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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모든 영화 감독은 도둑이다
[김경수의 시네마 크리티크] 모든 영화 감독은 도둑이다
  • 김경수(영화평론가)
  • 승인 2023.10.0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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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집〉(2023), 김지운
출처-다음 영화
출처-다음 영화

김지운 감독의 오랜 팬으로 그의 자전적 영화를 기다렸다. 감독 필모 전반에 깃든 부조리라는 주제의식과 거기에 인용되는 온갖 레퍼런스, 장르 문법 안에서 그 레퍼런스가 조합되는 방식이 선명히 보이는 데에 비해서, 그 이면의 김지운이라는 인간을 보기가 힘들어서다. (김지운 감독의 사적인 이야기는 2008년에 출간된 그의 에세이김지운의 숏컷에서 마음껏 볼 수 있기는 하다.) 이는 영화마다 장르를 달리하는 스타일리스트 김지운 감독의 개성이다. 블랙코미디부터 호러, 서부극, 슬래셔, 에스피오나지, SF까지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했다고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다른 장르에 도전하는 실험 정신을 고수하면서 (감독 본인의 말대로라면) 인생의 아이러니와 소통이 부재한 부조리한 인간 군상을 담으려 한다. 매번 다른 도전을 하는 감독의 심정을 더 궁금해하는 것은 평론가로 마땅히 가질 수 있는 호기심이다. 그의 신작거미집(2023)의 재미는 인간 김지운이 영화 곳곳에서 보인다는 것이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에는 그의 자전적인 경험이 다소 반영되어 있어서다. 완성도와는 별개로 본인의 필모를 집대성하고, 그의 무의식이 드러나기에 흥미롭다.

거미집1970년대 무렵의 한국 영화 현장을 배경으로 한다. 이틀 동안 영화 속 영화 거미집의 엔딩을 재촬영해야만 한다는 집념에 눈이 먼 감독 김열(송강호)을 중심으로 좌충우돌하는 인간 군상을 담은 블랙코미디다. 김열 감독은 머리에 맴도는 엔딩을 찍으려 신성 필름의 백 회장(장영남)에게 촬영을 재개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실패한다. 하지만 제작사를 물려받기로 예정된 제작자 미도(전여빈)가 김열의 시나리오에 감동한 나머지 촬영을 허가한다. 김열과 미도는 문공부의 검열을 무시하고 촬영을 강행한다. 조감독은 배우에게 이틀이 아니라 하루 만에 촬영이 끝날 것으로 거짓말을 한다. 문공부에서 관료가 단속하러 오자마자 양주를 먹여서 재운다. 이처럼 거짓말과 오해가 하나씩 불어갈수록 촬영장에는 언제 닥칠지도 모르는 파국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제작자와 배우는 물론, 스태프까지 각자 사정으로 인해서 충돌하고 촬영장은 아수라장이 되기 시작한다. 촬영장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기에 트뤼포의아메리카의 밤(1973)가 연상된다. 영화 곳곳에서 잔재미가 드러나지만, 반복된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힘들다. 또한 탐정 메소드를 하는 배우 등의 설정은 불필요하며, 후반의 연출은 과잉되었다는 인상이 강하다. 또한 김열 감독이 행동하는 동기에 비해서 김열의 행동이 다소 약하다든지, 숏과 숏 사이가 성기다고 느낀 점 등등 지적할 만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에 정감이 가는 이유는 그럼에도 이 영화가 감독 본인의 절절한 고백이자 응원이라 느껴져서다.

거미집은 소통의 부재와 아이러니라는 김지운 감독 고유의 보편적인 주제를 담아내되, 2020년대 이후 영화()의 위기에 응하려는 감독의 문제의식까지 더해진 메타-영화다. 이는 해외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경향이기도 하다. 데이미언 셔젤의바빌론(2023)과 스티븐 스필버그의파벨만스(2023) , 웨스 앤더슨의애스터로이드 시티(2023) 등 영화가 그 사례다.바빌론1920년대로 돌아가 그 당시의 영화 현장으로 되돌아가서는 영화인의 초상을 찍으려 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이러한 메타-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다. 영화에 불안과 위기에서 나오는 플롯은 영화 매체와 그리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정전canon을 찍은 감독에 대한 숭배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다. 포르노와 스너프 필름, 할리우드의 치정과 문란을 위악적으로 그려내면서도 영화 매체가 영원할 것이라는 자의식과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바빌론의 사례가 그러하다. 기행이나 범죄를 일삼는 천재를 숭배하는 19세기의 예술가상은 (천재로 불린 여러 감독의 성폭력을 고발한) 2010년대 중반 미투#metoo 운동을 기점으로 더는 호소력을 지니지 않는다. 또한 숭배는 양화의 외연을 보수적으로 한정하면서도 결국은 제 영역을 지키려는 나르시시즘을 강화한다.거미집은 이러한 흐름을 따라가지 않는다. 되려 거스르려고 한다. 창작 과정에서 김열이 느끼는 광기가 드러나지만 어쩐지 중후반부부터 무력하고 어설프기 그지없다.

영화는 김열의 꿈으로 시작한다. 꿈의 내용은 김열이 생각하는 영화 거미집의 이상적인 엔딩의 일부다. 김열은 약을 먹으면서까지 꿈이 머리에 맴도는 것을 털어버리려 애쓰지만 실패한다. 이는 전작인랑(2018)의 감독판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는 감독 본인의 모습이 투영된 모습이기도 하다. 문제는 김열이 복용하는 약이다. 김열이 본 환상이 약물로 인한 정신착란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여기저기에 깃들어 있다. 이는 그의 초기작인장화, 홍련(2003)의 후반부, 모든 것이 수미(임수장)의 해리성 장애로 그려지는 상황과도 이어져 있다. 이는 중반부에 이르러서 신상호(정우성)을 보는 환상으로 이어진다. 이 환상마저도 결국 김열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죽은 신상호라는 환상에다가 투영한 나르시시즘이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감독의 전작달콤한 인생(2005)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프닝에서 움직이는 것은 바람입니까, 나무입니까?”라고 질문하는 선문답을 외우는 선우(이병헌)의 나레이션은 선우의 나르시시즘과 이어져 있다. 이는 엔딩에 이르러 영화가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하기가 힘든 상황으로 이어진다.거미집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체가 김열의 환상일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영화 전반에 감돈다. 이는 영화 안과 영화 바깥의 문제로 연결된다.거미집은 영화 안밖의 경계가 사라지는 과정을 드러낸다. 강호세(오정세)와 한유림(정수정) 사이의 염문이 영화 플롯에 즉시 반영된다든지 하는 상황이 생길수록 더욱 그러하다. 김지운은 영화를 꿈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거기서 영화의 가치를 발견하려고 한다.

문제는거미집과 영화 속 영화 거미집사이의 연결고리에 있다.거미집은 영화 속 영화, 1970년대의 양식화된 스타일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에서 관객의 이목을 끈다. 흑백 연출하며 과장된 연기와 후시녹음 등 1970년대 영화에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스타일이 영화 중간중간에 삽입된다. 관객이 보는 촬영 현장과 그 촬영을 한 장면이 달라서 생기는 흥미는 곧장 사라질 수밖에 없다. 그 충격 효과는 장면이 거듭될수록 줄어드는 한계가 있는 셈이다. 거미집은 대신에 1970년대 영화의 미장센을 토대로 시각적인 유희를 펼친다. 거미집은 어떠한 사회적 메시지를 담는 영화라기보다는 이미지를 조립하는 원초적 재미에 기반한 영화다. 감독이 레퍼런스로도 언급한 김기영의 삶과 여러 영화, 이만희의마의 계단(1964)와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디아볼릭과 히치콕의 영화는 거미집의 오마주로 작동하지 않는다. 되려 거미집의 시각적 스타일만을 지탱할 뿐이다. 이는 김지운 감독 자신의 작법과도 비슷하다.

 

출처-다음 영화
출처-다음 영화

김지운 영화의 내러티브는 다소 불친절하다. 앞서 말했듯 부조리와 삶의 불가해를 드러내고 있기에 인과가 급작스레 발생하거나 성립되지 않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한유림과 강호세의 과잉된 사연이 쏟아져나와서 관객의 이목을 끈다. 한유림과 강호세가 이 영화 촬영에 임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정작 영화의 중심인 이민자(임수정)과 오여사(박정수)의 사연은 드러나지 않는다. 김지운 감독은 서사를 구성하는 인과를 설명하는 대신에 맥거핀, 과잉된 이미지로 스타일 자체에 눈을 가게 하는 스타일을 고수했다. 거미집뿐만 아니라 거미집의 플롯도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며, 관객은 끊긴 인과 대신에 말 그대로 시각적인 기호 혹은 장르의 과잉을 마주한다. 이 감독의 영화을 보는 감흥을 되새겨 보자. 장 피에르 멜빌의 느와르와 클로드 소테의 겨울의 심장(1992)을 적당하게 버무린 듯하지만, 제목은 페데리코 펠리니의 영화를 참고해서 만든달콤한 인생의 경우가 이 과잉을 잘 드러낸다. 오마주도 패러디도 아니다. 출처 인용 없이 그 이미지만 본떠서 하는 혼성 모방으로 보아야 마땅한 작법이다. 김지운 감독의 작법은 타란티노의 영화 작법과 닮은꼴로도 보인다. 타란티노가 B급과 A급의 경계를 허문다면, 김지운 감독은 국경과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 거기서 보편적 인간을 다루려 한다.

거미집도 레퍼런스가 곳곳에서 범람한다. 김열 감독이 분장한 사냥꾼의 대사에서 등장하는 살려는 의지살인 나비를 쫓는 여자(1982)의 대사를 그대로 훔쳐다 쓴 것이지만, 맥락이 성립되지 않는다. 마의 계단의 나선형 계단, 디아볼릭의 치정극 등이 뭉쳐져 드러나지만, “거미집은 그저 부조리를 드러내는 영화로만 설명된다. 이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장면이 바로 신상호가 죽는 장면이다. 원하는 장면을 찍은 신상호가 죽기 전, 신상호 감독이 찍는 장면을 돌아보자. 이때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데도 거기 걸린 초상화는 셀린 시아마의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을 노골적으로 따라 한다. 이 장면이야말로 이 영화가 1970년대 이야기지만 결국은 지금-여기에 있는 자신의 이야기라는 김지운 감독의 재치를 드러낸다. 또한 1970년대와 2020년대를 하나로 합성할 수 있는 횡단적인 상상력이야말로 오직 영화에서만 가능한 유희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는 인터넷 밈이 조합되는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김지운 감독은 거미집”, 그리고거미집이 영화 속의 배우 각각의 치정극은 물론 영화사의 정전을 훔쳐서 만든 도둑질의 산물이라는 것을 드러내면서도 무덤덤하다. 이는 김열의 사연과도 이어진다. “거미집의 촬영이 끝난 다음에 허심탄회하게 앉은 김열의 모습이 드러난다. 김열이 제일 먼저 회상하는 것은 신상호의 목숨을 앗아간 화재다. 그때 김열은 돈을 들고 달아나는 백 회장과 마주한다. 김열은 신상호 감독의 시나리오를 들고 달아나려고 한다. 이는 둘 모두의 치부라고 할 수 있다. 그제야 영화 제작자를 위로하는 감독의 따스한 시선이 드러난다.

김열은 남의 것을 훔쳐서 성공한 감독이다. 그는 자신이 재능이 없으며, 독창적이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김지운 감독은 그것이야말로 시네마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영화감독은 훔치는 이다. 또 영화는 상대방의 것을 훔친들 표절이 잘 제기되지 않는 매체다. 영화는 공공재인 셈이다. 거미집은 김열이 도둑이라는 것을 인정한 다음에야 그의 영화를 재생한다. 본인의 의도대로 플랑-세캉스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 몰라도, 또 그 플랑-세캉스가 본인의 나르시시즘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영화를 완성할 수 있는 감독으로 성장한 것만은 관객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다. “거미집의 엔딩에서 모든 배우는 거미줄에 칭칭 감겨 있다. 영화는 거기서 끝난다. 마치 롤이 말려서 끝나듯이.거미집은 독창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진정성에 함몰된 감독 지망생의 실패를 응원한다. 되려 자신이 성실한 도둑이며, 그 도둑이 합법적으로 가능한 세계가 영화라는 것을 적극 드러낸다. 바야흐로 콘텐츠의 세계다. 영화마저 콘텐츠라 불리며 인사이트와 상품을 재가공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콘텐츠는 결국 저작권과 자본주의의 논리에 속박당할 수밖에 없다.거미집은 영화가 타인의 인생과 삶을 훔칠 수 있는 합법적인 공간이라는 것을 통해서 영화의 고유성을 증명하려고 한다.

 

 

글·김경수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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