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 정경호가 나라셀라 도운빌딩에 등장했다.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연기에 진심인 이 배우가 와인에도 진심이라는 걸.
와인 셀라 대신 김치냉장고를 선호하는 사연부터,
와인 한 잔과 함께하는 그만의 힐링 타임까지.
인간미로 빛나는 배우 정경호와 와인의 즐거움을 이야기했다.
* 해당 기사는 와인 매거진 <NARA> 5호에 게재되었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나만의 휴식 공간은
‘집’이에요
<NARA> 이번 호의 주제는 프랑스어로 ‘ESPACE’, 즉 공간입니다. 우리는 하루 속에서도 다양한 공간에 머물게 되는데요. 최근 드라마, 영화, 예능 등 쉼 없이 작품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휴식시간에 자주 가시는 본인만의 공간이 있나요? 그곳에선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저는 MBTI로 치면 완전 I(내향형)에요. 집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쉴 때도 혼자서 집에서 영화를 틀어놓고 술을 먹는 편이에요. 어제도 그랬고 그제도 그랬고…(웃음) 자주 가는 와인 바가 있기는 하지만, 제일 좋아하는 건 역시 집에 있는 거에요.”
정경호 씨의 주방이 나온 유튜브 영상을 봤습니다. 바처럼 꾸며진 주방 한 켠에 빈 와인병들이 많이 보이던데, 정경호 씨의 와인 셀라에는 어떤 와인들이 있을까요?
“예전에 ‘작정하고 술을 마셔보겠다’는 의지로 그렇게 꾸며놨었어요. 지금은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왔는데요. 이번에도 나름 공간을 마련해서 조명도 가져다놓고 분위기 있게 해놨죠. 치우기가 너무 힘들어서 예전처럼 빈 와인병을 가져다 놓지는 않지만요. (웃음) 또 제가 빈티지가 좋은 와인이 많은 게 아니고 데일리로 먹는 와인들이 많아요. 소비뇽 블랑이라던지, 샤도네이라던지…. 와인 셀라도 있긴 하지만 저는 와인은 베란다 김치냉장고에다 보관해서 먹는 게 제일 맛있더라구요. 차갑게 뒀다가 일 끝나고 시원하게 먹는 걸 제일 좋아해요."
와인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네. 저는 와인을 정말 즐겨요. 올 가을쯤에는 와이너리에도 가볼까 생각 중이에요. 와인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와이너리는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저 같은 사람에겐 즐거운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과거 와인이 상류층의 술로 알려진 탓일까? 누군가 “와인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왠지 범접하기 힘든 아우라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러나 자칭 '와인 애호가' 정경호 배우는 그런 편견을 단숨에 날려버린다. 조금 민망하다는 듯, 손짓을 동원해가며 김치냉장고 한 켠의 와인들을 설명하는 그와 함께라면 더욱 대화 나누고 싶어지는 유쾌함과 편안함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연기가 기대되는 배우가 된다면,
제 꿈이 이루어지는 거죠”
정경호 씨와 인터뷰를 한다고 말하니, <NARA> 편집진들이 모두 환호했습니다. 배우 정경호의 작품과 연기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최근 영화 <보스>(가제) 촬영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영화에 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보스>는 저와 조우진 선배, 박지환 형이 함께하는 작품이에요. 세 명의 남자가 건달 조직의 ‘보스’가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코믹 소동극입니다. 각자 재미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는데요, 제가 맡은 역할 ‘강표’는 조직 창립자의 외손자로 유력한 보스 후보이
지만, 조직을 물려받기보다는 탱고를 추고 싶어 하는 그런 친구입니다.”
최근 작품 <일타스캔들>과 <압꾸정>의 캐릭터 이미지가 강렬한 탓인지 눈앞의 정경호 씨가 무척 친숙하게 느껴집니다. 시청자들은 배역의 캐릭터 그대로 배우를 기억하곤 하는데요, 그렇다면 정경호 씨의 삶에서 연기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글쎄요, ‘나에게 연기란 이거다!’라고 딱 정의하기는 어렵네요. 지난 20년 동안 연기는 제 삶에 너무 가까운 일이었거든요. 어릴 적부터 연기 외의 다른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춤이나 노래 같은 다른 분야에도 재능 있으신 동료분들이 많고 저도 그랬다면 좋았겠지만 (웃음). 저는 좋아서 하다 보니 할 줄 아는 게 연기였고, 할 줄 아는 게 이거니까 계속해서 더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천상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에 진학하실 때는 아버님에게 연극영화학과 입학을 숨기셨다는데…
“아버지가 너무나도 유명한 드라마 감독이시다 보니, 배우가 힘든 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신 까닭에 제가 다른 전공을 선택하길 바라셨어요. 그래서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해 한동안 말씀드리지 않고 연극영화학과를 다녔죠.”
지금은 너무 좋아하시죠?
“그럼요. 한때 연극영화과 진학을 반대하시긴 했지만, 부자 사이는 정말 가까워요. 저에게는 언제나 친구 같은 아버지세요.”
지금까지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보여주었는데,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배역이나 탐나는 배역이 있을까요?
“사실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매 순간 주어진 배역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에요. 일단 지금 영화 <보스>에서 제 역할에 충실하고, 탱고를 열심히 춰야겠다는 생각이에요. 하하.”
그런 열정 덕분에 정경호 씨의 연기가 더욱 빛이 나는 듯합니다. 배우로서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계신데, 본인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인생에서 연기의 시기를 구분 짓는다면 지금은 어느 정도에 와 계실까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너무 감사합니다. 얼마 전에 든 생각인데, 제가 정말 딱 중간에 와 있다고 느껴요. 나이로 보나 경력으로 보나… 현장에서도 이제 신인도 아니고 아예 선배도 아니에요. 어찌 보면 애매모호할 수도 있지만, 어제 동갑내기 이규형 배우와 함께 술 한잔하면서 ‘이게 정말 중요한 위치고 역할인 것 같다’는 대화를 나눴는데요. 현장에서 여러 선후배 간의 다리가 되고 때로는 중심을 잡으면서 이 시기를 잘 보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대중들에게 어떤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나요?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저는 항상 사람들이 저를 궁금해하면 좋겠다고 말씀드려요. 제가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 나왔을 때, ‘정경호는 어떤 역할을 맡았을까? 또 어떻게 표현을 할까?’ 이렇게 기대되는 배우가 된다면 정말 제 꿈이 이루어지는 거죠.”
모두의 찬사를 받는 실력을 갖췄음에도 연기에 대해 말하는 배우의 태도는 시종일관 겸손했다. 진지한 눈빛과 조심스럽게 고른 말들에, 일과 동료를 귀히 여기는 성품이 엿보였다. 프로의식 가득한 이 배우는 과연 어떤 와인을 마실까? 배우의 취향처럼, 시원하게 준비된 화이트 와인을 따라 술잔을 부딪쳤다.
값비싼 와인보다,
언제나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와인이 좋아요
영화 <압꾸정>에서 강대국과 훔친 와인을 함께 나누며 본격적으로 가까워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실제로도 와인을 자주 마시나요? 주로 누구와, 어디에서 와인을 마시는 편인가요?
“저는 집을 정말 좋아해서, 거의 주로 혼자 많이 먹는 편인 것 같아요. 혼자 소주는 아닌 것 같아서 와인으로 갈아탄 지가 오래고요(웃음). 누가 혼자 집에서 뭐할 때 가장 행복하냐고 물으면 일 끝내고 샤워하고 시원한 와인을 마시며 내가 보고 싶었던 영화 볼 때라고 대답해요. 감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나오는 영화를 거의 다 봐요. 그만큼 영화 보는 걸 너무 좋아하고, 그런 시간 속에서 에너지를 충전하거든요. 그래도 함께 한다면 지인들, 주로 매니저 형이나 여자친구인 것 같아요.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내다 보니 같이 술을 나누며 관계가 깊어지기도 했겠죠?”
이전 인터뷰 영상에서 “국밥집이든 포장마차든 백팩에서 와인을 꺼내 마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페어링에 일가견이 있어 보이시는데, 혹시 따로 추천 해주실 음식과 와인의 조합이 있을까요?
“와인이라는 술은 곧 페어링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있어 와인은 음식과 함께할 때 정말 제맛이 나거든요. 그래서 일단 음식을 선택하고 그에 맞는 와인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어제는 화이트 와인을 문어 솥밥과 함께 먹었는데요. (일순간 눈망울이 빛나며) 너무 맛있었어요. 또 다른 조합을 추천해드리자면, 살짝 버터향이 나는 조개찜에 샤도네이, 이렇게 먹으면 너
무 좋겠죠.”
평소에 소비뇽 블랑을 즐겨 드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선택하신 와인은 끌로 앙리의 소비뇽 블랑입니다. 이 와인은 로버트 파커가 ‘뉴질랜드의 친환경 테루아를 고스란히 담은 와인’으로 뉴질랜드 대표 소비뇽 블랑으로 유명한 와인인데요. 이 와인을 선택한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소비뇽 블랑은 선명하면서도 드라이하고 상쾌한 매력이 있어서 어떤 음식과 함께해도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어디서나 무엇과도 잘 어울리는, 그런 점에선 저와 결이 맞는달까요. 와인은 종류가 너무나도 다양하고 가격대도 천차만별이잖아요. 그래서 누군가 대접해드리거나 대접받을 때 ‘와인 어떤 거 드실래요?’라는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요. 가장 무난하면서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게 바로 소비뇽 블랑인 것 같아요.”
앞으로 계속 마시고 싶은 와인을 한 가지만 고르실 수 있나요?
“상큼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라면 족할 것 같아요. 항상 편한 마음으로 즐기는 와인, 그게 제일 좋은 거 아닐까요?”
정경호 배우는 인터뷰 말미에 “사실은 저도 ‘로마네 꽁띠’ 매일 먹고 싶죠!” 농담을 던지면서도, 결국 일상에서 편하게 마실 수 있는 와인이 좋다고 말한다. 소탈한 그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와인을 즐길 줄 애호가의 면모가 엿보인다.
무엇과도 잘 어울린다는 그의 ‘최애’ 와인처럼, 정경호 배우는 주변 스태프는 물론 <NARA> 취재팀과도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소비뇽 블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본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무렵, 와인 한 잔과 함께하는 인터뷰도 끝이 났다. 그야말로 ‘인간 소비뇽 블랑’, 매력적인 배우 정경호의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글 · 김유라
사진 · 강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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