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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연호의 문화톡톡] 기억, 물질, 데이터로서의 인간: 토탈 리콜과 트렌센던스
[김장연호의 문화톡톡] 기억, 물질, 데이터로서의 인간: 토탈 리콜과 트렌센던스
  • 김장연호(문화평론가)
  • 승인 2024.05.27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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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기억을 조작당하는 인간, 슈퍼컴퓨터와 결합되어 신체없이도 전무후무한 지능을 가진 신이 된 인간
토탈 리콜 포스터

폴 버호벤의 <토탈 리콜>(1990)는 인간의 기억에 관해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가상공간이 확장됨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신체가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움직이는 사물들의 경험들을 망막을 통해 뇌에 전달하게 되었다. 들뢰즈는 이렇게 현재 떠도는 수많은 스크린을 뇌로 정의한다. 현재 떠도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누군가의 뇌에서 구현된 무빙이미지라는 것이다. 영화의 탄생으로 우리는 주변의 물질을 무빙이미지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필름은 서구 성인 남성 백인 비장애인 이성애자 관점에서 수많은 역사의 흔적을 남겼다. 다다영화나 초현실주의영화가 꿈, 무의식을 영화로 구현하려고 했던 찰나의 순간이 있었지만, <토탈 리콜>은 가상 공간을 설정하여 누군가의 실제 기억을 교란시키는 기억 경험 이미지들을 심고 정체성까지 트랜스되거나 혼란하게 하는 '미래 영화'의 버전을 선보인다.

 

토탈 리콜 한 장면

초국적 기업에 의해 조작될 수 있는 기억을 통해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들을 기업이 제공하는 다양한 기억 프로그램을 통해 한 개인의 기억으로 주입시킬 수 있다는 설정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이야기이다. 주인공 퀘이드(아놀드 슈왈츠제너거)는 미모의 아내 로리(샤론 스톤)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며 광산에서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근데 퀘이드는 화성에서 갈색머리의 다른 여성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꿈을 자주 꾸곤 한다. 어느 날 여행사 리콜이 제공하는 기억이식 프로그램 가게에 들어가게 된 퀘이드는 우주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기억을 이식해주는 과정에서 깨어나게 되면서 자신의 원래 이름이 하우저이고 자신의 기억이 자본가 코하겐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알게 된다. 화성을 식민지삼아 독재를 일삼던 코하겐은 화성에 공기 제조장치를 통해 화성인들의 삶을 조정해왔다. 이 작품은 초국적기업의 자본가들에 의해 국가가 조종될 때 어떠한 상황이 발생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또한 인간의 기억까지 관장할 수 있는 초국적 기업의 횡포 앞에서 포스트휴머니티를 가진 사이버펑크 인간이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있는지 화두를 던진 채 영화를 마무리한다.

마샬 맥루한의 논의처럼 사진, 영화, 컴퓨터는 눈의 확장이자, 뇌의 확장이며, 중추신경의 확장이다. 뉴미디어에 의한 인간의 확장으로 지구촌을 상상하는 것과 권력 체계(국가, 자본,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훈육된 주체로 자기 기술화된 신체를 갖게 되는 혼종된 신체는 더 이상 앞으로 다가올 신체 이미지가 아니다. 서구의 물질 논의에 기반한 이 작품은 인간의 기억조차 조작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사회를 그리고 있다. 기억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은 한 인간이 가진 고유의 개인성들이 외부에 의해 조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러다이트 운동: 방직기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여겨 시작한 반기계 운동
러다이트 운동: 기계 방직기가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여겨 시작한 반기계 운동 / (게티 이미지)

과연 물질로서의 인간은 인공적으로 조작될 수 있는 것인가? 서구의 영원불멸하고 완벽한 인공 인간을 만드는 과정은 연금술사 파라켈수스(Paracelsus)가 구현하려고 했던 인공 인간 호문쿨루스(Homunculus)의 일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파라켈수스는 『물의 본성에 대해(De Natura Rerum) 』에서 증류기에 인간 정액을 넣어 40일 밀폐해 부패시키면 투명하고 사람 형태를 한 비물질이 나타나고 거기에 매일 인간 혈액을 주고 온도를 유지시켜 40주를 보존하면 인간 아이를 만들 수 있다고 기록하였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어머니, 괴물, 기계」( 『유목적 주체(Nomadic Subject)』(1994))에서 과학적인 합리성이 차이를 어떻게 다루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과거 서구는 표준에서 벗어난 신체를 '괴물'이라는 변칙적 존재로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브라이도티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의 발생』에서 그가 생명의 원리를 정자 중심성에만 놓았으며, 여성의 생식기관은 수동적 그릇으로 봤을 뿐만 아니라, 정상 신체를 남성의 신체로 기본화하여 여성의 신체를 변칙적 신체로 인간의 표준을 형성했음을 지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식에서 표준대로 진행이 되면 남자 아이가 생기지만, 무언가 생식 과정에서 잘못되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여자 아이가 태어난다고 주장하였다. 즉, 여성은 인간의 신체의 결핍을 의미하거나 표준에서 일탈된 신체를 의미한다. 

 

독일 연금술사 카라켈수스
독일 연금술사 카라켈수스Paracelsus(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호문쿨루스를 만들어 내는 연금술사(이미지 출처: 위키백과)

파라켈수스는 인간은 여자의 신체 밖에서 태어나야 하고, 또 그럴 수 있다고 확신했다. 브라이도티는 이것을 '자궁 선망', 또는 '모체에 대한 선망'으로 제시한다. 연금술사들의 여성의 신체 없이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는 상상력은 '자기 생식'이라는 남성의 환상을 증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연금술사들은 자궁의 기능을 단순히 황소 가죽, 퇴비나 비료 등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보았다. 지금도 생명과학 분야에서 끊임없이 실험되고 있는 인공 자궁은 이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트렌센던스 포스터

<트렌센던스>(2014)는 여기서 더 나아가 물질로서의 인간의 신체도 가상의 공간으로 편입시킨다. 영화는 '나'라는 자아가 데이터로 환원되어 전세계의 디지털 정보망에 현전하는 과정을 그린다. 여기서 주인공인 윌 캐스터를 위협하고 살해하는 적으로 등장하는 이들이 인공지능을 반대하는 반과학단체 RIFT이다. 1811년부터 1816년까지 불었던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에 나아가 생태주의, 에코페미니즘, 신유물론 등은 우주-지구-생명이 과학과 자본 기술에 의해 파괴, 착취, 약탈되고 있으며, 자본화된 과학 발전이 유토피아가 아님을 비판한다. <트렌센던스>에서 윌의 신체는 더 이상 윌을 대변하지 못한다. 윌을 대변하는 것은 오로지 인공지능으로 남게 된 디지털 빅 데이터로서의 남성의 의식(뇌)일 뿐이다. 그리고 사랑이라는 감정때문에 여성인 에블린이 남성 윌의 의식과 슈퍼컴퓨터 FINN의 결합을 돕는다는 설정은 이 영화가 어떤 관점에서 제작된 작품인지 알 수 있다. 

<트렌센던스>는 신체 경험을 통해 형성된 수많은 체현된 정체성이 빅 데이터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인간이 인간을 초월한 전무후무한 지능을 가진 슈퍼컴퓨터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가설을 남기며 끝을 맺는다.

쉽게 기억을 조작당하여 권력 체계에 휘둘리는 <토탈 리콜> 인간 유형과 슈퍼컴퓨터와 결합되어 신체없이도 전무후무한 지능을 가진 신이 되버린 <트렌센던스> 인간 유형은 모두 기억과 의식에 관한 상상력을 전제로한 영화들이다. 우리에게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정말 디지털 데이터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이 등장하는 오늘날, '기억하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은 과연 무엇인가?를 되새김질 하게 한다.

 

 

글·김장연호
문화연구학 박사. 한예종 영상원 객원교수. 영화진흥위원회 우수 논문상 수상(2005), 영화진흥위원회 우수 출판지원 선정 『디지털 영상예술 코드읽기』(2003), 『카메라를 든 여전사』(2005) 책임기획 및 연구, 시네-미디어 큐레이터, 서울국제대안영상예술페스티벌 집행위원장, 한국영화학회 대외협력이사, 한국비교문학회 기획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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