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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구원과 해방의 출애굽을 연 '동사' 하나님
자유와 구원과 해방의 출애굽을 연 '동사' 하나님
  • 안치용/ESG연구소장
  • 승인 2023.04.16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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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출애굽기 나루》, 김창주 지음, 동연

구약성서는 기독교인이 부르는 명칭이고 유대인에게는 타나크로 불린다. 두 용어 다 마땅하지 않으면, 특히 구약이란 표현이 유대인에게 심히 못마땅할 테니 히브리성서가 그나마 중립적이지 않을까. 이때는 기독교인이 대경실색하지 싶다. 구약 혹은 히브리성서에서 출애굽기는 두 번째 책이다.

유대인과 유대인의 성서라는 관점에서 보면, 또는 그 관점을 떠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는 출애굽기가 구약의 서장처럼 느껴진다. 물론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연결하는 인물로 야곱과 요셉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제삼자의 시선으로 냉정하게 보면 애굽(이집트)의 학대받은 민족과 야곱 같은 창세기 성조(聖祖)들 사이에 긴밀하고 필연적인 연관이 실감나지 않는다. 족보학 관점에서뿐 아니라 내용 자체로도 출애굽기가 창세기보다 유대인에게 더 실질적 중요성이 있다. 중요도를 따지는 게 외람된 행동이긴 하나, 기독교인에게도 출애굽기의 중요도가 높아 보인다.

유대인의 기원과 정체성, 유대인의 신이 출애굽기에 명시되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신은, 기독교인이 신약과 함께 구약을 동등하게 성서로 수용함에 따라 기독교의 신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이 탈출기인 출애굽기가 유대인과 기독교인에게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탈출이라는 극적인 소재, 혹은 주제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탈출을 꿈꾸는 사람이나 집단, 민족에게 희망을 준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지 통치하의 조선 교회에게 출애굽기 설교를 금지한 게 그런 맥락이다. <십계> 같은 작품이 출애굽기를 다룬 것은 영화가 대중예술임을 감안할 때 당연하겠다.

출애굽기는 모세와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을 이야기 형식으로 서술한다. 큰 덩어리로는 이집트에서 탈출과 구원,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계약 그리고 성막 건설이다. 차례로 탈출 이야기’( אנדה ), 생활의 율법’( הלכה ) 그리고 예배’( סדר )에 해당한다. 기독교인을 포함해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출애굽기의 탈출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고 또 가장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출애굽기 나루》 저자 한신대 신학과 김창주 교수(구약학)는 출애굽기 세 주제 중 어느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세 변의 삼각형에서 무엇이 더 중요하며 무엇이 덜 중요하달 수 없다는 김 교수의 주장에 일견 동의하지만, 구약학자가 아닌 사람이 율법과 예배에 흥미를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출애굽기 나루》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대목은 22번째 글 하나님은 동사다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는 출애굽기 314절은 전달된 것이긴 하지만 하나님의 자기 정의를 기술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는 수수께끼 같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밝힌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나는 스스로 있는 자”(개역개정) 외에 나는 곧 나”(새번역, 공동번역), “나는 있는 나”(가톨릭 성경) 등 번역본에 따라 번역이 다르다는 사실은 그만큼 해석이 어렵다는 뜻이다.

히브리어 에흐웨나는-이다라는 의미여서 정확하게는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나는나는-이다이다가 된다고 김 교수는 풀이한다. 영어 ‘be’ 동사에 해당하는 하야의 일인칭 미완료 표현이 에흐웨이다. 미완료는 과거를 제외한 현재와 미래를 모두 포함한다. ‘라는 대명사를 드러내지 않고 동사의 활용으로 일인칭을 녹여 넣었다는 데서 해석의 복잡성이 증가한다.

용언활용에 주목해 다시 번역하면 “(나는)‘(나는)-이다이다가 된다. ‘는 가장 널리 알려진 주체이자 실존주의에서는 최초의 대상이 된다. 흔히 서양철학 전통에 기대 유일하고 온당한 주체라고 일컬어지는 신은 라는 표현의 범주를 벗어난다. 그러므로 주체를 명시하지 않고 화자임만을 밝히는 에흐웨라는 용언활용이 유효한 전달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곧 나”, “나는 있는 나라는 번역은 김 교수 지적대로 매우 미진하다. 물론 두 개 언어의 체계 차이에서 비롯한 불가피성이긴 하다. ‘-이다에서 ‘-’엔 무엇이든 들어갈 수 있기에 존재 자체이면서 창조와 창발에 닿는다. 만일 에흐웨하나로 끝났다면 전지전능한 만유의 창조주이자 유일한 주체, 나아가 인격신인 야웨라는 개념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주지하듯 신은 에흐웨두 번 진술함으로써 두 겹 존재로 스스로를 설명한다. ‘에흐웨의 보어는 두 번째엔 명확해진다. 첫 번째 에흐웨가 전능 비슷한 개념을 담은 블랙박스 같은 것으로, 블랙박스이긴 하지만 보어로 정돈되면서 두 번째 에흐웨는 신의 개념을 확고히 할 뿐 아니라 고양한다. 스스로 있으며 무엇이든 될 수 있으나 혹은 있으며 그 ‘-있음의 내재화로 세계를 넘어선다. 세계와 함께 있지만 세계를 초월하는 전통의 신관이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에서 구현된다. 범재신론의 분위기가 이 표현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야구용어를 빌어 '3루타와 같은 효과'라고 한 리꾀르의 설명 또한 에흐웨를 통한 의미 확장의 구조를 재치 있게 해명한다. 미완료로 현재와 미래를 열어놓은 것 또한 흥미롭다.

에흐웨 아셰르 에흐웨의 서구 번역은 대체로 “I AM WHO I AM.”이나 “ICH WERDE SEIN, DER ICH SEIN WERDE.”(루터)로 대부분이 사람을 뜻하는 관계대명사를 사용하지만 이채롭게 흠정역(KJV)“I AM THAT I AM.”으로 사람과 사물을 모두 포괄한 관계대명사를 썼다. ‘THAT’으로 인격체인 하나님을 거부하고, 사람은 물론 사물까지 포괄하며 시간과 공간에 제한받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을 광범위하게 반영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에흐웨에 일인칭 화자 말고는 보어가 백지로 열려 있으니 타당한 설명인 셈이다.

김 교수는 2017년에 《창세기 마루》를 발간한 데 이어 이번에 《출애굽기 나루》를 발간해 구약의 핵심인 토라 5권 중에서 또 핵심이라고 할 두 권을 대중적으로 해제했다.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침은 물론 일반 교양서로도 적절해 보인다. 다음은 저자의 말.

 

나루는 이제 역사의 유적지로 표시되거나 사전에 갇힌 낱말이 되어 간다. ‘출애굽기 나루는 희미한 나루의 기억과 설레는 내일을 되살리려는 이름이다. 나루의 부풀던 열망과 새날의 부푼 기대를 담은 것이다. 출애굽이 자유와 구원과 해방을 이스라엘에게 열어 주었듯 이 책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지금과 영원을 아우르는 작은 여백이 되기를 빈다.

 

 

글·안치용 
인문학자 겸 영화평론가로 문학·정치·영화·춤·신학 등에 관한 글을 쓴다. ESG연구소장이자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로 지속가능성과 사회책임을 주제로 활동하며 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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