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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운, 도심에 MZ세대의 뉴트렌드 와인 셀라를 들여오다
도운, 도심에 MZ세대의 뉴트렌드 와인 셀라를 들여오다
  • 심정택 | 건축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7.2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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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복합 문화 공간 '도운'(DOWOON)

국내 와인 시장은 대중화를 넘어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다. 동네 편의점 및 일반 마트에서도 수십 종의 와인을 비치하고 있다. 어쩌다 즐기는 기호 식품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MZ세대뿐 아니라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와인은 의사소통의 주요 매개가 되었으며 관련 음식 또한 새롭게 소개되고 있다.

 

와인 복합 문화 공간 '도운' - 서울 강남구 논현로 152길 9

서울 강북 도심 빌딩들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뷰가 중요해졌다. 계단실과 엘리베이터를 옮기면서 기존의 엘리베이터 피트는 메꾸지 않고 지하 와인 셀라로 변용하는 경우가 있다. 더러 30대의 전문직 부부가 건물을 지을 경우, 서울의 부심에 부지를 마련해 협소주택을 지으면서도 1층 주방에 퇴근 후 들르는 와인바를 마련해줄 것을 건축가에게 요구한다. 요리하는 기능이 축소되고 음식을 즐기는데 적합한 큰 식탁이 놓인 카페같은 공간이 생긴다.

상업용 빌딩에서도 실용적 목적으로 와인 셀라를 마련하고 있는데,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추구하는 신세대의 출현으로 프라이빗 와인바가 건축 설계의 주요 요소가 되었다.

 

적절한 온도에서 보관 중인 와인들 @강철민

대표적인 와인 수입사로 자리잡은 나라셀라(1997년 설립)는 수년 전부터 시장의 다변화·고급화 추세를 추동화시킬 플랫폼을 ‘와인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건축사사무소 에스티피엠제이(stpmj)의 임미정, 이승택 건축가가 설계하고 명명한 ‘와이너리 신사’, 도운빌딩(2022년 12월 준공)은 서울 강남 안세병원 사거리 인근 신사동에 위치한다. 건물 이름 ‘도운’은 포도 도(萄)와 운과 정취를 뜻하는 운(韻)에서 따왔다. 포도 향이 퍼지는 건물이란 의미이다.

임미정, 이승택은 공동 설계 체제를 지향한다. 설계 과정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 무쌍한 변수들이 수용가능해진다.

 

 

모노톤의 벽돌은 와인 셀라의 컨셉을 표현

지하 와인 셀라로 향하는 회전계단

설계 기간 중 서울의 도심인 도운빌딩 주변은 나라셀라 창업 시기인 1990년대 후반 저성장기에 1차 개발에 이어 2차 개발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물은 초현대식 오피스 빌딩이 군웅할거하는 지역에서 나 좀 봐달라고 외치지는 않지만 뉴트렌드의 와인 기업으로 성장한 나라셀라의 정체성은 확실하게 포지셔닝해야했다. 

건축가들에게 용적률이 특별한 변수는 아니나 각종 규제를 피해 최대한의 공간을 확보하는 건 늘 어려운 일이다. 특히 서울 강남의 대지는 최대 건축 면적을 얻기 위한 설계가 최우선적으로 고려된다. 건축가들의 마지막 승부처인 외관은 와인 전문 기업 이미지가 표출되어야 했기에 부동산 가치만을 따질 수도 없었다. 

모노톤의 벽돌은 형태적으로나 이미지 측면에서 와인을 숙성시키며 저장하는 와이너리의 컨셉을 유지했다. 와이너리를 연상하는 전면으로 튀어나온 둥그스름한 형태의 챔버 공간은 깊은 음영 뒤의 창 유리를 통해 빛의 조절이 일어난다. 좁지만 쾌적한 열린 공간이어야 했고 거친 면과 매끈한 면의 대조는 질감의 차이를 드러내는 회화 작품과도 같아 난이도 높은 시공을 요구하였다. 건축 재료의 물성을 잘 이용한 건물 외피는 시간이 지나도 초창기에 지은 듯한 품질을 유지한다. 

 

다양한 용도의 공간 대여와 전시, 와인 수업이 가능한 공간 'Wine Culture Lab'

나라셀라는 와인 중심으로 사업 스펙트럼의 확장 가능성이 전제되어야 했다. 대중들은 여전히 제대로 된 와인 문화를 체감할 기회가 많지 않다. 또한 음악과 그림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지향한다. 유명 와이너리의 와인 라벨 작업에는 미술사에 등장하는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등 와인은 다양한 문화컨텐츠와 접목되고 있다.

설계 종료 직전까지도 건축주인 회사는 건물의 소프트웨어에 대한 방향을 고민하고 있었다. 건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제한된 대지와 공간 안에서 프로그램의 변경 가능성도 고려해야만 했다. 건물 전체적으로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기능을 갖춘 곳이 있어야 한다는 데는 건축주와 건축가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에드워드 호퍼의 ‘비스트로 또는 와인숍’을 생각하며

항온항습 시스팀을 찾춰 온전히 자기만의 취향을 보관하는 곳 ‘Dowoon Private Cellar’

무엇보다 건물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로비층이 무엇을 담아내고 고객에게 무엇을 제공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와이너리 신사’는 총 9개 층(지하 2층, 지상 7층)으로 완공됐다. 1층은 로비 겸 카페로, 정면(남쪽)으로 창이 없는 2층은 와인 전시관 및 세미나, 클래스를 이용하는 장소로 조성되었다.

가로에 면한 1층 전면부는, 측면에서 보면 과할 정도의 필로티(pilotis, 벽이 없는 주열(柱列)) 공간을 점유, 자칫 건축물의 전체 비례를 무너뜨릴 정도의 경계에 있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년)의 프랑스 파리 여행의 기억을 토대로 한 작품 ‘비스트로 또는 와인숍’(Le Bistro or The Wine Shop, 1909)은 빛과 그림자, 색채가 이루는 균형과 대비가 두드러진다. 인물과 건축보다 우측에 과감히 드러낸 해변이 배경인 텅 빈 공간이 돋보인다. 건축가는 도심 건축에 이러한 텅 빈 공간감이 필요하다고 본듯하다.

1층 정문에 들어서면서 로비 너머 후정(後庭)이 들어오도록 시야를 확보했으며 후정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시공 중에 설계를 바꾸어야 했다. 건축이 요구하는 프로그램에 따라 내외부의 건축 시퀀스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와인과 다양한 주류를 즐길 수 있는 곳 ‘Night Cap’

처음부터 확실하게 프로그램이 확정된 곳은 지하 1~2층이 유일했다. 지하 2층 와인 스토리지는 레드 와인(13~16℃)과 화이트 와인(7~10℃)을 보관하기 적합한 온도를 유지하는 공간이다. 한켠에는 은행 대여 금고에 해당하는 와인 스토리지도 조성됐다. 6층엔 파티나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오픈 키친이 들어선다. 대관도 가능하다. 7층은 남산타워와 한강 뷰를 감상하면서 와인과 위스키를 즐길 수 있는 바 ‘Night Cap’이 들어선다.

 

글 · 심정택
건축 칼럼니스트. 홍보대행사와 갤러리를 운영했고, 50여 회의 초대전, 국내외 40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한 15년 차 미술 현장전문가이다. 매일경제에 3년 6개월간 필명 ‘효효’로 160여 회의 건축 관련 글을 연재하였다.

사진 · 나라셀라 제공

 

 

 
 건축가 임미정 인터뷰 

밤샘 작업 후 와인 한 모금에 온몸이 짜릿

글·성일권

 

나라셀라 도운빌딩 설계자인 임미정 교수(홍익대 건축학과) @강철민

“와인 제조과정이나 건축의 과정이 넘어가는 단계마다 섬세하고 전환적이어서 닮은 꼴이 많습니다. 포도송이가 오크통 숙성 등 수차례의 단계를 거쳐 제 손의 와인잔에서 맑고 붉은 루비 빛을 발하는 것처럼, 제가 밤새 그린 설계도면도 철골과 시멘트, 벽돌의 축조 단계와 인테리어를 걸쳐 지금의 멋진 공간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지난해 완공된 나라셀라 도운빌딩의 설계자인 임미정 교수(홍익대 건축학과)는 자신의 작업실에 놓인 도운빌딩 모형도를 들여다보며 와인잔의 붉은 피노 누아를 한 모금 마셨다(건축가의 작업실은 천호동의 낡은 단독주택을 개조했다).

*  *  *

건축가님의 작업 공간이 대단히 내추럴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천장과 벽, 바닥이 철골구조와 시멘트를 그대로 드러낸 게 건축의 구조와 해체, 재구조를 생각하는 건축가의 고민 같 은 걸 보여주는 듯 싶어요.
“사실, 만만치 않은 건축비용 탓에 기존의 주택을 헐지 않고 개조했어요. 구조주의나 구성주의, 해체주의 등 근대의 철학 용어가 건축에서 나왔지만, 이 공간은 제가 철학이 아닌 설계에 집중하기에 좋은 곳이에요.”

공간과 건물을 보실 때 건축가님의 시선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를 것 같아요. 가장 좋아하는 공간과 건물이 있을까요?
“건물은 주위 환경과 잘 어울리고, 공간은 사람이 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딱히 어떤 공간과 건물을 좋아한다고 꼽긴 힘들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건물을 살펴보며 그걸 설계한 건축가의 마음을 읽으려 합니다.”

임교수는 최근 공모전에서 당선된 작품의 모형도 특징을 설명하며 와인잔을 입에 댔다.

취향에 맞는 와인일까요?
“덕혼 골든아이 피노 누아를 즐기는 편이에요. 특별히 가리지 않고 와인을 마시는 편이지만, 굳이 꼽는다면, 피노 누아는 탄닌이 많지 않아 떫은 맛이 덜하고, 풍부한 과일향과 적당한 산미가 다소 예민한 제 성격과 맞는 듯싶습니다.”

작업실에 와인 셀라 두 개나 둘 정도로 와인애호가로 알고 있어요. 건축가님에게 와인은 어떤 의미의 술일까요?
“취기를 주는 알콜이라기보다는 기쁠 때 다른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고, 사교의 자리에 친목을 촉진해주는 매력의 음료라고나 할까요. 작은 와인 셀라에는 와인이 6병, 큰 와인 셀라는 와인 12병이 들어있어요. 선물로 받으면 일단 와인 셀라에 보관하죠. 기쁜 날이 있으면 언제든지 코르크를 따는 거죠.”

기쁜 날이라면, 언제?
“저희가 설계한 도운빌딩이 이렇게 멋지게 완공된 날이라든가, 며칠간 밤샘 작업한 설계안이 공모전에 당선되든가 하는 날이죠. 지난해 충남 부여군이 발주한 2700평 규모의 도서관 설계 공모전에서 당선된 날에는 너무 기뻐서 지인들과 함께 와인 셀라를 모두 비울 정도로 마셨어요.”


임 교수는 “도운빌딩 설계를 하면서 와인 보관 및 숙성의 조건 등 와인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알게 되었다”면서 “밤샘 작업을 하면서 심신이 지쳐있을 때, 피노 누아 와인을 한 모금 축이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짜릿하다”고 말했다.

 

* 해당 기사는 와인 매거진 <NARA> 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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