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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경계도시2> ― 남북한 냉전시대의 레드 콤플렉스와 경계인의 추방
[서곡숙의 문화톡톡] <경계도시2> ― 남북한 냉전시대의 레드 콤플렉스와 경계인의 추방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7.0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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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계도시2>와 송두율 교수 간첩 사건
 

<경계도시2>(홍형숙, 2010)는 <경계도시1>(홍형숙, 2002)의 후속편으로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간첩 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는 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의 특별상·관객상, 35회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독불장군상, 13회 디렉터스 컷 어워즈의 올해의 독립영화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경계도시1>에서 2002년 한국정부로부터 간첩 혐의를 받아 입국금지 상태인 송두율 교수는 36년만의 귀향을 앞두고 공항에서 되돌아가는 한이 있어도 이번에는 입국하겠다고 결연한 각오를 다지지만, 관계당국의 반응에 초청기관 스스로 초청을 취소하여 깊은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경계도시2>에서 2003년 체포영장이 발부된 상황에서 37년만의 귀국을 감행한 송두율 교수는 열흘 만에 ‘해방 이후 최대의 거물간첩’으로 추락하며, 보수와 진보의 일대 격전 속에서 구속, 재판, 석방 등 레드 콤플렉스의 광풍을 맞는다.

 

2. 해외민주인사와 냉전의 코드
 

<경계도시2>의 전반부는 송두율·진보단체·언론과 보수단체·국가기관의 대립을 통해 해외민주인사가 겪는 냉전의 코드를 보여준다. 송두율 교수는 하이네의 시를 좋아하고 하이네의 삶을 추구한다. 송두율 교수는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해외민주인사로서 노동당 정치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37년 동안 입국 금지를 당하였고 2002년 입국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한 인물이다.

 

1시기는 2003년 입국 추진, 체포영장 발부, 자진 출두, 체포 집행유예, 국정원 조사, 출국 금지, 검찰 송치, 체포영장 발부, 선친 묘소 참배 등의 사건을 보여준다. 언론은 송두율 교수에게 한국의 독재정권을 비판하며 통일 철학을 수립한 대표적인 해외민주인사라고 찬사를 보낸다. 송두율 교수를 초청한 진보 단체는 통일 이슈를 통해 진보정권의 성과를 보여주고자 하지만, 국가기관인 국정원·검찰은 체포영장, 집행유예, 조사 출국금지 등 강경수로 대응한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쟁점과 전망’이라는 주제의 학술 심포지엄에서 송두율 교수는 땅 위에서는 분리되어 있지만 땅 밑에서는 연결되어 있는 대나무를 통해 통일 철학의 핵심인 ‘아름다움’에 대해 역설한다. 송두율 교수는 선친의 묘소를 참배한 후 자신을 유학 보낼 때 선친께서 “이 순간부터 세계인이 되어라”고 말씀하셨으나, 자신은 민족을 생각하여 그 말씀을 따르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린다. 선친이 남북한의 냉전을 뛰어넘는 ‘세계인’이 되기를 희망했다면, 송두율 교수는 남북한의 화합을 이끄는 ‘경계인’이 되기를 희망한다.

 

<경계도시>의 전반부 스타일은 뒷모습과 바스트숏, 옆얼굴과 바스트숏을 통해 경계인의 고통과 괴로움을 표현한다. 선친 묘소를 참배하는 장면에서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송두율 교수의 클로즈업, 눈물을 흘리는 내려가는 뒷모습 바스트숏은 거물 간첩으로 오인 받는 현실에 대한 고통을 표현한다. 학술 심포지엄에서 대나무를 통해 통일 철학의 핵심인 아름다움에 대해 강연하는 장면은 송두율 교수의 옆모습 바스트숏을 통해 남북한 분단 상황에 대한 힘겨움을 표현한다. 기득권자의 냉전 코드를 비판하는 장면은 풀숏에서 바스트숏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카메라를 통해 남한 현실에 대한 비판과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괴로움을 표현한다.

 

 

3. 최대 거물간첩과 보수/진보의 색깔 논쟁
 

<경계도시2>의 중반부는 송두율·진보단체와 국가기관·보수단체가 대립하는 가운데, 최대 거물간첩을 둘러싼 보수/진보의 색깔 논쟁을 드러낸다. 2시기는 국정원 자백, 검찰 출두, 기자회견 등의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우선, 국가기관은 송두율 교수를 거물급 간첩으로 규정한다. 국정원의 자백 결과 송두율 교수는 북한 방문, 북한 김철수의 동일인, 노동당 입당에 대해서는 인정하지만, 정치위원 활동에 대해서는 부정한다. 검찰은 노동당 가입에 대한 사죄, 경계인에 대한 부정, 남한 법질서의 준수, 전향서 등을 요구한다. 검찰은 직접적인 조사뿐만 아니라 언론을 통한 간접적인 전달을 통해 과거의 사실 확인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동까지 강요한다는 점에서 법 집행의 원칙을 저버린다.

 

다음으로, 간첩 사건을 중심으로 송두율 교수와 진보단체가 갈등한다. 송두율 교수는 경계인으로서 남북한 사이에서 균형을 지키고자 하며, 37년 동안 냉전의 코드가 변함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기득권자의 화석같은 머리 구조를 비판한다. 진보단체는 송두율 교수의 노동당 입당 사실에 배신감을 느끼고, 경계인이라고 말하지만 북에 치우쳐 있다는 점을 비판하며, 법률문제, 논리, 개인문제보다는 도덕적 정당성, 감성, 민주화운동, 총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경계인을 포기하고 확실한 선택과 전향이 필요하다고 강요한다. 진보단체는 개인적 이익보다 운동의 원칙이 중요하다며 경계인을 포기하고 전향을 하라고 강요하지만, 사실상 운동의 원칙보다는 단체나 당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송두율 교수에 대한 지원, 찬사에서 반대, 비판으로 서서히 변화한다.

 

마지막으로, 언론은 송두율 교수에 대한 지지·이해에서 비판·불신으로 급격하게 바뀜으로써 가장 큰 태도의 변화를 통해 남한의 레드 콤플렉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 언론이 송두율 교수가 북한 정치위원 김철수와 동일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을 펼치자, 독일 언론은 한국 언론이 ‘관찰자’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어’가 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1차 기자회견에서 송두율 교수는 양심적 학자에서 거물 간첩으로의 추락을 한탄하며, 노동당원 활동, 정치국 후보위원 행사, 김철수로 살기에 대해서 강력하게 부정하면서, 치우친 삶에 대해서 뉘우치며 화해자의 역할을 다짐한다. 이에 언론은 노동당원이라는 사실에서 이미 경계인이 아니라고 비판하면서 색깔 논쟁을 가열화시킨다. 2차 기자회견에서 송두율 교수는 노동당 탈당, 남한 헌법 준수, 독일 국적 포기, 처벌 감수라는 4가지 항목을 약속하게 된다. 언론은 송두율 교수의 노동당 입당, 이중국적, 정치국 후보위원 등을 통해 색깔 논쟁, 레드 콤플렉스를 드러내면서 해외민주인사에서 거물급 간첩으로 추락시킨다.

 

<경계도시2>의 중반부 스타일은 오버더숄더숏, 미디엄숏과 묵음, 풀숏과 고함소리를 통해 관계와 강제성, 벽과 곤경, 비판과 거리두기를 표현한다. 송두율 교수와 북한 정치위원 김철수의 동일 인물 논쟁 장면에서 송두율 교수를 에워싸는 주변 인물들의 오버더숄더숏은 레드 콤플렉스로 인한 관계의 강제성을 암시한다. 기자들이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자동차 안에서 송두율 교수와 변호사가 논의하는 장면은 두 인물의 흐릿한 영상과 사운드 묵음을 통해 마녀 사냥을 시작한 언론과 벽에 갇힌 인물의 곤경을 표현한다. 진보단체의 대책회의 장면은 심각한 현실에 처하여 소리 없이 고민하는 송두율 교수의 바스트숏과 큰 소리로 경계인을 포기하고 전향하라고 강요하는 진보인사의 풀숏을 대비시키면서, 송두율 교수와 진보단체의 갈등, 진보단체의 자기 합리화에 대한 비판적 시선과 거리두기를 표현한다.

 

 

4. 국가보안법의 모순과 망각의 시대
 

<경계도시2>의 후반부는 송두율·진보단체와 국가기관·보수단체의 극명한 대립을 통해 국가보안법의 모순과 망각의 시대를 보여준다. 3시기는 검찰 9회 출두와 수사, 사전 구속영장, 검찰 송치, 구속영장 발부, 구속, 8개월 공판은 구속 이후 수사, 재판에 대해서 언론이 입을 닫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망각의 시기를 보여준다. 4시기는 2004년 3월 검찰 15년 구형과 법원 7년 선고, 4개월 후 2004년 7월 항소심 집행유예, 2008년 대법원 무죄판결을 통해 송두율 교수의 간첩 활동 무죄가 입증되는 시기이다.

 

보수단체는 송두율 교수에 대해서 간첩새끼, 김일성 동조세력, 김정일 찬양자라며 시위를 통해 강경하게 비판하며, 중형 혹은 사형 등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 반면에 진보단체는 시민사회단체 간담회, 송 교수 구속 철폐 운동, 변호인 잠정권 보장 요구,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걷기 대회 등을 통해 보수세력에 저항한다.

 

언론은 구속 이후 수사, 재판에 대해서 입을 닫음으로써 망각의 태도를 보여주지만, 판결 이후에는 다시 송두율 교수에 대해 옹호의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급격한 변화를 나타낸다. 사회원로들은 기자회견에서 민주화 시대에는 경계인이 가능하지만, 극단의 시대에는 경계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송두율 교수는 노동당 탈당, 독일 국적 포기, 남북한 화합을 주장함으로써 사실상의 전향, 경계인의 종말을 보여준다. 언론은 비판, 무관심, 옹호라는 급격한 변화를 차례대로 보여주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 추측을 앞세움으로써 마녀 사냥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계도시2>의 후반부 스타일은 롱숏과 클로즈업의 교차편집, 옆얼굴과 바스트숏, 롱숏과 어두운 실루엣을 통해 대비, 번민, 추방을 표현한다. 보수단체가 시위하는 장면은 보수단체의 롱숏과 송두율 교수의 클로즈업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줌으로써 가치관의 대비와 감정이입을 표현한다. 송두율 교수가 고향인 제주도 바다를 방문하는 장면은 자동차 밖을 바라보는 송두율 교수의 옆얼굴 바스트숏을 통해 민족에 대한 번민을 표현한다. 제주도 거리를 걷는 장면에서 송두율 교수의 롱숏과 어두운 실루엣은 추방되는 경계인의 슬픔을 표현한다.

 

5. 지구상 마지막 경계도시와 경계인의 추방
 

<경계도시2>는 지구상 마지막 남은 경계도시에서 경계인이 추방되는 레드 콤플렉스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송두율 교수의 간첩 사건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모순점들을 냉철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경계도시1>(2000)이 거미줄처럼 얽힌 레드 콤플렉스의 포위망 속에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배타성을 드러낸다면, <경계도시2>(2010)는 보수와 진보 모두 레드 콤플렉스에 빠지는 남한 사회의 혼란스러운 모순을 드러낸다.
 

‘경계도시’는 베를린의 별칭이고, ‘경계인’은 남북한 관계에서 균형을 이루며 화해자의 길을 가고자 하는 송두율 교수의 철학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서울은 보수와 진보 모두 레드 콤플렉스의 흑백 논리 속에서 경계인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경계도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송두율 교수는 내면적 동의가 아니라 상황적 판단에 내몰려 남한과 북한 중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며, 흑백논리, 이분법의 레드 콤플렉스의 광풍으로 추방된 경계인이자 마녀 사냥의 희생물이 된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송두율 교수의 옆얼굴 바스트숏은 경계인의 고뇌와 번민, 괴로움과 고통을 표현한다.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에 모두 나오는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10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자막은 같은 인물의 같은 행위이지만 시기에 따라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의 모순을 잘 표현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글 · 서곡숙
문화평론가,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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