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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지루-피로 그리고 홀로 별곡
[최양국의 문화톡톡] 지루-피로 그리고 홀로 별곡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05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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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기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현악기의 줄들이 같은 화음을 내면서도 혼자이듯이/ 서로의 가슴을 주되 그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절대자의 손길만이 너희 가슴을 품을 수 있다./ 함께 서 있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후략)~”

- <더불어 함께 하라, 그러나 거리를 두라>(1923년), 칼릴 지브란 -

 

우리 삶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악장이 화음을 만들어 내는 ‘ㄹ(리을)’ 교향곡이다. 각 악장은 진화의 흐름에 따라 변하며 지루~피로~홀로 교향곡으로 함께 한다. 세상이라는 단원을 대상으로 우리는 지휘자로 오른다. 이 세 악장은 담긴 시간의 배낭 속에서 혼자이거나, 중복되거나 교차하며 연주된다. 버려진 시간의 여행길에서 배낭을 연다. 독주자가 되어 카덴차(cadenza)를 남기며 더불어 협주곡으로 어우러진다.

 

우리 삶 / 제1악장 / ‘지루’로 / 시작하고

우리 삶의 제1악장 <지루 교향곡>. 인간의 삶은 신의 무료함과 아담과 이브의 따분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지금 대부분 정착 생활을 한다. 인간 삶의 시작이었던 유목 생활과 다르게 이동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이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새롭게 만나는 공간에서 모든 육체와 감각을 보듬으며 적응해 나갈 필요가 없음을 의미한다. 이상(1910년~1937년) 최후의 시기는 정착 생활의 끝자락을 상징하는 벽촌 공간과 맞물려 있다. 도시 정착민인 모더니스트로서의 그는 잇따른 사업 실패 후 외딴 농촌 마을을 찾는다. 그곳의 여름날, 그 하루하루는 지루해서 죽을 만큼 길고 따분하다. 권태롭다. 지루하다.

 

“어서…… 차라리 어두워 버리기나 했으면 좋겠는데…… 벽촌의 여름날은 지루해서 죽겠을 만큼 길다. 동에 팔봉산, 곡선은 왜 저리도 굴곡이 없이 단조로운고? 서를 보아도 벌판, 북을 보아도 벌판, 아, 이 벌판은 어쩌라고 이렇게 한이 없이 늘어 놓였을꼬? 어쩌자고 저렇게 똑같이 초록색 하나로 돼먹었노? 농가가 가운데 길 하나를 두고 좌우로 한 십여 호씩 있다. 휘청거린 소나무 기둥, 흙을 주물러 바른 벽, 강낭대로 둘러싼 울타리, 울타리를 덮은 호박넝쿨, 모두가 그게 그것같이 똑같다. 어제 보던 댑싸리 나무, 오늘도 보는 김 서방, 내일도 보아야 할 흰둥이, 검둥이.”

- <권태>(1937년), 이상 -

 

정착 생활의 속성인 변하지 않는 관습이나 풍경은, 그가 농촌에서 맞닥뜨린 일이나 상황에 대해 시들하며 무기력해져 가는 자아의 게으름이나 싫증으로 연결된다. 그와 함께 한 더운 여름철의 변화 없는 농촌(평북 성천)의 풍경, 동식물, 그리고 사람들의 단조로운 일상적 삶의 모습은 권태로 이어진다. 이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

 

* 권태와 지루-방정식, Pixabay
* 권태와 지루-방정식, Pixabay

“~(전략)~.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방 좁은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다만 어디까지 가야 끝이 날지 모르는 내일, 그것이 또 창밖에 등대하고 있는 것을 느끼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을 뿐이다.”

도시에서 떨어진 시골 마을의 전형적 풍경이 가져오는 일상적이며 사소한 느낌은, 삶의 목표와 적극적 가치를 파편화시키는 권태로 확장되며, 빛과 시간의 의미를 퇴색시킨다. 이는 자의식의 과잉에 대한 내면적 성찰로써 극권태(권태의 극)로 이어진다. 상황의 변화를 위한 어떤 시도에도 불구하고, 삶은 여전히 참다운 가치의 확인 없이 습관적으로 반복되며 다가오고 사라지는 무의미한 일상에 불과하다.

정착 생활의 대명사인 도시는 화려한 변주를 자랑하듯 햇살 아래 번들거리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이를 좇는다. 화려한 변주를 하는 악기에,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제와 형태의 빛과 그림자가 무한 반복적으로 인식되고 지각되면 권태, 즉 지루가 스멀스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유한 자원인 시간을 타고, 마치 무한 자원인 듯 무심하게 그 지루함의 종착점을 향해 나아간다. 우리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환영(illusion) 같은 바쁨의 간이역을 향해 그 수평적 간격을 좁혀가며 시간이란 나무를 태워 나간다.

그 지루함은 대상 측면의 상황적 지루함(감정 기준의 게으름/싫증), 존재적 지루함(자아 기준의 게으름/싫증), 그리고 대응 측면의 창조적 지루함(현상에 대한 정반합적 반응)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상의 권태는 상황적 지루함을 변주 삼은 존재적 지루함에 머무른다. 우리 삶의 진입기로 규정되는 정착 생활이 주는 ‘지루’는,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아닌 심리적 공간 속 양적 확대와 질적 복잡성을 기반으로 하는 시간의 함수로써, 자의식의 과잉과 그 궤를 같이한다.

 

2악장 / ‘피로’ 연주 / 긍정성의 / 과잉 게임

우리 삶의 제2악장 <피로 교향곡>. 정착 생활 이후 인구가 모여들며 증가한다. 인구 증가와 비례하여 지루함도 커진다. 지루함을 덜기 위해 높은 탑을 쌓는다. 지루함을 극복하며 피할 기회를 찾는 것은 정착 생활을 지속해 유지·확장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며, 우리 삶의 발전적 전환을 위한 충분조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상에게서 실종된 창조적 지루함은 지루함이 전해주는 자유도 높은 긍정적 메시지를 추구하며 우리 곁에 다가온다. <청산별곡>(고려가요, 작자 미상)으로 찾아온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ᄃᆞ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살겠노라 살겠노라. 청산에 살겠노라/ 머루랑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얄리얄리 얄 랑셩 얄라리 얄라//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 고 니러 우니로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야.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야./ 너보다 시름 많 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우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후략)~.”

- <청산별곡>(고려 가요), 작자 미상 -

 

작자 미상의 구전으로 전하는 고려 후기 평민층이 부르던 노래인 <청산별곡>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전해 주는 걸까? 지루함을 덜기 위해 쌓은 탑은, 삶의 고뇌와 비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화자의 궁극적 욕구를 상징하는 청산을 향한 디딤돌로 연계된다. 청산이 물질의 풍요보다는 마음의 평안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쌓아 올린 탑을 직접적으로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화자는 세상의 온갖 번뇌를 떨쳐 내고자 속세를 떠나서 청산에 들어왔는데, 밤에 우는 새의 울음소리에 감정이입 되며 더욱 수심이 깊어진다. 우울하다. 물질의 풍요를 추구하는 탑을 쌓아가는 오늘의 우리는 청산의 화자와 대비된다. 피로하다.

 

* 피로 교향곡, Pixabay
* 피로 교향곡, Pixabay

<피로사회>(한병철, 2012년)는, 우리 사회의 피로에 대해 규율사회와 대비되는 성과사회의 부작용으로서 설명한다. 21세기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한다. 이전의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로써, 사회를 규정하는 것은 금지의 부정성이다. 전반적으로 통용되는 언어 구조는 “~해서는 안 된다(must not).” 또는 ”~해야 한다(should).“등이다. 현재의 성과사회는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나 무한정한 ‘~할 수 있다(can)’를 강조하며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를 우선시한다. 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효율적이어서, 생산성 향상이란 측면에서 당위와 능력 사이에는 단절이 아니라 연속적 관계가 성립한다. 성과 사회를 주도하는 성과 주체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묶여 있는 것이다. 성과 주체는 명령하는 타자의 부정성에서 벗어나는 데,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며,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자유의 변증법을 언급한다. 이는 긍정성의 과잉을 초래하며,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을 지향한다. 타자로부터의 자유는 나르시시즘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 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되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삶을 피로하게 하는 근간이 된다.

바벨탑을 향한 도시는 높은 고음을 뱉어내며 바람을 거느리는 듯 거들먹거리고 있고, 우리는 오늘도 이를 찬양하며 내일의 주인을 기대한다. 화려한 변주와 어우러지며 카운터테너(countertenor)의 성부가 도시의 공간을 가득 메우며 저음과 중음이 바람 아래 흩날릴 때, 지루를 떠난 피로가 삶의 후렴구로 반복되어 나타난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우리는 유한 자원인 공간에 대해, 마치 무한 자원인 듯 끝 모르게 그 피로함의 종착역을 늘려 나아간다. 우리는 지루함을 덜기 위해 신기루 같은 명품 스카이라인을 쌓으며 그 수직적 거리를 확대한다. 공간 가득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를 채워 나간다. 5월 19일(현지 시각) 발표(매일경제, 2023년 5월 22일)된 미국지질조사국(USGS) 연구 결과는 미국 뉴욕의 명품 스카이라인을 이루는 대형 고층 빌딩들이 역설적으로 이 도시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 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뉴욕 곳곳에 빼곡히 들어선 육중한 건물들이 지반을 짓눌러 뉴욕의 수몰·홍수 위험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빅애플(뉴욕시의 별칭)은 잠들지 않는 도시일지는 모르겠으나 가라앉고 있는 도시임은 확실하다". 라고 한다. 반면교사-우리의 잠들 수 없는 도시도 피로하다. 소멸하여 가는 지방의 담쟁이넝쿨을 타고 도시의 고층 아파트가 헐떡이는 욕망을 향해 올라간다.

우리 삶의 성장기로 규정되는, 지루함 극복의 결과물인 ‘피로’는, 심리적 공간의 지속가능한 이동이 아닌 물리적 공간 속 양적 확대와 질적 복잡성을 향한 공간의 함수로써 긍정성의 과잉의 세상을 향한 높이 뛰기를 한다.

 

성숙기 / ‘홀로’ 교향곡 / 카덴차의 / ‘나’&‘우리’

우리 삶의 제3악장 <홀로 교향곡>. 탑이 높아질수록 ‘나’와 ‘우리’는 ‘나’와 ‘너’로 이원화 되어 청산에 없는 별곡을 각자 노래한다. 도돌이표 되어 돌아온 지루와 끝 모를 피로가 우리를 지배한다. 시간의 친구인 ‘지루’와 공간의 나그네인 ‘피로’가 서로 교차하며, 밀폐된 자아를 노래한다. 방탄소년단의 <페르소나, persona>(2019년).

 

“Yo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 How you feel? 지금 기분이 어때?/ 사실 난 너무 좋아, 근데 조금 불편해/ 나는 내가 개인지 돼진지 뭔지도 아직 잘 모르겠는데/ 남들이 와서 진주목걸일 거네/ 칵 퉤//~(중략)~//그때마다 날 또 일으켜 세운 것, 최초의 질문/ 내 이름 석 자 그 가장 앞에 와야 할 But”

- <페르소나>(2019년), 방탄소년단(RM) -

 

페르소나의 어원은 연극이나 영화의 등장인물로써 이미지 관리를 위해 쓰는 가면을 의미한다. 가면은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장치이다. 이는 또한 개인이 사회적 요구들에 대한 반응으로 내놓은 공적인 얼굴을 뜻하기도 한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가’, ‘나의 빛나는 목걸이는 돈걸이 인가, 가치걸이 인가, 그리고 ’나는 공유지의 비극 주도자는 아닌가‘. RM의 랩이 끊임없이 들려주는 ’홀로‘ 전주곡.

지금의 우리는 디지털 패러다임의 핵심어인 데이터, 알고리즘과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지배에 익숙해져 간다. 오프라인을 떠난 온라인 시대는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확대를 가져온다. 선과 면을 통해 우리의 관계를 위한 연결을 강화하는 한편, 현실과 가상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모호한 경계에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에서 ‘실종 사피엔스(Missing Out sapiens)’로 변화하며 진화되어 가는 모습을 확대하며 보여준다. 소외되는 게 두려워 온라인으로 열심히 소통하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모두가 나 없이 자기들끼리만 어울리고 있다고 걱정하는 ‘모모(MOMO; Mystery Of Missing Out)’, 디지털 디톡스를 선언하며 관계의 속박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조모(JOMO; Joy Of Missing Out)’, 자신이 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해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고 믿는 ‘로모(LOMO; Love Of Missing Out)’ 사피엔스 등이 그것이다. 디지털 패러다임의 역기능에 매몰되어 가는 주체는, ‘지루’라는 위도와 ‘피로’라는 경도로 에워싸진 하나의 셀(cell) 안 점으로써 갇혀 있는 듯하다. 우리 삶의 성숙기로 나아가는 지금, 지루와 피로에 쌓인 자아 정체성의 과잉이 세상을 향한 실험실을 향해 널뛰기한다.

 

* 홀로 별곡/협주곡-산티아고 순례길
* 홀로 별곡/협주곡-산티아고 순례길

우리 삶의 시간적 수평 흐름과 공간적 수직 쌓기가 조화를 이루는 ‘홀로’를 위해 ‘플랫폼 통제형’이 아닌 ‘자아 주도형’의 악보를 쓴다. FOMO나 MOMO가 아닌, JOMO와 LOMO 사피엔스로 나아가는 ‘페르소나’를 쓰고 연주한다. 우리 이름 석 자 그 가장 앞에 와야 할 것은 But. 현실과 가상의 시공간이 맞물리는 현재를 성찰하며, 더불어 함께 하는 세상을 향해 <홀로 별곡> 협주곡의 카덴차를 연주하는 독주자. ‘나’ 그리고 ‘우리’. 아름답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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