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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웅>― 도마 안중근 의사, 독립투사의 큰 뜻과 죽음의 길
[서곡숙의 시네마 크리티크] <영웅>― 도마 안중근 의사, 독립투사의 큰 뜻과 죽음의 길
  • 서곡숙(영화평론가)
  • 승인 2024.01.02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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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중근: 뮤지컬 <영웅>과 영화 <영웅>

 

뮤지컬 <영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1년을 다룬 국내 창작 뮤지컬이다. 2009년 초연하여 뛰어난 완성도로 2010년 뮤지컬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의 상을 모두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제4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정성화), 연출상, 음악상, 무대미술상, 조명음향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정성화), 연출상, 음악상, 무대미술상을 수상하였다. 두 시상식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뛰어난 가창력으로 안중근 역을 훌륭히 해낸 정성화는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이 뮤지컬의 모든 음악을 담당한 작곡가는 오상준이다. 이 작품은 영웅주의나 민족주의를 뛰어넘어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 연기력, 카리스마와 조화로운 안무, 탄탄한 코로스로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안중근과 링링, 이토 히로부미와 설희가 각각 주요한 축을 이룬다. 일부에서는 이토 히로부미의 미화, 빈약한 스토리, 내면 묘사의 아쉬움, 안중근-링링 로맨스의 윤리성, 설희 캐릭터의 개연성 등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도 했다.

영화 <영웅>(윤제균, 2022)은 뮤지컬 <영웅>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32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이며, 59회 대종상 영화제에서 대종이 주목한 시선상-배우를 수상하였고 43회 황금촬영상에서 촬영상 은상을 수상하였다. 이 작품은 1909년 3월부터 1910년 3월까지 1년 동안의 안중근 의사의 삶을 다루고 있으며, 세 가지 주요한 사건을 담고 있다. 첫째, 1909년 3월 안중근이 동지들과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는 단지동맹을 하는 사건이다. 둘째, 1909년 10월 안중근이 하얼빈역에 도착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사건이다, 셋째, 1910년 3월 감옥에서 안중근이 사형을 선고받고 죽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 안중근(정성화), 정보원 설희(김고은), 어머니 조마리아(나문희)를 비롯하여 독립군 동지인 우덕순(조재윤), 조도선(배정남), 유동하(이현우), 마진주(박진주), 마두식(조우진)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안중근이 살인죄의 죄인인가 아니면 전쟁포로의 영웅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2. 단지동맹: 과거의 죽음과 현재의 복수

 

<영웅>의 전반부는 남주인공 안중근, 여주인공 설희를 중심으로 러시아, 일본에서 각각 살아가지만, 공통의 과거(죽음)와 공통의 욕망 대상(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보여준다. 시기적으로 1895-1909년을 다룬다. 시기와 공간을 살펴보면, 안중근을 중심으로 하는 플롯은 1909년 3월 러시아 연추 단지동맹(과거), 1907년 평안남도 진남포 고향(대과거), 1908년 6~8월 함경북도 독립군 전투 의병대장(대과거),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동지들 재회(현재)의 순서로 펼쳐진다. 설희를 중심으로 하는 플롯은 1909년 일본 동경의 게이샤(현재),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목격한 상궁(대과거), 일본 게이샤(과거), 독립군 정보원(현재)의 순서로 펼쳐진다. 남주인공 안중근 플롯은 1907년 독립군 전투, 1909년 단지동맹, 동지 재회를 다루며, 여주인공 설희 플롯은 1985년 명성황후 시해, 1909년 독립군 정보원 게이샤를 그려낸다. 남녀 주인공은 러시아와 일본에서 각각 독립운동에 헌신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안중근은 1907년 집안의 재산을 모두 독립운동에 바치고, 아내의 반대와 어머니의 지지를 뒤로 하고 의병대장으로서 독립군 전투에 참여하며, 일본군 전쟁포로에 대한 인도적 행위로 인해 독립군 동지들이 몰살하자 자신의 실책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사적, 공적, 내적 갈등을 겪는다. 그는 1909년 동지들과 단지동맹을 하면서 결의를 다진다. 설희는 자신을 아끼던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을 목격하고 명성황후의 심장을 빼내고 시체를 태우는 일본군의 잔혹한 행위에 분노하여 복수를 결심하며, 일본으로 건너가 게이샤가 되어 독립군의 정보원 활동을 수행한다. 남녀 주인공 모두 과거 일본군으로 인해 사랑하는 동지와 황후의 죽음을 겪게 되면서 사적 복수와 공적 처벌을 결심하게 된다.

욕망의 주체인 안중근과 설희 모두 욕망의 대상은 대한제국 독립과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다. 안중근은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를 3년 내 암살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는 단지동맹의 맹세를 하면서 내적, 공적 의지를 불태운다. 설희도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기 위해 첩자로 활동하면서 이토에 대한 정보를 독립군에게 넘긴다. 남녀 주인공 모두 동지와 황후의 죽음으로 사적 복수와 공적 독립운동을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고자 계획하는 공동의 목표에 헌신한다. 그래서 욕망의 주체인 남주인공 안중근과 여주인공 설희는 다른 공간에서 존재하지만, 과거 독립운동이라는 공적 처벌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사적 복수로 인해 현재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거는 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보여준다.

 

 

<영웅>의 전반부 스타일은 공중촬영과 원숏, 슬로우 모션, 유사 이미지 편집은 시련과 동맹, 실책과 고통, 현재와 과거의 연결을 표현한다. 안중근이 러시아 연추의 눈 덮인 벌판을 힘겹게 걷는 장면은 공중촬영을 통해 시련을 표현하며, 단지동맹의 순간에 안중근의 원숏에서 시작해 카메라가 뒤로 물러나면 여러 명의 독립투사들이 보이고 손가락을 자르며 ‘대한독립’을 혈서로 쓰는 장면에서는 동맹의 의지를 표현한다. 안중근이 살려준 일본군 포로 때문에 독립군 동지들이 몰살당하는 장면에서 안중근이 총을 맞아 쓰러지거나 죽어가는 독립군들을 보는 장면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주면서 처절한 죽음과 뼈아픈 죄책감을 표현한다. 일본 동경에서 유키코로 위장한 설희가 명성황후를 주인을 무는 개로 표현하는 이토 히로부미의 말을 듣고는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술잔에 어린 설희의 얼굴이 연못의 물에 어린 설희의 얼굴로 변하는 편집은 이미지의 유사성으로 현재에서 과거로의 연결을 표현한다.

 

3. 암살: 공적 임무와 사적 복수

<영웅>의 중반부에서 조력자인 마두식, 마진주가 일본경찰 와다로 인해 죽게 되면서 분노로 위기가 발생하며, 여주인공이자 조력자인 설희가 적대자인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여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군 동지들이 암살을 계획하게 된다. 뮤지컬에서는 안중근과 링링의 로맨스 플롯이 있는데 안중근이 처자식이 있는 인물이어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안중근과 여성 인물의 로맨스 플롯은 삭제되고 독립군 동지 마진주와 막내 독립군 유동하의 로맨스 플롯으로 대체된다. 안중근은 오랜 동지 마두식이 일본 경찰 와다의 고문으로 목숨을 잃게 되자 ‘조국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리운 어머니, 그리운 고향, 그리운 조국’으로 이어지면서 ‘어머니=고향=조국’이 등가의 알레고리로 연결된다. 이 알레고리는 어머니를 지키기 위해, 고향을 지키기 위해서,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정당성으로 이어진다.

조력자는 어머니, 독립군 동지들, 설희이다. 조력자 인물들이 죽고, 위대한 사명에 바쳐진 젊은 독립군 동지들이 죽음을 맞이한다. 여주인공이자 조력자인 설희는 독립운동과 목숨이라는 딜레마에 빠진다. 많은 독립군들이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임무를 수행한다. 전반부의 의병군 동지들, 마두식·마진주 남매, 설희 등이 목숨을 잃게 된다. 특히 여주인공이 중반부에 죽는다는 특이한 설정을 보여준다. 조력자의 죽음은 적대자에 대한 분노를 상승시켜 주인공의 공적 임무와 사적 복수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조력자/적대자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주인공의 위기를 강조한다.

설희는 여주인공이자 조력자 역할을 수행하며 공간적으로 떨어져 존재하는 이질적 인물이다. 대부분 주요 인물들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 있지만, 설희만 일본 동경에 있으면서 전보라는 매체로만 서로 연결된다. 하지만, 설희가 적대자인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하얼빈으로 향하게 되면서 주인공/여주인공/조력자/적대자의 공간적 위치가 가까워지기 시작하면서 긴장감이 일어난다. 설희는 대과거의 조선, 과거의 일본, 현재의 일본, 현재의 러시아 등 세 가지 공간(조선·일본·러시아)을 경유한다. 설희는 표면적으로는 적대자인 이토 히로부미의 게이샤 애인으로서 일본인 적대자로 위장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조선인으로서 여주인공이자 조력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래서 설희는 여주인공, 적대자, 조력자라는 세 가지 역할을 모두 수행한다. 설희는 하얼빈으로 가는 기차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하여 체포되어 감금되자 투신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하지만, 설희는 마지막에 이토의 양복 상의에 흰 손수건을 꽂음으로써 암살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다.

적대자는 제1대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 경찰 와다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서 탐욕, 잔인성 등의 악행으로 악인으로 규정된다. 그는 조선을 발판 삼아 중국을 삼키고 아시아를 통일하는 대동아공영이라는 제국주의적 탐욕을 드러내며, 명성황후를 개로 비유하며 멸시하고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개를 죽여야 한다며 명성황후 시해를 정당화한다는 점에서 잔인한 면모를 드러낸다. 안중근은 독립운동이라는 공적 임무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동지들의 죽음으로 인한 사적 복수를 하고자 하지만 공적 임무에 더 비중이 실려 있다. 이에 비해 설희는 독립운동이라는 공적 임무보다는 명성황후 죽음으로 인한 사적 복수에 더 집착한다는 점에서 대비된다. 적대자와의 관계에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암살과 독립운동을 공적 임무로 재현하는 데 반해, 설희는 이토 히로부미 암살과 독립운동을 사적 복수로 재현한다는 점에서 남녀 주인공과 적대자의 관계에서 공적/사적 비중이 다르게 다루어진다. 설희는 ‘그대(명성황후) 향한 꿈’이라는 대사를 통해 명성황후(개인)의 죽음으로 인한 사적 복수가 공적 임무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안중근은 그리움의 대상이 어머니, 가족, 고향, 조국으로 점점 확대되면서 어머니(사적)에서 조국(공적)으로 나아가며 사적 복수에서 공적 임무로 나아간다.

일본 경찰 와다는 과거 안중근이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준 일본군 포로였지만, 일본군을 끌고 가서 독립군을 전멸시키고, 마두식을 끌고 가서 고문 끝에 죽게 만들고, 마진주를 폭행하여 죽게 만든 인물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폭행하거나 죽임으로써 폭력성과 잔인성을 드러내는 악행으로 악인으로 규정된다. 와다는 안중근이 자신을 살려줬지만 자신에게 총을 쏘아 얼굴에 상처를 입힌 안중근에게 강한 사적 복수심을 느낀다.

 

<영웅>의 중반부 스타일은 동작/정지의 편집, 오버더숄더숏과 클로즈업, 클로즈업과 익스트림롱숏을 통해 현재/과거와 외면 내면, 사랑/죽음, 죽음의 두려움/의지를 대비시킨다. 파티 장면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손님들이 어둠 속에서 정지하는 반면, 설희에게만 조명이 비치면서 드레스를 입고 천천히 걸어가는 게이샤 설희(현재)와 한복을 입고 눈물 흘리는 상궁 설희(과거)를 교차편집으로 보여주고, 히로부미를 쳐버리자 히로부미가 불꽃으로 변해서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편집에서의 동작/정지, 현재/과거, 환상/현실의 대비를 통해 내면적인 고통·분노와 외면적인 가면·미소를 대비시킨다. 마진주가 일본 경찰 와다에게 폭행당해 죽는 장면에서 진주가 피를 흘리며 유동하에게 “당신은 나의 첫사랑”이라고 고백하며 “그대가 슬피 우는 걸 사랑이라고 믿어도 될까요?”라고 말하며 미소 지을 때 클로즈업과 오버더숄더숏으로 사랑과 죽음의 대비를 표현한다. 설희가 기차에서 투신자살하는 장면에서 설희는 “돌아갈 수 없는 죽음의 문턱 앞에서 내 마음 왜 이리 약해질까. 몸부림치며 떨쳐내려 애써봐도 세상과의 이 가혹한 인연을 끊을 시간. 뛰어내리려다가 멈춘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난 다시 태어나도 조선의 딸이기를 빌고 빌어 기도해.”라고 노래하는 장면에서 클로즈업과 익스트림롱숏의 결합을 통해 죽음의 두려움과 자결의 의지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킨다.

 

4. 사형: 대의의 공분과 독립의 의지

 

<영웅>의 후반부에서 안중근, 동지, 어머니, 단지동맹은 안중근이 조국 독립과 암살에 투신하게 임무를 부과하며, 어머니-가족-고향-조국의 알레고리는 어머니-조국의 알레고리로 압축되며, 대의를 위해 죽으라는 어머니의 명령과 장부의 뜻을 지키겠다는 안중근의 의지가 일치한다. 안중근에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임무를 부과하는 인물은 바로 안중근 자신이다. 안중근은 네 번째 손가락을 자르며 3년 안에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지 않으면 자결하겠다는 단지동맹의 맹세를 하며, 동지들과 설희의 도움으로 이토 히로부미 암살에 성공한다. 욕망 대상의 발신자는 안중근, 동지, 어머니이며, 수신자는 안중근이다. 암살에서 마두식, 우덕순, 조도선, 설희, 마진주, 유동하 등 여러 동지들이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안중근만 성공한다. 안중근의 딜레마는 암살에 실패하면 자결하고, 암살에 성공하면 사형에 처해진다. 암살 임무의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죽음의 길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며 말한다. “당신의 헛된 꿈은 이제 끝났소.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내 꿈도 이젠 끝이오.” 이토 히로부미가 죽게 되면 안중근 자신도 죽게 된다. 소원 성취와 임무 완수의 끝은 죽음이다. 주인공 안중근이 죽으면서 대부분의 인물도 죽음으로 끝나면서 독립운동의 고귀함과 일본 제국주의의 잔인성을 대비시킨다.

안중근의 체포 사건에서 일본인으로 구성된 법정은 안중근을 형사범으로 규정하지만, 안중근은 자신이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이기 때문에 전쟁포로라고 선언한다. 안중근은 이토 히로부미 살해에 대해서 사적으로는 하나님에게 사죄를 드리지만, 공적으로는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으로서 명성황후 사해, 고종황제 폭력적 폐위, 국민 대량 학살 등의 죄목을 거론하며 이토 히로부미의 죄, 더 나아가 일본의 죄를 밝힌다. 안중근의 사형판결 사건에서 인물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아내와 동생들은 항소를 준비하는 반면, 어머니는 안중근에게 편지로 항소하지 말고 죽음을 선택하라고 명령한다. “니가 만약 늙은 애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머니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니가 만일 항소를 한다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다른 마음 먹지 말고 그냥 죽어라.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그냥 죽어라.” 안중근은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는 눈물 가득한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의 뜻을 받아들인다. 사형집행일에 어머니는 다시 편지를 보낸다. “모자의 인연 짧고 가혹했지만 너는 내 영원한 아들. 한 번만 단 한 번만 너를 안아봤으면.”

아내와 어머니는 실리주의와 원칙주의, 생명과 명예의 대비를 보여준다. 안중근이 밝힌 논거, 즉 대한제국 의병군 참모총장이기 때문에 형사범이 아니라 전쟁포로이며, 전쟁포로를 죽일 권한이 없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반격이다. 어머니는 두 가지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대의를 위해 그냥 죽어라”는 공적 명령과 “한 번만 너를 안아봤으면”하는 사적 염원을 동시에 들려준다. ‘모자의 인연이 짧고 가혹하다’는 것은 바로 ‘죽어라/안아봤으면’이라는 이런 상반된 두 가지 마음의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졌기 때문이다. 안중근은 전반부에 어머니=가족=고향=조국의 알레고리를 보여주며, 후반부에 어머니=조국으로 압축되는 알레고리를 보여준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죽는 것, 나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안중근의 의지와 “비겁하게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그냥 죽어라”는 어머니의 명령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영웅>의 후반부 스타일은 클로즈업과 롱숏, 미디엄숏과 트래킹숏을 통해 암살의 의지와 상황, 감정이입과 굳은 의지를 표현한다. 하얼빈역에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하는 장면에서 안중근이 “이토, 당신의 헛된 꿈은 이제 끝났소. 고향으로 돌아가고픈 내 꿈도 이젠 끝이오.”라고 말하며 권총을 발사할 때 안중근의 불타는 눈동자 클로즈업은 독립운동의 의지와 죽음의 예감을 함께 표현한다. 안중근의 재판 장면에서 안중근이 “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 조국을 위해 죽는 것. 나 기꺼이 받아들인다. 그들의 위선과 우리의 진실을 세계에 알려주시오.”라고 말하며 동지들과 함께 재판장에서 나오는 모습을 미디엄숏과 트래킹숏의 결합으로 보여주면서 독립투사들을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사형의 부당함과 독립운동의 의지에 대한 감정이입을 표현한다. 사형집행일에 어머니와 안중근을 교차편집으로 보여주는 장면에서 소복을 만드는 조마리아를 담는 카메라가 클로즈업에서 미디엄숏으로 멀어지고, 소복을 받는 안중근을 담는 카메라가 바스트숏에서 풀숏으로 멀어지면서 카메라의 다가가기와 거리두기의 대비를 통해 죽음의 고통과 독립운동 의지를 함께 표현한다. 안중근이 사형집행장으로 가는 장면에서 동지들의 울부짖음과 안중근의 미소를 롱숏, 미디엄숏, 바스트숏으로 점점 다가가며 트래킹숏과 버즈아이뷰숏으로 담아내면서 주관적 동일시와 객관적 관찰을 동시에 표현한다. 안중근이 죽는 장면에서 죽음의 두려움에 떠는 안중근을 어두운 조명과 클로즈업을 표현하는 반면,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장부의 큰 뜻을 밝히는 안중근을 밝은 조명과 롱숏으로 표현하면서 대비를 나타낸다.

 

5. 안중근: 죄인인가 영웅인가

<영웅>은 안중근이 죄인인가 영웅인가라는 답이 정해진 질문을 던진다. 안중근은 임무를 실패하면 단지동맹에 의해서 자결해야 하고, 임무를 성공하면 체포되어 사형판결을 받는다. 안중근은 임무의 실패와 성공에 상관없이 죽음의 길로 가게 되며, 본인도 조국을 위해 죽겠다고 말하고 어머니도 대의를 위해 죽으라고 명령한다. 누가 죄인인가, 누가 영웅인가? 죄인이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영웅이기 때문에 사향을 당하는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입장에서는 죄인이고, 대한제국의 입장에서는 영웅이다. 이 영화에서 안중근의 부릅뜬 눈(클로즈업)이 세 차례 등장한다. 안중근은 전반부 독립운동 전투 때 자신의 인도주의로 인해 일본군 포로를 살려주는 행위 때문에 독립군 동지들이 몰살당할 때 부릅뜬 눈(클로즈업)을 보여주며, 중반부 의거일에 이토 히로부미에게 총을 겨누며 자신의 죽음을 예감할 때 부릅뜬 눈(클로즈업)을 보여주며, 후반부 사형집행일에 두려움을 떨치고 장부의 큰 뜻을 도와달라고 기도하면서 부릅뜬 눈(클로즈업)을 보여준다. 부릅뜬 눈과 클로즈업의 결합은 도마 안중근 의사의 내면적인 처절한 두려움과 외면적인 강렬한 의지를 함께 표현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글‧서곡숙
영화평론가, 영화학박사, 청주대학교 영화영상학과 교수. 한국영화교육학회 부회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상임이사, 계간지 『크리티크 M』 편집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부천국제영화제, 대종상 등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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