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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시청률에는 이유가 있다 – 6월의 드라마 돌아보기 <닥터 차정숙>
[구선경의 문화톡톡] 시청률에는 이유가 있다 – 6월의 드라마 돌아보기 <닥터 차정숙>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3.07.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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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 이전만큼 주목받지 못하는 시대다. 당연하게도 TV 평균 시청률도 크게 하락했다. 요즘 드라마 시청률은 10퍼센트대만 되면 잘 나왔다고 생각한다. 5퍼센트대라면 예전에는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조롱을 받으며 참담하게 생각하는 숫자였지만 지금은 그 정도 충격은 아니다. 따라서 20퍼센트가 넘어가면 대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작품을 시청률만으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작품성 면에서 분명 훌륭하고 의미 있는 작품인데 왜 이렇게 시청률이 안 나올까 아쉬울 때라든가, 반대로 만듦새가 아쉽거나 허술한 작품에 의외로 대중들이 크게 반응할 때면 과연 시청률의 의미는 무엇인가 의심하게 된다. 최근에는 플랫폼 자체가 다양해졌기 때문에 본방송의 시청률만으로 논의하는 게 무의미하므로 화제성 지수 등 다른 평가 기준들을 만들고 있기도 하다.

시청률에 대한 이런 여러 가지 불평과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아직 일반적으로는 시청률이 의미가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에서 재밌다고 하는 작품들, 그거 봤냐고 서로 묻는 작품들은 분명히 시청률도 좋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다. 수치가 모든 걸 증명하거나 반영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기본 흐름은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들은 과연 어떤 점에서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체감상 6월의 최고 화제작은 <닥터 차정숙>이었다. 특히 30~50대 여성층에서 재밌다는 입소문이 많이 들려왔다.

차정숙의 인기 비결은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익숙한 이야기의 적당한 변형”이다. <닥터 차정숙>은 익숙한 이야기이다. ‘아내로 엄마로 며느리로 희생하는 삶을 살아온 전업주부가 뒤늦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고 이에 배신감과 상실감에 분노하다가 뒤늦게 자기만의 삶을 찾아가며 복수하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수도 없이 반복해 온 클리셰 가득한 스토리다. 장르와 엔딩에 따라 자아를 찾는 성장담의 휴먼드라마로 끝나기도 하고, 복수에 방점을 찍은 자극적인 복수극이 되기도 하고, 치정이 섞인 정극 멜로일 때도 있다. 다양하게 변주되면서도 바뀌지 않는 건 시청자들이 빌런인 남편과 상간녀에게는 비난과 분노를, 여자주인공에게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면서 이야기를 즐긴다는 점이다.

그런데 익숙한 이야기가 익숙하기만 하면 뻔하고 지루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플롯을 전복하는 것이 답도 아니다. 조강지처가 이혼하고 가난하고 불쌍하게 사는 이야기라든가, 바람으로 만난 남편과 여자가 진짜 사랑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타겟층 시청자의 구미에 맞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고 인생일 수 있겠지만, 시청자가 보고 싶은 건 적나라한 현실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다. 그게 판타지일지라도. 그래서 결국 뻔하고 익숙한 흐름을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는데 <닥터 차정숙>은 이 익숙한 이야기를 조금씩 비틀어서 다르게 보이게 하거나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중요한 건 조금씩 다르게, 라는 것이다. 아주 낯설지는 않게, 하지만 뻔하지도 않게.

 

우선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차정숙(엄정화 분)은 그간 보여줬던 이런 부류의 드라마 여주인공들과 조금 다른 모습을 보여 준다. 주부가 뒤늦게 사회에 진출해서 일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에서 여주인공들은 종종 적응이 어려운 모습들을 보여 주었다. 최신 트렌드를 몰라 촌스럽게 굴거나, 사회적 맥락 파악이 안 돼서 공적인 자리에서 지나치게 사적인 태도로 빈축을 사거나 하는 식으로 한마디로 ‘사회에 적응 못 하는 집구석 아줌마’의 모습들이었다. 뽀글뽀글 파마머리를 하거나 유행 지난 정장 투피스 등으로 외양에서도 그런 모습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이는 오히려 실제 현실과 거리가 멀다. 그들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지금의 40~50대는 대졸 이상의 고학력자가 대다수이고, 인터넷과 스마트폰 사용이 자유로우며, 이를 통한 정보 공유로 지리적 시간적 격차 없이 비슷한 수준과 분위기의 정보를 공유한다. 지나치게 촌스럽고 주책맞은 모습으로 그리는 것 자체가 그저 드라마에서 늘 그래왔으니까 또 그렇게 만드는, 또 하나의 클리셰일 수 있다. <닥터 차정숙>은 과거 의사가 될 뻔했으나 중도 포기한, 흔하지 않은 사연의 경단녀를 설정함으로써 ‘조금 다른’ 아줌마를 그릴 수 있었다.

 

두 번째로 돋보인 점은 악역을 무작정 악역으로 납작하게 만들어 버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남편 서인호(김병철 분)에게도 남편의 내연녀이자 동창인 최승희(명세빈 분)에게도 그들이 그렇게 된, 그럴만 했던 이유가 있다. 주인공을 괴롭히고 불행에 빠뜨리는 것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미션인 것처럼 작정하고 불륜을 저지르고 악행만 일삼는 캐릭터는 사실은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다. 그들에게도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인간이라서 할 수 있는 정도의 실수들, 잘못된 선택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여 골이 깊어지는 모습을 보여줄 때 주인공은 더 고민과 번뇌에 빠지게 되고 시청자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느끼며 깊이 몰입한다. 당장 시청자에게 통쾌함은 덜할 수 있지만, 이야기는 더 진실해진다.

 

세 번째는 적당히 가벼운 전개의 힘이다. 남편이 내 친구와 바람을 피우고 혼외자까지 있고 그 애가 내 딸과 친구라는 설정은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다. 간이식을 받고 그러고도 문제가 생겨 20년 만에야 복귀한 의사직을 또다시 포기해야 하는 건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눈물과 절망, 억울함과 분노가 교차하는 주인공의 매 순간을, 그러나 계속 어둡고 무겁게만 가지 않는다. 정극으로 풀면 숨 쉴 대목 없이 무거울 이야기이지만 여기서는 남편의 바람과 혼외자와 이혼에 관한 언급을, 주변인들을 통해서 가볍게 건드리고 지나가곤 한다. 남편과 로이킴(민우혁 분)이 정숙을 놓고 세상 유치한 주먹다짐을 한다든지, 정숙을 뺀 가족 모두가 인호의 불륜과 혼외자 사실을 알았지만 이를 숨기며 전전긍긍하는 대목이라든가, 또는 외과 과장 윤태식(박철민 분)과 가정의학과 과장 임종권(김병춘 분)이 수십 년 전 여동생을 놓고 얽힌 애증의 관계로 여전히 앙숙으로 지내는 에피소드 등이 그것이다.

또 이 드라마의 자녀들은 둘 다 성인 또는 곧 성인이 될 나이의 아이들이다. 이혼 커플 이야기에서 자녀가 나오면 이야기가 가벼워지기 어렵다. 자녀 양육에 대한 부담,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미안함의 무게를 무작정 외면해버리면 캐릭터가 비호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이미 성인에 이른 자녀들로 설정함으로써 자식들 이야기가 덜 무거워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드라마는 진지해져야 할 포인트들을 놓치지 않는다. 씩씩하고 담대해 보였던 차정숙이 남편에 대한 배신감에 혼자 목 놓아 우는 순간, 친정엄마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것, 고3인 수험생 딸 앞에서 약자가 되는 모습 등 신파적 요소가 필요한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무거움과 가벼움이 지루하지 않게 변주되는 것이 드라마의 리듬이다. 그리고 그건 중요하다. 감정에서도 몰아치는 감정과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하고, 사건도 사건의 발발과 수습 후 다음 사건으로 넘어가기 전에 충분히 여운을 준 후에 넘어가야 한다. 잘된 드라마들은 이런 리듬이 잘 살아있다.

잠깐 첨언하자면, <닥터 차정숙>이 무거움과 가벼움의 리듬을 잘 살린 것은 배우의 몫이 매우 크다. 엄정화라는 배우는 동그란 눈과 귀염성이 있는 예쁜 얼굴로, 지나친 생활감과 현실감으로 찌들지 않은, 로맨틱하고 동화적인 아줌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색하고 무거워져야 할 때 그 무게감도 충분히 보여 줄 수 있는 유능한 배우다. 그녀의 장점이 십분 살아난 드라마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닥터 차정숙>은 ‘익숙하지만 뻔하지는 않은 드라마’가 되었다. 뻔한 이야기에 새로움을 딱 반 스푼만 첨가한, 알고 있는 클리셰에서 딱 반 발짝만 앞서간, 영리한 드라마다.

 
 
본문 사진 출처 - 공식 홈페이지
 
 
글·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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