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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경성의 개츠비, 장태상의 성장기: <경성 크리처> (2023년 12월22일 넷플릭스 공개)
[지승학의 시네마 크리티크] 경성의 개츠비, 장태상의 성장기: <경성 크리처> (2023년 12월22일 넷플릭스 공개)
  • 지승학 (영화평론가)
  • 승인 2023.12.20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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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우화로

경성의 개츠비, 장태상

<경성 크리처>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케 하는, 이른바 1945년의 경성에서 걸출하게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장태상(박서준). “내 돈을 욕하지 마”라는 대사로 그의 캐릭터는 한방에 결정된다. 경성에서 살면서도 거침없이 내뱉는 말, “일본 없는 조선을 본 적이 없다”라는 그의 말 그대로 그에게는 조국의 의미보다 돈의 의미를 쫓으려는 확고한 의지마저 서려 있다. 이런 대사로부터 이미 장태상의 생각의 패턴과 삶의 태도가 어떨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되고도 남는다. 그에게 돈은 맹목이므로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어떤 도덕적 윤리적 결단도 비장하게 발동될 리 없다.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돈의 의미

결은 다르지만, 같은 맥락에서 또 하나의 맹목을 위해 경성에 도착하는 두 사람이 있다. 윤중원(조한철)과 그의 딸 윤채옥(한소희). 그들은 실종된 부인을, 실종된 엄마를 10년 동안 찾아나선 터다. 장태상에게 돈이 진심이듯, 그들에게 사라진 부인이자 엄마는 진심이 돼버렸다. 그러니까 <경성 크리처>는 윤채옥의 엄마 찾기에 장태상이 합류하는 드라마다. 장태상이 추구하는 돈의 위치에 윤채옥의 엄마라는 존재가 자리한 셈이다. <경성 크리처> 시즌 1에서만큼은 엄마의 존재가 곧 <경성 크리처>의 서사적 구심점이 된 것이다.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크리처의 두 가지 의미

그 존재의 비밀을 여기서 말할 순 없지만, 그 비밀의 구조가 어떤 층위를 갖는다고는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앞서 명료한 대립의 구조 속에서 같은 편의 인물 간 세밀한 이야기가 곧 이 드라마의 몰입도를 높일 것이라 말한 바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은 하나의 대상 속에 자리한 여러 개의 의미가 껍질을 벗겨낸 순간 동시에 자기 모습을 드러낼 것이란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드라마에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동시성을 갖춘 의미, 이를테면 과거를 소환하여 현재를 이해한다는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라는 '과거'에 나타난 크리처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다. 그러니 감독과 작가들에게 크리처의 의미부여는 동시적이면서 다의성을 가져야 하는 이율배반적인 미션과도 같았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애초에 끝났어야 할(과거) 역사적 청산이 여전히(현재) 끝나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알리려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과거'의 끔찍한 상흔과 '지금' 다시 직접 대면해야 함을 강조하는 노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크리처는 다이달로스의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르스처럼 중첩된 의미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채 부유한다.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살아남기

경성 ‘크리처’의 그런 다의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태상이 “난 그저 살아남는 것에 진심인 사람”이라고 말하는 태도와 크리처가 어떻게 공명하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실제로 인간이 넘어서기 어려운, 크리처의 막강한 힘에 저항해야 하는 절실함은 장태상이 자기를 규정하는 그 말, ‘살아남는 것에 진심’인 마음을 더 진실한 것으로 만들고 만다. 모르긴 해도, 크리처가 탄생하게 된 배경 곧 일제 강점기에 자행되었던 생체실험은 장태상의 비장함을 끌어올리는 장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1945년 일본 패망 직전 당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은 사실적인 공간 세트와 거기에 동화된 채 디테일함을 선보이는 엑스트라들의 생활연기는 그래서 더욱 정교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역사와 우화의 차이점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경성 크리처>의 감독과 작가들은 크리처 물에 시대성을 부여할 때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역사적 비장함을 크리처에 절실하게 저항하는 상태로 바꾸고 나니 그 과정에서 장태상의 변화하는 마음은 시대적 성숙도를 보여주듯 서서히 농익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성 크리처>는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역사적인 이야기라기 보다 우화적인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역사적 청산의 문제를 비윤리적 실험의 결과로써 인과응보, 자업자득의 서사 도식으로 바꾼다. 크리처를 발명한 주체는 패망이라는 실패와 좌절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 속 인물들을 <위대한 개츠비>, <배트맨>, <스타쉽 트루퍼스>, <킥 애스> 등 여러 영화적 주인공의 병렬로써 승자 독식의 주인공으로 전환한다. 일제강점기에 생긴 역사적 상흔은 이로써 일벌백계의 당위성을 마련한다. 이 드라마는 그렇게 승자 독식의 서사를 역사적 단죄에 빗대어 영리하게 각색한다.

 

윤채옥과 장태상

그래서일까. 이 드라마에서 오해하기 쉬운 점은 바로 역사를 우화로 바꾸는 그 과정에서 비롯된다. 특히 로맨스 서사 부분은 다른 드라마에서와는 달리 중요한 계기로 작동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장태상이 윤채옥에게 동화(同化)되어 크리처와 맞닥뜨리게 되는 결정적인 시점이 윤채옥에게 반하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순간의 로맨스 서사는 뻔한 클리쉐로 읽힐 테지만, 장태상의 결단이 과도하게 비장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이해하고 보면 훨씬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연출에서의 특이점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묘사 능력에서 온다. 공감대 형성에 있어서 이는 가장 필수적인 능력이다.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출처_넷플릭스 공식홈페이지

역사에서 우화로

역사가 우화로 변하는 과정을 다루는 호흡이 긴 드라마의 장점은 영화가 가질 수 없는 충분한 러닝타임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서사 진행의 과정에서 암시해야 하는 이야기의 배분은 매번 아주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곤 한다. 한 번에 알아챌 만큼 순진해서도 안 되고 도통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해서도 안 되며, 자기 해석의 나르시시즘에 빠져 지나치게 비장해서도 안 된다. 그런 이야기 안배에 있어서 <경성 크리처>의 힘이 계속 유지될지, 어이없게 맥이 탁 풀릴지 아니면 과도하게 힘을 주게 될지는 시리즈가 지속되는 한 계속해서 지켜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요즘 넷플릭스 드라마는 자기 해석의 과잉이라는 질병에 시달리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영리하게 극복하게 되면 이 드라마는 재미와 사회적 메시지 둘 다 잡을 수 있는 수작(秀作)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와 장점을 모두 갖춘 <경성 크리처>는 2023년 12월 22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문학박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홍보이사, 201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으로 등단. 현재 고려대 응용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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