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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억압된 욕망의 폭발 그리고 괴물로 변모하는 육체, 한국형 괴수물의 진화
[윤필립의 시네마 크리티크] 억압된 욕망의 폭발 그리고 괴물로 변모하는 육체, 한국형 괴수물의 진화
  • 윤필립(영화평론가)
  • 승인 2024.01.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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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트 홈 공식 포스터(넷플릭스, IMDB 제공)
스위트 홈 포스터(넷플릭스, IMDB 제공)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류의 탄생 이후 되풀이됐을 법한, 그래서 끊임없는 논쟁이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모두가 그 답을 찾아 헤매는 인류사의 난제 중 난제이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다소 직설적인 제목으로 이에 대해 다룬 바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결국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감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인간을 향한 신의 사랑인 아가페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사랑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의 욕망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일면 타당하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누구나 사랑하고 싶어하고 사랑 받고 싶어하기에...... 만약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가 사랑이라면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본성 자체는 곧 인간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인간성에 대한 문제는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 전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주제로, 그것을 사랑이나 욕망과 연관짓는다면 에로스적 사랑을 다루는 멜로 장르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공포 장르에 속하는 한국형 괴수물에서 인간의 실존과 인간성 상실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고도 반갑다. 물론 <괴물>(봉준호, 2006)에서 한국형 괴수물의 가능성이 새롭게 제시되기도 했으나 그 이후에 제작된 <차우>(신정원, 2009), <7광구>(김지훈, 2011), <물괴>(허종호, 2018) 등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점프 스캐어(jump scare)에 의지한 채 관객들에게 짜릿한 악몽을 선사하는 데에만 몰두함으로써 기존에 한국형 괴수물이 지니고 있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괴물(봉준호, 2006) 중에서(네이버 영화 제공)
괴물(봉준호, 2006) 중에서(네이버 영화 제공)

그러한 점에서 영화 <부산행>(연상호, 2016)과 오티티(OTT) 시리즈 <스위트 홈>(이응복, 2020), <경성 크리처>(정동윤, 2023)는 서사적 한계가 치명적임에도 불구하고 괴수물이라는 공포 장르로만 놓고 볼 때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이들 작품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각각의 서사 안에서 인간의 육체를 활용하는 양상이다. 즉, 기존의 한국형 괴수물에 등장하는 괴수들은 철저히 인간과 차별화되는 동시에 타자화되었으므로 늘 인간에 의해 명확히 처단돼야 할 대상으로 존재했었다. 그래서 이들 괴수들을 각 개인의 삶을 둘러싼 사회적 억압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사회적 억압으로 인해 사소화되며 변모해 가는 각 개인의 면면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들에게 있을 법한 사회적 억압을 향한 파괴적 욕망은 어떤 모습일까? 안타깝게도 기존의 한국형 괴수물에서는 이러한 각 개인의 욕망은 상대적으로 감추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그 어떤 장르보다 전복적이어야 할 장르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보수적인 장르로 남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한 흐름에 균열을 낸 것이 연상호의 <부산행>으로, 이 작품은 본격적인 한국형 좀비물로 평가된다. 좀비로 말할 것 같으면 조지 로메로의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을 빼놓을 수 없는데, 흔히 그가 만들어 낸 좀비는 말초적인 욕망만 남긴 채 모든 것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인간성을 상실한 채 육체로만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은 인간인가 괴물인가 하는 궁극적인 의문이 든다. <부산행>이 바로 그 연장선에 있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부산행>의 좀비는 명암 구분에 민감하고 청각을 따라 미각이 촉진된다는 것이다. 그 모습은 어둡고도 거대한 시스템 속에 갇힌 채 무수한 말들 속에 파묻혀 자아를 상실하고 욕구마저 통제당하는 현대인과 닮아 있다. 당장은 그렇게 억압 받고 있으나 때가 되면 모두를 적으로 만드는, 인간의 육체를 뒤집어 쓴 괴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네이버 영화 제공
부산행 포스터(네이버 영화 제공)

<부산행>이 인간의 욕망과 그 파괴적 성향을 인간의 육체로 귀환한 좀비를 통해 보여주었다면,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 홈>과 <경성 크리처>는 그 반대편에 서 있다. 즉, 억압됐던 개인의 욕망이 폭발함으로써 스스로 괴물의 육체로 재탄생하며, 그 몸집은 각각의 욕망에 비례하여 파괴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 가운데 <스위트 홈>의 사인화된 괴물들은 인간성을 상실한 채 무차별적인 파괴를 일삼는 욕망의 결정체로 등장하기에 스릴러적 쾌감을 선사한다. 반면, <경성 크리처>의 성심(강말금 분)은 스토르게 즉, 혈육의 정을 기억하고 있는 인간적인 괴물로 변모하는데, 이것이 이 작품에서 가장 핵심적인 신파적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은 자못 놀랍다. 그것은 아마도 성심이 억압할 수밖에 없었던 욕망 즉, 딸을 만나고자 하는 그리움의 크기에 비례하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인간의 욕망은 억압될지언정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무의식 중에 잠겨 있다가 어떤 형태로든 되돌아오게 되어 있다. 로빈 우드는 이것을 '억압된 것의 귀환'이라 칭하며 공포 영화가 주는 쾌감을 설명한다. 다시 말해, 일반적인 사회 환경에서 사람들은 그 누구도 쉽게 시스템의 전복과 파괴를 시도하지 않으나 그것이 꿈이나 가공된 환상임이 명백할 때 사람들은 자신을 짓누르는 사회적 규범을 상상 속에서 파괴하고 거기서 쾌감을 얻는다. 이러한 쾌감은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괴수가 바로 자신과 동일시될 때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부산행> 이후의 한국형 괴수물은 바로 이렇게 사인화된 괴물을 활용함으로써 인간 존재와 인간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이전의 괴수물과 차별적으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글을 맺으며, 개인적으로 2023년 12월 27일은 올해 가장 충격적인 날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공허함마저 차오른다. 언제인가부터 한 개인을 향한 공적 인격 살인이 적법한 수사라는 이름으로 당당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거기에 동조하는 일부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를 보고 있노라면 일말의 윤리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한 개인을 기사나 가십의 대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영혼을 지닌 사랑과 배려의 대상으로 볼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그러면서 과연 <부산행>, <스위트홈>, <경성 크리처> 속의 괴물들이 현실에도 존재하고 있었구나 싶어 소름끼친다. 한국형 괴수물에서 등장인물들이 괴물들에 끝까지 맞서듯,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괴물들의 등장과 끔찍한 그 괴물들과 함께 하는 일상에 결코 익숙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삼가 고인과 고인의 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경성 크리처 포스터(넷플릭스 제공)
경성 크리처 포스터(넷플릭스 제공)

 

글·윤필립

영화평론가, 응용언어학자. 대학에서 강의하며 한국 언어/문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계명대에서 국문학, 영문학을, 연세대 대학원에서 국어학-한국어교육을 전공했다.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영상작가전문교육원을 수료했고, 무궁화 스토리텔링 공모전 동화 부문 입선, 서울국제사랑영화제 기독교 영화비평 대상 수상, 동아일보 신춘문예 영화평론 부문 당선 등을 했다. 만화평론상, 대종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심사위원 및 영평상 집행부 등을 역임했다. 필리핀 관광부(마닐라) 관광 개발 기획국에서 일했으며, 에모리대(미국) 대학원 펠로우십 후 국립정치대(대만) 한국어문학과 및 난양공대(싱가포르) 인문대학 교수로 지내다 귀국 후 연세대, 세종사이버대에서 강의하며 세종사이버대 한국어교육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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