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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희의 문화톡톡]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한유희의 문화톡톡]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 한유희(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21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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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현실을 담아내는 웹툰 읽기] 7
네온비,캐러멜, <지옥사원>

 

이생망, YOLO, 탕진잼, 소확행. 신조어들은 삶을 축약한다. 매년 쏟아지는 단어는 고된 삶을 대처하는 자세다. 이번 생은 망했다, You Only Live Once, 돈을 과하게 쓰는 재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모든 말들은 ‘자본주의’ 안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행복하지 않으면 통장 잔고를 확인하라는 우스갯소리에 쉽게 웃을 수 없는 현실이 ‘지금 여기’다. 모든 가치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있다. 부자는 사람들의 꿈이자 성공이다.

“식이는 인간계 빈부격차에 대한 가장 큰 지표”다. 수많은 SNS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사진은 음식이다. “18일간 드라이 에이징한 와규 안심을 미디어 레어로 조리한 스테이크와 엑스트라 버진 모레티니 올리브 오일로 풍미를 더한 샐러드를 곁들인 식사”. ‘부’는 아주 교묘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SNS에 가득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은 아무나 먹을 수 없다. 이를 위해서는 ‘노-오력’을 하던지, 이미 주어진 부가 있어야만 한다.

 

음식에 굴복해 한국으로 온 악마가 있다. 랍스타, 스테이크, 연어, 치킨, 아이스크림의 욕망을 떨치지 못하는 악마 쿼터는 한국행을 택한다. 지옥이 허가하지 않은 비행으로 준비가 안 된 쿼터는 낮은 등급인 고순무 몸에 불시착한다. 쿼터의 실수와 뺑소니 사고가 일어나면서 인간의 몸에 안착하자마자 몸의 주인 순무는 죽고 쿼터는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지옥에서 떠나자마자 헬조선으로 입성한 것이다.

이계의 존재는 헬조선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 좋은 장치다. 쿼터는 악마의 시선으로 한국 사회를 평가하는 지표 그 자체다. 웹툰에서 이계를 다루는 것은 용이하다. 복잡한 사건들을 다루는 <지옥사원>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웹툰의 방식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 회에서 끊임없이 긴장-이완-긴장의 구조가 반복되며 복잡한 양상을 띠지만 웹툰의 문법에 익숙한 독자들은 스크롤을 내릴 때 컷과 컷 사이의 배경과 공간의 변화를 쉽게 감지한다. 배경색만으로도 독자는 과거와 현재, 서울과 지옥을 빠르게 오고간다. 복잡한 세계관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동시에 제시하며 손쉽게 구축된다.

악마는 과연 헬조선에서 어떤 삶의 자세를 갖춰야 할까. 악마가 아닌 사람들끼리 고문하는 곳. 서로 스스로 불행해지고 있는 곳. 헬조선이라고 명명되는 우리 사회는 ‘지옥이 멀리 있는 게’ 아니며, ‘악마가 내려왔다면 지가 있어야 할 곳’이다. 쿼터는 “한 인간이 20대를 다 바쳐 모은 돈인데, 고급 집도 못 사고 고급 차도 못사는 돈”, “평범한 인간들에게 악마같은 능력을 원하니 회사에서는 인간을 갈아 넣을 수밖에” 없다고 자조적으로 평가한다. 쿼터가 원하는 음식들은 순무로 살아서는 절대로 먹을 수 없다. 하루에 16시간 넘게 일을 하며 ‘노오-력’을 아무리 해도 순무는 돈이 없다. 150g에 20만원인 ‘다이아 가든’의 한우 꽃등심은 불가능한 메뉴다. 맛있는 음식을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돈이 많을 때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도, 음식을 위해서도 쿼터는 스놉이 되어야 한다. 스놉은 체제 내에 포섭되어 축적하고 소비하는 주체다. 재산과 지위를 축척하기 위해 일생을 바친다. 진정성이 상실되었고, 성찰과 반성이 없는 존재다. 쿼터식 스놉의 정언 명령은 간단하다.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맛있는 것을 먹는다. 이를 위해 ‘인간’ 같아진다. “남의 불행을 자기 일처럼 기뻐하고, 불행을 만들고, 거짓말하고 골탕 먹이고 이간질하고, 또 속이고, 곤경에 빠뜨리”는 인간적인 악마의 속성을 지녀야만 한다. 김홍중은 악마가 무서운 힘을 갖고 인간을 파괴시키는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고 진부한 ‘스놉’이란 형상성에서 구현된다고 말한다.  
헬조선은 신자유주의 아래 단기 자본주의에서 빚어진 산물이다. 단기 자본주의는 유연한 자본주의로 명명되면서 자본주의의 억압의 혐의를 지우는 동시에 모험의 가치를 부각시키며 인생의 자유도를 부여하는 듯이 보인다. THC로 대표되는 회장과 이사들은 유연함을 강조하며 회사를 키우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입 사원들을 서바이벌 게임에 참여시킨다. 단기 자본주의에 이르러 기업들은 도전이라는 이름을 빌려 사원들을 끊임없이 평가하여 해체도 재편도 쉽게 시도한다. 결국 불안정성을 개인이 스스로 이겨내고 끊임없이 퀘스트를 수행해야만 한다.

슘페터는 기업가 정신을 “창조적 파괴를 위해서 변화의 결과를 계산하지 못하거나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더라도 개의치 않는 자세”라고 정의한다. “정신력이 강하고 좌절도 안하고 잠도 적고, 아마 모든 회사에서 순무 너 같은 사람을 좋아할거야.”라는 영재의 말은 슘페터적 인간의 전형이다. 안정이 없고 도전을 강요당하는 상태에서는 예외적으로 슘페터적 개인이 이상적인 보통사람으로 치부되며 악마를 양산하고 만다. 끊임없는 변화는 오랜 시간 쌓아야만 가능한 사회적 유대 관계를 상실하게 한다. <인간다움>의 누락을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이다.

현실이 ‘헬’이라고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악마가 되지는 않는다. 사람들 모두가 쿼터식으로 말하자면 <불량품>이다. 결핍된 부분도 많고 스스로 모순적이기도 하다. 속물적인 부분이 있더라도 안타까운 사연에 <원래> 슬퍼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고, 세상의 수많은 사건들에서도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사람에 대한 본질이 도덕, 윤리, 정의 선의와 같은 가치를 제시하고, 사람을 그 사람으로 인지할 수 있게 하는 조건을 생각, 사상, 가치관, 기억들로 규정하며 독창적인 존재라는 나리의 말은 <인간다움>의 조건에 대한 통찰이다. 

물론 스놉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 자본주의 사회 구조 또한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쿼터의 연수원 조원들 또한 속물적 근성을 내비치기도 하며 각자의 ‘사연’과 ‘상처’로 갈등하고 반목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결점을 채워나가며 변화한다. 손해를 보더라도 뒤처지는 조원을 배려하며 구보를 뛰고,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정하고 미안해한다. 쿼터가 간과한 점이다. 인간들도 <인간다움>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변수가 생긴다. 

<지옥사원>은 쿼터의 고군분투기와 동시에 순무의 제자리 찾기다. 선함이 거추장스럽고 불량이 되어버린 시대 속에서 순무는 유별난 존재다. 순무는 ‘지금-여기’의 최선(崔善)이다. 동시에 최하등급의 불량품이다. 86화에서 쿼터는 “진짜 고순무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사실 한국의 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덕목은 쿼터에게 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거나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의 결과치를 내는 것이 작금의 사회 아니던가. 세상에 선한 사람만 있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선함과 손해가 동의어로 쓰이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다. 선의를 베풀다가 의식불명이 된 영재의 형, 착하기만 한 순무의 죽음 등 선함은 오히려 베푸는 사람에게 희생만을 강요하기도 한다.

쿼터의 성공은 우리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예외적 상황을 손쉽게 뒤집고, 답답한 현실에 대한 카운터 펀치를 날려주기 때문이다. 성실과 믿음과 같은 가치가 삶의 목적이라는 순무와는 전혀 다르다. ‘왜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순무를 찾을까? 쿼터를 응원하는 만큼 순무가 돌아오기를 원하는 모순된 마음은 헬조선을 전복할 수 있는 하나의 가능성이다. 순무는 여전히 착하고 선하다. 답답할지언정 자신이 정한 선한 가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애쓴다.

진짜 고순무는 쓸모없는 가치라고 평가한 쿼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속물성과 이기심도 갖는다. 점차 사라지고 있는 <인간다움>의 사회에서 <원래> 그런 것들의 귀환, 더 이상은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 없기를 바라는 <원래> 그런 가치를 고민해야 한다.

 

 

글 · 한유희
문화평론가. 제 15회<쿨투라> 웹툰부문 신인상으로 등단. 2021년 만화평론 공모전 우수상 수상. 경희대 K-컬처 스토리콘텐츠 연구원으로 웹툰과 팬덤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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