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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선경의 문화톡톡]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에 대하여
[구선경의 문화톡톡] 들리지 않던 목소리들이 들리는 것에 대하여
  • 구선경(문화평론가)
  • 승인 2023.12.18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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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의 바다를 헤매다니다가, 이전에 사창가에서 일했던 사실을 밝히며 얼굴도 드러내고 그곳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말하는 유튜브 출연자를 만났다. 당황스러웠다. 선입견으로 사람을 대하지 말아야 함을, 직업으로 사람을 차별하거나 판단하지 말아야 함을 잘 알고 있지만 순간 멈칫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호기심과 궁금함으로 계속 시청을 했다. 나의 당황과 무관하게 출연한 당사자의 태도는 담담했고 말투는 침착하고도 조리 있었다.

일상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던 사람을, 실제 본인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기회는 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건 분명 호사가 적 관심과 궁금함이 첫 번째 이유였다. 당사자의 육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새로웠고, 그리고 보는 내내 마음 한편은 불편했다. 본인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겠다고 나왔는데 그걸 보는 내가 왜 불편할까. 그것도 나의 오만한 판단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며 복잡해졌다.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엔 어쨌든 나의 편견의 껍질이 한풀 벗겨진 것만은 사실이었다.

 

유튜브에는 예전 TV 시대였다면 접하지 못했을 다양한 사람들과 콘텐츠들이 있다. 트렌스젠더의 목소리도, 동성애 커플의 일상 브이로그도, 이성과 깊은 스킨쉽에 대한 이야기도 이전에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코미디에서도 개그 콘서트쯤에 나와도 무방할 정도의 수위를 지키는 채널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하고 같이 보기에는 망설여지는 채널도 있다. 구사하는 언어의 수위라든가, 신체를 노출하는 방식이라든가 욕설을 쓰는 정도 등이 다른 경우도 있고, 내용 자체가 그러한 경우도 있다. 정치 성향에서도 극우 또는 극좌로 편향된 목소리들이 필터 없이 노출된다. 브이로그 덕분에 누군가의 침대 속에서의 모습, 세수하는 맨얼굴, 나와 똑같이 목 늘어난 티셔츠에 무릎 나온 잠옷 바지를 입은 모습에도 익숙해졌다.

이러한 추세 때문일까? TV도 덩달아 용감 또는 솔직해졌다. 부부간의 은밀한 섹스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하는 MBN의 <쉬는 부부>도 예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내용의 프로그램이고, 채널A의 <금쪽같은 내 새끼>, MBC의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 KBS joy의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나오는 의뢰인들의 사연은 때로 듣기 힘들거나 민망할 만큼 적나라하다. 물론 이전에도 이런 솔루션 프로그램들이 있었지만 사연을 구성하고 드러내는 데 있어서 수위가 더 높아진 듯 하다.

 

다양한 사람과 새로운 세상을 알게 해 준 콘텐츠 중에서 특히 내가 지속해서 봤던 몇 채널을 떠올려본다.

<삐루빼로>라는 유튜브 채널은 루게릭병을 앓고 있는 20대 여성의 투병 브이로그를 주로 올리는 채널이다. 초반에는 남동생이 지극정성으로 누나를 케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보게 되었고 이후에는 중증의 무거운 질병을 앓고 있지만 엄마, 할머니 등의 가족 모두가 밝고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따뜻하게 느껴져 보게 되었다. 당연히 그 밝음과 긍정이 투병 생활의 모든 것이 아닐 것이다. 유튜브에 담지 않는 어려움과 힘듦, 절망과 어두움이 있겠지만 누구나 그걸 짐작 못 할 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알고리즘은 이와 유사한 일명 ‘투병 브이로그’들을 내게 추천해 주었고,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질병과 (거창하게도)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때로 누군가에게 질병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여야 하는 경우들이 있다. 불치의 병일 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까. 더구나 병이나 죽음이란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새파랗게 빛나는 20대 언저리의 젊음에게 무작위로 다가온 불행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할까. 투병 브이로그들은 그들이 그 질병과 삶을, 운명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하고 살아내는지 보여주었고 그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또 다른 채널은 <박막례 할머니 Korea_Grandma>와 <밀라논나 Milanonna> 채널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47년생, 77세 할머니로 손녀가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소위 ‘떡상’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이다. 무학에 젊은 시절에는 과일 장사부터 가사 도우미, 공사장 백반집, 식당 등을 운영하면서 2남 1녀를 키워낸 그녀의 스펙은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그 나이대 할머니의 모습이다. 그런 그녀의 유튜브가 인기를 끌게 된 건 누구보다 솔직하고 가식 없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70대 할머니는 우리에게 고정 관념으로 존재한다. 뽀글 파마머리에 ‘몸빼’를 입고 목청이 크고 아무한테나 말 걸고 간섭하기 좋아하며 때로 무례할 만큼 거칠고 염치도 없는 모습쯤으로 상상하기 쉽다. 사실 그들이 그런 모습을 갖게 된 데는 전사前事가 존재한다. 먹고 살기 급급했던 젊은 시절부터 시간 절약 돈 절약을 위해 오래 가는 뽀글 파마를 하게 됐고, 함께 어울려 살던 동네 문화 골목 문화에 익숙한 감수성을 지녔기에 남들에게 말 거는데 거침이 없으며, 그들이 가족을 건사하고 지키느라 애쓰는 사이 달라진 새로운 시대의 관행과 예의를 익힐 기회가 없어 어느새 시대에 맞지 않게 촌스러워져 버린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는 우리에게 그런 그들의 저간의 사정을 알려준다. 구구절절 꼰대처럼 설명하는 게 아니라, 유튜브 채널의 재미있는 일상 브이로그를 통해, 새로운 일과 놀이에 도전하는 모습을 통해, ‘아 할머니는 저렇게 살아왔구나, 할머니도 아가씨였던 때가 있구나, 할머니가 되면 저런 게 힘들겠구나’ 등등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박막례 채널 구독자의 대다수가 2030 여성이었던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대와 70대의 소통이라니. 심지어 팬이 돼서 구독을 하고 사인회를 찾아가다니. 놀라운 이해의 장이 아닐 수 없다.

 

 

밀라논나는 박막례 할머니와는 결이 다른 할머니다. 그 세대에는 드물게 이탈리아에서 유학한 엘리트로 패션 분야에 오래 종사해 온 전문직 여성이다. 유튜브 초기에 패션에 대한 조언과 명품에 얽힌 스토리 등을 소개한 콘텐츠가 특히 눈길을 끌었고,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한 전문적인 식견에 매료된 사람들이 구독을 눌렀다. 이후 그녀의 하루 루틴, 식사, 건강 관리 등의 브이로그 등을 보면서 구독자들이 느낀 가장 많은 감상은 “아 나도 저렇게 나이 들면 좋겠다” 하는 것이었다. 젊은 여성들의 로망이 되어준 할머니라고나 할까.

이 두 여성 노인 유튜버의 채널은 할머니에 대해, 노인에 대해, 나아가서 나이 듦에 대해 그간 부정적이거나 막연했던 두려움과 예상을 깨고, 나이 들어도 삶이 지속되고 있고 멋있을 수 있고 도전할 수 있다는 구체성을 주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이 채널들이 인상적으로, 이 주인공들이 구체적으로 깊숙이 다가올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본인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누군가의 가공을 거치지 않고, 꾸준히 길게, 자신들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그것이 유튜브의 속성이고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중요한 건 이전에는 그런 플랫폼이 부재했다는 것이다. 비로소 한 개인이, 특별한 권력이나 위치를 갖지 않는 불특정의 한 사람이, 때로는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었던 소수자에 속했던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이전 같으면 못 했을 이야기를 하고 우린 그걸 듣게 됐다.

 

내가 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존재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내 목소리를 내어야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 나의 존재가 남에게 영향을 미치고, 나도 남에게 영향을 받고, 그래서 서로 주고 받음 속에서 상호 작용을 하면서 감정을 나누고 의견을 나누고 사회를 함께 변화시키거나 발전시켜가며 존재하는 게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이다. 그게 없다면 살아감의 의미를 어떻게 찾겠는가. 그러니 심지어 내가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할 때, 내 직업이, 나의 정체성이, 나의 성향이, 부정을 당하면 살기 힘들다. 괴롭고 아프고 때론 분노가 때론 외로움이 극단을 달릴 것이다. 그렇게 된 나머지 방구석으로 고립을 택하거나 혹자는 죽음을 택하는 게 아닐까.

목소리가 많아진 건 좋은 일이다. 사람은 원래 다 같지 않을 텐데 그 다양함을 다 각자의 모양과 자리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면 각자 조금 더 평안해질 것이다. 유난한 행복이나 특별한 성공만 칭송하느라 누군가 소외시키거나 추락시키는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이 소소하게 그러나 자기 우주를 충분히 만끽하며 살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 사회를 더 풍부하고 하고 더 넓어지게 만들어서 더 많은 사람이 편안하기를. 내가 너를 맘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너의 의견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그런 너의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바라본다. 새로운 플랫폼이 그런 가능성의 힘이 되어주기를.

 

사진 출처 - 유튜브 캡처

 

참고자료

김은진, 「여성 노인 유튜버를 통한 여성들의 세대 간 소통과 연대 -박막례, 밀라논나 채널을 중심으로」, 『지역과 커뮤니케이션』 27권 2호, 한국지역언론학회, 2023.

 

 

글·구선경
드라마작가. 작가협회 교육원과 대학에서 드라마와 스토리텔링 강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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