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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변신설화 모티브의 확장과 한계, ‘외계+인’
[임정식의 시네마 크리티크] 변신설화 모티브의 확장과 한계, ‘외계+인’
  • 임정식(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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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모티브는 동서양 신화와 전설, 민담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그리스로마신화 책의 제목도 『변신 이야기』이다.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변신의 황제는 당연히 제우스이다. 제우스는 황소, 백조, 안개 등으로 자유롭게 변신한다. 그 변신은 너무나 완벽하고 다채로워서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청동 탑에 갇힌 다나에에게 황금비로 변신해 접근해 사랑을 나누고, 페르세우스를 낳은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제우스의 변신은 여성(여신)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설화에도 변신 모티브가 있다. 동물이 인간으로,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사례가 가장 많다.

‘주몽 신화’에서 주몽은 해모수와 유화의 아들이다. 천제의 아들인 해모수는 웅심연 물가에 놀러 나온 하백의 세 딸 중 맏이인 유화를 유혹해서 억지로 통정한다. 그리고 하백에게 혼인을 요청한다. 그러자 하백은 해모수에게 내기를 제안한다. 곧이어 하백과 해모수는 잉어, 수달, 사슴, 승냥이 등으로 변신하는 경쟁을 한다. 결국 해모수가 승리하여 유화와 혼인하게 된다. ‘구렁덩덩 신선비’ 설화에서 끔찍한 외모의 뱀(구렁이)이 인간으로 변하고, 허물을 벗고 미남자가 되고, 신랑이 된다. 하지만 신부의 두 언니가 허물을 태워 뱀 신랑은 돌아오지 못한다. 신부는 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뱀 신랑과 재회해 행복하게 산다.

변신 모티브는 이룰 수 없는 무엇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이 투사된 결과물이다. 동물 변신담의 경우에는, 인간과 동물은 외양이 다를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는 사고방식을 담고 있다. 원시신화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변신 모티브가 현대적으로 변용된 대표적인 작품으로 <외계+인>을 꼽을 수 있다. 실제로 <외계+인>에는 주요 인물들의 변신과 분신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가드와 썬더, 반전처럼 등장하는 고양이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외계+인>은 분신과 변신 이외에 시간과 공간 이동이 뒤엉켜 있다. 시공간의 자유로운 이동 역시 신화적인 상상력이다. 여기에 반전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요괴가 무륵과 이안 중에서 누구의 몸에 들어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외계+인>의 장르와 설정은 매우 복잡하다. 1부는 복잡하게 뒤엉킨 인물, 시간, 공간, 사건을 설명하느라 이야기 전개가 느리고 혼란스러웠다. 2부는 1부에서 펼쳐놓았던 요소들을 비교적 깔끔하게 갈무리한다. 그래서 1부에서 정리되지 않았던 인물의 성격, 인물 간 관계 등에 대한 의문이 정리된다. 최동훈 감독은 1부를 150번가량 보면서 2부를 편집했다고 한다. 2부에서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가 눈에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 <외계+인> 2부의 고민이 있다.

 

왜 그럴까. 이러한 상황은 아이러니하게도 최동훈 감독의 장점과 연결돼 있다. 최동훈 감독은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넓게 펼쳐놓았다가 솜씨 있게 마무리하는 능력이 독보적이다. <도둑들>에서 그러한 이야기꾼의 장점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외계+인>의 인물과 사건 전개도 <도둑들>과 닮아있다. 여기에 어벤저스 류의 슈퍼히어로물이 지닌 특징을 한국식으로 변형해 독특한 재미를 준다. <전우치>에서 선보인 시간 이동, 분신과 변신, 부채 도술 등의 요소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또 외계인의 존재를 설정해 SF적인 요소를 가미한다. 그래서 세계관은 커지고, 액션과 스펙터클도 화려해졌다. 시각적인 볼거리는 더할 나위 없다.

<외계+인>의 주요 인물은 무륵, 이안, 가드와 썬더이다. 여기에 흑설과 청운, 자장, 문도석, 민개인, 우왕과 좌왕, 개똥이 등이 등장한다. 2부에서는 능파가 새로 추가됐다. <외계+인>의 서사는 이 많은 인물이 신검을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도전과 모험의 기록이다. <외계+인>의 시공간은 인물만큼이나 복합적이다. 우선 인물들은 현대와 고려를 수시로 오간다. 그런데 현대의 인물과 고려의 인물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이안은 현대의 초등학생이다. 이안은 고려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성인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현대로 다시 돌아온다. 고려의 소년이었던 무륵은 성인이 된 후 시간의 터널을 지나 현대로 이동했다가 고려로 되돌아간다. 이뿐만이 아니다. 가드는 가드와 썬더로 분리되고, 그들도 현대와 고려를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궁금증이 생긴다. 현대와 고려는 공존하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와 미래로 구분되는 관계인가. <외계+인>에서는 현대와 고려의 시공간 설정이 명확하지 않아서 서사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외계+인>의 1부에서 현대와 고려는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으로 나온다. 갓난아이가 그대로 현대로 옮겨왔으니 이러한 설명은 문제가 없다. 2부에서 문도석이 현대의 모습 그대로 고려로 이동하는 상황도 ‘공존한다’라는 설정에 들어맞는다. 그런데 고려의 어떤 인물들은 현대라는 미래로 ‘돌아간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현대와 고려는 공존하는 시공간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혼란이 발생한다. 이안은 현대에서는 초등학생, 고려에서는 초등학생 나이의 소녀와 성인으로 등장한다. 현대와 고려의 시간이 공존한다면, 이안은 고려에서 초등학생 소녀로 등장하거나, 아니면 현대에서 성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외계+인>에서는 이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고려의 이안 장면과 현대의 이안 장면이 교대로 등장한다. 마치 분신과 변신이 시공간을 초월해서 이뤄진 듯한 모양새다. 또 고려와 현대는 공존하기도 하고, 700여 년 전의 과거 혹은 700년 후의 미래이다.즉 현대와 고려가 환몽소설의 현실과 꿈처럼 분명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여러 인물이 왜 그토록 신검을 차지하려고 애쓰는지에 대한 설명도 아귀가 들어맞는다고 하기 어렵다. <외계+인>의 갈등은 설계자가 지구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데서 비롯된다. 따라서 일반적인 대중영화라면 무륵, 이안, 가드와 썬더가 한 팀이 되어 설계자와 대결하는 구도로 전개될 것이다. 그런데 <외계+인>에서는 가드와 썬더만 이 갈등 구도에 충실하다. 악당의 성격이 지금보다 선명하게 묘사되어야 영화의 갈등 구도가 분명해질 것이다.

또 영화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무륵이 신검을 차지하려고 하는 이유는 악당의 퇴치와 무관하다. 이안의 행동도, 흑설과 청운이 신검을 노리는 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인물 각자의 이유는 있지만, 그 이유는 말 그대로 각양각색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들은 한 팀이 되어 설계자와 대결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영화의 갈등 구도가 희미해지고, 서사는 안개처럼 허공을 떠다니고, 그래서 이야기의 맥락이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대략적인 설정만으로 관객을 제대로 설득하기는 어렵다.

<외계+인>은 장점이 많은 영화이다. 무엇보다 실험정신, 도전정신을 높이 살 만하다. 장르나 스케일 면에서 이만한 상상력을 발휘한 국내 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국인이 외계인으로부터 지구를 구한다는 설정이나 여성 주인공의 활약상도 흥미롭다. 하지만 <외계+인>은 인물과 시공간의 설정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모순을 내포하고 있어서 이야기의 갈피를 잡기가 어렵다. 그로 인해 갈등 구조가 명확하지 않게 되고, 결과적으로 영화의 다른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주요 인물의 분신과 변신이 뚜렷한 필연성이 없이 이뤄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외계+인>은 변신 모티브와 전기소설의 많은 환상적인 요소를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할리우드 SF영화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외계인의 지구 침공 모티브를 한국식으로 변주한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를 뒷받침해줄 구체적인 설정이 모호하다. 가드와 썬더, 우왕과 좌왕과 고양이의 변신, 시공간 이동이 뒤엉켜 있다. 게다가 <외계+인>에서는 인물의 변신과 분신, 시공간 이동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것이 왜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외계+인>은 우리나라 변신설화의 모티브와 할리우드 SF영화의 장르적 요소를 결합한 실험적인 영화이다. 다만 그 실험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이 글은 인터넷신문 ‘로컬데일리’에 실린 내용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글·임정식
문학박사, 영화평론가. 영화를 신화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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