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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숙의 문화톡톡] 춤 보기 좋은 거리(距離)
[이인숙의 문화톡톡] 춤 보기 좋은 거리(距離)
  • 이인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6.1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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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만에 한국 전통 춤 공연을 보게 되는 기회가 있었다. 5월 23일 돈화문 국악당에서 한국전통 춤 공연이 있었는데 김주영의 춤, 단심(丹心)이라는 공연이었다. 산조, 처용무, 소고 춤, 동초 수건 춤, 월하(月下)시나위, 진도북춤으로 엮은 춤 마당 이었다. 공연프로그램을 보는 순간부터 기대감이 생겼고. 지하에 있는 소극장에서 공연 시작을 기다리는 동안 이 전통 춤이 어떻게 공연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었다. 사실 전통 춤은 한국 춤을 추는 사람들이라면 대략 어떠하리라는 짐작을 쉽게 하게 된다. 어떤 류의 춤인지,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고 심지어 순서도 익숙하다. 그래서 전통 춤 공연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기가 막히게 맛있고 흥겹고 멋있게 춤을 춘다거나 전체 구성을 색다르게 한다거나 아니면 전통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한다거나 등, 무엇인가 좀더 특별한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전통 춤을 공연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저 그런 것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여 주어야 할지 많이 민감하고 고민스러워 나름 신경을 많이 쓴다.

종묘를 마주하고 있는 돈화문국악당은 전통한옥과 현대 건축양식이 혼합된 소 공연장으로 야외 공연도 가능한 도심 속 국악전문 공연장이라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돈화문 국악당에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평온해지고 현대의 그 바쁜 속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예기치 못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온 것 같았다.

김주영의 춤 단심(丹心)공연은 객석 수가 그리 많지 않은 소공연장에서 공연되었다. 전통 춤을 공연하기에 아주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물론이고 숨소리, 세심한 움직임도 잘 볼 수 있는 무대였다. 김주영의 공연은 공연장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재미있고 다채롭게 진행된 공연이었다. 산조, 동초 수건춤은 평소 흔히 볼 수 없었던 공연이었고 월하(月下)시나위는 정말 제대로 한국의 맛을 보여준 맛깔나는 춤이었다. 김주영의 춤은 농익어 그 춤의 향기가 저절로 새어 나와 은은하게 극장을 가득 채우고 공연이 진행되는 내내 관객을 취하게 하였다. 잘 알고 있는 전통 춤을 정말 제대로 해석하고 관객을 공연으로 끌어당기는 에너지 넘치는 공연이었다.

 

김주영의 춤 동초 수건춤 중에서
김주영의 춤,  동초 수건춤 중에서

필자 또한 오래 동안 전통무용을 했었고 나름 많은 이해와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살풀이, 승무, 태평무 등 전통 춤을 처음 배울 때는 전통 춤이 가지는 의미나 맛 보다는 춤의 기능이나 훈련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연습하곤 하였다. 초등학교 재학 전부터 무용을 배우기 시작하였지만 전통 춤은 대학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전통을 배운지 10여년 넘어서며 겨우 전통 춤에 대한 맛을 어설프게 알게 되었다. 느리고 긴 장단 속의 소심하고 자유로운 즉흥, 같은 순서로 같은 춤을 추는데도 매일 다른 감정과 다른 재미가 느껴졌고. 엄격한 가운데 농(弄)이 생기기도 하고 구음(口音)에 맞추어 같이 숨을 쉬고 마시는 과정에서 뭔가 오랜 역사가 몸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가져 보기도 했다.

신체적으로는 몸의 중심을 단전으로 모아 힘을 분배하고 조절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게 되었고 손, 발의 움직임에 힘을 덜어내고 그 만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전통 춤을 통해 춤을 이해해 가기도 하지만 내 몸과 마음을 이해하게도 된다는 것이 놀라웠다. 한국전통 춤을 몇 년 한다고 해서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수련의 의미로 오랜 시간 정성을 드려 스스로를 갈고 닦아 비로서 체득하게 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전통 춤 공연을 보러 가면 춤추는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어 나도 같이 춤을 춘 것 같은 황홀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고 답답함과 불만이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전통이 추어지는 공간이 큰 극장무대여서 춤사위를 과장시키고 발 폭을 넓혀 그저 동작만을 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는 춤출 때 무용수의 호흡 즉, 들숨과 날숨은 관객의 감정을 움직이는 중요한 수단이다. 관객은 무용수와 같이 숨을 들이키고 내쉬며 점점 일체가 되어가는데 무용수가 임의로 호흡을 혼자 처리해 버리면 관객들은 같이 들어 마시고 있다가 내뱉을 기회를 못 찾아 숨이 차기도 한다. 그러면 마음이 답답하고 불만스러운 감정이 생기게 될 것이다.

이렇게 들숨과 날숨은 감정을 싣고 마음을 드러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적 표현이 아닌 몸을 도구로 소통하는 춤은 숨을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숨을 움켜 잡기도 하고 머물고 있기도 하면서 풀어내는 춤사위는 동작의 흐름과 공간의 구성, 느낌의 무거움과 가벼움, 공연장의 공기와 분위기를 모두 흡수하여 마음으로 삭혀 숨으로 내어 놓는다. 그 내어놓음에는 춤추는 사람의 감정과 무언의 대화가 같이 묻어 나올 수 밖에 없다. 그 숨은 춤추는 자와 보는 자를 묶어주고 공감(共感)과 공명(共鳴)을 이끌어 내어 공연자와 관객이 춤 한마당을 같이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되기도 한다. 같은 춤을 추어도 추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춤추는 사람이 그 춤을 이해하고 해석한대로 숨을 통해 표현되며 전달 되기 때문이다.

 

김주영의 춤 중에서
김주영의 춤 중에서

사물놀이의 경우도 각각의 악기는 서로 다른 소리를 내고 다른 방법으로 연주하지만 밀고 당기고 휘몰아 감고 천연덕스럽게 늘어지는 장단 속에 각각의 특성을 잘 드러내면서도 훌륭한 조화를 보여 준다. 반복되는 연습을 통해 서로 약속되어진 공연이지만 무대에서 그 신명나고 정신 없이 빠르게 휘몰아치는 연주는 엇박(拍)에도 정박(拍)에도 그 찰나의 숨구멍을 찾아 메우고 비우며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완수 한다. 오랜 연습을 통해 나와 다른 이의 숨쉬기를 잘 이해하고 본능적으로 합을 맞추어 내는 사물놀이는 그래서 경이롭기 까지 하다. 그렇기에 관객은 몰입할 수 밖에 없게 된다. 관객들도 그 숨쉬기에 어느새 동참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 춤은 큰 무대나 화려한 극장에서 보다 호흡을 서로 교환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보는 것이 전통 춤을 전통 춤답게 보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심한 손놀림, 작은 떨림도 감지 할 수 있는 춤 보기 좋은 거리(距離). 그 거리의 중요함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전통 춤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고 전승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인식해야 할 중요한 부분은 전통 춤이 추어지는 공간의 이해와 중요성이다. 춤추는 자와 춤 보는 자가 함께 하는 공간에서 아주 세심한 것 까지도 서로 보고, 느끼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몸으로 마음으로 같이 춤출 수 있는 곳, 숨과 눈빛과 마음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공간, 그래서 함께 만들어가는 신명나고 멋진 한판 춤 마당.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고 그래서 우리를 연결하는 전통의 가치와 의미, 오랜 시간을 이어온 전통과 문화의 본질을 통해 우리의 본질을 또 찾으려 애써 보는 것도 의미 있다 하겠다.

 

 

글·이인숙

문화평론가, 교육학박사, 문화예술경영전공. 현재 청주대학교 연출제작학부 초빙교수로 있으면서 북경수도 사범대학교 과덕대학 공연예술대학 부학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연기에술학회 이사, 국제문화예술교육교류협회회장, 청주시 도시문화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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