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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한국)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녀가 된다- 다큐 <피의 연대기>
[김민정의 문화톡톡] (한국)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마녀가 된다- 다큐 <피의 연대기>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3.07.31 18: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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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피의 연대기] 포스터
다큐 <피의 연대기> 포스터

 

(한국)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마녀가 된다. <오즈의 마법사><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사의 흥미진진한 모험 이야기가 아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피 흘리는 존재로 태어나 한 달에 5, 큰 숟가락 세 개 분량. 1년으로 치면 300밀리리터(), 10년에 1.5리터() 생수 두 병을 채우고 평생을 모두 합치면 10리터에 달하는 피를 흘려야만 하는 생물학적여성들의 이야기다. 생리를 생리라고 부르지 못하고, 대자연, 그날, 홍양, 멘스, 달거리, 그리고 마법으로 불러야 하는, ‘마법없는 마법사들의 이야기.

다큐 <피의 연대기>는 모든 여성을 위한 생리백과사전를 표방하며 이제까지 금기시되고 터부시되어온 생리 이야기를 사회 공론장에 대담하게 꺼내놓는다. 이름하여, 생리 커밍아웃’.

 

생리란 무엇인가

 

생리의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다.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주기적으로 출혈하는 생리현상.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 담긴 역사적, 문화적 의미는 절대 단순하지 않다. 생리에 대해 모두 알고는 있다. 하지만 생리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여성들도 생리와 관련해서는 좀처럼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생리는 특수하지도 보편적이지도 않다는 점에서 굉장히 다루기 어려운 소재다.

모든 창작품은 창작자의 인위적인 간섭과 관여가 전제된 가공된 예술이다. 때문에 작가의 주제 의식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치밀한 서사전략이 필수적이다. 논픽션의 모든 서사전략은 사실너머에 있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다큐 <피의 연대기>1인칭 주인공시점과 1인칭 관찰자시점을 번갈아 오고 가며 개인의 특수한 경험으로부터 사회 보편적 경험으로의 확장을 시도한다. ‘개인에서 우리여성, 그리고 보편의 인류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우리 몸에 관한 인식의 전환, 그것이 바로 <피의 연대기>생리 커밍아웃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진실이다.

 

전지적 1인칭 시점의 다큐

 

지난 2015년 가을, 김보람 감독은 샬롯이라는 네덜란드 여성을 우연히 만나 초경 때부터 생리대 대신 탐폰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일은 '우리는 모두 똑같이 피를 흘리는데 왜 다른 생리용품을 쓰고 있는 걸까?'라는 궁금증과 함께 <피의 연대기>를 작업하는 계기가 된다. 1인칭 주인공 김보람시점으로 시작한 다큐는 네덜란드 샬롯을 거쳐 영국과 미국 등 세계 각지로 뻗어나간다. 국적뿐 아니라 나이와 직업이 각각 다른 여성들이 서로 다른 얼굴의 '1인칭 주인공'이 되어 인터뷰에 등장한다. 엄마와 딸, 교사와 학생, 감독과 스텝이 '1인칭 주인공'의 자격으로 자신만의 생리 경험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1인칭 가 모여 1인칭 우리가 되어가는 과정. 다큐에 나오는 사람들이 부모로부터 부여된 을 빼고 이름으로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누군가의 자녀가 아닌 오로지 ’, '1인칭 주인공으로서 존재한다. 큰 이야기에서 작은 이야기로 분파되어 나오지 않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거대한 하나의 작은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그것이 바로 다큐 <피의 연대기>가 보여주는 진정한 '연대'의 기록이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와 생리대의 역사를 다룬 연대기(年代記)인 동시에 '피 흘리는 존재'인 여성들의 연대기(連帶記). 김보람 감독은 직접 '고프로 카메라'를 이마에 달고 생리컵에 담긴 피를 세면대에 헹구는 모습을 그대로 다큐에 담아낸다. 그 과정에서 김보람 감독은 1인칭 주인공이자 1인칭 관찰자로서 자유롭게 시점 전환을 이루어내고, 다큐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며 전지적 1인칭 시점의 다큐를 새롭게 창작해낸다.

 

1인칭 사적경험의 생리

 

1인칭 시점의 다큐가 관객에게 선사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살아있는 현장감이다. <피의 연대기>에는 생리용품에 관한 '1인칭 나''사용후기'가 나이별 용품별로 다양하게 등장한다.

 

"쓰고 버릴 거라고 생각을 하게 되니까 별로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아요.”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는 10)

 

생리혈, 내 질을 더럽고 냄새나는 것으로 보지 않게 됐어요. 생리대에 묻은 피가 냄새가 나는 건 산화됐기 때문이에요. 생리컵에서 방금 뺀 피는 정맥을 흐르는 피와 똑같아요. 변기에 버리면 빨간 물감처럼 예쁘게 번져요. 그걸 보는데 쾌감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생리가 끔찍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죠.”

(생리컵을 사용하는 20)

 

1인칭 주인공의 사적 경험은 단순히 생리대에 관한 단편적인 체험담에 머물지 않는다. 일회용 생리대로 시작해 탐폰, 생리컵에 이르는 각양각색 생리용품 후기를 통해 생리를 대하는 지금 여기우리의 태도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일회용 생리에서 천 생리대로 바꾼 다음, 직접 생리대를 빨아 쓰고 재활용함으로써 생리를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1인칭 나'의 고백. 생리는 더럽지 않다. 생리대는 버리지 않는다. 생리대 재사용 경험은 생리와 우리 몸, 그리고 자아정체성에 관한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큐 <피의 연대기>는 우리가 그동안 몰랐던 대안생리대로서 생리컵을 제시한다. 생리컵의 종류, 생리컵 사용법 그리고 질에 손가락을 넣고 길이를 재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을 찾아가는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에게 맞는 생리용품을 찾아가는 과정이 곧 나의 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제 몸 그 자체의 고유함을 처음으로 만족하고

 

'1인칭 나'의 감동적인 고백은 다큐 밖에 있는 또 다른 '1인칭 나'에게 생리와 생리대에 관한 건강한 경험을 촉구한다. 그리고 다큐 안과 밖, 주인공과 관찰자, 감독과 관객의 경계를 허물며 '전지적 1인칭 시점'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화면을 보고 있을 당신까지도.”

 

1인칭 공적경험의 생리

 

다큐 <피의 연대기>사적인’ 1인칭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공적인 세계로의 비약에 도전한다. 세상의 모든 '1인칭 나'에게 건강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법안 제정. 김보람 감독은 한국 최초로 2016년 무상 생리대 법안이 미국에서 통과된 과정을 직접 가서 취재하여 다큐에 담아낸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9월부터 학생들은 학교 모든 화장실에서 여성 위생용품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6월에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9월에는 가능해질 겁니다.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시급한 변화가 필요합니다.”

 

2016년 뉴욕시는 세계 최초로 공립학교, 노숙인보호소, 시립교도소에 무상 생리대와 탐폰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빌 드블라시오 뉴욕시장이 법안 통과를 발표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과는 대조적인 한국의 열악한 상황이 적나라하게 폭로된다. 저소득층 여성 청소년이 생리대를 살 돈이 없어 신발 깔창과 휴지를 쓴 깔창 생리대사건 그리고 일회용 생리대 유해성논란. 과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생리와 생리대, 그리고 우리 몸과 우리 자신에 대해 건강한 태도를 취할 수 있을까.

김보람 감독은 '전지적 1인칭'으로서 다큐 밖에 있는 또다른 '1인칭 나'를 찾아 나서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불씨를 꼼꼼히 기록해놓는다. 2016년 마포을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동당 하윤정 후보가 무상 생리대 지급을 선고공약으로 내세워 길거리 홍보에 나선 모습, 2016년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자체 최초로 저소득층 여자 청소년 생리대 무상 지급을 시행한 사례, 그리고 2017년 한국국회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 의결까지.

 

마법의 시간

 

생리혈이 묻은 천 생리대가 있다. 선홍빛으로 물든 생리대를 찬물에 담근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핏물이 빠지고 천 생리대는 다시 새하얗게 된다. 그렇게 새로운 생리혈을 건강하게 맞이할 수 있는 모든 준비는 간단하게끝난다. 다큐 <피의 연대기>는 마법 없는 마법사들의 이야기지만 그 안에는 진짜 마법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천 생리대 사용법이다.

수백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되어 온 마녀사냥의 역사. 다큐 <피의 연대기>의 도입부로 돌아가 보면 고전문헌 속 마녀사냥이 있다. 언제부터 생리가 부끄러움과 수치로 금기시되고 터부시되었는지, 지금 여기의 생리 인식에 관해 기원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여자가 몸에서 피를 흘릴 때 그것이 여자의 몸에서 흐르는 월경이면 그 여자는 이레 동안 불경하다"는 성경의 레위기 1519~21절 말씀, 여성이 생리와 출산 중 흘린 피로 강을 오염시켰기 때문에 혈분경을 읊고 용서받아야 한다는 동아시아 경전 혈분경(血分經)』… 여성의 생리와 여성의 몸에 남긴 낙인과 편견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사적생리에 덧입혀진, 혐오와 배제의 공적역사성을 날카롭게 파헤친다.

오랜 역사의 마녀사냥 앞에 김보람 감독은 다큐 <피의 연대기>를 생리와 생리대에 대한 대항 기억으로서 내놓는다. 오래 방치되어 산화된 생리혈을 지워내고 새로운 생리혈을 맞이하듯. 시간이 지나면 또 하나의 문헌자료가 될, 그리하여 생리와 우리 몸 그리고 자아정체성에 관한 건강한 토론의 장을 열어줄 새로운 생리혈, 그것이 생리 커밍아웃이라 불리는 다큐 <피의 연대기>의 또 다른 별칭이다. (한국)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마녀가 된다. 그리고 마법의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과 르몽드문화평론가상, 그리고 2022년 중앙대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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