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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오빠 - 동무 그리고 고향 생각
[최양국의 문화톡톡] 오빠 - 동무 그리고 고향 생각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04 1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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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의 생각 너머에 들판이 있으니.

나, 그곳에서 그대를 만나리.

영혼이 그 풀밭에 누우면,

세상은 무언의 충만함으로 넘쳐나리니.

생각, 언어, '서로'라는 단어조차 그 의미를 잃으리.”

- 잘랄루딘 루미(Jalal uddin Rumi) -

길가의 나무들이 서로 멀어져가며 공간을 남긴다. 눈사람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는다. 생각이 하나 둘 셋, 하얀 싹으로 돋아나며 가끔 뒤를 돌아보게 한다. 보이던 것의 비어 있음은 보이지 않는 것의 채움을 손짓한다. 진하게 다가오는 하얀 생각들이 오빠, 동무 그리고 고향의 시로 채워져 간다. 시를 부르면 생각도 음악이 된다. 오빠 생각~동무 생각~고향 생각. 생각이 시와 만나 생성~성장~소멸의 시간을 따라 인연으로 흐른다.

 

혈연의 / <오빠 생각> / 인연의 / 출발이며

‘진주 이슬 신고 새 풀 옷을 입은 봄 처녀’가 임 찾아가는 길, 한 해가 저물어간다. 아직 찾지 못한 임은 기다림의 대상이 되어 12세 소녀의 <오빠 생각>(1925년)으로 태어난다.

“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면/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 <오빠 생각> (최순애 작사, 박태준 작곡) -

생각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해 가는 과정에서 첫 단계는 생성, 즉 탄생의 단계이다. 삶에서 탄생은 혈연을 의미한다. 생각의 탄생에 해당하는 혈연을 나타내는 가곡이 <오빠 생각>이다. 열두 살의 최순애가 서울 가서 소식 없는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동시 ‘오빠 생각’에 박태준이 곡을 붙인 노래. 오빠는 언어 의미의 변화에 따라, 혈연과의 관계에서는 손위나 손아래 남자 동기를 부를 때 두루 쓰이다 20세기 이후에 혈연이 아닌 남녀 간 배우자 또는 연인, 연상 남자를 부르는 호칭으로 등장하게 된다. 이에 대해 수직적 나이 권력의 반영인 가부장 사회와 성적 젠더 권력을 나타내는 반페미니즘 사회성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는 일부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최순애(1914~1998년)는 생전 언론과의 대담(경향신문, 1992년 3월 1일)에서, 6남매 중 둘째인 오빠(외아들로서 집안에서의 존재감과 더불어 뛰어난 감성을 가진 오빠)가 독립운동하러 서울로 떠난 후에 돌아오지 않은 것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낸 시가 ‘오빠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전통적 의미인 혈연관계에서 볼 때, 오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 오빠 생각-혈연, Pixabay
* 오빠 생각-혈연, Pixabay

탄생함으로써 혈연이 되어 평생 같이하게 되는 남매인 오빠와 여동생. 그들은 기다림과 헤어짐, 그사이에서의 만남으로 서로 연결 되어져 있는 듯하다. 최순애의 <오빠 생각>이 남매간 기다림의 서정을 노래한 것이라면, 헤어짐의 가슴 아픈 사랑을 서사로 풀어낸 많은 얘기가 있다. 남매는 가부장적 사회의 수동적 언어 유물(귀남이, 붙들이 등)과 상관없이, 뿌리는 하나지만 계절의 놀이를 즐기며 뻗어 있는 가지와 사계절 동행하는 나무를 닮아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어떤 일이나 현상에도, 그들 각자는 가지와 가지의 주연으로서 연결되어 있다. 남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서로 다르더라도, 상대적 옳고 그름만이 존재하는 세상 너머를 바라보며 손잡을 수 있는 들판 나들이가 되면 어떨까. <오빠 생각>은 ‘~생각’ 가곡 중 혈연과 핏줄로써 숙명적 연결을 위한 ‘피’를 대변하며 생각의 출발점을 떠난다.

 

학연의 / <동무 생각> / 인연 여행 / 성장기네

인연은 유아기인 혈연을 떠나 성장기인 학연으로 이어지며 생각을 만난다. <동무 생각>(1922년)은 박태준(1900~1986년)이 먼저 작곡을 한 후에 이은상(1903~1982년)이 가사를 붙여 완성된 가곡이다.

“소리없이 오는 눈밭 사이로 밤의 장안에서 가등 빛날 때

나는 높이 성궁 쳐다 보면서 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밤의 장안과 같은 내 맘에 가등같은 내 동무야

네가 내위에 빛날 때에는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

- <동무 생각, 4절> (이은상 작사, 박태준 작곡) -

이 노래는 박태준이 타향살이를 하며 고향의 그리운 친구들에 대한 추억을 읊은 것이다.

 

* 동무 생각-학연, 대구 청라언덕
* 동무 생각-학연, 대구 청라언덕

봄~여름~가을~겨울, 즉 4계절의 시각과 청각적 이미지를 담으며 계절을 반영한 시상과 반복적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무는 친구란 뜻 외에 ‘짝이 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도 쓰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같은 뜻으로 많이 쓰이는 ‘친구’와 달리, 가곡과 일부 가요(찔레꽃 등) 가사 외에는 ‘길동무’로 친숙하다. <동무 생각>은 작곡가인 박태준의 성장기 이성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탄생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봄~여름의 백합, 흰 새와 같은 순수하고 맑은 이미지는 성장기인 청소년의 심성과 외면을 대변한다. 가을~겨울의 금어, 가등과 같은 동적인 빛의 상징어는 진리 추구를 위한 청소년의 꿈으로 동행한다. 연당(蓮塘)과 금어(金魚)는 불교적 색채가 드러나는 단어로써, 이은상의 불교적 종교관과 연관을 가지며 지식 함양을 통한 성장과 발전의 시기를 조명하고 있다.

이성 간 동무를 떠나, 동성 동무 간 우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그림이 겸재 정선(1676년~1759년)의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이다. 이는 겸재가 76세 때 비가 내린 뒤의 인왕산을 보고 그린 것이다. 인왕산을 함께 보고 자란 육십년지기 친구인 시인 이병연이, 병을 떨쳐내고 당당하게 서 있는 소나무처럼 일어나기를 바라는 기원이 깃들여 있다. 인왕산의 어두운 비구름이 개이고 햇살로 반짝이듯, 절망 뒤의 희망에 대한 건강한 카타르시스를 기원하는 진정한 자아의 발견과 우정의 표현을 담백하고 깊은 회화적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이 그림이 완성된 며칠 뒤에 이병윤은 세상을 등지고 말지만, 둘의 우정만큼은 인왕산처럼 영원하다. “오늘 내가 죽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살아 있는 한 세상은 바뀐다”고 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년)의 말처럼, <동무 생각>은 ‘~생각’ 가곡 중 학연과 홀로서기로써 성장을 위해 흘리는 ‘땀’을 대변하며 생각의 성장점을 접는다.

 

지연의 / <고향 생각>은 / 정반합 향한 / ‘피 땀 눈물’

인연은 성장기인 학연을 떠나 소멸기인 지연으로 이어지며 생각을 만난다. <고향 생각>(1932년)은 현제명(1902~1960년)이 미국 유학 시절 초고를 만들었고, 귀국한 뒤 1932년에 정리하여 발표한 것으로 추정된다. 모두 2절로 되어 있는 가곡이다.

“해는 져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한이 없다.

내 동무 어디 두고 이 홀로 앉아서

이일 저일을 생각하니 눈물만 흐른다.”

- <고향 생각, 1절> (현제명 작사·작곡) -

누구나 고향을 생각한다. 유무형의 고향을 떠올린다. 그러나 언제나 똑같이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 고향 생각-지연, Pixabay
* 고향 생각-지연, Pixabay

마음속 고향과 지리적 고향이 같이한다. 마음의 고향은 부모를 향한 감정의 곳간이다. 그중 아버지를 좇는 고향이 이성적 존경의 대상이라면, 어머니를 좇는 고향은 감성적 눈물의 대상이다. 인연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생성~성장의 ‘~생각’ 여행은 고향에서 그 소멸을 맡는다. 고향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떠나,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용되는 삶의 비유 중, 많이 회자되는 것이 물이다. 이는 유형화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유형의 물을 보며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이 흐르는 물처럼 무상하니, 결국 우리에게 남는 것은 감정이다. 시간이 흘러 생각 여행을 마감해야 할 때, 우리에게 남겨진 마지막 생각은 감정이다. 생성과 성장의 생각 여행에서 강하게 느끼고 공감했던 감정은, 영원히 살아 있는 삶의 향기로 남는다. 지리적 고향은 자본과 권력의 유희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며, ‘오빠’,‘동무’,‘고향’이라는 단어조차 그 의미를 잃게 한다. <고향 생각>은 ‘~생각’ 가곡 중 지연과 흔적을 위해 흘리는 ‘눈물’을 대변하며 생각의 소멸점을 마무리한다.

시간 따라 흐른 가곡의 ‘~생각’ 인연 여행은 우리에게 ‘피~땀~눈물’을 남긴다. BTS의 <피 땀 눈물(Blood Sweat & Tears)>(2016년)이 헤르만 헤세(Herman Hesse, 1877~1962년)의 『데미안, Demian』(1919년)을 만나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피 땀 눈물(Blood Sweat & Tears)>의 뮤직 비디오는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Pieter Brueghel de Oude, 1527?~1569년)의 <배반한 천사의 추락, The Fall of the Rebel Angels>(1562년?)을 바라보는 멤버(‘진’)의 시선에서 시작한다. 이는 천상의 천사와 타락하여 지상으로 추락하는 천사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드러낸다. 안정을 벗어나 타락이라는 위험을 감내하며 아픈 고통의 시간을 이겨내고 성장해야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 피 땀 눈물의 MV - 배반한 천사의 추락
* 피 땀 눈물의 MV - 배반한 천사의 추락

헤세는 『데미안』에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라고 말한다.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태어나기 위해서는 피, 땀 그리고 눈물이 필요하다.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이 각각 피, 땀 그리고 눈물이 된다.

혈연, 학연 그리고 지연을 부정적인 제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그들을 대승적으로 승화시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멋진 동력원으로 만들어 가는 건 어떤지. 그들이 가진 세 개의 심장을 하나의 박동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면, ‘피 땀 눈물’ 그리고 ‘두 개의 세계’ (옳음과 그름, 안정과 위험)간 균형을 맞추는 노력으로.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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