의 글자는 두 가지가 있다. 각각 금방 나온 나무의 싹, 제법 크게 자라난 식물류를 뜻했다.

한글 나무라는 말은 동사 '나다'의 명사형인 '남'에서 비롯하였다. 나무의 어원이 '나다' 즉 오행 중 목이 상장히는 발생의 뜻을 포함하는 단어라니 처음 이것을 바라보며 이름을 붙였을 이 땅에 살았던 이들의 통찰이 놀랍다.

봄이라고 해도 아직 쌀쌀한 날씨에 차고 단단히 굳어있는 밭을 처음 뚫고 나오려면 큰 에너지가 필요하다그것을 뚫고 나오는 월동추, 시금치, 부추의 생명력이 목의 에너지이다. 그 밭을 뚫고 나오는 채소는 그만큼 생명의 에너지, 목의 기운이 강하다. 그래서 건강에 좋다. 봄볕에 며느리 내보내고, 가을볕에 딸 내보내는 시어머니는 아들의 양기(陽氣)를 세워 며느리를 좋게 하기보다 사위의 양기를 세워 딸을 좋게 한다는 의미로 봄 부추는 아들 대신 사위에게 준다라고 했다봄 부추의 생동하는 에너지가 풍자를 담은 속담에 해학적으로 스며있다. 

 

싱긋이 웃으며 햇살을 느껴본다땅의 가능성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따뜻한 태양의 기운을 받아서 하나씩 펼쳐질 것이다. 지축이 기울어져 있어서 발생하는 계절의 차이를 냄새로 다르게 느끼는 인간의 몸이 새삼스레 신기하다. 코끝을 간질이는 발랄하고 상쾌한 에너지를 느끼고 그것을 목의 기운, 발생만물에 나고 자라는 에너지로 표현한 옛사람의 마음과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반복됐고 그리고 앞으로 반복될 다른 봄들의 흐름 속에 잠시 기대어 본다. 이 봄 내음, 에너지를 들이키며 내 마음을 본다. 무엇을 품고 있는가. 봄의 길목인가. 다시 크게 심호흡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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