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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디센던트>, 알렉산더 페인의 균형 감각
[김채희의 시네마 크리티크] <디센던트>, 알렉산더 페인의 균형 감각
  • 김채희(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14 09: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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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어떤 ‘악인’이 있었다. 그는 생전에 무수히 비난받았다. 그의 죄목은 일일이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그런 그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유서를 남겼다. 자신에게 가해진 비난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되었으며, 그것들 중 실제로는 대부분이 ‘무죄’라는 항변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편지의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어떤 측면에서는 미안하다고 익명의 누군가에게 덧붙였고, 평생 외로웠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그의 죽음 앞에 인과응보를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 여전히 그의 죄를 둘러싼 수사가 계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 훨씬 다수를 차지하는, 침묵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어떨까? 죽으면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여길까? 망자를 비난하는 것은 윤리에 어긋난다고 여겨 목소리를 자제할까? 우리는 죽음 앞에 경건해지고 떠난 자에 대해서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래서 되도록 망자를 비난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품격이라고 여겨왔다. 이제 그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그를 둘러싼 모든 소송은 중단될 것이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은 산 자에게 해당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무기명으로 쓴 이 이야기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약간의 설명만 덧붙여진다면 바로 알 수 있는 사건이다. 나는 언론이 악인이라고 보도한 그와 일면식도 없다. 그래서 악인이라는 단어로 그를 규정하는데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죽음’이라는 사태가 부지불식간에 나를 사로잡아 ‘윤리’라는 덕목 앞에 세운 결과다.

<디센던트>의 주인공 맷(조지 클루니 분)은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일에 파묻혀 살면서 가정에 아주 충실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부모와 남편이었으며, 자신의 분야에서 꽤 성공한 변호사다. 그에겐 딸 둘이 있는데, 그들의 양육은 거의 아내 엘리자벳이 맡고 있다. 그래서 아이들과 소통도 어렵고 아내와도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중이다. 아내는 커뮤니티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면서 지낸다. 감독이 설정한 맷과 엘리자벳은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형의 부부라서 그다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그런데 아내가 수상스키를 타다가 사고를 당해 뇌사에 빠졌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오프닝이다. 본편은 맷의 자조적인 독백으로 시작한다. 맷은 엘리자벳의 죽음을 앞두고 번민한다. 왜냐하면 극 중반에 그녀가 ‘악인’으로 밝혀지기 때문이다.

 

 

2. 천국의 삶은 어떨까?

"본토에 사는 친구들은 내가 하와이에 산다는 것만으로 무슨 천국에 있는 줄 안다. 마치 영원한 휴가처럼 엉덩이 흔들고 파도타기나 즐기는 줄 아는 것이다. 그게 제정신으로 할 소리인가? 우린 삶을 초탈한 줄 아나? 우리가 걸린 암은 덜 위험하고 우리의 두통은 덜 고통스럽기라도 하단 말인가? 젠장! 나도 파도를 타본 지 15년이나 지났다. 지난 23일 동안은 혈관 주사기와 식도 삽입기 그리고 소변 주머니들 천국에서 지냈다. 그런데 천국이라니? 천국은 무슨 얼어 죽을 소린가?"

이 독백으로 인해, 나는 <디센던트>를 속단하고 말았다. 이 영화는 ‘천국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지옥’을 다룬 내용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맷에겐 10살, 17살짜리 두 딸이 있는데, 이 소녀들은 통제 불능이다. 그가 뇌사에 빠진 아내를 돌보는 동안, 골칫덩이들은 아버지를 잘 도와주지 않는다. 이쯤 되면 이 멜로 드라마의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아내/어머니의 부재 이후, 그들에게 찾아온 위기. 이를 다 같이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다시 하나가 되는 가족 이야기. 무대는 하와이 호놀룰루, 맷의 본토 친구들이 '천국'이라고 불렀던 곳이다. 한해 천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낭만 가득한 휴양 도시에도 비참하고 힘든 삶은 존재한다. 외부인에게 이곳은 각종 해양 스포츠와 칵테일 그리고 훌라춤을 떠올리게 하지만, 이 천국에서도 삶은 지리멸렬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만하지 않는가? 이것은 영화가 시작할 즈음, <디센던트>를 보고 생각한 주제였다.

<디센던트>는 아내 엘리자벳의 뇌사 뒤에 또 다른 이야기를 숨겨놓으면서 나의 교만을 비웃는다. 그녀는 단순히 뇌사에 빠진 것이 아니라 내연남과 밀회를 즐기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다. 엘리자벳은 일에 빠져 사는 남편과의 결혼생활보다 이웃과의 사교활동에 매진하며 이를 통해 외로움을 달랜다. 그러던 중 부동산 중개인 브라이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둘이 해변에서 데이트를 즐기다 사고를 당한다. 우리가 맷의 입장이라면, 엘리자벳을 어찌 바라봐야 할까? 이 영화의 다른 점은 결혼생활의 불만을 늘어놓거나, 한때 불장난이었다고 용서를 빌거나 해야 할 그녀가 어떤 자기 변론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지금 죽어간다.

 

맷에게 아내의 불륜을 알려준 사람은 다름 아닌 말썽꾸러기 큰딸, 알렉산드라다. 맷은 딸에게 아내의 소식을 전한다. 오열하던 알렉산드라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버지에게 지난 크리스마스 때 목격했던 어머니의 불륜에 관해 털어놓는다. 그전까지 맷은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가 깨어나기만 하면 일을 줄이고 가족을 위해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이제 영화는 처음 짐작했던 속단과 완전히 멀어졌다. 그들은 여행을 떠난다. 세상 물정 모르는 막내딸, 스카티와 성인의 세계를 조금은 맛본 말썽쟁이 큰딸 알렉산드라, 여기에다 이 큰딸이 자신보다 더 믿고 의지하는 바보 남자친구 시드와 함께 말이다. 이 기묘한 조합의 무리는 대역죄인, 엘리자벳의 불륜 상대를 찾는 탐사를 시작한다.

 

 

3. 당신은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알렉산드라는 엄마의 불륜 상대 얼굴은 알지만, 이름도 모르고 그의 소재도 모른다. 그래서 맷은 엘리자벳과 가깝게 지낸 친구를 찾아간다. 아내의 불륜 상대에 대해서 정보를 요구하는 맷에게 이 친구는 우정을 발휘하며 끝내 이름을 말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여자들끼리, 남자들 또한 그들만의 우정이 있은 법. 맷의 심경을 헤아리는 그녀의 파트너가 불륜 상대의 이름이 ‘브라이언 스피어’이며 부동산 중개인이라는 사실까지 알려준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이 섬에 상주하는 인물이 아니기에 그를 찾는 일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처럼 어렵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다! 해변 모래밭에서 아침 조깅을 하는 브라이언과 마주친 것이다. 우리는 이 기적을 용서해야 한다. 지금까지 잘 진행되던, 웰 메이드 드라마에 단 한 번 실수를 저지른 감독, 알렉산더 페인에게 우리는 관대할 필요가 있다. 사실 이 실수는 그가 카우이 하트 헤밍스(Kaui Hart Hemmings)의 원작 소설을 충실하게 옮기느라 벌어진 일이기에 우리는 페인만 나무랄 수 없다. 맷은 원작자가 설계한 우연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를 몰래 추적해 집을 알아놓는 데 성공한다.

 

맷은 혼자만의 고민에 빠진다. 이름도 거처도 직업도 모두 알게 되었지만 브라이언 앞에 어떻게 등장할 것이며 그에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맷은 전망 좋은 브라이언의 임시 거처 앞에 아이들과 함께 기다린다. 이윽고 브라이언의 아내 줄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해변으로 나온다. 맷은 그녀에게 다가가 일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으로 안면을 튼다. 그리고 이 모든 사실을 알렉산드라에게 말하고 그녀와 함께 브라이언의 집에게 간다. 영민한 딸은 줄리에게 집구경을 부탁하고, 그 사이에 두 남자는 운명적인 대면을 한다. 당신이라면 무슨 말을 하겠는가? 맷은 아내가 한눈을 판 남자의 생김새가 궁금했을 것이고, 그의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것이다. 맷은 브라이언에게 몇 가지를 묻는다.

 

맷: 어디서 만났나?

브라이언: 슈퍼볼 파티에서 만났어요

맷: 그녀가 날 떠난다고 하던가?

브라이언: 아마도요. 하지만 저는 원치 않았어요, 전 줄리를 사랑해요. 제발 그녀에게 말하지 말아 주세요. 정말 죄송해요.

맷: 그녀가 사랑한다고 말하던가? (브라이언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를 사랑했나? (이 질문에 브라이언은 답을 하지 못한다) 넌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었군. 나한테 접근하려고 이용한 거였어.

브라이언: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끌렸다고요.

마지막 질문은 직설적이다.

맷: 내 침대에 몇 번이나 들락거렸나?

브라이언; 한 번이요.

맷: 아주 관대한 거짓말이군!

브라이언: 알았어요. 두 번이요.

 

브라이언은 엘리자벳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맷이 소유한 땅을 자신의 처남에게 팔도록 유도하려고 그녀에게 접근했다. 이런 그의 의도도 모른 채, 엘리자벳은 브라이언과 불장난에 빠졌다. 이제 맷의 궁금증은 모두 풀렸다. 그렇다면 맷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그는 이 남자가 그다지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안심한다. 하지만 그녀가 브라이언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이 질투심을 유발하는 대상이 형편없다는 사실로 인해, 아내에 대한 감정은 경멸과 분노 사이를 오간다. 맷은 아마도 브라이언의 불순한 접근으로 인해 잠시 아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고 치부하려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야만 죽음을 앞둔 아내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의 무능과 부족함이 초래한 자괴감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남자의 대화 장면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했다. 짧지만 맷과 관객이 궁금한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장면 이후, 맷은 아내를 용서하고 그녀를 떠나보내면서 다시 삶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이 역시 또 다른 속단이었다.

 

 

4. 식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찰

처음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긴 했다. ‘후손들’이란 뜻을 가진 영화 제목, ‘디센던트(The Descendants)’가 도대체 영화 내용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두 번의 변곡점을 거친 영화는 중반부가 넘어가고 나서야, 비로소 제목과 연동해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비밀은 주인공 맷의 성(姓)에 있다. 그의 성은 참으로 거창하게도 ‘King’이다. 킹이라는 성이 아주 드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드라마에 ‘왕’을 등장시키는 데는 분명 모종의 함의가 있을 것이다. 심지어 맷은 꽤 여러 번 자신의 성을 들먹이기까지 한다. 맷의 고조모는 하와이 왕국의 초대 왕이었던 카메하메하 1세의 후손이며, 이 왕가의 마지막 공주였다. 그런데 은행원이었던 맷의 고조부 에드워드는 어쩐 일인지 공주와 사랑에 빠져 하와이에 정착했고, 그 일족이 오늘날까지 ‘고향’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영화에는 자세한 설명이 생략되어 있지만 아마도 고조부는 카메하메하의 직계인 배우자의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 성을 바꿨을 것이다. 카메하메하의 일족이 된, 킹 일가는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고 그동안 땅 대부분을 팔아치웠음에도 불구하고 3천만 평이 넘는 미개발지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이 영화는 에드워드의 ‘후손들’이 이 땅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유심히 지켜보면서 세 번째 변곡점에 돌입한다.

1893년 하와이가 미국으로 편입된 이후, 이곳에서는 다른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문화적 갈등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중반 하와이로 선교사, 은행가, 토지 개발자들이 골드러시를 방불케 하는 이주를 시작했으며, 사탕수수와 파인애플 농장이 들어서면서 필리핀, 한국, 일본, 중국인들 역시 이 섬에 노동자로 들어왔다. 인종의 전시장과 같은 이곳에서는 ‘피진 잉글리쉬(pidgin English)’라는 특별한 언어가 사어화 된 하와이어를 대신하게 되었다. 피진 잉글리쉬는 ‘브로큰 잉글리쉬’의 일종으로, 천 개 미만의 영 단어로 소통할 수 있다. 언어가 다른 다민족 사이에 유일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피진 잉글리쉬는 현재 하와이 원주민이 쓰는 언어로 발전했다. 그런데 주인공 맷과 그의 일가 중 누구도 피진 잉글리쉬를 구사하지 못한다. 하와이에 정착한 지 한 세기가 훌쩍 넘은 킹 가문은 조상의 은덕으로 막대한 부를 상속받아 여태껏 상류층으로 살아왔다. 맷 역시 피진 잉글리쉬와 거리가 먼 전형적인 본토 출신 하와이언인, 하울리(haoles)이다. 선조 에드워드 이후 계속해서 백인 집단과 혈연 관계를 맺은 킹 일가의 외모 또한 더 이상 카메하메하의 혈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백인화되었다. 맷은 선조가 물려준 부 덕택에 본토에서 ‘유학’을 마치고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해 다시 이 ‘천국’에 돌아와 살지만, ‘사고’ 이전까지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아내의 불륜을 계기로 자신이 누군가의 ‘후손’임을 처음으로 숙고하게 된다. 엘리자벳의 불륜 상대인 브라이언은 거대한 땅의 유일한 수탁자, 맷과 막대한 자산가인 자기 처남과의 거래를 성사시켜수수료를 챙기려고 엘리자벳을 공략하는 우회 전략을 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그녀가 사고를 당하면서 계획이 꼬인다. 맷은 단순히 아내의 남자에 대한 호기심과 분노로 탐정 노릇을 시작했지만, 이제 그는 이 놀이를 끝내고, 식민주의의 잔재이자 그 덕에 호의호식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자각한 하울리로 돌아온다. 맷은 5억 달러에 달하는 매매 계약을 거절하고 이 땅을 지키려 한다. 그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선조들의 땅에 호텔, 카지노, 골프장이 들어섰을 것이다. 맷은 하와이에 남은 유일한 자연을 조상에게 물려받은 상태 그대로 두려 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하와이와 선조의 은혜를 갚는 길이라고 믿는다. 물론 이 선택은 피진 잉글리쉬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면서 하와이에 사는 자괴감을 조금이나마 더는 일이기도 하다. <디센던트>는 '백인'으로서 그리고 그다음에는 '하울리'로서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신의 땅을 지키는 '하와이언'으로서 정체성의 변화를 겪는 남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엘리자벳과 브라이언의 불륜은 세 번의 드라마적인 전회를 위한 에피소드였던 셈이다.

 

 

5. 페인의 분별력과 섬세함(sense and sensibility)

알렉산더 페인은 <시민 루스>(1993)로 데뷔한 이래로, <일렉션>(1999), <어바웃 슈미트>(2002), <사이드웨이>(2004)를 통해 웰 메이드 필름을 만드는 감독의 척도가 되었다. 폴 토마스 앤더슨, 대런 애러노프스키, 제임스 그레이, 웨스 앤더슨, 소피아 코폴라 등 1990년대 등장한 미국의 신예들 중에 가장 선임이었던 그는 <사이드웨이>로 제작비의 6배 가까운 이익을 냈지만, 그 이후 긴 잠행에 돌입했다. 작품 대부분을 고향인 네브라스카를 배경으로 제작했던 그는 7년 만에 선보인 신작에서 모험을 감행한다. 어쩌면 그에게도 ‘천국’으로 자리매김했을 하와이를 배경으로 <디센던트>를 기획하면서, 페인의 부담감은 만만찮았을 것이다. 원작자 헤밍스는 이야기의 중심을 맷 킹의 정체성 회복으로 설정했지만, 이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영화의 상업적 성공은 보장될 수 없다. 그래서 모두가 사랑하는 ‘what else?’, 조지 클루니를 기용했고, 원작에 없던 바보 시드를 삽입해 극의 코미디화를 시도했다. 물론 두 딸의 철없는 행동 역시 원작이 갖고 있던 무게감을 줄이는 데 활용되었다.

페인의 뛰어난 분별력은 원작의 의도를 손상하지 않으면서도 흥행 감각을 유지한 데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특별한 섬세함은 캐릭터의 설정이다. 처음부터 침대에 누워만 있던 엘리자벳을 제외한 모든 등장인물은 캐릭터로서의 일관성을 깨뜨리지만, 그래서 자신의 개성을 끝까지 유지한다. 사실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면은 원래 캐릭터 안에 내재된 것이다. 큰딸 알렉산드라의 남자 친구로 등장하는 바보 시드를 톺아보자. 이 철부지 청년은 눈치도 없고 예의도 없다. 처음 만난 여친의 아버지에게 ‘헤이 브로!(hey bro!)’를 연발하고 치매에 걸린 맷의 장모를 만나는 자리에서는 한술 더 떠서 분위기를 망치고, 맷의 장인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한다. 

 

장인: (치매 걸린 아내에게) 여보. 엘리자벳을 보러 병원에 갑시다.

장모: 우리가요?

장인: 딸애가 어렸을 때 아프면 병원에 갔었잖아요. 그러니 엘리자벳 머리맡에 뭘 두면 좋을지나 생각해봐요.

장모: 엘리자벳 여왕이요? 너무 멋진 생각이에요. 제일 좋은 드레스를 입어야겠어요.

시드: (맷과 알렉산드라를 보면서) 농담이시지?

장모: 여왕을 만나는 건 처음이에요.

시드: (시드가 계속 웃자, 장인은 화난 얼굴로 시드에게 다가간다) 그냥 웃음이 나오잖아요. 솔직히 너무 웃기요. 할머니가 상당히 유머가 넘친 분일걸요.

장인: 한 대 때려주마. (퍽!)

 

또 다른 에피소드를 보자. 분위기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하는 천방지축 시드는 브라이언을 찾으러 떠나는 여행에 동참한다. 머리가 복잡해 잠이 오지 않는 맷은 시드의 방에 들어간다.

 

맷: 네가 나라면 딸들에게 뭘 해줄 수 있겠니? 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하겠니?

시드: 그놈을 옷장에 가둬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패야죠. 따님들 문제는 저도 모르겠어요. 우린 서로 인생 문제는 물어보지 않아요. 골치 아플 땐 다른 좋은 이야기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여자애들이 싫으면 남자애들로 바꾸세요.

맷: 그러다 너 같은 애랑 바뀌면 어쩌란 말이냐?

시드: 저 괜찮은 놈인데요. 똑똑하잖아요.

맷: 넌 영리한 것하곤 좀 거리가 먼 것 같다, 미안하다만.

시드: 이봐요 상담사님 사람 잘못 보셨어요. 저는 똑똑하고 말끔하고 예절 바르고 기타리스트인데다가 요리도 잘해요. 늘 직접 요리하죠. 지금은 체스클럽 부회장이고 언제나 마리화나를 준비하고 다니죠.

맷: 어머니께서 참 자랑스러우시겠구나.

시드: 아마도요. 아버지는 한 달 전에 돌아가셨어요. 음주 운전으로요. 어머니는 동물병원 접수일 하시고요.

 

맷은 시드가 영리함과는 ‘100마일이나 떨어져 있다’라고 말하지만, 이 짧은 대화에서 그는 시드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면을 가진 ‘똑똑한’ 녀석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자기만 아는 브라이언 역시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만은 아니다. 그는 아내 줄리에게 불륜 사실을 털어놓고 용서를 빈다. 철면피 장인 역시 딸의 죽음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오열하면서 가슴 따뜻한 인간임을 보여주고, 망나니 딸들 역시 아버지의 고뇌와 엄마의 죽음 앞에 부쩍 성숙해진다. 욕심 가득한 삼촌도 결국에는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숙고한 맷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이처럼 모든 인물은 상황에 따라서 철부지에서 어른이 되기도 하고 바보에서 똑똑한 청년으로 변하기도 한다. 페인은 인물의 변화를 자연스럽고 개연성 있게 그리고, 이러한 인물들의 입체성으로 인해 드라마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비극적 파토스가 상쇄되면서 관객이 극을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다.

<디센던트>가 원작의 무게감을 계승했더라면 포스트 식민주의에 관한 ‘심각한’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인물이 가진 다양한 측면을 능수능란하게 풀어놓을 수 있는 능력, 페인의 이 분별력과 섬세함이 <디센던트>를 곱씹게 만든다. 페인은 헤밍스 소설의 본질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오프닝 시퀀스에서 설정 쇼트로 주로 사용되는 다양한 하와이 풍경 쇼트를 드라마의 진행과 상관없이 곳곳에 삽입함으로써, 맷이 깨닫는 자신의 근원과 선조들로부터 이어져온 땅의 소중함을 조용히 역설한다.

페인은 포스트 식민주의의 잔재에 대해서 깊게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학과 인문학으로 무장한 감독들은 무수히 많다. 페인은 자신뿐만 아니라, 관객의 니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의 현명함은 비판받지 않을 만큼의 가벼움과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의 무거움 사이에서의 균형 감각에서 비롯된다. 페인은 세 번의 변곡점을 지나, 다시 관객이 바라는 지점으로 돌아온다. 그는 원망도 증오도 모두 묻은채, 엘리자벳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나는 이처럼 짧고 강렬한, 그렇지만 질척이지 않는 이별가를 경험하지 못한 것 같다.

 

잘 가, 엘리자베스. 잘 가, 내 사랑. 내 친구, 내 고통, 내 기쁨…. 잘 가. 잘 가.

 

 

글·김채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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