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소곤 무심연애세(感情所困 無心戀愛世)
마음이 피곤해 더 이상 세상을 사랑할 수 없다
2003년 4월 1일. 영화배우 장국영이 세상을 떠났다. 만우절에 벌어진, 정말로 거짓말 같은 죽음이었다.
“일생동안 나쁜 일은 하지 않았는데, 어째서 내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마흔 살 찬실은 반평생을 영화판에서 굴렀다. 그녀는 예술영화계의 거장인 지 감독 밑에서 PD로 일하는 중이다. 그녀는 술자리 게임에서도 ‘착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곧잘 지목된다. 그러나 술게임 중 지 감독이 급사한다. 거짓말 같은 죽음이 벌어진 것이다. 지 감독의 급사로 인해 열정적이고 성실하기만 했던 찬실의 삶은 졸지에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이 된다. 마치 장국영이 죽기 전 남겼다고 떠도는 문장 말미의 물음표 세 개 같은 처지가 되어버린다.
텅 빈 사무실에서 전원이 꺼진 노트북을 앞에 둔 찬실은 퀭한 두 눈을 딱 한 번 깜빡인다. 이때 영화의 도입부터 흘러나오던 쇼팽의 장송행진곡이 절정을 맞이한다. 동시에 스크린의 화면비가 사무용 모니터 비율인 4:3에서 영화의 비율인 16:9로 바뀐다. 눈 깜빡할 찰나, 일의 종말이 도래했으며, 졸지에 퇴사라는 현실이 닥쳐온 것이다. ‘업’이 끝나자 또다른 ‘삶’이 도래한다는 것을 화면비의 변경으로 영화는 은유한다.
이삿짐이 든 고무대야를 머리에 이고 산을 오르는 찬실의 모습을 카메라는 길게 담는다. 기실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이제부터다. 찬실의 뒤를 동료들이 뒤따른다. 배경음악 때문일까, 끝없는 계단을 향해 힘겨운 걸음을 내딛는 그들의 모습이 어쩐지 신의 은총을 향해 걷는 순례자들의 걸음처럼 보인다.
“대표님은 제가 어떻게 일했는지 모르시잖아요.”
영화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던, 영화 말고 좋아하는 게 없던 찬실은 크게 절망한다. 인생이 어디부터 잘못되었는지, 어째서 이렇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그러므로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단점을 콕 짚어 말해달라고 매달린다. 그런 찬실에게 박대표는 “지 감독의 영화는 유일무이한 예술영화지만, 찬실이 같은 피디가 없어도 만들어 질 수 있는 영화”였다고 말한다. 20년 가까이 지 감독 단 한 명과 일했던 찬실, 착하고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지목되었던 찬실은 순식간에 쓸모없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
가족들도 찬실에게서 등을 돌린다. “이제와서 말이지만 아버지는 지 감독 영화들 사실 별로였다. 잠이 많이 왔다”라고 편지를 읽으며 찬실은 자신의 삶을 천천히 되짚어본다.
생계 앞에서 취향을 지킨다는 것
사람들 사이에서 찬실은 여전히 ‘이 PD’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제 찬실의 직업은 PD가 아니라 지인인 배우 ‘소피’의 ‘가사도우미’이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찬실은 여전히 감독 오즈 야스지로를, 감동의 영화인 <베를린 천사의 시>를, 슬픔의 영화인 <집시의 시간>을 좋아한다. 찬실이 좋아하는 것들은 다른 사람이 보기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금 지루한” 취향의 것들이다. 하지만 찬실은 조금은 지루한 감독의 작품 속에서, 심심하고 싱거운 영화들 속에서 ‘아무 일’을, ‘인생의 보석’ 같은 것들을 발견해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PD가 아닌 찬실의 취향을 순순히 인정해주는 사람은 없다. 찬실이 좋아하는 남자 ‘영’마저 찬실의 취향을 부정한다. 그러므로 취향을 부정당한 찬실은 화가 나고, 이 화는 기어코 화병으로 이어진다. 찬실의 취향은 찬실의 삶을 만들고 구성해왔으므로 찬실 그 자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때 찬실 앞에 장국영이 등장한다. 자신이 장국영이라고 주장하는 괴이한 존재가 등장한다. 가진 것도 없고, 딱히 오갈데도 없는데다가 화병까지 걸린 찬실은 동네에서 괴팍하다고 소문난 할머니 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산다. 이 할머니의 집엔 찬실의 출입이 금지된 방이 하나 있는데, 자칭 ‘장국영’이라고 주장하는 귀신인지 혼인지 모를 존재는 자신이 이 방에 머물고 있다고 말한다. 한겨울에도 런닝셔츠에 사각팬티를 입고 찬실 앞에 나타나는 장국영은 자기가 헐벗은 이유를 “매사 참는 성격이라 몸에 열이 많고 화병이 있어서”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장국영을 바라보며 찬실은 유일하게, 처음으로 위로받는다.
장국영은 누구인가
‘착하고 일 잘하는 사람’인 찬실은 왜 지 감독 한 사람과만 20년이나 일을 했을까? 찬실이 미련하기 때문일까? 사실 영화가 지칭하는 ‘20년’이라는 숫자는 지 감독과의 신의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20년이라는 세월은 찬실이 영화를 제 몸처럼 사랑한 세월과도 같다. 그러므로 영화 속에서 난데없이 등장한 ‘참는데 익숙하고 화병이 있는 허술한 속옷차림의 장국영’이라는 환영은 덕업일치가 안되어도, 더 이상 영화판에서 일을 할 수 없어도,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라도 영화를 사랑하고 싶은 찬실의 페르소나로 읽인다. 이를 증명하듯 장국영은 자꾸만 찬실에게 묻는다.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깊이 생각하세요.”
“제가 멀리 우주에서도 응원할게요.”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할 수 없다면 영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방법을 찾아보는 찬실의 곁에 오래된 동료들이 방문한다. ‘도저히 지루해서 못 읽겠는 시나리오’를 쓰다 전구가 나간 밤. 찬실은 밤길을 걷는 동료들의 제일 뒤편에 서서 후레시의 빛을 비춘다. 사는 게 뭔지 진짜 궁금해졌고, 그 안에 영화도 있다고 말하는 찬실이 사람들에게 쏘고 있는 빛이 꼭 영사기의 빛처럼 보인다면 착각일까. 불빛을 비추며 찬실은 가만히 소원을 빈다. “우리가 믿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을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영화를 하게 해달라고. 그러므로 먼저 가라고, 비춰주겠다고 말한다. 말하면서 소원을 빈다. 깊이깊이, 간절히 빈다.
글·이지혜
문화평론가. 제16회 <쿨투라> 영화평론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3 전주국제단편영화제 전북부문 심사위원,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A)으로 경희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영화평론가 및 문화평론가로 활동중이다. 대중문화와 기술인문(AI,NFT,메타버스,챗GPT)을 연구하고 있다.
인스타: leehey_cine 이메일: leehe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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