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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입회하는 즐거움과 보는 행위의 즐거움,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이현재의 시네마 크리티크] 입회하는 즐거움과 보는 행위의 즐거움,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 이현재(영화평론가)
  • 승인 2023.11.02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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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포스터 (출처: The Museum of Fine Art, Huston)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포스터 (출처: The Museum of Fine Art, Huston)

프레데릭 와이즈먼의 영화는 적어도 3시간 이상 영화관 의자에 앉아있는 인내심을 요구한다. 누군가에게는 고역일 수도 있는 와이즈먼의 다큐를 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의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입회성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종종 4시간 이상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왕빙의 카메라가 갖고 있는 입회성과는 다른 종류의 입회성이다. 왕빙의 카메라가 현장에 몸담고 있는 인간의 버팀을 바탕한 리얼리티라면, 와이즈먼의 카메라는 카메라맨이 들고 있는 카메라의 작동을 근거로 한 리얼리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빙의 카메라가 인간의 의지가 담긴 뜨거운 탐험에 가깝다면, 와이즈먼의 카메라는 기계가 남긴 차가운 흔적에 가깝다. 때문에 많은 평자들이 지적하듯이 와이즈먼의 입회성이 제공하는 것은 카메라가 담은 현장의 시스템에 대한 입회성이다.

이는 종종 와이즈먼의 영화가 앙드레 바쟁이 말했던 "방부처리 된 시간"을 지향한다는 오해를 낳았다. 그러나 와이즈먼의 영화가 지향하는 이미지는 "방부처리 된 시간"이 갖고 있는 재현적 특성, 현장 그대로 재현된 복제품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와이즈먼의 영화는 현장성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노이즈들이 깔끔하게 재단되어 있다. 이는 와이즈먼의 전달하는 이미지에는 관점이 내재된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함의한다. 이 함의는 결국 이미지에 합목적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즉 연출자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이미지를 가공했다는 의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네마 베리테의 개념을 발굴한 다큐멘터리 감독 장 르슈는 이 점을 두고 와이즈먼의 데뷔작을 다음과 같이 평한 바 있다. "그 어떤 인간적인 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냉소적이고 새도매저키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기록이다."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스틸컷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스틸컷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와이즈먼에 대한 르슈의 지적은 단순히 와이즈먼의 기록이 기록물로만으로 남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는다. 실제로 르슈는 <티티컷 풍자극>이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만약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고 남기고자 한 것이 문제 그 자체라면 이는 문제를 탐닉하는 것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르슈의 지적은 와이즈먼이 무언가를 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든 감독이라는 점을 언급한 것에 가깝다. 따라서 우리는 와이즈먼이 특정한 현장에 입회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최소한 그것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일부 평론가들은 와이즈먼의 다큐가 가진 입회성에 대해서 시대를 반영한 욕망이 그를 현장에 입회시킬 것이라고 봤다. 

정성일 펑론가는 <뉴욕 라이브러리에서>를 두고 "트럼프 시대에 이상적인 시스템을 관찰하기 위해" 영화를 만들었으리라고 언급한 바 있다.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이하 <메뉴의 즐거움>)에 대해서도 비슷한 해석을 할 수는 있다. 와이즈먼이 <메뉴의 즐거움>에서 집중하는 것은 외식업을 가문의 업으로 물려받은 한 가족이 세대에 걸쳐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습들이다. 이는 플랫폼 산업의 부흥과 함께 업종 간 빅블러(Big Blur…업종 간 역할이 유연해지는 현상)가 일어나는 시대적 풍경의 반대항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다. 그러나 <메뉴의 즐거움>에서 우리가 확인하는 것은 시대에 대한 인사이트보다도 한 가문이 세운 레스토랑의 시스템에 가깝다. 더불어 와이즈먼이 그곳에 입회한 이유가 우리가 생각해봄직한  유토피아가 그곳에 있기 때문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메뉴의 즐거움: 트와로그 가족〉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다만 우리가 <메뉴의 즐거움>에서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트와로그 가족이 세대에 걸쳐 요리의 즐거움을 발견해왔다는 점이다. 그들이 발견한 즐거움은 열정적인 노동 속에 있다. 트와로그 3세대와 4세대가 함께 장을 보며 재료들을 성의껏 고르고, 레스토랑 안에서 재료의 맛을 바탕으로 맛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메뉴의 즐거움>에는 요리를 위한 준비 작업과 주방에서 일어나는 강도 높은 노동, 그리고 쉐프로써 자신의 음식을 즐기고 있는 손님과의 대화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일들은 반복되는 일상과 같이 체계화되어 있다. 이는 그들이 찾은 노동의 즐거움은 인간의 노력과 실천이 아닌 체계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를 정성일 평론가의 방법처럼 사회상에 대한 변화의 의지를 가지고 만든 영화로 바라본다면, 와이즈먼은 체계를 존중하여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겸허한 자세를 전시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또한 의미있는 감상이자 독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굳이 4시간에 걸쳐 <메뉴의 즐거움>을 만든 것에는 사회에 대한 그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보다 훨씬 단순한 동기가 있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입회하는 즐거움. 93세의 와이즈먼이 영화를 만든 것에는 세상에 대한 우려 혹은 교훈보다, 자신의 일에 대한 즐거움 때문에 4시간에 걸친 영화를 만들었다는 게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와이즈먼이 <메뉴의 즐거움>에서 입회의 즐거움을 찾았듯, 관객의 입장에서도 <메뉴의 즐거움>에서는 보는 것의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글·이현재
경희대학교 K컬쳐・스토리콘텐츠연구소, 리서치앤컨설팅그룹 STRABASE 뉴미디어・게이밍 섹터 연구원. 「한류 스토리콘텐츠의 캐릭터 유형 및 동기화 이론 연구」(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글로벌 게임산업 트렌드」(한국콘텐츠진흥원) 「저작권 기술 산업 동향 조사 분석」(한국저작권위원회) 등에 참여했다.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부문, 2021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만화평론부문 신인평론상, 2023 게임문화재단 게임제네레이션 비평상에 당선되어 다양한 분야에서 평론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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