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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진의 문화톡톡] 로스앤젤레스의 그래피티 기념비
[황수진의 문화톡톡] 로스앤젤레스의 그래피티 기념비
  • 황수진(문화평론가)
  • 승인 2024.02.19 1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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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역에 따라 하루 강수량이 15센티미터에서 25센티미터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폭우에 익숙하지 않은 로스앤젤레스 곳곳의 고속도로가 물에 잠겨 폐쇄되었고, 산사태가 여기저기에서 일어나 사상자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사이렌 소리와 경찰 헬리콥터 소리로 가득했다.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폭우가 지나가고 예의 화창한 하늘이 나타나자 이번에는 다운타운 로스앤젤레스로 경찰차들과 헬리콥터가 모여들었다. 25층 이상의 복합주거공간으로 완성될 예정이었던 오션 와이드 플라자의 전 층이 그래피티(Graffiti 낙서)로 가득한 모습이 되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16일 LA 타임스에 따르면 현재까지 최소한 18명이 불법 그래피티 및 사유지 불법 침입과 관련해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로스앤젤레스 시는 기존의 그래피티를 제거하고, 오션와이드 플라자에 불법 침입해서 그래피티를 하거나, 건물 위에서 떨어져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추가 보안인력을 투입하는데 거의 4백만 달러에 달하는 금액을 배정한다고 발표했다.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이제 오션 와이드 플라자 주위로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둘러싸고 있는 경찰차들과 헬리콥터 이외에도 실시간으로 이를 촬영하려는 민간 드론들로 각자 다운타운의 ‘그래피티 기념비’를 주시하고 있다. 며칠째 밤새 불법으로 건물에 침입해서 각 층의 전면 유리마다 그래피티로 장식하는 이들을 체포하기 위해 밤을 새운 모양의 경찰관은 ‘그래피티 기념비’를 찍고 있는 내게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고, 그 주위로 시시각각 늘어만 가는 그래피티를 지우기 위해 나온 사람들도 ‘이건 아트가 아니야. 그냥 불법이라고!’라며 우려 섞인 한숨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 들 사이로 근처의 고급 아파트 콘도에 살고 있는 이들이 곱게 단장한 아름다운 강아지들을 끌고 산책을 하며 그래피티로 가득한 건물을 신기하다는 듯이 올려다보며 지나치고 있었다. '그래피티 기념비'는 가장 완벽한 장소에서 현재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은 1920년대 도시 생활의 중심지로서의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후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지나 ‘자동차로 생활하는 도시’로서 도시구조가 완전히 개편되면서 인구가 빠져나가기 시작한 이후 예전의 화려했던 다운타운으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히스패닉 커뮤니티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1세기에 들어서야  NBA 경기가 이루어지는 크립토 아레나(전 스테이플 센터)와 그래미 시상식, 각종 대규모 음악 공연이 열리는 L.A.Live가 들어서게 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고급 아파트, 호텔, 레스토랑 등이 잇달아 건설되기 시작했다. 문제의 그래피티 기념비는 L.A.Live 바로 맞은편에 위치해있는 고층 주상복합건물로, 지난 2019년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부동산 회사 오션 와이드 홀딩스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공사가 중단된 채 몇 년째 방치되고 있었다. 다운타운의 중심부에 이렇게 주인이 사라진 고급 복합주거건물 옆으로 몇 블록이 떨어진 곳에는 오래전부터 도시의 고질적인 문제인 노숙자들의 텐트촌이 나날이 퍼져나가고 있는 풍경은 너무나 로스앤젤레스적이다.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로스앤젤레스 오션와이드 플라자 ©️황수진

 

 

글‧황수진
영화 및 아트, 문화 분야의 컨설턴트 및 큐레이션을 제공하는 복합문화 에이전시 MHM(Multi Hyphenate Media) 대표. 현재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도시와 벽화에대한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3년에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Desert Is The Sea> 전시 기획, 참여를 한 바 있다. 사라지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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