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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연호의 문화톡톡] 사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영화적 장치 - 디지털 카메라의 눈
[김장연호의 문화톡톡] 사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영화적 장치 - 디지털 카메라의 눈
  • 김장연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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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옥스하이드 시리즈> 읽기(리우 지아 인, 2005, 2009)

첫 장편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초정을 받고, 벤쿠버국제영화제에서 용호상을 받은 <옥스하이드>를 연출한 리우 지아 인은 중국 신예 여성 감독으로 새로운 영화 언어를 선보이며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다. 십년간 디지털 영화 언어를 찾는 것은 시네필들의 임무이기도 했다. 많은 시네필들은 셀룰로이드 필름과 다른 디지털 영상만이 갖고 있는 양식을 영화에서 구현해낸 작품을 실험하고 연구하고자 했다. 필자는 이러한 영화를 대안영화라 칭하고자 한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하게 상업 필름의 역사가 그리 영화(榮華)하지 않은 곳에서 필름 영화와는 차별화된 디지털 영화 언어를 만나게 된다. 리우 지아 인의 <옥스하이드> 시리즈는 DV(Digital Video)에서 HD(High Definition)로 변화된 흔적과 함께 우리에게 새로운 영화 읽기를 제안하고 있다. 1981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베이징영화학교에서 수학한 리우 지아 인은 <옥스하이드 ⅠⅡ> 시리즈만으로 전 세계 영화인의 주목을 받았다. 과연 <옥스하이드>의 어떤 부분이 이렇게 각광을 받게 되었을까. 이 글에서는 <옥스하이드Ⅱ>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논하지는 못하였다. 이 글은 <옥스하이드>에 주목하면서 그녀가 보여준 디지털 영화언어의 가능성들을 논의하려 한다. 

 

사실과 허구의 경계 그리고 영화적 장치 - 디지털 카메라의 눈 - 


<옥스하이드>는 한자어로 ‘우피牛皮’로 소가죽을 뜻한다. ‘소가죽’은 소가죽으로 가방 만드는 일을 하는 아버지를 중심으로 어머니와의 일상생활을 그린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이자 의미작용을 낳는 중심축이다. 이 영화에는 연출자인 본인과 아버지, 어머니 이외에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으며, 간혹 대사에서 그들과 연결된 인물들이 거론되는 게 전부다. 오히려 각 인물의 신체 부분들이 이야기를 토해내고 구성한다. 기존 영화에서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인물의 동작과 분절된 신체들이 이 영화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중심 테제로 작동한다. <옥스하이드>의 분절된 신체들의 의미작용들은 기존 필름 영화 읽기에서는 단조롭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일 수 있지만, 이 영화에서는 소가죽 가방을 중심으로 많은 갈등과 움직임을 포착하게 하는 테제이기도 하다.

<옥스하이드>는 많은 부분에서 다큐멘터리 요소를 취하고 있다. 이렇게 다큐멘터리의 ‘사실성’과 서사영화의 ‘허구’가 절묘하게 만나는 <옥스하이드>는 모크 다큐멘터리 장르를 띤다. 모크 다큐멘터리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는 ‘사실-허구’ 형식이다. 모크 다큐멘터리는 허구의 주제를 재현하기 위해 다큐멘터리 코드와 관습을 차용하는 허구 텍스트들로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서사영화 양식에 ‘실재’를 기반으로 한 ‘재현’의 형식을 띠고 있는 <옥스하이드> 시리즈는 이렇게 서사영화 양식과 다큐멘터리 양식과 조우한다.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대량생산에 의해 수제 생산품이 내몰리고 있는 중국 자본주의 경제를 희화화한다. 아버지는 자신의 작품이기도 한 수제 소가죽 가방이 세일에 세일을 거듭해야만 팔리는 상황이 되자 내적 갈등과 외부 갈등으로 괴로워하면서 파산할 위기에 처한다.

감독은 자신의 친 가족을 등장시킴으로써 다큐멘터리의 ‘사실’적 맥락에 가까운 신뢰를 바탕으로 아버지와 그의 가족이 처한 현실을 픽션화한다. 스물세개의 쇼트는 이렇게 중국 경제와 문화를 환유하는 상징화로 가득 차 있다.   이 영화 역시 기존의 저예산 디지털 영화와 비슷하게 연출자와 부모님과 같은 주변의 인물을 등장시킨다. 또한 연출자가 쉽게 섭외할 수 있는 연출자 집과 같은 장소를 촬영지로 삼고 있으며, 촬영, 편집, 시나리오 등 연출자가 모두 맡아서 진행한 1인 체제 제작 시스템이다. 그러나 <옥스하이드>는 철저하게 다음과 같은 스스로의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치밀함을 보인다.

첫째, 어느 누구나 촬영할 수 있는 홈 비디오 촬영으로 가족과 집을 촬영하는 것으로 영화의 장치를 실험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영상과 영화의 거리를 좁히며, 과연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영화 언어의 문제제기에까지 도달하게 한다. 두 번째, 미디엄쇼트, 클로즈업,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라는 세 가지 촬영기법만으로 고정 쇼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촬영앵글은 카메라와 가족과의 거리, 연출가와 가족과의 거리로 ‘실제 거리’를 가감 없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집 밖 전체를 보여주거나, 집 안 전체를 보여주는 쇼트 없이 철저히 분절된 신체와 사물에 집중하며, 고정된 디지털 카메라가 응시하는 집밖과 집안 풍경을 담는다. 집밖 풍경은 네 번째 씬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아버지가 가방을 만드는 장면인 이 씬에서 정 중앙에 배치된 창문 너머에 기차가 지나간다. 이러한 이중 프레임 화면으로 기찻길 옆 소시민의 집 안임을 추론하게 한다.

<옥스하이드>는 총 23개의 고정 앵글 쇼트들로 구성된 단조로운 구성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단조로운 구성이 갖는 힘은 기존의 필름 영화 언어에서 보여주었던 양식이 아니기에 읽기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고정된 카메라는 인물을 따라가지도, 인물의 사건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CCTV에서나 볼 법한 고정된 쇼트는 카메라 프레임에 보이는 인물과 사물과 사건에 집중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필름, 디지털 영화들이 인물, 사물, 사건에 주목하였는가. 카메라는 그 구성양식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어 관객이 편하게 사건에 주목할 수 있도록 제시해왔다. 그러나 <옥스하이드>의 이런 쇼트들은 도구가 아닌 철저히 디지털 카메라의 눈으로 응시한다. 이러한 쇼트로 화면에는 그 동안 영화 방법론에서 잘못된 촬영으로 금기시되어왔던 인물의 머리가 통째로 잘린 채 보이기도 하며, 사건을 따라가지도 않는, 움직이지 못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기능만으로 구성된다. 23개의 고정 쇼트들은 하나의 시퀀스를 구성하며 분절된 이야기의 형식을 띤다. 

첫 씬은 <옥스하이드>의 주인공인 세 명의 얼굴이 미디엄 쇼트로 잡힌다. 첫 번째는 영화에서 ‘베이베이’라 불리는 감독의 얼굴이 보이고, 차례로 부모님의 얼굴이 화면이 비쳐진다. 두 번째 씬은 이 영화에서 사건의 단초를 제공해주는 세일 문구다. 프린터기에서 출력된 붉은 종이의 세일 문구가 적혀진 종이는 <옥스하이드>에서 사건을 극대화하는 원인을 제공한다. 세 번째 씬은 함께 식사하는 장면으로 식사하는 도중 갑자기 급사를 한 신문파는 아줌마의 이야기와 베이베이의 키 재기 이야기가 나온다. 식탁을 중심으로 베이베이가 왼쪽, 엄마가 가운데, 오른쪽엔 아빠가 앉아서 식사를 한다. 영화 초반의 세 씬만을 분석해도 움직이지 못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원 컷들로 구성되어있다. 즉, 23개의 쇼트는 각각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시퀀스를 이루며 각각의 쇼트들은 이전과 이후의 시퀀스에 영향을 받지 않는 단일된 구조를 갖고 있다.  

<옥스하이드>는 관객이 보고 싶은 것들을 따라가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학적으로 화면을 담기보다는 카메라가 찍어 낸 화면에서 영화적 장치를 찾아나가야 한다. 여덟 번째 씬에서 우리는 낯선 장면과 조우한다. 조그마한 방의 1미터 안팎에 설치된 카메라에 움직이는 베이베이와 어머니, 아버지의 모습이 몸통이 찍히는 앵글이다. 몰래카메라에서나 볼법한 앵글이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고정되어 있고, 등장인물들은 카메라에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다. 몸통만 나온 채 가방 패션쇼를 하고, 아버지는 단검무를 춘다. 분절된 신체의 언어들은 그렇게 화면에서 또 다른 주체가 되어 이야기를 건넨다. 얼굴이 몸과 또 다른 특성이 아닌 것마냥 <옥스하이드>는 손, 발, 몸통, 팔뚝 등과 같이 분절된 신체들을 보여준다. 각각의 신체는 그렇게 인물과 또 다른 이야기들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옥스하이드'(리우 지아 인, 2005)

열한 번째 쇼트의 배경은 책상 위이다. 버즈앵글 쇼트로 촬영된 이 씬에는 소가죽, 가방 본, 아버지의 손이 등장한다. 아버지는 소가죽의 채찍자국들을 만지며 소가죽을 남긴 소에게 연민을 느낀다. 아버지는 소에게 찍혀진 낙인을 만지며 ‘도살되어 가죽이 벗겨지고 우리 손에 들어 온 것을 바늘로 꿰매서 가방을 만들어 가게에 내놓고는 우리가 어떻게 했어. 그냥 막 팔아먹잖아. 우리가 이렇게 하면 소한테 미안한 거네’. 대사를 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카메라 밖에서 대사를 하고 화면에 비춰진 것은 소가죽과 소가죽을 만지는 손이다. 손수 한 땀 한 땀 만든 가방을 세일해서 제 값에 판매하지 못하는 것도 분하고, 주인에게 채찍질을 당하며 가죽을 남긴 소에게도 세일은 할 짓이 못 된다는 것이다. 클로즈업과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관객에게 화면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물에 집중하게 만든다. 가방이 되기 전의 소가죽에 이야기를 입히는 과정은 아버지가 만드는 소가죽 가방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옥스하이드Ⅱ>-다양한 각도와 영화 장치

<옥스하이드Ⅱ>에서는 소가죽에서 만두로 소재가 바뀌며 만두를 빚는 과정을 아홉 개의 360도 쇼트로 담아낸다. <옥스하이드Ⅰ>이 각 쇼트가 독자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는 구조라면 <옥스하이드Ⅱ>는 한 에피소드를 360도의 쇼트로 보여주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보여지는 영화의 결과 장치의 차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도발적인 작품이다. 

 

'옥스하이드Ⅱ'(리우 지아 인, 2009)

어떻게 이러한 쇼트들이 가능했을까?

대부분의 영화들은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 카메라가 함께 이동하는 촬영기법을 사용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소형화되고 무게의 가벼움으로 이동이 용이하게 되면서 엄청난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되었다. 흔들림은 디지털 카메라의 고유 특성으로 칭한다. 리우 지아 인은 디지털 카메라의 특징을 다르게 인식한다. 카메라를 하나의 객체로 인식하고, 소가죽 가방과 마찬가지로 ‘육화된 물체’, 또 다른 물체의 눈으로 인식한다. 그렇기에 카메라가 갖고 있는 고유의 특징들을 그대로 수용한다.  

카메라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능. 그것은 사람이 녹화버튼을 누르면 찍는 기능이다. 카메라 스스로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촬영을 할 수도 줌인과 아웃을 할 수도 없다. 다만 카메라는 사람이 녹화버튼을 누르면 찍는 행위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기능이다. 그렇기에 <옥스하이드>는 단조롭다. 카메라가 찍어낸 그대로를 담아낼 뿐이다. 그렇다고 등장인물들의 움직임들이 제약을 받는 것도 아니다. 등장인물들은 카메라가 없는 듯 카메라의 앵글에서 벗어나든 말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행동을 마음껏 한다.

관객이 보고 싶어하는 장면을 클로즈업하거나 익스트림 롱 쇼트로 담아내는 수동적 행위가 아닌, 카메라 고유의 주체적인 행위를 수행한다. <옥스하이드>는 카메라가 할 수 있는 그대로의 기능을 화폭에 담아내듯 한다. 그래서 <옥스하이드>의 ‘기계의 눈’은 살아있는 듯 사물을 응시한다. 누군가의 눈을 대신하지 않기에 시각적 쾌락이 느껴지지 않는 <옥스하이드>의 장면은 기존의 필름 영화 미장센의 미학적 구도들을 모두 파괴해버리고 금기화된 빗장을 풀어버린다. 


<옥스하이드Ⅰ> 쇼트의 구성방식은 병렬구조 형식을 띠고 있는 아시아의 병풍의 이야기 구조와 닮아있다. 한 장의 그림에 그려진 이미지들의 상징화된 환유로 병풍은 이야기를 구성한다. 병풍에 놓여진 한 장의 그림은 또 다른 그림과 연계되며 큰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 그녀의 영화 장치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영화적 장치와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글·김장연호
문화연구학 박사. 한예종 객원교수. 시네-미디어 큐레이터,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영화평론가협회 대외협력이사,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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