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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의 문화톡톡] 2023년 총결산 드라마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김민정의 문화톡톡] 2023년 총결산 드라마를 읽는 네 가지 키워드
  • 김민정(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09: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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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공식포스터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공식포스터

 

1. 드라마 <더 글로리>: 여성 ‘싸움캐’ 전성시대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과 사적 복수를 다룬 여느 드라마들과 달리, 등장인물들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감정선을 기반으로 고도의 심리전이 벌어지고 가해자 본인이 몰락의 직접적인 계기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심리복수극이라는 탁월한 차별화 지점을 만들어낸다. 20233<더 글로리> 파트2는 공개 첫 주 넷플릭스 글로벌 TOP 10 TV(비영어) 부문 1위에 오르고, 누적 시청시간 1억 시간을 기록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연진아, 나 지금 되게 신나라는 명대사를 남긴 주인공 문동은은 학교폭력에 관한 대중들의 공감과 분노를 증폭시키며 그동안 제도권 밖 사적 담론에 머물러 있던 학교폭력을 공적 담론으로 끌고 오는 데 성공하였다. <더 글로리>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대중적 영향력을 가진 대중문화 콘텐츠로서 사회 공론장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사적 복수를 통한 공적 정의 구현을 드라마 안팎으로 훌륭히 성취해냈다.

<더 글로리>의 문동은을 시작으로 누구보다 싸움을 잘하는, 그 싸움을 통해 자신의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였다. 드라마 <대행사>는 광고대행사에 다니는 여성 임원의 치열한 생존기를 다룬 오피스물로, 백마탄 왕자가 탄 말의 목을 베는 어여쁜 소녀를 첫회 오프닝으로 내세운다. "다른 여자애들이랑 달라서 놀랐니?" 주인공 고아인이 만든 광고 속 소녀의 도발적인 행동은 지방대 출신 흙수저 여성 임원 고아인이 앞으로 격파해나갈 계급 사회를 향한 위풍당당 출사표다.

관념적인 계급싸움과 더불어 진짜 싸움을 잘하는 여성 캐릭터도 있다. 1920년 일제 강점기 간도 배경의 드라마 <도적: 칼의 소리>언년이돈이 되면 어떤 일이든 다 하는노비 출신 살인청부업자로 등장해 남자 군인과 남자 도적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화려한 액션으로 시선을 끈다. 언년이는 시즌 2에서 항일무장투쟁의 선봉에 서서 맹활약을 펼칠 것임을 예고하며 극중 조연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여주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발산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천한 종놈들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자고.”

<도적>의 언년이가 기술이 화려한 싸움캐라면 <힘쎈 여자 강남순>강남순은 마동석계열의 슈퍼 파워 싸움캐다. 강남순은 조선 시대부터 선천적으로 놀라운 괴력을 타고난 모계 유전의 정통 후계자로 등장해 뇌를 빼고 보는 드라마라는 기묘한 호평을 끌어낼 정도로 사이다맛 단순무식한 힘을 자랑한다. 옳은 일에만 힘을 써야 한다는 가문의 규칙에 따라 강남순은 맑은 눈의 광인이 되어 사회정의를 지키기 위한 유쾌한 영웅담을 선사한다.

 

2. 드라마 <모범택시> : 시즌제 드라마의 빛과 그림자

2023년 <모범택시>가 시즌제 드라마 안착에 성공했다. 아시아 최대 OTT 플랫폼 뷰(Viu) 집계에 따르면 시즌 2 첫 방송이 나가고 나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홍콩, 태국 등 아시아 여러 나라의 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시즌2에 힘입어 시즌 1 다시 보기 열풍도 불었다. 대만에서 시즌1이 일일 시청 순위 2위로 역주행했고,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싱가포르에서도 일일 순위 톱10에 진입했다.

<모범택시>를 비롯해 <낭만닥터 김사부> <구미호뎐> <아라문의 검> 등 시즌제 드라마가 2023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시즌제 드라마 <구미호뎐>은 시즌 2에서 ‘K-판타지’ 세계관을 한층 확장하며 시즌1의 인기를 뛰어넘는 호응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시즌1의 중심 서사를 이루었던 인간 여자와 남자 구미호의 로맨스를 확 줄이고, 그 빈자리에 한국 산신과 한국 토착신들이 대거 투입되었다. 그동안 ‘K-판타지’ 하면 <도깨비> <별에서 온 그대>와 같은 ‘로맨스판타지’ (로판) 장르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2 <구미호뎐 1938>은 로맨스 없이 K-판타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2019년에 방영된 한국 최초의 고대 판타지 서사극 <아스달 연대기>는 시즌1의 부진을 딛고 4년 만에 시즌 2가 방영되었다. ‘아스달 연대기’로부터 8년이 지난 후 아스 대륙에서 일어난 새로운 이야기를 다루는 시즌2 <아라문의 검>은 남녀 주연배우를 교체하고 드라마 제목까지 바꾸는 파격적인 변화를 앞세웠다. 그 결과, ‘대한민국 사극 명장’ 김영현 박상연 작가의 ‘아스달 세계관’에 다시금 희망의 불씨가 살아났다. 넷마블과 스튜디오드래곤은 드라마 시즌2부터 IP를 공동으로 인큐베이팅하며 초대형 MMORPG(대규모 다중 접속 역할 수행 게임)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다소 아쉬운 성과를 낸 시즌제 드라마도 있다. <경이로운 소문> 시즌2는 한국에서 중국으로 드라마 무대를 확장하고, 더욱 강력해진 악귀를 등장시켜 극의 긴장도를 높였다. 하지만 작위적인 설정 때문에 카운터즈들의 영웅담이 통쾌하기보다는 유치하게 그려졌다는 혹평과 함께 시즌1의 인기를 뛰어넘지 못했다. 작년 티빙 유료가입기여자수 1위를 기록한 드라마 <술꾼도시여자들> 또한 30대 도시여자들의 맛깔스러운 술방이 큰 화제를 모으며 기대 속에 시즌2가 공개되었지만 극 초반 ‘술꾼도시여자들’이 산으로 가고, 그 산에서 술을 마시지 않아 ‘드라마가 산으로 갔다’는 혹평을 받았다.

 

3. 드라마 <무빙> : OTT 구독료 인상

2023년 최고의 히트작은 단연 한국 최고 제작비 650억 원의 초대형 액션물 <무빙>이다. 드라마 공개 전, 타 OTT 플랫폼과 비교해 적은 구독자 수로 인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았다. 하지만 <무빙> 보려고 디즈니 구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으며 OTT로서 디즈니 플러스의 존재감을 널리 알렸다. 밥 아이거 월트디즈니컴퍼니 최고경영자는 <무빙>이 약 7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는 데 기여한 주요 타이틀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얼마 후, 디즈니 플러스가 구독료를 인상하면서 <무빙>를 향한 뜨거운 대중의 열기 못지않게 OTT 요금제가 업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넷플릭스가 계정공유 금지로 사실상 가격 인상을 주도한 데 이어 디즈니플러스와 티빙, 유튜브 등 국내외 OTT들이 연이어 구독료를 인상했다. 디즈니플러스는 프리미엄 요금제 가격을 기존 월 9900원에서 1만3900원으로, 티빙은 스탠다드 요금제를 1만990원에서 1만3500원으로 올렸다.

기존 구독료 인상과 더불어 광고형 요금제도 출시되었다. 계정 공유 유료화 정책과 함께 넷플릭스는 콘텐츠 감상 중간에 광고를 시청함으로써 구독료를 할인받을 수 있는 광고형 요금제를 출시하였다. 티빙 역시 내년 1분기에 국내 OTT 최초로 월 5,500원의 광고형 요금제를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TT의 요금정책이 크게 바뀌면서 기존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할 구독료가 대폭 상승하였다.

소비자 불만이 폭주하였고 불법 동영상 사이트의 접속을 통한 불법시청이 증가하였다. 대표적인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 ‘누누티비’의 경우, 국내에서만 매월 1000만 명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 활성화 이용자 수인 1200만 명과 비슷한 규모다. ‘누누티비’는 2021년 6월에 개설되어 2023년 4월 서비스 종료되었으며 그 이후, 인터넷에는 유사한 불법 동영상 사이트가 많이 생겨났다.

 

4.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 사극 열풍

퓨전 사극부터 정통 사극까지 2023년 대한민국은 사극 열풍으로 뜨겁다. 그중 KBS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 대한민국 최초 정통사극으로 막강한 존재감을 발휘 중이다. OTT 통합 플랫폼 키노라이츠에 따르면, 첫 공개 이후 11월 4주와 5주 2주 연속 통합 콘텐츠 랭킹 1위를 차지하였고 넷플릭스 국내 1위를 기록하였다. 총 270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고려거란전쟁>은 퓨전 사극의 전성시대에서 대하사극의 부활을 알리며 최근 시청률 부진으로 고민하는 지상파 방송사들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0년대 이후 퓨전 사극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정통사극은 역사 왜곡 논란과 제작비 문제로 기피하는 장르로 여겨졌다. 2021년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역사 왜곡 논란과 중국풍 소품 사용으로 시청자의 거센 비난을 받아 폐지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 동북공정에 관한 문화적 저항 의식과 맞물려 우리 역사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고, 글로벌 OTT를 포함한 제작 유통 채널이 다각화되면서 다시금 사극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고려거란전쟁>은 그동안 역사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을 받았던 역사 왜곡과 부실 고증을 확실하게 대비하였다. 극중 등장하는 거란 복식의 고증을 위해 몽골 과학아카데미 고고학연구소를 찾아 자문을 받고 사극에서 반복되는 오류로 지적된 서구식 로빈후드 활쏘기 기법도 궁국식 전통 사법으로 바꾸었다.

디테일한 고증을 바탕으로 <고려거란전쟁>은 지금껏 어떤 사극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스펙타클한 전투씬을 선보였다. 극중 ‘귀주대첩’, ‘삼수채 전투’, 흥화진 전투’를 비롯해 고려시대 배경 구현에 기존 SF영화 등에서 주로 접했던 CG, VFX (Visual Effects 시각특수효과) 등의 제작기술을 적극 활용하였다. ‘고려 거란 전쟁’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귀주대첩’ 장면은 1회 오프닝에 전면 배치되었으며 그 분량이 무려 8분 20초에 달한다.

나이 지긋한 부모님 세대부터 MZ 자녀 세대까지 남녀노소에게 두루 사랑받고 있는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글로벌 흥행소식과 함께 국민 사극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는 것인가, <대장금>과 <허준>에 이어 다시 한번 한류의 중심에 K- 정통사극이 자리하는 것은 아닌가, 드라마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김민정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학과 문화, 창작과 비평을 넘나들며 다양한 글을 쓰고 있다.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과 르몽드문화평론가상, 그리고 2022년 중앙대 교육상을 수상하였다. 저서로 드라마에 내 얼굴이 있다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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