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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청춘(정창화, 1966)> 해피 엔딩이 주는 청춘 희망 코드
[김 경의 시네마 크리티크] <위험한 청춘(정창화, 1966)> 해피 엔딩이 주는 청춘 희망 코드
  • 김 경(영화평론가)
  • 승인 2024.03.18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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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위험한 청춘> (1966) 포스터

효과적인 스타 이미지

1966년에 개봉한 <위험한 청춘>의 도입부 액션 장면은 효과적이고 함축적이다. 다수의 양아치에 둘러싸인 민 전무(허장강)가 궁지에 몰리지만, 덕태(신성일)가 양아치들을 제압하고 민 전무를 구한다. 이 영화에서 두 축을 구성하는 덕태와 민 전무의 인연이 시작된 액션이다. 이 장면의 효과는 스타 이미지도 한몫한다.

 

도입부 액션 장면
도입부 액션 장면

허장강과 신성일은 당대에 이미 액션으로 정평이 나 있던지라, 강력한 허장강을 구하는 신성일은 더 강력하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다. 이소룡 클로즈업과 액션이 내뿜는 아우라가 그러하듯이 신성일 클로즈업과 액션도 강하고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덕태를 이 싸움에 끌어들인 물개(트위스트 김, 김한섭)의 등장도 친숙하다. 신성일과 트위스트 김 콤비 역시 당대의 영화 속에서 소구 되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준다. 한국 청춘영화 브로맨스의 원조인 이들은 충직하고 짠한 아우와 든든하고 카리스마 있는 형님이지만 배운 것 없는 뒷골목 건달이며, 연신 땅콩과 비속어를 뱉어댄다.

1958년에 수입된 <이유 없는 반항>(1955)이 돌풍을 일으키고, 제임스 딘이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과 청춘을 결합한 아이콘으로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1960년대 신성일 역시 반항과 저돌 청춘의 상징이었다. 50년대와 60년대는 전 세계적으로 청춘 시대였다. 전쟁과 기성세대는 함께 지탄받고 새 물결에 목말라했던 시절이니까.

<맨발의 청춘>(1964, 김기덕)에서 청춘은 계급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동반자살 했지만, <위험한 청춘>에서 청춘은 복수와 사랑을 모두 쟁취해 낸다.

<위험한 청춘>과 <맨발의 청춘> 두 작품 모두 서윤성 각본이며, 건달 신성일과 부잣집 여대생(엄앵란/문희)이 사랑에 빠진다는 비슷한 설정이다. <위험한 청춘>의 부잣집 여대생 영아(문희)는 좀더 진취적이고 독립적이며, 건달 덕태는 끝까지 자기 의지를 관철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물이 아니라 행복하게 끝을 맺는다. 돈과 신분을 뛰어넘는 행복한 사랑의 결말은 지금도 녹록지 않다.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그리고 있는 서사는 종종 등장하지만, 온달과 평강은 설화일 뿐이고 건달과 여대생은 여전히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이것이 무려 1966년도 <위험한 청춘>에서 가능한 이유는 완고한 기성세대의 상징인 ‘부모’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매 가족의 중첩

이 영화는 도입부의 액션만큼 서사구조도 매우 단순 명료하다. 덕태와 영아의 사랑을 둘러싸고 있는 가족은 각각 누나와 오빠 뿐이다. 덕태는 누나 옥주(문정숙)와 살고 있고, 민 전무는 동생 영아(문희)와 살고 있다. 각각 남매 가족이라는 것이 중첩된다. 덕태와 영아의 가족은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유사하다. 덕태는 하나뿐인 혈육, 누나에게 상처를 준 민 전무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동생 영아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영아 역시 민 전무에게 하나뿐인 혈육인 건 마찬가지다.

 

덕태와 영아
청춘스타, 신성일과 문희

영아는 덕태가 ‘나쁜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그의 진심을 헤아린다. 옥주가 냉정한 민 전무로 인해 유산을 하고 관계를 정리하는 데 비해, 영아는 꿋꿋하게 출산을 결심한다.

덕태와 민 전무의 액션을 통해 덕태의 진심이 민 전무에게 전해지고, 민 전무는 마침내 덕태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군더더기기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이 영화의 결말은 옥주의 대사처럼 “아무쪼록 너희들만은 복되게 살아야지.”라는 축복과 “이제 검은 구름은 활짝 걷히고 우리들에게도 태양이 비출 거야.”라는 희망이다. 아기와 함께 이들은 “복된” 가정을 꾸릴 것이다.

기차역에서 이별로 마무리하는 결말 부분은 마치 영화 <망향(Pepe le Moko)>(1937, 쥴리앙 뒤비비에)에서 뱃고동 소리가 페페의 목소리를 집어삼킨 장면을 연상시킨다. 덕태가 누님에게 건네는 당부의 인사가 기적소리에 멈춘다. 이런 상큼한 대사 처리와 부드러운 하드 밥 재즈 ’Topsy’의 공존 역시 정창화 감독이 포착해낸 1966년 당대의 청춘 문화 코드다.

 

 

글·김 경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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