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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문화톡톡] <태안> ― 최대 민간인 집단 학살, 죽음을 통한 복수와 생존을 위한 화해
[서곡숙의 문화톡톡] <태안> ― 최대 민간인 집단 학살, 죽음을 통한 복수와 생존을 위한 화해
  • 서곡숙(문화평론가)
  • 승인 2023.09.11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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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안>, 좌익/우익의 대립과 최대 민간인 학살의 현장

 

<태안>(구자환, 2022)은 좌익/우익의 대립과 최대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그려낸다. 이 작품은 한국전쟁 때 보도연맹, 부역혐의, 적대세력 관련 좌익/우익의 대립으로 한국전쟁 최대 민간인 학살의 현장이 된 태안을 다룬 다큐멘터리영화이다. 1950년 충남 태안군에서 국민보도연맹원 학살이 시작되며, 7월에 태안경찰서가 후퇴하기 직전에 사기실재에서 115명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인민군이 적대세력을 처단한다는 이유로 116명의 민간인을 학살한다. 세 학살사건을 시작으로 보도연맹·부역혐의(좌익)과 적대세력(우익)으로 인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대참사가 일어난다. 이 영화에서 1950년 민간인 학살사건 당시 13-20살이었던 청소년은 72년이 지난 2022년에 85-92세의 노년이 되어 과거 사건을 회상한다. 이 영화는 과거의 끔찍한 역사와 현재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교차시킨다.
 

2. 치욕스러운 역사보다 더 부끄러운 것은 외면하는 현실

 

<태안>은 치욕스러운 역사보다 더 부끄러운 외면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과거 백화산의 좌익 보도연맹 화형, 사기실재의 좌익 부역혐의 몽둥이로 때려죽이기, 양대리의 우익 적대세력 총살형과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등 학살사건을 들려준다. 좌익과 우익 세력이 권력을 잡을 때마다 상대편 세력을 학살하며, 그 학살에 대한 복수로 잔인한 학살이 계속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사적 갈등과 원한에 의한 밀고로 억울한 희생자의 죽음이 발생하며, 학살의 주동자가 마을 사람들이기 때문에 서로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알아 피해가 더 크게 나타난다.

이 과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연좌제이며, 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의 가족들도 모두 학살당하게 만들며, 이에 대한 두려움에 가족의 시체를 매장하지 못하고 방치하게 된다. 죽은 영혼의 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복수는 폭력의 확산, 복수의 악순환, 죽음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복수는 잔인하게 죽이는 방식으로 억울한 죽음을 확산시킨다.

현재 국회 앞 과거사법 재개정 촉구 시위에서 세월호 유민아빠 김영오는 “참혹한 역사적 진실 앞에서 치욕스러운 역사보다 외면하는 현실이 더 부끄럽다.”라고 말한다. 한편 살아남은 생존자는 걸리면 다 죽는 시절에 목숨을 구해준 은인 아주머니 묘지를 참배한다. 전반부 스타일에서 김영오가 태안 학살사건 위령비를 바라보는 장면은 쓸쓸한 뒷모습을 통해 태안 민간인 학살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건을 연결시키며 고통과 트라우마의 연계를 표현한다. <태안>은 백화산, 사기실재, 양대리를 중심으로 화형, 몽둥이로 죽이기, 총살, 죽창으로 찔러 죽이기 등 끔찍한 학살 현장을 들려주며, 완전한 과거 청산을 주장하는 현재와 좌익/우익 학살의 과거를 교차시킨다.
 

3. 역사를 기억하되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기

 

<태안>은 역사를 기억하되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기를 제안한다. 과거 육섬의 좌익 부역혐의 학살, 장삼포의 좌익 부역혐의 수장, 딱쿵골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과 몽둥이로 죽이기, 사직고개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과 몽둥이로 죽이기, 금광굴의 좌익 가족 쇠스랑으로 죽이기, 장산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 사기실재의 좌익 부역혐의 화형, 근흥면 수장 등 학살사건을 들려준다. 과거 사건에서 대부분의 희생자는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이다. 이승만 정권이라는 우익정부 하에서 경찰들의 지인이 치안대가 되고, 지사장에게 뇌물을 주는 인물이 의경대장, 치안대장이 된다. 경찰과 치안대는 벌금 명목으로 좌익 가족의 재산을 몰수하고, 정치 활동을 하지 않는 의사를 죽여 그 아내를 빼앗는 등 물적, 인적 자산을 빼앗기 위해 이념의 학살을 이용한다.

이 영화에서 백화산 사기실재가 계속 반복해서 등장한다. 평천리 사기실재가 백화산 한티재이다. 이 학살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는 백화산 사기실재이다. 많은 유족과 증인이 말하는 장소가 바로 여기이다. 백화산 사기실재는 보도연맹 좌익세력을 잡아 장작을 쌓아 놓고 석유를 뿌리고 줄로 엮어서 불을 붙여 화형을 시킨 현장이다. 백화산 사기실재 보도연맹 115명의 학살사건이 바로 태안의 대참사의 시발점이 되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현재 가세로 태안군수는 합동 추모제에서 “역사를 기억하고 잊지는 마시되 용서를 좀 해줍시다.”라고 당부한다. 유족들은 학살의 당사자들은 미워도 그 가족은 미워하고 싶지 않다며 눈물을 흘린다. <태안>은 과거 육섬, 딱쿵골, 사직고개, 금광굴, 장산, 사기실재를 중심으로 좌익 부역혐의 관련자에 대한 수장, 총살, 몽둥이로 죽이기, 쇠스랑으로 죽이기, 화형, 재산몰수, 여자 빼앗기 등 잔인하고 처참한 죽음의 현장을 들려주며, 현재 역사를 기억하되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기를 소망한다.

<태안> 중반부의 스타일은 익스트림롱숏, 클로즈업을 통해 객관적 시선, 슬픔 공감을 표현한다. 안면도 장삼포 해수욕장에서 강희권 태안유족회 이사와 김영호 세월호 유민아빠가 바닷가를 걷는 장면에서 익스트림롱숏과 오른쪽에 치우친 인물의 미장센은 과거 학살의 현장과 현재의 학살사건 조사를 병치시키는 객관적 시선을 표현한다. 14살 때 보도연맹으로 아버지가 취조당한 후 총살당한 과거를 회상한 유족이 오열하는 장면은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 눈물을 흘리는 얼굴, 서로 맞잡은 유족과 김영오의 손을 클로즈업함으로써 슬픔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4. 보복살인의 잔인한 죽음과 화해로 나아가기

 

<태안>은 복수하기 위해 죽이기와 살기 위해 화해하기를 보여준다. 과거 가의도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 질목해안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 방죽안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과 몽둥이로 죽이기, 닻개의 좌익 학살, 솜틀다리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 갯고랑의 좌익 부역혐의 총살과 대창으로 찔러 죽이기 등 학살사건을 들려준다. 초기에 보도연맹 학살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는 관련자인 부역혐의 학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연좌제로 인한 무고하고 죄 없는 희생자가 늘어나고, 보복 살인으로 인한 잔인하고 처참한 죽음이 발생한다.

폭행과 살인뿐만 아니라 성폭행도 발생한다. 치안대가 젊은 여성들을 나체로 발가벗겨놓고 성행위를 강요하여 억지로 성폭행을 하거나 거부하면 죽을 만큼 폭행을 하는 사건들도 발생한다. 학살사건이 진행될수록 부역혐의와 무관한 주민들이 개인적 갈등, 분노, 원한으로 무고하게 잡혀가고, 연좌제가 두려워 친척들이 숨겨주지 않아 끝내 붙잡혀 학살당한다. 총살, 몽둥이로 때려죽이기, 대창으로 찔러 죽이기 등 복수를 위한 잔인한 살인으로 짐승만도 못한 죽음과 억울한 원한이 발생한다. 현재 유족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학살 당사자와 잘 지냄으로써 복수를 중지하고 화해하는 삶을 살고자 한다. <태안>은 가의도, 질목해안, 방죽안, 닻개, 솜틀다리, 갯고랑을 중심으로 총살, 몽둥이로 죽이기, 대창으로 찔러 죽이기 등 보복 살인으로 인한 잔인한 죽음을 말하면서 복수에서 화해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태안> 중반부의 스타일은 교차편집, 자막을 통해 죽음의 상실과 고통, 아이러니, 역사적 트라우마를 표현한다. 만리포 해수욕장에서 유족이 모래사장 웅덩이에서 학살당한 어머니의 죽음을 증언하는 장면은 처참한 죽음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 통곡하고 싶은 슬픔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모습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면서 죽음의 상실과 고통의 시간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다. 태안문화제에서 풍물패 공연을 관람하는 장면은 신나게 연주하는 풍물패 공연, 기뻐하며 박수를 치는 관객의 모습과 함께 슬픈 음악소리를 병치시키는 교차편집으로 웃음/울음의 아이러니를 표현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강을 따라가는 공중촬영 숏은 최대의 민간인 학살 현장인 태안(과거)과 평온하고 넉넉한 삶이 있는 태안(현재)을 영상과 자막으로 대비시킴으로써 부조화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5. 잊으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다

 

<태안>은 잊으려 하지만 지워지지 않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보여준다. 태안의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보도연맹(좌익) 140여명, 부역혐의(좌익) 1100여명, 적대세력(우익) 136여명이 학살당한다. 140여명 보도연맹이 좌익 당사자이고 136여명의 적대세력이 우익 당사자라면, 1100여명의 부역혐의는 연좌제로 인한 희생자이다. 태안 민간인 학살사건에서 좌익 140여명과 우익 136여명의 학살에서 균형을 깨뜨리는 것이 바로 무고한 희생자 1100여명의 죽음이다. 보복살인으로 인한 억울한 죽음은 태안 전체를 복수의 악순환에 휘말리게 만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두 명의 화자는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태안유족회의 강희권 이사는 태안 학살사건의 이해 당사자이지만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화자이다. 세월호의 유민아빠 김영오는 태안 민간 학살사건과 세월호 침몰 사건의 연계를 통해 억울한 죽음과 피해자 가족이라는 공통점을 보여주는 화자이다.

이 영화는 대부분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이고 가끔 현재가 삽입되는 형식을 보여준다. 현재에서는 두 가지 입장이 나눠진다. 확실하게 과거를 밝히고 재청산하자는 입장과 기억은 하되 용서하고 화해하자는 입장이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입장을 모두 견지한다. 처음에는 과거를 확실하게 밝히자는 입장을 보여주고, 마지막에는 복수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 화해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화해해야 한다는 유족의 생각을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과거 재청산과 함께 화해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큐멘터리영화 <태안>은 우익보다 많은 좌익 희생자, 압도적인 억울한 죽음을 보여주며, 이해당사자의 정보와 제3자의 공감을 바탕으로 과거의 재청산과 현재의 화해를 제안한다.

 

사진 출처: 네이버의 <태안> 포토
 

 

글·서곡숙
문화평론가 및 영화학박사. 현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총장,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 전주국제영화제 심사위원, 대종상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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