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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양국의 문화톡톡] 매화-오로라 그리고 그린란드
[최양국의 문화톡톡] 매화-오로라 그리고 그린란드
  • 최양국(문화평론가)
  • 승인 2024.03.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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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쪽 깊은 바다(北冥)에 물고기가 있어 이름을 곤(鯤)이라 한다. 크기가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변하여 새가 되니 이름을 붕(鵬)이라 하는데, 붕의 등도 몇 천 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떨치고 날아 오르면 그 날개가 하늘에 드리우는 구름과도 같다. 바다의 기운이 바뀔 때면 이제 남쪽 바다(南冥)로 날아가니, 남쪽의 깊은 바다를 일러 천지(天池)라 한다.”

- 『장자』 소요유, 장주(BC 369년?~286년) -

 버려지는 겨울에 눈꽃이 내린다. 나무 위 눈꽃 기개가 서글퍼지면, 입춘을 떠난 절기는 경칩과 춘분을 내세우며 봄을 자랑한다. 계절은 봄으로 향하는 길에 경계(境界) 꽃을 피운다. 자연의 변화는 역마살 같은 경계와 함께 은유의 대상물로 찾아온다. 은유물은 경계에 머무르며 우리를 지배해 간다. 생명체의 유기체적 삶은 그 결정 인자인 원관념의 확장 게임을 끌고 당긴다. 그저 익숙한 시간, 공간과 더불어 어색한 지구온난화로 외연을 확대한다. 시간~공간~지구온난화의 원관념을 드러내는 보조관념을 경계에서 만난다.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 대부분의 좌표는 어쩔 수 없는 경계인의 삶으로 찍혀간다.

 

시간의 / 경계 꽃은 / 매화(梅花)로 / 피어나고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계절의 변화는 시간의 경계를 드러낸다. 겨울봄의 경계 꽃은 우리의 호들갑 속에, 때 이르게 소환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눈꽃을 이고 태어나, 목련꽃 그늘로 사라지는 꽃. 매화(梅花).

 

* 홍매화, Pixabay
* 홍매화, Pixabay

눈 속에 피는 꽃, 시린 눈을 떨쳐내고 봄의 사랑을 전하는 매화는 그 꽃말과 함께 곧은 심지와 뜨거운 열정으로 피어나며 옛 선조들의 관매(觀梅)로 이어진다. 경계 꽃은 눈 만큼이나 그림과 시와 친하다.

다산 정약용(1762년~1836년)은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1813년)에서 매화나무 가지에 앉아 있는 새의 모습을 그리고 사언절구의 시를 쓴다.

 

*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1813년), 정약용
*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1813년), 정약용

이 그림이 만들어진 배경을 다산의 『여유당전서』 (1934~1938년) 중 “~(전략)~. 내가 강진으로 귀양 온 지 여러 해가 되자 부인 홍씨가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보내왔는데 해가 묵어 붉은색이 다 바랜 것이다. 이것을 오려서 서첩 네 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주고, 그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오른쪽 위에서 내려온 매화나무 두 가지 중 아래 가지에 새 두 마리가 앉아 있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대부분 봄꽃의 특성을 나타내는 매화는 경계 꽃이면서 봄꽃이다. 다산의 처지와 심정을 나타내며, 매화나무에 피어난 꽃이 잎을 기다리며 애잔하지만 기품 있게 달려 있다. 꽃들도 만개한 것, 봉오리만 있는 것, 꽃받침만 있는 것 등 다양하다. 위에 보이는 가지는 굵고 진하지만, 아래 보이는 가지는 가늘고 흐리다. 몸의 방향은 다르지만 눈은 한곳을 보고 있는 두 마리 새는, 올바르고 진실함을 뜻하며 금슬이 좋은 텃새인 참새(Eurasian tree sparrow)로써 딸 내외를 의미하리라. 새 위로 드리운 가지는, 딸 부부가 있는 아래 가지를 보호하려는 부모의 가지. 그림으로 미처 표현하지 못한 다산의 마음은 안쓰러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시로 함께 한다.

정민은 『한시 이야기』(2002년)에서 “펄펄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다.//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 주어라//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로 해석한다. 이어서 “~(전략)~. 나는 지금 멀리 귀양 와서 형제와도 떨어져 있고, 아내와 가족과도 떨어져 있다. 그렇지만 매화 가지를 찾아 온 저 새처럼 함께 지내고 싶은 소망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면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너도 지금은 한 사람의 아내요,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가 되었구나. 형제간에 우애롭고 가족 간에 화목하게 지낼 수 있도록 네가 더 노력하렴. 그러면 저 예쁜 꽃이 지고 알찬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리듯 네 집안에 기쁘고 즐거운 일이 언제가 가득할 게다.~(후략)~.”라고 전한다.

시간의 경계를 대변하는 계절은 경계 꽃을 통해 다른 절기로 넘어간다. 경계는 통로의 역할을 한다. 통로는 소통을 의미한다. 같은 듯 다른 매화나무 가지와 새를 통해 다산이 우리에게 전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부부에서 시작되는 가족과 세대 간 화목을 위한 ‘소통’을 바라는 듯, 물오름달 남녘에서 화신을 타고 매화꽃 축제가 전해온다.

 

공간의 / 경계에는 / 오로라(Aurora)가 / 춤을 추니

 시간 경계인 매화 통로를 지나며, 공간 경계의 원관념을 드러내는 보조관념을 찾는다. 공간 경계는 점을 떠난 선과 면의 게임이다. 선과 면의 끝에서 지구와 우주를 만난다. 빛의 향연, 신의 영혼이며 생명의 빛. 오로라(Aurora).

 

* 오로라(Aurora), Pixabay
* 오로라(Aurora), Pixabay

태양에서 방출되는 태양풍(플라즈마 입자로써 전자 또는 양성자)이 지구 대기권 상층부의 자기장과 마찰하여 빛을 내는 광전 현상이다. 지구가 생명체에게 주는 사랑이다. 오로라는 황금빛을 의미하는 단어 오르(Aur- / 프랑스어 or-)에서 유래된, 동틀 녘 동쪽 하늘의 태양이 황금빛으로 빛날 때를 의미하는 '새벽', 또는 '신명'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여명의 신 아우로라(Aurora, 그리스신화의 Eos)에서 따온 것이다. 국립전파연구원과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2024년부터 2026년은 태양 활동이 극대기에 이르는 시기로 올해는 오로라 관측이 다른 해보다 쉽고 관측 가능 지역도 중위도까지 확산하며, 밝기도 최근 20년 이래 가장 밝을 것이라고 한다.

신들의 정원에 펼쳐지는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오로라는 사실은 태양과 지구의 물리적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태양에서 방출되는 태양풍(약 11년 주기로 강함과 약함을 반복)은 오로라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선물하기도 하지만, 자기권을 교란해 우리의 일상생활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다른 행성과는 다르게 지구에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지구를 감싸고 있는 자기권(magnetosphere) 때문이다. 따라서 오로라가 발생한다는 것은 지구 자기장이 지구 생명체를 지키고 있다는 증거이며, 지구 존재를 위한 정직하고 아름다운 커튼이기도 하다.

오로라는 지구와 우주의 경계를 가르며 생명체의 들숨과 날숨을 지배한다. 펄럭이는 아름다운 오로라 커튼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숨도 사라진다. 해오름달과 시샘달을 거쳐 물오름달을 여는 봄하늘의 커튼은, 하늘색의 변화와 더불어 일찍 열리고 늦게 닫힌다. 우리 삶의 시공간에도 커튼은 함께 한다. 보이는 물질적 커튼과 보이지 않는 마음속 커튼의 차이는 있지만, 커튼을 친다는 행위는 시공간을 초월한 자아 중심적 사회 문화의 밈(meme)으로 계승된다. 오로라를 만나면서 본 지구와 우주 간 장엄한 커튼 쇼가, 우리들 창문과 마음의 커튼을 여닫을 때도 함께 하는지. 현존하는 『장자』 33편 중 첫 번째 편 제목인 소요유(逍遙遊). 북쪽 바닷물고기인 곤(鯤)이 변하여, 붕(鵬)이라는 새가 되어 남쪽 바다를 향해 날아가는 메가 블록버스터(Mega Blockbuster) 신화와 같은 우화. 뱁새를 등장시켜 우리에게 주는 서사는 ‘뱁새가 어찌 대붕의 뜻을 알겠는가?’로 이어지며 ‘소지(小知)’의 어리석음을 일깨운다.

공간의 경계를 대변하는 커튼은 오로라를 통해 무생물 공간계와 구별된다. 경계는 보호의 역할을 한다. 보호는 숨을 의미한다. 협소한 얕은 북쪽 바닷속 물고기가 알고 있는 지혜가, 거대한 남쪽 깊은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저 새의 지혜와 같을까? 남명(남쪽 바다)을 향해가는 물음표와 느낌표를 날개 삼아 ‘소지’의 비상을 통한 확장으로 가는 길은, 물오른 나무들에 잎을 돋운다. 우물 안의 개구리를 들녘에서 만나며 오로라 커튼을 여닫는다.

 

온난화 / 경계 그린란드(Greenland) / 화이위조(化而爲鳥) / 호접몽 꾸네

 공간 경계인 오로라 커튼을 펼치며, 지구온난화 경계의 원관념을 이어주는 보조관념을 만난다. 대표적인 아대륙(亞大陸, subcontinent)으로써 북극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큰 섬. 지금은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며 진화해 가는 땅. 그린란드(Greenland).

 

* 그린란드(Greenland), Pixabay
* 그린란드(Greenland), Pixabay

명칭은 그린란드지만 실제는 아이슬란드로써, 명칭과 실제가 다른 덴마크의 자치령. 아이슬란드가 ‘그린란드’가 되어가며, 빙상이 녹고 그린란드 고유종으로 최상위 무척추동물 포식자인 늑대거미가 그린화된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다.

작년 3월 독일 포츠담 기후영향 연구소에 의하면, 2003년에서 2016년 사이에 그린란드 남부를 중심으로 연간 약 2,550억 톤의 얼음이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현재 지구에 누적돼 있는 5,000억 톤의 탄소 배출량이 1조 톤으로 늘어나면 170만㎢에 달하는 그린란드 남부 빙상이 녹아 해수면이 최대 1.8m까지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누적 탄소 배출량이 2.5조 톤에 이르면 그린란드 빙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해수면은 6.9m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Aarhus University) 연구팀은, 최근 그린란드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자켄베르크 연구소(Zackenberg Research Station)에서 지난 20년간 북극에 서식하는 늑대거미를 관찰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왕립학회보 B’에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점차 따뜻해지는 북극의 환경에서 늑대거미들이 번식 횟수를 늘리며 더 많은 새끼를 낳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한다. 이는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의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고 해안 지역 툰드라(tundra) 기온이 상승하면서, 그들의 먹이 사슬을 이루는 곤충과 다른 절지동물 등의 개체 수가 늘어남에 따른 것이다.

그린란드에 색의 마법을 위한 주술사의 향연이 펼쳐진다. 하얀색이 사라지며 녹색으로 변해가는 시공간은 슬픈 흰곰의 노래로 채워져 간다. 지구온난화의 경계를 대변하는 그린란드가 점차 익어간다. 경계는 장벽의 역할을 한다. 장벽은 소멸을 의미한다. 실제는 아이슬란드였던 그린란드의 무심한 듯한 그린란드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서신은 무엇일까? 『장자』 소요유(逍遙遊)의 ‘~변하여 새가 되니(화이위조, 化而爲鳥)’라는 구절에서 ‘위(爲)’는 ‘되다, 바뀌다’라는 뜻이다. 이는 원래 갖고 있는 긍정적 변화의 의미를 벗어나 그 언어적 변용의 궤도를 달리고 있다.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공간 속 수단이나 시간 속 순간이, 끊임없이 자기중심적 목적으로 변신하여 궁극적으로는 유기체적 생태계를 ‘소멸’로 이끄는 도구로 전락하고 있음이다.

시간~공간~지구온난화를 경계에서 만나며, 어쩔 수 없는 경계인이 되어가는 우리. 홍매화와 은매화가 암수되어 분분히 날리는 날엔, 오로라 커튼을 닫고 그린란드로 향한다. 경계인의 명상 유희를 통해 어린아이로 진화하여 가는 놀이에서 호접몽(胡蝶夢)을 꾼다. 그린란드에서 매화, 오로라 그리고 나비를 만난다. 슈만(R.A.Schumann, 1810년~1856년)의 클라라를 향한 사랑의 노래를 듣는다.

“그대 내 영혼 내 심장/ 그대 내 환희 내 고통/ 그대 내 세상, 나 거기서 살리라/ 그대 나의 하늘, 나 그 안에서 날으리/ 오! 그대는 나의 무덤/ 나 그 안에서 내 근심을/ 영원히 묻고 잠든다// 그대는 나의 안식이며 평화/ 그대는 하늘에서부터 내게로 왔네/ 그대 나를 사랑하여 나를 고귀하게 하였네/ 그대의 눈길은 나를 광명으로 채웠네/ 그대의 사랑이 나를 끌어올리니/ 그대는 나의 선한 영혼이며 보다 나은 내 자신이네”

-「헌정(Widmung」 (1840년), 슈만 -

바람과 경계의 지혜인 『장자』를 읽으며, 하양에서 빨강으로 익어가는 계절과 함께 슈만의 「헌정(獻呈)」을 노래 부른다.

 

 

글·최양국
격파트너스 대표 겸 경제산업기업 연구 협동조합 이사장
전통과 예술 바탕 하에 점-선-면과 과거-현재-미래의 조합을 통한 가치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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