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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연호의 문화톡톡] 21세기 한국대안영상예술 궤적 1: 포스트 휴머니즘과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신체
[김장연호의 문화톡톡] 21세기 한국대안영상예술 궤적 1: 포스트 휴머니즘과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신체
  • 김장연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3.05.16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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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시각의 무의식을 출현시킨 매체라면 디지털 이미지는 무의식을 시각화한다. 합성리얼리즘(synthetic realism)은 실제하는 복수 이미지를 합성하는 것으로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시각화하는 데 주요하게 활용되고 있는 디지털 이미지의 대표적 특성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2000년대 몇 한국 작가들은 디지털 효과를 활용하여 자신의 신체를 복제, 변용, 재조합한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신체라는 새로운 신체를 디지털 이미지로 가시화한다. 당시 작가들이 구현해낸 신체는 휴머니즘을 벗어난 한국의 새로운 신체 또는 비판적으로 접근한 신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즉, 이들이 표현한 신체는 권위주의적 근대성과는 차별화된 신체로 한국 사회의 병폐로 군국주의, 가부장제, 자본주의, 유교 민족주의를 적확하게 짚으며 포스트 휴머니즘의 가능성을 성찰해간다. 대안영상예술이 기존의 형식, 내용, 공간을 해체하거나 안무, 매체를 통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디지털 영상예술 작품이라면 이 작품들을 1세대 작품들이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유비호, '1984'(2000, 3분 38초)위의 이미지는 '1984'가 활용된 네마프2020 트레일러 일부 발췌한 것임
유비호, '1984'(2000, 3분 38초)위의 이미지는 '1984'가 활용된 네마프2020 트레일러 일부 발췌한 것임

유비호는 한국의 통제사회가 체현된 신체를 디지털 합성리얼리즘 기법을 활용하여 가시화한다. 푸코가 논의했듯 주체의 정치화된 신체는 일상적으로 은폐되어 있다. 그렇기에 사법체계가 재현된 신체인 성인 남성 신체를 드러내게 하고 벗겨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아마도 유비호가 실체가 없는 한국을 디지털 합성리얼리즘 기법을 활용하여 괴물화된 신체로 은유적으로 표상화할 수 있었던 건, 신자유주의체제에서 끊임없이 추동하는 자본화된 신체에서 그가 한참 벗어난 예술가의 신체였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대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몸과 사회변동'(2020.10.30-11.20., 미디어극장 아이공, 기획 김장연호) 전시 장면.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2000년대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몸과 사회변동'(2020.10.30-11.20., 미디어극장 아이공, 기획 김장연호) <1984>, <매스게임> 전시 장면,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그는 한국의 군대식 위계문화와 더불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 신자유주의체제에 적응한 한국의 신체를 <1984>(2000)와 <매스게임>(2000)등으로 제안한다. 특히 <1984>는 그의 첫 개인전 《강철태양》(보다 갤러리 서울, 2000)에서 소개된 작품으로 '강철태양'은 학생 운동권 용어였던 '강철대오'에서 차용한 제목이다. 이 작품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했던 권위문화가 내면화된 민주화 운동 세대에 대한 비판과 성찰도 함께 살펴볼 수 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1984>은 상당히 한국을 입체적으로 다양한 층위로 건드리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23년전 작품임에도 여전히 동시대를 읽는 뛰어난 통찰력을 보이는 유비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984>에 나오는 획일적인 몸짓을 하는 검은 인간은 유비호가 직접 촬영한 본인의 신체로 양쪽으로 대오를 한 검은 인간들로 변형되어 도시의 사운드에 맞춰 달리기를 시작한다. 초기 이 작품의 제목은 <검은 질주>였지만 추후 <1984>로 변경되는데, <1984>에서 제시하고 있는 사회가 전체주의 사회를 그리고 있는 조지 오웰의 <1984>에서의 '가상 국가'와 맥을 같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비호는 전체주의 통치성과 한국 신자유주의체제하의 근대사회가 가진 위계성, 폭력성, 권위문화 등의 특성이 유비적으로 맞닿아 있다고 본 것이다. 

 

'우리'(뮌, 2001, 4분 49초)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우리'(뮌, 2001, 4분 49초),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2000년대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몸과 사회변동'(2020.10.30-11.20., 미디어극장 아이공, 기획 김장연호) '우리', '오실로스코프' 전시 장면,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2000년대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몸과 사회변동'(2020.10.30-11.20., 미디어극장 아이공, 기획 김장연호) '우리', '오실로스코프' 전시 장면,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이 시기 뮌(최문선, 김민선)도 <우리>(2002, 7분)라는 작품을 통해 한국의 동일화된 신체성를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신체 이미지는 뮌의 일원인 김민선의 이미지로 전통 사물놀이 음악의 리듬 소리에 맞춰 처음에는 천천히 등장하고 없어지기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다가 점차 숨쉴 틈도 없이 빨라지는 템포에 맞춰 깜빡이다 사라진다. 추후 뮌은 <미완의 릴레이-뮌 인터뷰 영상>(아르떼, 2016)에서  '군중'의 이미지를 재현한 것임을 밝힌다. 뮌은 '군중이 굉장히 덩어리감이 있고 피상적이고 추상적인 관념인 거 같아서 그 군중들을 움직이는 기저에 어떤 시스템이 있는 것인가'를 질문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실로스코프'(뮌, 2002, 2분 45초)
'오실로스코프'(뮌, 2002, 2분 45초), 제공 미디어극장 아이공. 

<우리>에서 묘사하고 있는 획일적인 집단주의에 대한 비판은 이 시기 유입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 통치성과 연관된다. 한국의 신자유주의는 김영삼 정부 후반기에 도입되어 비정규직을 양산한 ‘노동 시장의 유연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작은 정부’, 자본의 세계화를 기조로 재편된 ‘자유시장 경제의 중시’, 국가가 외국무역에 제한을 가하거나 보호·장려하지 않는 ‘규제 완화’, ‘자유무역협정(FTA)의 중시’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 이 작품은 전통 사물놀이에 흥얼거리는 몸짓과 추임새처럼 한국인에게 체현된 신자유주의 수행성들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한국인의 신체에 내면화됨을 꼬집고 있는 듯 하다. 비슷한 시기 뮌이 제작한 <오실로스코프>는 미끄럼틀을 내려오는 아이들의 자유로운 신체 움직임을 보여주며 <우리>와는 상반된 신체 움직임을 표상화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비디오가 공존했던 2000년대 전후는 한국에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영화를 보거나 들을 수 있는 '영화의 사물화'를 넘어, 자신의 원하는 이미지를 기록할 수 있는 '개인 영화의 사물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일찍이 서구에서는 1960년대 창작자 자신을 표현한 개인 영화 또는 사적 영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이 되어서야 개인 영화의 사물화의 특징으로 관철될 수 있는 사적 영화가 등장한다. 이 시기 중요한 특징으로 살펴볼 수 있는 것이 합성리얼리즘으로서의 신체이다. 디지털 환경과 맞물려 창작자 자신의 메시지를 디지털 효과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개진한 작품들이 다양한 창작자들에 의해 이 작품들 말고도 여럿 제작되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비디오 장치가 호환되며 과도기적인 장치의 질감과 함께, 한국인의 정서, 생각, 느낌이 다양한 기법으로 표현되었다. 

2000년 밀레니엄 시대 한국 대안영상예술은 디지털 패러다임과 맞물려 다양한 영상예술이 창작되던 시기였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의 슬로건은 ‘새로운 예술의 해’로 문학, 연극, 무용, 음악, 미술, 영상 등 6개 부문의 연간 사업계획서가 공식 발표되었다. 그 중에는 인터넷과 공중파를 활용한 멀티미디어 문학의 밤, 실험무대 공연, 비디오댄스 제작 공모전, 컴퓨터 센서를 활용한 인터액티브 음악공연, 디지털 영화제 등 지금 현재 사업계획이라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진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중앙일보, 1999.12.22) 매년 디지털 영상예술 작품을 소개하는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은 2000년에 처음 개최되며 이렇게 대안영상예술의 시작을 알렸다. 

 

 

글·김장연호
문화학 박사. 한예종 객원교수.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대외협력이사,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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